어제 두산이 히어로즈를 대파하면서 2위를 확정지었기에 오늘 경기는 부담없는 승부였습니다. 그래서 김동주, 홍성흔, 이종욱, 고영민, 이대수, 채상병 등을 모두 빼고 백업 멤버들 위주로 라인업을 짰더랬죠. 대개 이런 경기는 맥빠지기 쉬운데 저는 오히려 이번 경기가 기대가 되더군요. 그동안 못봤던 선수들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니까요. 특히 김재환선수의 선발출장 여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와 같이 오래간만에 야구장에서 만났습니다. 물론 저는 자전거타고 목동야구장에 갔구요.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는 집이 목동인지라 먼저 표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는 집이 아닌 회사에서 온 것이라더군요. 개천절까지도 출근을 한거 보면 바쁘긴 정말 바쁜 모양입니다.
목동야구장은 처음 왔는데요. 조금은 어설프긴 해도 야구장이 아담해서 경기 관전하기에는 잠실보다 낫지 싶습니다. 특히 선수와의 거리가 가까워서 종합운동장에서 축구보다 전용경기장에서 축구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경기장에 들어서자 포수 뒤쪽 중앙석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한게 참 반가웠습니다. 잠실은 기자들의 전용석이 되어서 왠지 심통이 났었거든요.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와 같이 자리를 잡고 전광판을 살펴보니 김재환이 선발출장했더군요. 기뻤습니다. 인천고 시절의 포스를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구요. 내년부터 상무 입대한다니 한동안 못본다는게 아쉬워서 더욱 그랬죠.
선발 라인업도 무척 생소하네요. 김재호, 오재원의 테이블 세터진에 유재웅, 최준석, 이성열의 클린업 트리오, 그리고 정원석, 김재환, 최승환, 전상렬로 이어지는 하위타선. 마치 시범경기를 보는 듯하더군요. 특히 김재환이 지명타자로 출전한게 이색적이었습니다. 김경문감독이 홍성흔의 대를 잇는 차세대 공격형 포수로 키우고 싶은 의중이 반영된게 아닌가 싶네요.
목동야구장이 특이한건 외야석이 없다는건데요. 그래서 그런지 불펜이 외야에 있어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장 너머로 구경하는 모습이 좀 웃겼습니다. 마치 단오에 처녀들의 널뛰기를 구경하는 동네 총각들처럼 보이더군요.
경기는 예상 외로 히어로즈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어제의 대패를 복수하는 듯 히어로즈 타자들은 신들린 방망이를 선보였구요. 선발 김선우는 5이닝 동안 8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는 김선우가 잘해야 포스트시즌에서 빛을 보는데 하면서 연신 불안해했구요. 덩달아 저도 우울해지더군요.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꼬마가 즉석에서 격문을 작성해서 계속 들고 있던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이쁘장하게 생긴 꼬마가 김선우를 열렬히 응원하더군요. 아쉽게도 김선우가 오늘 영 아니어서 꼬마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대신 꼬마의 격문은 '김선우 괜챦아' 였구요.
5이닝 마치고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와 저녁을 먹을겸 매점으로 갔습니다. 잠실 먹거리와 비교해서 목동은 어떤지 궁금했는데요.단연 인기품목은 구워먹는 닭한마리 입니다. 줄이 가장 길어서 맛있으리라 생각하고 얼른 줄섰죠. 한마리에 11,000원인데요. 사장님도 친절하고 맛도 그런대로 괜챦았습니다.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가 워낙 소식가라 거의 혼자 다 먹느라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서두...
점수가 너무 벌어져서 이제 김재환의 활약으로 관심사를 포커싱했습니다. 김재환은 계속 잘 맞혔지만 외야수 정면으로 날아가고, 삼진당하더니, 마지막 타석에서 깨끗한 좌전안타를 뽑아내더군요. 오늘의 유일한 위안꺼리였습니다. 홈으로 쇄도하던 주자가 아웃되어서 타점까지는 올리지 못했지만, 어쨌든 김재환의 안타는 처음 봤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네요.
목동야구장의 명물은 단연 턱돌이입니다. 적이지만 왠지 친근한 이미지 때문인지 관중석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호응이 괜챦더군요. 사진을 찍는 팬들도 많고 응원을 유도하는데 두산팬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줬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춤추고 있는 두산 치어리더들이 뻘쭘해 보였다는...
턱돌이는 바쁩니다. 경기장을 고르기도 하고, 의상을 차려입고 선보이기도 하고, 투수의 투구모습도 봐주기도 하고, 관중석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양팀 응원을 혼자 주도하기도 하고... 하여간 히어로즈 최고의 히트상품입니다. 언론에서 하도 띄워주니 이젠 연예인 같은 필마저 느껴지더군요.
경기 끝나고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와 가까운 곳에서 맥주한잔 마셨습니다. 맥주집에 들어갈 땐 몰랐는데 화장실 가면서 확인해 보니 41층에 '
스카이뷰'가 있는 현대41타워더군요. '스카이뷰'라면 걸쭉한 추억이 서려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화장실 나오면서 쓰윽 웃어줬습니다. 그 때 마시던 앱솔루트 정말 맛있었는데 말이죠.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와 오랫동안 얘기하고 술마시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탔습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네요. '두산광팬이지만 회사일로 바빠 경기장에 잘 못오는 선배'가 워낙 바빠서... 쩝...
참고로 오늘 뛴 자전거 거리는 약 52km 입니다.
삼거리 갈림길 20분(20분)
마의 언덕 20분(40분)
광명대교 20분(60분)
목동야구장 20분(8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