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에 빠졌던 봄날의 곰이 하루만에 무서운 가을의 불곰으로 거듭났습니다. 찬스에서 약했던 어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거의 매회 점수를 내서 손쉽게 승리를 낚았네요. 2연패했다고 해서 두산이 호락호락 물러나리라 생각은 안했었기에, 오늘의 승리가 기쁘다기 보다는 2차전의 연장전 패배가 아쉬워지는군요.

4차전은 양팀 모두 타격전을 벌였습니다. 타자들이 집중력을 발휘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요. 아무래도 14회 연장탓에 투수들의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시점이 된게 아닌가 싶네요. 체력이 소진될 때일수록 드러나는게 실력입니다. 체력이 비등했을 때는 실력차가 그닥 드러나지 않거든요. 하지만 기본기가 약한 선수는 체력소모전에서 금방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투수들의 옥석고르기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죠.

어제 포스팅에서 엔트리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언급했었는데요. 김경문감독과 필이 통했나요? 다행히 약간의 변화가 있었네요. 전상렬 대신 유재웅이 7번으로 배치되고 이대수가 9번으로 물러났죠. 그리고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오늘의 관전평은 편안하게 쓸 수 있겠네요.

1. 이젠 오재원을 빼고 라인업을 짤 수 없다
이 블로그에 가끔 오셨던 분들은 오재원에 대한 저의 애정을 많이 느끼셨을텐데요. 그의 실력과 근성에 대해서는 이미 재론할 필요가 없구요. 다만 그 포텐셜이 이번 포스트시즌에 터질지가 관심꺼리였습니다. 잠재력은 크지만 의외로 큰 경기에서는 새가슴이 되는 선수들이 있기에, '혹시 오재원도?'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죠. 하지만 이제 오재원을 빼고서는 라인업을 짤 수 없는 선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도 5타수 4안타에 1타점 3득점, 그리고 1도루입니다. 영양가 만점인 알토란같은 활약이었죠. 1회에는 이종욱의 안타를 잇는 단타, 2회에는 1사 후 단타, 3회에는 볼넷, 5회에는 1타점 안타, 9회에는 빠른 발로 내야안타를 만들었습니다. 도무지 멈출줄 모르는 폭주기관차를 보는 느낌입니다. 수비도 깔끔하게 매듭을 지었구요. 주루도 어제같은 실패없이 완벽했습니다. 이제 두산과 붙는 팀은 이종욱과 고영민을 능가하는 오재원이라는 만능 플레이어를 또 막아야 하는 부담이 추가된 셈이네요. 산넘어 산,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는 속담은 이런데 쓸 수 있지 않을까요?

2. 경기에 이기고도 불안한 김선우의 부진
4차전같은 타격전에서의 관전 포인트는 양팀이 투수 소모율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입니다. 리드하는 팀이나 당하는 팀이나 똑같이 적용되는데요. 플레이오프가 7차전임을 감안하면 투수운용은 중요도가 높아지게 마련이죠. 더군다나 3차전까지 투수들은 혹사당했기에, 오늘같은 날 투수운용을 어떻게 하는가, 즉 적은 투수로 얼마나 오래 버티는가는 감독의 고민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선우는 실망스럽네요. 두산타자들이 1회에 5점을 뽑아줬기에, 김선우는 최소한 5회 이상 내심 퀄리티 스타트까지는 해줬어야 했습니다. 두산의 에이스라면 그래야만 합니다. 아무리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5점차 리드에서 3회를 넘기지 못한건 에이스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죠. 김선우의 피칭 내용이 우울한건 구위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음에도 많이 맞았다는 건데요. 그건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간다 해도 희망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걸 의미하거든요. SK 타선을 고려하면 적신호가 켜졌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도 정재훈이 3.2이닝 2실점으로 제 몫을 훌륭하게 해줬구요. 임태훈도 2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투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임태훈의 구위는 흐믓하게 하네요. 임태훈이 기특한건 조금씩 꾸준히 발전한다는건데요. 오늘은 변화구 구사율을 높여 위력적인 직구를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었더군요. 7회 조동찬과 12구까지가는 접전에서 결정구로 선택한게 바로 각도 큰 변화구였습니다. 앞으로 상대 타자들이 직구만 노리고 나오지는 못할겁니다. 두산 마운드의 미래는 임태훈이 있어 든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나온 금민철은 0.1이닝을 1실점으로 강판되었구요. 대신 김상현이 마무리지었습니다.

반면 삼성은 이상목이 1회에 5실점하며 물러났지만, 경기를 반쯤 포기한 탓에 점수만큼의 많은 투수를 소모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산보다 적은 세명으로 마무리지었구요. 그동안 많이 던지지 않았던 전병호와 조진호를 끝까지 이어 던지게 해서 1진들의 체력을 최대한 아꼈네요. 좀더 공격을 퍼부어서 한명쯤 더 나오게 했더라면 좋았을껄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도 다른 투수들을 올리지는 않았을 선동렬감독이지만요.

3. 너냐? 잠자는 불곰의 콧털을 뽑은게..?
오늘 경기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클린업이 살아났다는 점입니다. 클린업만 폭발하면 SK도 두렵지 않은게 두산이기에, 오늘 홍성흔의 홈런은 눈물겹도록 고맙네요. 이제 불곰들이 긴 잠에서 깨어났으니 그들의 방망이질을 구경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잇츠 쇼타임~!"

우선 김동주가 멀티히트를 때려내며 타격시위를 했죠. 타점도 하나 기록했습니다. 두번째 안타는 잘맞진 않았지만 빚맞은 안타가 슬럼프 벗어나는데 직효약인건 아시죠? 김동주의 홈런을 보게될 날도 이제 머지 않았습니다. 역시 두산은 두목곰이 방망이질을 해줘야 편안한 야구를 합니다.


홍성흔은 4타수 3안타에 3타점입니다. 물론 홈런도 쳐냈구요. 대구구장 가장 먼 중견수 뒷쪽으로 날렸는데, 아쉽게도 아퍼컷 세리머니는 안하더군요. 어웨이인데다 점수차가 많이 나서 그런지 그냥 손만 뻗더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꾸 밋밋하게 야구하다간 오재원에게 '간지작렬상'을 뺏길 확률이 높다는 것, 명심하기 바라구요. 좀더 분발해서 오버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김현수도 드디어 장타를 터뜨렸네요. 펜스를 맞히는 2루타를 뽑아냈고 5타수 2안타에 2타점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기록보다는 내용이 더 좋았는데요.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이나 방망이 휘두르는 자세나 자신감을 찾은게 완연하더군요. 어떤 코스의 공이든 보는대로 쳐낸다는 '현수신공'의 본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비록 박진만 시프트에 몇번 막히긴 했지만 그건 뭐 상대가 잘한거니까 어쩔 수 없구요. 본인의 리듬대로 스윙했다는게 대견하네요.

4. 이제는 채상병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자
두산팬에게 본의 아니게 욕을 많이 먹는 채상병이 오늘 2루타 2개를 포함한 3안타 2타점으로 불방망이를 선보였습니다. 사실 홍성흔의 포수은퇴가 채상병 탓은 아닐진대, 애꿎게 홍포팬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죠. 하지만 포수출신 김경문감독으로서는 홍성흔의 포수로서의 부진을 모를리 없고, 아마시절에도 수준급의 실력을 과시했던 채상병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웠을겁니다. 하여튼 홍포에 대한 애정이 채포에 대한 비난으로 마냥 쏟아진건 두산팬으로서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이적생 최승환에게도 밀릴 위기에 쳐하기도 했었죠. 아마 제대하는 용덕한까지 가세하면 내년 안방마님 자리는 경쟁이 치열해질겁니다. 채상병이 그 경쟁을 딛고 주전을 꿰찰지 궁금해지네요.

그동안 채포의 안정적인 리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요. 타격과 2루 송구능력은 아쉬움이 많았던게 사실입니다. 송구는 동작이 느린만큼 연습이 많이 필요하지만, 타격은 재능이 없는게 아닌만큼 기회를 주면 언젠가는 꽃피우리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두산팬들의 따뜻한 시선과 격려가 필요하구요. 음... 그리고 이제는 홍포를 놔줄 때도 되지 않았나요? 내년엔 좌익수로 뛴다고 하니 홍좌수로 불러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흠... 홍캡틴이 낫네요.

뽀너스 #1. 오늘의 MVP
오늘은 모두 잘해줬습니다. 처음 선발로 나온 유재웅도 안타를 쳐냈구요. 오재원도 MVP급 활약을 펼쳤죠. 이종욱 역시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화이팅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홍성흔을 MVP로는 선정하고 싶네요. 그간의 활약이 미미했기에 오늘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보이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홍캡틴의 부활이 반가운건 그가 부진한 상태에서는 두산의 우승을 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활화산같은 타격을 계속 이어주길 바라면서 선정해봅니다. 참고로 KBO는 정재훈에게 MVP상을 줬습니다. 사심없이 선정했군요.^^

덧글 1...
두산이 이길 때마다 혹은 질 때마다 주위에서는 저에게 축하나 위로를 해줍니다. 좋기도 하지만 이미지가 아예 그쪽으로 굳어지는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하고, 하여간 뭐 요새는 거의 야구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네요. 두산팬으로 보내는 가을이 행복한 이유입니다.

덧글 2...
5차전은 랜들이 배영수와 붙습니다. 내일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인만큼 기선제압이 중요하죠. 하지만 너무 부담갖지 말고 늘 하던대로만 했으면 좋겠네요. 늘 얘기하지만 유연한 몸놀림에서 두산야구의 창의성이 발휘되니까요.


7전 4선승제에서 1승 1패라면 5전 3선승제로 다시 시작한다고 보면 되는데요. 5전 3선승제에서 먼저 승리를 거둔 팀이 최후에 웃을 확률은 꽤 높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구에서의 3차전은 양팀의 명운이 걸린 한판이라 할 수 있었죠. 선발은 이혜천과 윤성환이었구요. 두산의 타순은 김현수를 다시 3번에 배치하는 1차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혹시 2001년에 양팀이 맞붙었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난타전이었는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두산이 6실점한 이후 바로 12점인가를 뽑기도 했던 '투수들의 무덤' 시리즈였죠. 8점을 뽑은 후에도 박동희로부터 김동주가 만루홈런까지 터뜨리기도 했구요. 정말 잔인했죠. 정상적인 야구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만화같은 플레이가 시리즈 내내 계속되었구요. 결국 2001년 챔피언은 두산이었습니다. 호쾌한 타격전 덕분에 혹자는 화끈한 명승부로, 혹자는 투수력이 무너진 졸전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번 플레이오프는 힘대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마치 코뿔소끼리의 싸움을 연상케 합니다. 번트도 거의 없고, 작전도 별로 안쓰고, 그냥 가진 힘을 겨루는 쩌렁쩌렁 쇳소리가 나는 시리즈입니다. 김경문감독이야 원래 그런 스타일이지만 선동렬감독까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한층 더 수준이 높아진 야구라고 하는것 같네요. 덕분에 2001년처럼 강한 폭발력은 없지만, 긴장도는 훨씬 더한 살얼음 승부가 계속되었구요. 양팀의 맞대결은 시대와 상관없이 늘 긴장감이 넘치는군요. 그리고 아쉽게도 3차전은 삼성의 완승으로 돌아갔습니다. 완승이라고는 하지만 두점 정도의 차이로 여겨질 정도의 접전이었구요. 두산은 좀더 시리즈 전적에서 1승 2패로 몰렸습니다. 경기평 시작합니다.  

1. 롤러코스터 이혜천의 5이닝 2실점
전반적으로 이혜천은 기복이 심한 투수에 속합니다. 그래서 공이 긁히는 날엔 누구도 법접할 수 없는 공을 던지고, 그렇지 않은 날엔 자신도 어디로 공이 갈지 모르는 묻지마 제구력을 선보이곤 하죠. 그렇기에 위기 상황에 등판하는 것보다 선발이 그의 적성에 맞을런지 모릅니다. 이혜천은 2차전에서 릴리프로 나와 달랑 공 하나를 던지고 내려갔는데요. 그 공이 바로 데드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3차전 선발로 올라왔네요. 두산팬으로선 당연히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죠. 왜냐하면 이제 롤러코스터에 올라 탄 셈이니까요.  


이혜천이 위기를 맞은건 3회였습니다. 삼성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3회 득점률이 높은데요. 1차전에서는 4점을 뽑았었죠. 아무래도 타순이 한바퀴 돌고나서 투수 공이 눈에 익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오늘도 역시 삼성은 3회말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3회초 만루 찬스에서 김현수가 타점을 올리지 못했던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맞은 3회말 첫 타자를 이혜천이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준건 어떻게든 위기가 찾아온다는 신호탄이었죠. 이후 두 타자를 플라이로 잡아 넘어가는 듯 했지만, 결국 박석민의 안타로 2점을 내줬네요. 그래도 이혜천이 잘한건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 도전없이 성공없다
흔히들 두산야구를 발야구라고 부르는데요. 개인적으로 두산을 발야구로 한정하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산야구의 핵심은 '사고의 틀을 깨는 도전정신'으로 표현하는게 더 정확하거든요.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적인 플레이를,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허슬 플레이를 도전하고 성공시키는게 두산야구입니다. 예를 들면, 짧은 우익수 플라이 때 천천히 인계되는 볼을 보고 3루로 달렸던 2루주자 이종욱, 내야땅볼 때 3루를 거쳐 거침없이 홈을 파고들었던 2루주자 고영민같은 플레이가 바로 두산야구의 진면목이죠. 모두 실제 있었던 상황들입니다. 이런걸 두고 혹자들은 하기 쉬운 말로 발야구라고 하지만요.


하지만 창의적인 야구는 때론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오늘의 경우 오재원의 주루사가 참 안타까웠죠. 1루에 있던 오재원은 내야땅볼 때 2루를 거쳐 3루로 돌진하려고 했는데요. 3루수 김재걸이 이걸 눈치채고 1루가 아닌 2루로 던져 오재원을 아웃시켰습니다. 결과론에 입각해서 얘기하면 오재원이 한템포 늦춘 후 3루로 뛰어도 괜챦았을 겁니다. 어차피 3루는 비어있었으니까요. 그래서 TV 해설자는 오재원의 본헤드플레이라고 하던데요. 그건 두산야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겁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두산야구가 아니거든요. 또 과감한 도전없이는 성공이란게 존재할 리 없죠.

모르긴 해도 김경문감독은 스타일상 오재원을 책망하진 않았을겁니다. 오히려 상대인 김재걸의 침착한 플레이를 체크했겠죠. 오재원의 과감한 주루플레이가 아쉬운건 3루수가 백전노장 김재걸이었음을 감안하지 못한 것일 뿐, 도전정신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네요.

3. 고영민이 날면 진갑용이 운다
비록 점수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6회에 재밌는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고영민과 진갑용의 기싸움이었는데요. 안타치고 나간 고영민이 삼성 배터리의 신경을 건드리자, 진갑용이 원스트라이크 투볼에서 피치아웃을 시도합니다. 도루를 하려던 고영민은 진갑용의 피치아웃에 급거 귀루를 하게 되구요 간발의 차이로 겨우 아웃을 면했죠. 원투에서 왠만하면 빼지 않는데 진갑용은 과감한 피치아웃을 하더군요. 진갑용의 시도도 훌륭했지만, 고영민의 폭넓은 시야와 순발력이 압권이었습니다. 왠만하면 스타트 끊은 이후 몸을 되돌리기가 어려운데 말이죠. 고제트의 센스가 주루사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진갑용은 다음 타자의 초구에서 두번째 피치아웃을 감행합니다. 이번엔 고영민이 딱 걸렸는데요. 다행히 진갑용의 송구가 원바운드로 가면서 신명철이 놓치고 말았죠. 타이밍상 완벽한 아웃이었습니다. 도루에 성공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고영민은 진갑용의 분석에 대비를 해야할 것 같네요. 두번에 걸치 피치아웃 성공은 그냥 우연만은 아니거든요. 진갑용의 노련함에 말려들면 자칫 시리즈를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고영민의 도발이 이어졌습니다. 채상병 타석에서 3루로 냅다 뛴거죠. 이번엔 진갑용도 예측하지 못한 스타트였기에 고영민은 여유있게 서서 들어갔구요. 결국 고영민은 진갑용과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이게 두산 주루플레이의 힘인데요. 이런 식의 영리한 주루 플레이가 계속 된다면 삼성의 난공불락 계투진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4. 아쉬운 중간 계투진 김상현과 이승학
이혜천에 이어 올라온 김상현은 첫 이닝에서 3점을 허용합니다. 첫 타자를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게 컸네요. 왜 이번 시리즈에서는 볼넷을 많이 내주는걸까요?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이후 박석민의 2루타를 맞고, 그리고 결국 최형우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아 점수는 5:1로 벌어졌습니다. 패인이 짙게 드리워진 순간이기도 했죠.

김상현은 각도 큰 커브가 일품인 투수인데요. 홈런 맞은 공은 각도는 나름 예리했습니다. 하지만 화면상으로 본 김상현의 공은 자신감이 없어 보이더군요. 혼이 실리지 않았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큰 경기에서의 부담감, 첫 타자를 너무 쉽게 내준 이후 맞은 2루타가 심리적 타격을 가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첫 타자만 잘 잡았어도 2~3이닝은 끄떡없이 막아주는데 말이죠. 그리고 최형우도 칭찬할만 하네요. TV 해설위원은 늘 결과론에 의지해 해설하니까 공이 밋밋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최형우가 잘쳤다고 하는게 맞지 싶네요.

더 아쉬운건 이승학입니다. 7회에 내준 1점은 뼈아팠습니다. 이승학은 1, 2차전을 던지지 않았기에 체력소모가 없었죠. 그런 그에게 기대하는건 롱릴리프입니다. 그것도 실점없는 롱릴리프. 하지만 신명철에게 2루타를 맞고 또 한점을 내줬네요. 두산으로서는 거의 카운터펀치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용찬이 무난히 2차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입니다. 비록 지고 있는 경기에 마지막 투수로 나와 부담감은 덜했지만 1이닝을 무실점으로 잘막아줬네요. 아직 이용찬의 깜짝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긴장하지말고 포수 글러브만 보고 투구했으면 합니다.

5. 홍성흔이 없는 두산은 너무 밍밍하다
오늘 경기에서 두산은 잔루가 너무 많았습니다. 무려 13안타 6볼넷으로 19명이 나갔지만 겨우 2명만 생환한 저조한 기록을 남겼네요. 선두타자가 나가더라도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죠. 그 후속타의 주인공은 홍성흔이었어야 했는데, 홍성흔은 오늘 침묵했습니다. '님의 침묵'은 아름답지만 '홍성흔의 침묵'은 전혀 아름답지 않군요.

'홍성흔의 침묵'이 아쉬운건 삼성투수들이 좀처럼 김동주에게 승부를 걸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워낙 홍성흔이 부진하니 김동주에게는 유인공 혹은 공하나 빠지는 코스로 승부를 피하게 되구요. 성질 급한 두목곰 김동주는 그 공을 건드려 동반 부진에 빠졌습니다. 어쨌든 두산의 클린업트리오는 김동주를 사이에 두고 김현수와 홍성흔이 든든히 지켜야 본 모습을 찾을텐데요. 홍성흔의 라이트 어퍼컷 세리머니가 빨리 나와주길 기대합니다.

다행히 오늘 마지막 타석에서 바가지 안타를 터뜨렸으니 내일부터는 정상 컨디션을 찾으리라 희망해보구요. 대구벌이 홍성흔의 포효소리로 메아리칠 것이라 믿습니다. 홍포는 늘 실망시키지 않았으니까요. 언젠가는 분명히, 반드시, 꼭, 포텐셜을 터뜨릴겁니다.

6. 누가 박진만을 한물갔다고 했는가
북경올림픽 선수 선발 이후 어느 기자는 TV에서 박진만의 기량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습니다. 요지는 그랬죠. 박진만이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떨어지고 공을 처리하는 수비범위가 협소해졌다, 그래서 안타가 될 공은 아예 잡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물론 그 기자의 말대로 수비범위가 좁아졌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유격수는 기능적인 면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닙니다. 유격수는 내야수비의 사령관으로 전체적인 시각으로 조율하고 안정감을 꾀하는 역할이 크거든요. 농구에서 리바운드를 키큰 선수만 잡아내는게 아닌 것과 유사합니다. 데니스 로드맨은 키는 그닥 크지 않았지만 탁월한 센스와 자리뺏기로 리바운드 왕에 올랐었죠. 그런 면에서 박진만이 유격수의 역대 최고봉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구요. 오늘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대표적인게 김현수의 안타성 타구 두개를 극단적인 센터쪽 수비 포메이션으로 잡아낸거죠.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빠졌다면 오늘 경기는 정말 안갯속으로 돌입했을테구요. 호수비에 잡힌 김현수의 실망스러워하는 얼굴이 아직 눈에 선하네요. 오늘 경기중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뽀너스 #1. 오늘의 MVP
오늘의 MVP는 3점홈런을 날린 최형우에게 돌아갔네요. 홈런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최형우가 차지하긴 했지만 박진만에게 줘도 무방했을것 같네요. 두산은 박진만에게 당했다는 이순철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뭐 삼성쪽은 그렇구요. 두산은 오늘 유일하게 3안타를 치고 윤성환을 괴롭혔던 이종욱이 MVP로 손색이 없습니다. 1차전부터 지금까지 톱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줘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덧글 1...
두산이 1승 2패로 열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보구요. 두산이 이렇게 호락호락 쉽게 물러나리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중심타선이 살아나면 되는데요. 그냥 오늘 릴랙스하고 편안히 휴식을 취했으면 합니다. 예전에 포스트시즌 특별 동영상에 안경현을 소개하면서 이런 문구가 자막으로 나왔더랬죠. '아버지는 말하셨지. 야구를 즐겨라.' 멋지지 않나요? 그냥 그렇게 야구를 즐기듯 플레이했으면 합니다. 유연한 몸놀림에서 두산야구가 나오니까요.

덧글 2...
4차전에는 선발라인업에 변화를 줬으면 합니다. 이제 할매 전상렬이 체력이 부칠 때도 되었으니 유재웅으로 가구요. 이대수 대신 김재호 기용도 고려해볼 만 하네요. 홍성흔은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자기 몫은 해주는 선수니 계속 믿어보구요.


2차전은 잠실야구장에서 직접 응원하고 왔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이 거의 만 하루가 지난 시간인데도, 목젖 부근이 아직도 칼칼하네요. 어찌나 함성을 질러댔는지 야구장에서 나올 무렵엔 극도의 피로감까지 몰려오더라구요. 이겼으면 모르겠는데 져서 그런가요. 허탈감까지 겹쳐 졸음까지 밀려오더군요. 이렇게 진이 빠지게 응원한건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네요.

경기는 말 그대로 14회까지의 연장혈투 끝에 후련하게 패했습니다. 여기서 '후련하다'는 뜻은 잘했다기 보다,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없다'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되지 싶네요. 2차전 경기평은 직관 응원후기가 되겠네요. 우울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1. 명불허전(名不虛傳) 랜들의 위기관리능력
단기전에서 선발투수의 의미는 처음 나오는 투수에 불과합니다. 양팀 감독이 승부에 물러섬이 없다는 점에서 봤을 때 교체 타이밍은 늘 한박자 앞섰죠. 랜들은 시즌 막판에 그닥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어떨지 걱정을 갖게 했는데요. 2차전 내용에서는 일단 합격점을 줄만 하네요. 4이닝 1실점입니다.

가장 큰 위기는 4회였는데요. 안타없이 포볼 4개를 헌납하는 졸투를 했지만 다행히도 1점만으로 막아냈죠. 랜들의 위기관리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차전과 다른 점은 김경문감독이 랜들을 빨리 내리기 보다는 한번 지켜보는 느낌을 주더군요. 1차전 승리의 여유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요. 하여간 랜들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1점만으로 막고 마운드를 김상현에게 넘겨줬습니다.

2. 이제 여유마저 느껴지는 오재원
선취점은 오재원의 원맨쇼로 만들었습니다. 전상렬과 이종욱의 연속안타로 만든 무사 2, 3루에서 오재원은 통쾌한 3루타를 뽑아내죠. 더불어 그의 전매특허인 레프트 스트레이트 세리머니도 보여줬습니다. 항상 똑같은 세리머니인거 보면 따로 연습하는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작이지 싶네요. 참고로 두산의 홍성흔은 라이트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구요. 이종욱은 박수치는 세리머니가 전매특허죠. 이대수는 작은 키지만 폴짝 뛰어 때리는 배구선수 스파이크 세리머니구요. 두목곰 김동주는 두손을 번쩍드는 만세 세리머니입니다. 고영민은 상대의 하복부를 라이트로 짧게 끊어치는 스타일인데요. 최홍만이 와서 좀 배웠으면 하는 타법이기도 하죠.


뭐 누구나 더 멋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간지작렬상으로 홍성흔 다음으로 오재원을 꼽고 싶습니다. 선수들 사기도 높이고 관중들 엔돌핀도 콸콸 솟게 하는 오재원의 레프트 스트레이트 세리머니는 그의 긴 팔과 다리에 참 잘 어울리네요. 덕분에 팬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계속된 찬스에서 고영민의 짧은 땅볼 때 3루에 있던 오재원은 득달같이 홈을 파고들어 3점째를 추가했죠. 홈에 쇄도하는 모습은 심장에 칼을 꽂으러 달려가는 무사를 연상시키더이다. 반면 박진만은 어제의 본헤드 플레이 여파인지 홈에 던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1루로 던졌구요.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오늘도 여유있게 이기겠구나 싶었습니다. 초반에 3점의 리드를 하고 있었는데 연장까지 갈 줄은 누가 알았나요. 그리고 마지막에 질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3. 홍콩 할매귀신도 놀라는 전상렬의 완소 수비력
가을의 사나이, 아니 가을을 기다리는 할매 전상렬은 나이가 36세입니다. 올 시즌에는 그닥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도 못했습니다. 두산에서 외야수 주전따기는 사막에서 바늘찾기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죠. 리그 극강의 김현수, 이종욱 붙박이에 유재웅, 이성렬, 전상렬, 민병헌의 무한경쟁입니다. 이런 쟁쟁한 후배들과의 경쟁속에서도 늘 밀알같은 존재감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전상렬은 두산의 든든한 자산이네요.

2차전에서도 두어번 정도 키를 넘어가는 타구를 폴짝 뛰어 잡아내는 미기를 선보였습니다. 홍콩할매도 하기 힘든 뒤돌아 점프 캐치를 무리없이 해내는 할매 전상렬의 파인 플레이에 관중들은 전상렬을 연호했구요. 선수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경기 내내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타구는 편안하게 지켜봤네요.

생각해보면 그 흔한 개인 응원가 하나 없는 전상렬이지만, 팬들에게 괴성과 함께 싸인을 요청받는 스타도 아니지만, 두산의 고참으로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가 참 고맙습니다.

4. 더블스토퍼의 진면목, 임태훈과 이재우
동점인 상황에서 올라와 임태훈과 이재우는 각각 3이닝씩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줬습니다. 이재우는 경험이 많아 큰 걱정은 안했지만, 임태훈은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은근히 조마조마했었는데요. 다행히 과감한 정면승부로 삼성의 강타선을 무력화시켰죠. 특히 초반에는 직구에 비해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존에서 확연히 먼 곳으로 떨어져 두들겨 맞는거 아닐까 했는데, 잘 극복해냈습니다. 이제 아기곰에서 점점 불곰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줬구요.


이재우는 다양한 구질의 공을 꽤 정확하게 제구해서 무리없이 3이닝을 막았습니다. 현재 두산 투수중에서 터프세이브 상황에서 김경문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투수는 이재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과감성도 있구요. 제구력도 되구요. 경험도 있죠. 두산 불펜의 힘은 임태훈, 이재우의 더블 스토퍼가 있어 오승환이 부럽지 않습니다.

5. 부러져버린 날개 이용찬
김경문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명제를 임태훈보다 먼저 올린게 잘못이었다고 했는데요. 제가 볼 땐 이용찬을 가장 늦게 투입한게 더 큰 실수가 아니었나 싶네요. 14회 주자 1, 2루 상황에서 소방수의 임무를 맡긴건 이용찬에겐 너무 심한 압박감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용찬 뒤로는 더 나올 투수도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물론 이승학도 있긴 하지만 3차전 선발은 아껴둔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용찬은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헉 지금 뉴스에서 보니 3차전은 이혜천이네요. 그럼 2차전에서도 결장한 이승학은 뭥미??)

초구가 볼로 잡히자 만루를 의식해 이용찬은 가운데 공을 던졌고, 상대적으로 노련한 신명철은 실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4회 연장에서 신명철의 싹쓸이 3루타는 거의 사망선고였고, 김경문감독은 그냥 그에게 이닝을 맡겼습니다.

제가 전에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오재원과 함께 이용찬을 주목해야 한다고 포스팅했었는데요. 제가 바라던 시나리오는 이용찬의 선발등판이었습니다. 어차피 선발은 단기전에서 첫번째 나오는 투수라는 점에서 부담이 덜하고, 의외의 카드가 오히려 파괴력이 클 수 있기에 그렇게 희망했더랬죠. 김경문감독과 제 생각이 달랐고 어쨌든 결과는 이용찬의 깜짝 활약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용찬은 분명히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마운드에 서리라 믿습니다. 그의 포스를 믿기도 하지만, 이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개숙인 이용찬을 기다리며 격려해주는 선배선수들이 있기에 그 날은 반드시 올껍니다. (용찬아 힘내라! 승부에 연연하기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으니 그냥 야구를 즐기렴. 뒤는 선배들에게  맡기고~ 그리고 날개 부러진건 빨간약 바르면 바로 낫는다... ^^)

뽀너스 #1. 오늘의 MVP
오늘의 MVP, 아니 어제의 MVP를 뽑자니 좀 거시기 하네요. 이미 신명철은 뽑혀있으니 뭐 제가 뽑은들 큰 의미는 없겠죠. 하지만 두산선수로는 이재우와 임태훈으로 선정하고 싶네요. 무려 6이닝을 두 선수가 막아냈다는 점, 위력투로 투구로 승부의 추를 팽팽하게 땡긴 점, 향후 활약을 예고한다는 점 등을 평가하고 싶습니다.

덧글 1...
선동렬감독의 2차전 승리소감을 보니 배수의 진을 치고 경기에 임했다고 하네요. 2패를 안고 대구에 갔더라면 다시 잠실땅을 밟긴 힘들었을테니 당연한 각오였겠죠. 인터뷰 사진을 보면 승리의 기쁨에 배시시 웃고 있군요. 하지만 진정한 2차전의 승자는 선동렬감독이 아닌 김성근감독일꺼 같은 느낌은 왜일까요?

덧글 2...
두산 응원단의 응원모습을 동영상으로 올려봅니다. 관중석 가장 꼭대기에서 찍어서 그라운드는 좀 멀지만, 관중들의 열기는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덧글 3...
우연한 기회에 베어스 동호회 카페에서 2차전 표를 구했는데요. 표를 얻기 위해 이수역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먼 길이 수고스럽지 않았던건 표를 양도해주신 친절한 두산팬 덕분이었네요. 양도 받은 후에도 잘 보시라고 문자 넣어주신 이름 모를 4077님 감사합니다.


어제 꿈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요즘 포스트시즌이 되니 머리 속이 야구로 가득 차서 가끔 꿈에서도 상황별 작전을 짜곤 한답니다. 덕분에 자다가 웃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 나빠하기도 하죠. 그러다 어제는 이런 꿈을 꿨습니다.

두산이 4:0으로 지고 있는데, 만루찬스에서 김현수가 등장합니다.
김현수는 싹쓸이 3루타를 쳐서 역전시키죠.
그리고 나머지 타자들도 삼성 마운드를 두들겨 대역전승을 거두는... 그런 꿈을...

믿어지시나요? 오늘 플레이오프와 거의 유사한 장면을 마치 데자뷰처럼 꿈속에서 본겁니다. 실제로 오늘 경기에서 0:4에서 5:4로 뒤집는 순간 온 몸에 돋는 그 소름은 정말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겁니다. 갑자기 달인의 말씀이 불현듯 스치는군요. '데자뷰 본 적 있어요? 없으면 말을 마세요~' 흠... 하여간 나도 이런 희귀한 경험을 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희한하기도 했답니다.

서론은 이만 각설하고 경기평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경기를 보면서 느낀건 삼성은 역시 전통의 강팀이라는거죠. 초반이긴 했지만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이, 더군다나 오늘처럼 큰 경기에서 베테랑이나 신인급이나 집중할 수 있다는건 아무 팀이나 할 수 있는건 아니거든요. 앞으로 두산이 1승했다고 방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1. 이대수의 도루실패로 초반 분위기를 빼앗기다
솔직히 '2루심의 오심으로 초반 분위기를 빼앗기다'라고 쓰고 싶었습니다. 분명 오심이었거든요. TV 카메라에 잡힌 슬로우비디로는 분명 이대수의 발이 먼저 닿았습니다. 하지만 심판도 인간이고, 두산도 오심으로 득을 볼 수 있기에 굳이 오심으로 제목을 뽑진 않겠습니다. 다만 이 도루 실패로 초반 분위기는 삼성으로 넘어갔죠. 저는 작년 한국시리즈 때 박경완의 도루저지로 두산의 발야구가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구요. 가슴이 아렸습니다.

그리고 넘어간 분위기는 이어진 3회의 대량실점으로 연결되었죠. 아무리 이대수의 도루실패가 아쉬웠다고는 하지만, 선발투수가 에이스 김선우였다는걸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네요. 게다가 만루상황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채 이혜천에게 마운드를 넘겼습니다. 앞으로 한국시리즈까지 감안한다면 김선우의 부진은 우울한 시그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이혜천은 최형우를 밀어내기 데드볼로 실점한 이후 그럭저럭 잘 막아서 4점으로 마무리했는데요. 그나마 기복이 심한 이혜천을 고려한다면 연타를 맞지 않은게 행운이라 할 수 있겠죠?

2. 천부적인 타격 DNA를 타고난 고영민
삼성으로 넘어간 분위기를 두산으로 돌린건 4회 고영민의 3루타였습니다. 2사 1루에서 낙차큰 슬라이더를 커트하듯 쳐낸 것이 우익선상을 가른거죠. 휘둘렀다기 보다 컨택만 했다고 보는게 정확한 표현일 정도로 욕심없이 밀었구요. 포스트시즌에서는 페넌트레이스와은 또 다른 타격을 해야 한다는걸 몸소 보여준 셈이죠. 흡사 이치로의 컨택히트를 보여주는 듯 알흠다웠습니다.^^ 검객이 사과를 자르듯 춤추는 타법은 앞으로 고영민이 얼마나 성장할지 가늠하기 어렵게 하네요. 흔히들 고영민을 두고 '세계 최초의 2익수'다, '이종욱을 능가하는 도루센스를 지녔다'고 하는데요. 이젠 '천부적인 타격 DNA를 보유했다'는 수식어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고영민의 안타가 오늘 경기에서 의미있는건 투아웃 투스트라이크 노볼이라는 불리한 상황에서 안타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거의 이닝이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는데 거의 볼로 떨어지는 낙차 큰 변화구를 받아쳤죠. 예전에 LG와의 경기에서 옥스프링을 9회 내려버린 안타와 똑같았습니다. 덕분에 두산은 흐름을 탔고, 배영수는 1점을 더 내준 후 정현욱으로 강판되었습니다.

3. 김경문의 숨겨둔 비수, 롱릴리프 정재훈
이혜천이 위기상황을 어느 정도 수습하자 김경문감독은 이혜천을 내리고 정재훈을 투입하더군요. 정재훈이 누군가요? 아무리 작가라고도 놀림받지만 두산의 마무리입니다. 초강수를 둔거죠. 저는 정재훈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역시 김경문은 선수파악이 무서우리만치 정확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재훈은 터프세이브 상황에서 그닥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했더랬죠. 대신 선발에서는 괜챦은 기량을 보이기도 했구요. 결국 정재훈을 포스트시즌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가 핵심포인트 중에 하나였는데, 김경문은 그를 롱릴리프로 선택한겁니다. 그리고 주자가 없는 편안한 상황에서 올려 정재훈을 배려했구요.

김경문의 히든카드는 성공했습니다. 2.2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잘 버텼구요. 중반 이후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확실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또 마무리 이재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어 등판한 이재우도 2이닝 동안 1안타 무실점으로 역시 수훈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집단 마무리체제 첫 날 가동 이상무입니다. 뉴스에서는 돌려막기라고 하더군요. ^^

4. 이종욱의 발야구는 박진만도 춤추게 한다
두산팬들은 이종욱을 흙강아지라고 부르는데요. 늘 그라운드를 안방처럼 뒹굴고 허슬플레이를 펼쳐 팬들은 제발 안타 못쳐도 좋으니 살살하라고 부탁할 정도이기 때문이죠. 오늘도 어김없이 흙강아지의 진면목을 발휘했네요. 특히 7회말의 플레이는 왜 이종욱이 허슬심장인가를 잘 보여주네요.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을 얻어 찬스를 만들구요. 김동주의 짧은 외야 플라이 때 허를 찌르는 언더베이스로 결승득점을 뽑아냅니다. 작년 한국시리즈 1차전과 똑같은 상황을 재현한거죠. 그리고 그 틈을 타 오재원, 김현수도 한 베이스씩 더 진루하구요. 다른 팀이었다면 그저 만루는 그대로면서 아웃카운트만 늘어났을텐데 말이죠. 그 이후 삼성 수비는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단연 '이종욱 효과'입니다.


무너진 삼성 수비의 정점은 박진만이 찍습니다. 계속된 찬스에서 2루주자 김현수는 고영민의 유격수 땅볼 때 홈을 쇄도하는데요. 박진만이 공을 더듬는 사이 김현수는 냅다 홈으로 뛴거죠. 박진만은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구요. 아마 이번 시리즈에서 삼성이 가장 아쉬워할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이 박진만의 어이없는 실책이었기에, 그들의 영웅 박진만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을겁니다. 아울러 김현수도 이젠 발야구의 기본을 마스터한 듯 보이네요. 물론 모두 허슬심장 '이종욱 효과'입니다.

5. 그리고 명실상부한 스타로 탄생한 오재원
제가 누차 포스팅에서 얘기했듯이 오재원이 살아야 두산 타선의 짜임새가 완성됩니다. 오늘 오재원은 그의 첫 포스트시즌에서 제가 기대한 만큼의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줬네요. 많이 긴장했을텐데 동점 안타를 뽑아냈구요. 도루도 하나 추가했습니다. 견고한 수비는 물론이구요. 특히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짜릿한 환호동작은 그의 스타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죠. 스타는 중요한 순간에 안타도 쳐야 되지만, 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터프한 매력이 있어야 됩니다. 적어도 두산에서는 그래야만 하죠. 그런 면에서 오재원은 홍성흔의 대를 이을만한 스타 플레이어가 될 자질이 충분합니다.


오재원이 잘 해야 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바로 안경현인데요. 우리의 안쌤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빠진건 오재원이라는 예비스타의 존재 때문이죠. 안쌤을 존경하는 그리고 그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활약을 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두산팬들을 위해서라도 오재원은 잘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김동주가 일본으로 진출하면 생길 내야의 공백도 오재원이 잘 메워줘야 하구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잘 싸워줬구요. 이번 포스트시즌을 계기로 오재원은 두산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뽀너스 #1. 그래서 뽑은 오늘의 MVP는 이종욱!
오늘 모든 선수들이 정말 잘 싸워줬습니다. 묵묵히 안방을 지켰던 채상병, 가을의 사나이답게 멋진 활약을 펼쳐준 이대수, 큰 경기에 강한 할매 전상렬, 안타는 없지만 존재감만으로도 든든한 김동주, 역시 안타는 없었지만 늘 화이팅이 넘치는 홍성흔, 부진이 아쉽지만 그래도 우리의 에이스인 김선우 등 다 주어진 역할을 잘 해줬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종욱은 오늘의 MVP로 뽑히기에 손색이 없네요. 비록 실제로는 오재원이 뽑혔지만, 이종욱은 허슬플레이로 결승득점을 뽑았고, 과감한 베이스러닝으로 삼성수비진을 농락했고, 4타수 3안타 1타점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뒀기에 제 마음대로 이종욱을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종욱의 야구하는 자세는 야구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치열함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의 성실함과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종욱은 제게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오늘을 살고 있는가?' 라고... 그래서 저의 두산 져지는 39번 이종욱입니다.

오늘 승리로 두산은 중요한 고지를 선점했습니다. 한국시리즈 진출이 좀더 가까워졌죠. 하지만 마음을 놓으면 안됩니다. 삼성은 결코 그냥 물러나는 나약한 팀이 아니며,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의 방심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오늘의 승리는 그저 8승 중 1승을 챙겼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鬪魂 V4!


어디서 들었는데요. 로마가 번성했던건 개방된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로마는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건 관계없이 능력만 있으면 중용했다는거죠. 심지어 식민지 사람에게도 이 원칙을 적용되었는데요. 로마의 이런 유연한 문화가 구성원의 강한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또 이런 충성심이 모여 역사에 남을만한 제국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롯데를 사랑하는 부산출신 후배'랑 같이 퇴근하는 길에 롯데가 삼성에 진 이유에 대해서 토론(?)을 했었는데요. 저는 롯데가 삼성에 대비해 세가지를 준비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이대호를 1루나 지명으로 돌리고, 둘째, 강민호를 지명이나 대타로 돌리고, 셋째, 정수근을 어떻게든 출전시켜야 한다고 했죠. 이건 준플레이오프 시작 전부터 주변의 지인들에게 얘기했던 것인데요. 정말 롯데가 이기길 바라는 충정(?)에서 수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더랬죠.

근데 '롯데를 사랑하는 부산출신 후배'는 이대호와 강민호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세번째 정수근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더군요. 이유를 물었더니 정수근은 롯데출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흠... 역시 롯데에도 순혈주의가 있구나 싶었죠.

정수근이 잘한건 없지만, 그래도 롯데에서 포스트시즌 경험이 가장 많은 선수입니다. 손민한, 조성환 등에 비해 월등히 많은 양질의 경험을 보유하고 있구요. 그리고 분위기를 띄울 수있는 톱타자란 면에서, 정수근의 결장은 롯데에게 재앙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인구나 김주찬 등이 선두타자 역할을 잘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경험많은 선수가 앞에서 뚫어주는 것과는 차이가 크거든요.

어느 팬이나 자기가 응원하는 팀으로 입단해서 스타가 된 프랜차이즈 선수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외부에서 온 선수, 특히 이질적인 성향을 지닌 선수에 대한 포용력이 없다면, 그 팀은 변화하기 힘듭니다. 롯데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천방지축 이미지인 정수근이 딱 그 예가 되겠군요. 어쨌든 정수근에 대한 추억이 많은 저로서는 롯데에서도 잘해주길 바랬지만, 여러모로 롯데팬들의 마음을 잡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다 정수근 선수의 덕이 모자란 결과가 아니겠나 싶네요. (아쉬워라..)

더불어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모팀이 왜 하위권에서만 노는지 생각해보면 실력을 무시한 텃새가 성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짐작할 수 있을겁니다. 롯데는 그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데, 어떨런지는 모르겠네요.

  

플레이오프가 하루 남았네요.
뭐 그닥 긴장되지는 않습니다.
늘 포스트시즌의 단골손님이었으니까요.^^

올해는 작년의 준우승을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승해야 합니다. 작년에 다 잡았다 놓친 어이없이 물러났던 경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SK를 꼭 이겨주길 기원합니다. 그럴려면 첫 관문인 삼성을 넘어야 하는데요. 부분적으로는 고전을 하겠지만, 결국 시리즈 성적 4:1로 승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년이면 김동주가 일본으로 진출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안경현, 전상렬 등은 은퇴의 기로에 설지도 모르구요. 홍성흔이야 당연히 두산에 남겠지만 어쨌든 FA로 풀립니다. 이혜천도 일본으로 갈지 모르겠네요.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정들었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어흑..) 그래서 대한민국 4번타자 김동주가 남아있을때 우승을 한번이라도 더 해야 하구요. 그래서 더더욱 이번 포스트시즌이 기다려 집니다.
 
늘 해왔던 그대로만 뛰어준다면 이번 시즌 우승을 확신합니다.^^
이미 질주는 시작되었습니다. 두산베어스 V4!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오재원에 이어 깜짝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또 한명의 선수가 이용찬입니다. 이용찬은 입단 당시 임태훈보다 더 높은 기대를 줬던 선수였기에 계약금도 더 높았구요. 기본적인 소양을 강조하는 장충고 출신이기에 신뢰감이 느껴지는 신인입니다. 고교 재학 당시 최고의 실력을 갖췄지만, 아쉽게도 프로 입단 이후 팔꿈치 부상으로 인한 재활로 이렇다 할 만한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었죠.

하지만 오랜 재활 끝에 이용찬이 올 시즌 막판에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안쪽, 바깥쪽 낮게 파고드는 직구는 공끝이 살아있었구요. 변화구도 각도가 예리해서 왠만해선 치지 못할 수준의 공을 던지더군요.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이용찬이 재기해준다면, 이용찬, 임태훈, 박민석, 이원재 등으로 최강의 마운드를 영건들로만 구축할 수 있거든요. 정말 다른 구단 하나도 부럽지 않은 라인업입니다.

저는 이용찬이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3차전 쯤에 깜짝 선발등판했음 하는데요. 갑자기 '왠 선발?' 하시겠지만 이용찬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이고, 또 유사한 전례가 있어 희망해보는 겁니다.


작년 한국시리즈 기억하시는 분 계실런지 모르겠는데요. SK와의 1차전에서 리오스가 극강의 피칭으로 2:0 완봉을 만들어냈었죠. 이에 경악한 김성근감독이 내놓은 필살기가 바로 '리오스가 나오는 경기는 버린다' 였습니다. 즉 리오스 선발경기는 신인급으로 내세워 져도 부담없는 경기로 만들어버리고, 나머지를 레이번과 채병용, 로마노로 잡는다는 계산이었죠. 이 신인급이 바로 김광현이었습니다. 이런 계략에 의해 리오스와 맞붙은 4차전에서 김광현은 7.1이닝 무실점으로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결국 김광현은 4:0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올해 국내 좌완 Big 2 중의 하나로 급성장하게 되었구요. 국대에서도 일본을 상대하는 킬러가 되었네요.

올해는 제2의 김광현이 이용찬이 되었음 하네요. 김경문감독도 은근히 비밀병기로 이용찬을 키우는 것 같은데 깜짝선발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일단 두산의 선발로 거론되는 김선우, 랜들, 김명제, 이혜천, 이승학 중에서 김선우와 랜들은 거의 확정적이라고 보지만, 김명제, 이혜천, 이승학은 각각 약간씩의 문제점을 안고 있죠. 시즌 막판에 부진했거나, 기복이 심하다는 등의...

특히 이번 플레이오프는 선발진보다는 중간계투의 무실점행진이 중요해진 만큼 오히려 선발은 부담없는 신인급 선수로 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면 두산이 1, 2, 3차전을 승리로 이끌 경우 투수들의 체력을 비축하는 의미로 4차전 선발로, 혹은 의외로 잠실 2경기 결과가 안좋을 경우 분위기 반전용으로 이용찬을 3차전 선발로 내세우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작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막판 6차전 선발은 임태훈이었습니다.

어쨌든 이용찬의 구위가 예사롭지 않은 만큼,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식으로든 쓰임새가 커질 것은 확실한데요. 다만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2007년의 김광현처럼 혜성같이 나타나 별이 되어 버리는 2008년의 이용찬이 되었음 합니다.


단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두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작두탄 감독과 누구도 못말리는 선수. 일단 첫번째는 거의 검증이 되었고, 두번째가 문젠데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크레이지 모드로 돌입했으면, 아니 돌입해야 하는 선수를 적어봅니다. 왠지 느낌이 이 크레이지 플레이어에 의해 플레이오프가 간단하게 끝날꺼 같은데, 실제로는 어떨른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오재원입니다. 오재원은 제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선수인데요. 그만큼 오재원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크고, 향후 오재원의 역할 여부에 따라 일본진출이 예상되는 김동주의 공백을 메울 수도 있는 선수이기에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선수입니다. 일단 오재원의 활약이 중요한건 그에 의해 타순이 조정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죠.

일단 오재원이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일 때의 타순입니다.

[테이블 세터진]
1. 이종욱(CF) 2. 오재원(1B)
[클린업트리오]
3. 김현수(LF) 4. 김동주(3B) 5. 홍성흔(DH)
[하위타선]
6. 고영민(2B) 7. 유재웅(RF) 8. 채상병(C) 9. 이대수(SS)

이 타순은 고영민이 6번으로 배치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요. 기복이 심하지만 클러치 능력이 있는 고영민을 홍성흔 뒤에 배치함으로써 공격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구요. 더불어 하위타선에서의 기동력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영민에게 테이블 세터로서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한방을 기대할 수 있는 타순인거죠. 물론 전제는 오재원이 테이블 세터의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야 합니다. 이렇게 오재원을 2번에 기용하는 타순은 시즌 말미에 몇번 시도가 되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타순이라고 보여집니다.

이종욱, 오재원, 김현수가 왼손이기에 상대팀의 좌완 스페셜리스트의 표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김현수가 왼손이라고 딱히 약하지도 않구요. 이보다는 오재원이 왼쪽 타석에 들어섬으로써 이종욱의 기동력을 한층 더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재원의 활약이 없을 때의 타순을 볼까요? 이 때는 오재원에게 공격보다는 수비를 더 기대하는 건데요. 왠지 타순이 파괴력이 떨어져 보이는건 어쩔 수 없네요.

[테이블 세터진]
1. 이종욱(CF) 2. 고영민(2B)
[클린업트리오]
3. 김현수(LF) 4. 김동주(3B) 5. 홍성흔(DH)
[하위타선]
6. 유재웅(RF) 7. 이대수(SS) 8. 채상병(C) 9. 오재원(1B)

일단 이종욱에서 홍성흔까지는 검증된 선수들이기에 큰 걱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재웅의 한방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유재웅으로부터 시작하는 하위타순이 불안하고 기동력도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상대팀에서는 5번까지만 잘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타순인거죠. 상하위타선의 불균형이 걱정됩니다. 그리고 고영민에게 과도한 역할이 갈 수도 있습니다. 고영민은 스타일상 어떤 타순에서도 잘할 수 있지만, 뜬금포를 기대할 수 있는 약간은 부담없는 6번이 어울릴 수 있다고 보여져요. 이런 면에서 고영민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오재원의 2번 기용은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타순이죠.

게다가 이종욱-고영민보다는 이종욱-오재원의 조합이 보다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순전히 제 느낌이지만, 이종욱이 1루에 있을 때 고영민이 타석에 있으면 왠지 서로 언발란스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었죠. 고영민은 커트해내면서 자기의 공을 기다리는 스타일이기에, 이종욱이 뛸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는 않게 되거든요. 차라리 오재원으로 하여금 왼쪽 타석에서 포수를 견제하게 하면서, 진루타를 치게 하는게 투수를 더욱 괴롭힐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하나는 오재원의 스타성인데요. 오재원은 얼마든지 큰 경기에서 자신의 능력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LG와의 경기였나요? 3루타를 치고 환호하는 오재원의 입에서 '식빵'이라는 단어가 카메라에 잡혔죠. 그 이후 오재원에게 식빵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는데요. 뭔가 중요한 타이밍에서 꼭 해내고 말겠다는 어떤 의지같은게 느껴지는 선수가 바로 오재원입니다. 수비에서도 허슬플레이를 잘하구요. 두산의 팀컬러와 잘 어울리는 선수임에 틀림없습니다.


한가지 불안한건 의욕이 넘치다보니 오재원이 가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한다는겁니다. 주루사를 한다든가,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든가 하는 약점이 있긴 하죠. 하지만 백업을 오래하다 보니 경기감각이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구요. 최근에는 수비가 약한 최준석을 대신해 1루수 주전이 되고나서는 안정감은 높아졌습니다. 오재원의 똘끼가 약점을 커버해주리라 믿습니다.^^

김경문감독은 아마 1루수로 오재원을 거의 점찍었을겁니다. 일단 단기전에서는 수비가 중요하니까요. 이대호처럼 수비폭이 좁은 선수는 단기전에서 팀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기에 최준석은 대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참고로 이대호는 올림픽에서도 지명으로 주로 뛰었습니다. 또 오재원은 1, 2, 3루 및 유격수까지 수비가 가능하기에 선수활용폭을 넓히는데 적합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김재호, 정원석, 최준석, 그리고 안경현까지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가 있죠.(안경현이 뽑혔으면 좋겠는데...) 오재원이 있기에 가능한 선택입니다.

이런 상항에서 오재원이 공격과 주루에서 크레이지급 활약을 보여준다면 김경문감독은 더 이상 바랄게 없겠죠. 그리고 두산은 어렵지 않게 삼성을 요리할 수 있을테구요. 경험이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노쇠한 삼성의 내야는 오재원의 방망이와 발앞에 정신 못차리기를 기원해보면서 플레이오프를 기다려 봅니다.

덧글 1...
포스팅을 막 마치고 나니 오재원을 중용한다는 기사가 떳네요. 김경문감독은 이렇게 얘기했네요. "2번 타자에 대해 기존 고영민(24)과 전천후 내야요원 오재원(23)을 놓고 고민했는데 오재원을 2번에 놓고 고영민을 6번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재원의 타격 컨디션이 좋은 편이고 좌타자에 발이 빨라 병살을 막는 데도 유리한 편이다." 후덜덜...가끔씩은 저도 뭔가 신끼가 도는건 아닌지 스스로 놀랄 때가 아주 가끔씩은... 있답니다.


2008년 플레이오프는 두산과 삼성이 맞붙게 되었습니다. 두산으로서는 삼성이 적쟎이 껄끄러운 상대죠. 올라올 만한 팀이 올라온 만큼 후회없는 승부 펼쳐주길 기대합니다. 참고로 올 시즌 상대전적은 8승 10패이구요. 삼성의 계투진에 많이 고전했더랬습니다. 결국 플레이오프도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되네요.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면...
1. 첫 2연전에서 두산이 잠실에서 2승을 가져갈 경우, 5차전 이내에 두산이 승리하고,
2. 첫 2연전에서 삼성이 잠실에서 한경기라도 가져갈 경우, 6차전 혹은 7차전에서 두산이 승리하리라 예상합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단기전의 특성 때문인데요. 대개 홈경기를 먼저 치르는 팀이 유리하다고 보는데, 꼭 그런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첫 홈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해서 게임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요. 롯데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물론 경험이 부족한 면 때문이지만 사직에서 첫 경기를 내주자 롯데는 자멸의 길로 들어섰죠. 지나친 홈경기 부담감이 선수드을 경직되게 만든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죠.

이런 홈경기 증후군은 두산에게 그닥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두산이 워낙 홈경기에 강한데다 큰 경기 경험 역시 삼성보다 우월하면 우월하지 열세는 아니기 때문이죠. 김동주 홍성흔은 말할 것도 없고, 김현수, 이종욱, 고영민 등의 주축은 이미 한국시리즈 및 각종 국제경험이 풍부합니다. 선동렬감독의 말대로 큰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선수들이 바로 두산선수들이란거죠.

반면에 투수력은 상대적으로 달라집니다. 특히 선발진과 계투진의 무게감은 양팀이 좀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요. 삼성이 선발보다는 마무리쪽이 강하다면, 상대적으로 두산은 마무리보다는 선발쪽이 강세를 보입니다. 두산으로서는 선발이 얼마나 버텨주는가, 혹은 깜짝 선발이나 깜짝 계투가 나오기를 기대해야 하고, 삼성은 선발이 어떻게든 5회까지 버텨주고 철벽계투가 준플레이오프의 컨디션을 유지해주기를 바래야 하는 상황인데요. 어쨌든 투수력은 아무래도 삼성이 비교우위를 점한다고 봐야 되구요. 다만 중간계투진과 마무리의 체력관리가 안될 경우, 다시 말해서 출장이 잦을 경우 피로도가 누적되어 장기전으로 갈 경우, 위력은 점점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고려대상입니다. 아무래도 포스티시즌에서의 계투진과 마무리의 잦은 출장은 아무래도 부담스럽거든요.

공격력은 두산이 우월합니다. 이종욱, 오재원의 테이블세터진, 김현수, 김동주, 홍성흔의 클린업트리오, 고영민 유쟁웅의 하위타선은 삼성에 비해 짜임새가 있죠. 반면 삼성은 박한이, 양준혁, 진갑용, 박진만의 베테랑, 박석민, 채태인, 최형우 등의 영건들의 조화가 관건이구요. 주루능력은 두산의 압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종욱, 오재원, 고영민에 김현수, 이대수까지 여차하면 바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이 즐비합니다. 두산의 강점은 주루플레이로 수비진을 흔들고 타격으로 마무리 짓는 승리공식인데요. 이를 진갑용이 어떻게 막느냐가 최대의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재원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데요. 오재원이 똘끼를 발휘해서 내야를 휘젖고 다닐 경우 이종욱에 대한 견제가 분산되는 효과까지 끌어낼 꺼구요. 오재원이 막힌다면 이종욱에 견제가 집중되어 작년 한국시리즈의 재판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비력은 양팀 다 견고합니다. 평소 수비가 약한 팀은 강팀이 될 수 없다는 김경문감독의 지론대로 수비를 강조했구요. 선수들도 무난하게 잘해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삼성도 만만치 않죠. 이미 준플레이오프에서 증명했구요. 박진만의 내야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수준입니다. 다만 김재걸의 출장여부에 따라 활용도는 많이 갈리지 않을까 싶네요. 조동찬이도 3루를 잘 지키긴 하지만 그래도 김재걸보다는 견고성이 떨어지니까요. 외야는 두산이 비교우위에 섭니다. 이종욱, 김현수, 유재웅은 안정성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수비범위에서 삼성보다는 낫다고 봐야죠. 아무래도 강봉규, 박한이, 최형우보다는 발이 빠른게 장점이겠네요.

결국 두산의 창과 삼성의 방패가 플레이오프의 하이라이트구요. 두산은 주루능력, 삼성은 계투능력을 킬러로 삼을 것으로 보이고, 반면 두산의 마무리, 삼성의 미숙한 주루플레이가 양팀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울러 서로 아킬레스건을 물기 위한 양팀 감독의 지략싸움도 치열하게 펼쳐질꺼구요. 

만약 누가 승패까지 묻는다면요. 전 과감히 두산이 잠실에서 2승을 거두고 대구에서 결정을 짓는 4승 1패에 걸겠습니다. 이건 순전히 감인데요. 두 팀이 페넌트 레이스에서 진검승부를 펼쳤던 막판 3연전을 복기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짙어집니다. 당시 삼성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짓기 위해 전력을 다했는데요. 악을 써도 두산에게는 힘에서 밀린다는걸 확실히 알 수 있었거든요. 막판 3연전은 2승 1패 두산의 우세로 끝났구요. 마지막 게임은 비록 두산이 졌지만, 김현수가 오승환에 홈런을 뽑아내며 10:9로 끝까지 따라붙었던 명승부였습니다. 이 게임마저 뒤집었다면 스윕했을 3연전이었죠.


롯데의 마지막 분전이 빛났지만 분전만으로 넘을 수 있는 준플레이오프는 아니었나 봅니다. 아쉽게도 3박 4일 만에 롯데의 가을야구는 마감되었네요. 올해 준플레이오프를 사직에서 2경기, 대구에서 1경기로 끝내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죠. 시리즈 시작 전에 저도 삼성의 우세를 점친 바 있지만, 그렇다고 롯데가 이처럼 일방적으로 끌려가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패인은 뭐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경험부족이 크구요. 못지 않은 요인은 관중들의 비매너가 가을야구의 주인공에서 천덕꾸러기로 스스로 밀어넣은데 있습니다. 결국 롯데는 3연패로가 아닌 매너까지 포함해서 4연패로 준플레이오프를 마감한 것 같습니다.

오늘 야구는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은 켜놨지만 첼로 연습하느라 눈여겨 중계를 보진 않았죠. 하지만 야구에는 흐름이 있는데요. 롯데는 열심히 따라가지만 뭔가 부족하고 삼성은 점수를 뽑아도 여유있게 뽑더군요. 이미 게임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흐름이었습니다. 로이스터 매직은 물에 빠진 스펀지마냥 눅눅하기 이를데 없었구요. 오히려 그간의 참패를 만회하긴 위한 롯데의 체면치레 게임 성격이 짙었죠.

결정적인 장면은 4:2로 지고 있는 가운데 터진 양준혁의 홈런이었습니다. 베테랑답게 경기 후반에서 따라가는 동점홈런으로 팀을 구했구요. 이로써 경기 분위기는 완전히 삼성으로 넘어갔습니다. 이후 8회에 터진 조동찬의 2타점 적시타는 양준혁의 날린 카운터펀치를 확인사살한 것에 불과했죠.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속담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네요. 그리고 3게임으로 셧아웃시킴으로써 두산과의 일전에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구요. 두산으로서는 거북한 상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두산과 삼성의 전력분석은 다음에 다시 포스팅을 하겠지만,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두산이 연습경기에서 좋지 않은 컨디션을 보인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네요. 하지만 전 두산을 믿습니다. 경험없는 롯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걸 보여주리라는걸...

덧글 1...
롯데의 '마!'에 대항한 삼성 응원단의 '와!' 응원은 괜챦아 보이네요. 아마 내년엔 다른 팀들이 줄줄이 모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견제구에 비방응원 안하는 두산은 뭐 다른 팀과의 차별화된 응원을 하기에 굳이 따라하지는 않았음 합니다. 괜히 진흙탕 싸움에 끼여들 필요없죠. 그냥 비방응원 안하는 전통을 계속 지켰음 하네요.

덧글 2...
롯데 응원석에서 물병 등을 던지는거 TV에 여러번 잡혔습니다. 은박지로 빛 반사까지 했다면서요? 안타까운 마음이야 헤아릴 수 있겠지만 그냥 경기에서 지는게 낫지, 경기도 지고 매너도 지는건 두번 죽는거라는 것, 왜 모르시는지...? 자꾸 그러면 그럴수록 롯데팬들의 이미지는 X리건으로 굳어지는데 말이죠. 작년 두산팬들 한국시리즈에서 SK에게 졌을 때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모습, 기억하실런지 모르겠는데요. 훨씬 아름답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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