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 4선승제에서 1승 1패라면 5전 3선승제로 다시 시작한다고 보면 되는데요. 5전 3선승제에서 먼저 승리를 거둔 팀이 최후에 웃을 확률은 꽤 높습니다. 그래서 오늘 대구에서의 3차전은 양팀의 명운이 걸린 한판이라 할 수 있었죠. 선발은 이혜천과 윤성환이었구요. 두산의 타순은 김현수를 다시 3번에 배치하는 1차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혹시 2001년에 양팀이 맞붙었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난타전이었는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두산이 6실점한 이후 바로 12점인가를 뽑기도 했던 '투수들의 무덤' 시리즈였죠. 8점을 뽑은 후에도 박동희로부터 김동주가 만루홈런까지 터뜨리기도 했구요. 정말 잔인했죠. 정상적인 야구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만화같은 플레이가 시리즈 내내 계속되었구요. 결국 2001년 챔피언은 두산이었습니다. 호쾌한 타격전 덕분에 혹자는 화끈한 명승부로, 혹자는 투수력이 무너진 졸전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번 플레이오프는 힘대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마치 코뿔소끼리의 싸움을 연상케 합니다. 번트도 거의 없고, 작전도 별로 안쓰고, 그냥 가진 힘을 겨루는 쩌렁쩌렁 쇳소리가 나는 시리즈입니다. 김경문감독이야 원래 그런 스타일이지만 선동렬감독까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한층 더 수준이 높아진 야구라고 하는것 같네요. 덕분에 2001년처럼 강한 폭발력은 없지만, 긴장도는 훨씬 더한 살얼음 승부가 계속되었구요. 양팀의 맞대결은 시대와 상관없이 늘 긴장감이 넘치는군요. 그리고 아쉽게도 3차전은 삼성의 완승으로 돌아갔습니다. 완승이라고는 하지만 두점 정도의 차이로 여겨질 정도의 접전이었구요. 두산은 좀더 시리즈 전적에서 1승 2패로 몰렸습니다. 경기평 시작합니다.
1. 롤러코스터 이혜천의 5이닝 2실점
전반적으로 이혜천은 기복이 심한 투수에 속합니다. 그래서 공이 긁히는 날엔 누구도 법접할 수 없는 공을 던지고, 그렇지 않은 날엔 자신도 어디로 공이 갈지 모르는 묻지마 제구력을 선보이곤 하죠. 그렇기에 위기 상황에 등판하는 것보다 선발이 그의 적성에 맞을런지 모릅니다. 이혜천은 2차전에서 릴리프로 나와 달랑 공 하나를 던지고 내려갔는데요. 그 공이 바로 데드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3차전 선발로 올라왔네요. 두산팬으로선 당연히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죠. 왜냐하면 이제 롤러코스터에 올라 탄 셈이니까요.
이혜천이 위기를 맞은건 3회였습니다. 삼성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3회 득점률이 높은데요. 1차전에서는 4점을 뽑았었죠. 아무래도 타순이 한바퀴 돌고나서 투수 공이 눈에 익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오늘도 역시 삼성은 3회말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3회초 만루 찬스에서 김현수가 타점을 올리지 못했던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맞은 3회말 첫 타자를 이혜천이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준건 어떻게든 위기가 찾아온다는 신호탄이었죠. 이후 두 타자를 플라이로 잡아 넘어가는 듯 했지만, 결국 박석민의 안타로 2점을 내줬네요. 그래도 이혜천이 잘한건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 도전없이 성공없다
흔히들 두산야구를 발야구라고 부르는데요. 개인적으로 두산을 발야구로 한정하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산야구의 핵심은 '사고의 틀을 깨는 도전정신'으로 표현하는게 더 정확하거든요.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적인 플레이를,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허슬 플레이를 도전하고 성공시키는게 두산야구입니다. 예를 들면, 짧은 우익수 플라이 때 천천히 인계되는 볼을 보고 3루로 달렸던 2루주자 이종욱, 내야땅볼 때 3루를 거쳐 거침없이 홈을 파고들었던 2루주자 고영민같은 플레이가 바로 두산야구의 진면목이죠. 모두 실제 있었던 상황들입니다. 이런걸 두고 혹자들은 하기 쉬운 말로 발야구라고 하지만요.
하지만 창의적인 야구는 때론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오늘의 경우 오재원의 주루사가 참 안타까웠죠. 1루에 있던 오재원은 내야땅볼 때 2루를 거쳐 3루로 돌진하려고 했는데요. 3루수 김재걸이 이걸 눈치채고 1루가 아닌 2루로 던져 오재원을 아웃시켰습니다. 결과론에 입각해서 얘기하면 오재원이 한템포 늦춘 후 3루로 뛰어도 괜챦았을 겁니다. 어차피 3루는 비어있었으니까요. 그래서 TV 해설자는 오재원의 본헤드플레이라고 하던데요. 그건 두산야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겁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두산야구가 아니거든요. 또 과감한 도전없이는 성공이란게 존재할 리 없죠.
모르긴 해도 김경문감독은 스타일상 오재원을 책망하진 않았을겁니다. 오히려 상대인 김재걸의 침착한 플레이를 체크했겠죠. 오재원의 과감한 주루플레이가 아쉬운건 3루수가 백전노장 김재걸이었음을 감안하지 못한 것일 뿐, 도전정신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네요.
3. 고영민이 날면 진갑용이 운다
비록 점수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6회에 재밌는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고영민과 진갑용의 기싸움이었는데요. 안타치고 나간 고영민이 삼성 배터리의 신경을 건드리자, 진갑용이 원스트라이크 투볼에서 피치아웃을 시도합니다. 도루를 하려던 고영민은 진갑용의 피치아웃에 급거 귀루를 하게 되구요 간발의 차이로 겨우 아웃을 면했죠. 원투에서 왠만하면 빼지 않는데 진갑용은 과감한 피치아웃을 하더군요. 진갑용의 시도도 훌륭했지만, 고영민의 폭넓은 시야와 순발력이 압권이었습니다. 왠만하면 스타트 끊은 이후 몸을 되돌리기가 어려운데 말이죠. 고제트의 센스가 주루사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진갑용은 다음 타자의 초구에서 두번째 피치아웃을 감행합니다. 이번엔 고영민이 딱 걸렸는데요. 다행히 진갑용의 송구가 원바운드로 가면서 신명철이 놓치고 말았죠. 타이밍상 완벽한 아웃이었습니다. 도루에 성공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고영민은 진갑용의 분석에 대비를 해야할 것 같네요. 두번에 걸치 피치아웃 성공은 그냥 우연만은 아니거든요. 진갑용의 노련함에 말려들면 자칫 시리즈를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고영민의 도발이 이어졌습니다. 채상병 타석에서 3루로 냅다 뛴거죠. 이번엔 진갑용도 예측하지 못한 스타트였기에 고영민은 여유있게 서서 들어갔구요. 결국 고영민은 진갑용과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이게 두산 주루플레이의 힘인데요. 이런 식의 영리한 주루 플레이가 계속 된다면 삼성의 난공불락 계투진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4. 아쉬운 중간 계투진 김상현과 이승학
이혜천에 이어 올라온 김상현은 첫 이닝에서 3점을 허용합니다. 첫 타자를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게 컸네요. 왜 이번 시리즈에서는 볼넷을 많이 내주는걸까요?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이후 박석민의 2루타를 맞고, 그리고 결국 최형우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아 점수는 5:1로 벌어졌습니다. 패인이 짙게 드리워진 순간이기도 했죠.
김상현은 각도 큰 커브가 일품인 투수인데요. 홈런 맞은 공은 각도는 나름 예리했습니다. 하지만 화면상으로 본 김상현의 공은 자신감이 없어 보이더군요. 혼이 실리지 않았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큰 경기에서의 부담감, 첫 타자를 너무 쉽게 내준 이후 맞은 2루타가 심리적 타격을 가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첫 타자만 잘 잡았어도 2~3이닝은 끄떡없이 막아주는데 말이죠. 그리고 최형우도 칭찬할만 하네요. TV 해설위원은 늘 결과론에 의지해 해설하니까 공이 밋밋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최형우가 잘쳤다고 하는게 맞지 싶네요.
더 아쉬운건 이승학입니다. 7회에 내준 1점은 뼈아팠습니다. 이승학은 1, 2차전을 던지지 않았기에 체력소모가 없었죠. 그런 그에게 기대하는건 롱릴리프입니다. 그것도 실점없는 롱릴리프. 하지만 신명철에게 2루타를 맞고 또 한점을 내줬네요. 두산으로서는 거의 카운터펀치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용찬이 무난히 2차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입니다. 비록 지고 있는 경기에 마지막 투수로 나와 부담감은 덜했지만 1이닝을 무실점으로 잘막아줬네요. 아직 이용찬의 깜짝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긴장하지말고 포수 글러브만 보고 투구했으면 합니다.
5. 홍성흔이 없는 두산은 너무 밍밍하다
오늘 경기에서 두산은 잔루가 너무 많았습니다. 무려 13안타 6볼넷으로 19명이 나갔지만 겨우 2명만 생환한 저조한 기록을 남겼네요. 선두타자가 나가더라도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죠. 그 후속타의 주인공은 홍성흔이었어야 했는데, 홍성흔은 오늘 침묵했습니다. '님의 침묵'은 아름답지만 '홍성흔의 침묵'은 전혀 아름답지 않군요.
'홍성흔의 침묵'이 아쉬운건 삼성투수들이 좀처럼 김동주에게 승부를 걸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워낙 홍성흔이 부진하니 김동주에게는 유인공 혹은 공하나 빠지는 코스로 승부를 피하게 되구요. 성질 급한 두목곰 김동주는 그 공을 건드려 동반 부진에 빠졌습니다. 어쨌든 두산의 클린업트리오는 김동주를 사이에 두고 김현수와 홍성흔이 든든히 지켜야 본 모습을 찾을텐데요. 홍성흔의 라이트 어퍼컷 세리머니가 빨리 나와주길 기대합니다.
다행히 오늘 마지막 타석에서 바가지 안타를 터뜨렸으니 내일부터는 정상 컨디션을 찾으리라 희망해보구요. 대구벌이 홍성흔의 포효소리로 메아리칠 것이라 믿습니다. 홍포는 늘 실망시키지 않았으니까요. 언젠가는 분명히, 반드시, 꼭, 포텐셜을 터뜨릴겁니다.
6. 누가 박진만을 한물갔다고 했는가
북경올림픽 선수 선발 이후 어느 기자는 TV에서 박진만의 기량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습니다. 요지는 그랬죠. 박진만이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떨어지고 공을 처리하는 수비범위가 협소해졌다, 그래서 안타가 될 공은 아예 잡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물론 그 기자의 말대로 수비범위가 좁아졌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유격수는 기능적인 면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닙니다. 유격수는 내야수비의 사령관으로 전체적인 시각으로 조율하고 안정감을 꾀하는 역할이 크거든요. 농구에서 리바운드를 키큰 선수만 잡아내는게 아닌 것과 유사합니다. 데니스 로드맨은 키는 그닥 크지 않았지만 탁월한 센스와 자리뺏기로 리바운드 왕에 올랐었죠. 그런 면에서 박진만이 유격수의 역대 최고봉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구요. 오늘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대표적인게 김현수의 안타성 타구 두개를 극단적인 센터쪽 수비 포메이션으로 잡아낸거죠.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빠졌다면 오늘 경기는 정말 안갯속으로 돌입했을테구요. 호수비에 잡힌 김현수의 실망스러워하는 얼굴이 아직 눈에 선하네요. 오늘 경기중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뽀너스 #1. 오늘의 MVP
오늘의 MVP는 3점홈런을 날린 최형우에게 돌아갔네요. 홈런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최형우가 차지하긴 했지만 박진만에게 줘도 무방했을것 같네요. 두산은 박진만에게 당했다는 이순철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뭐 삼성쪽은 그렇구요. 두산은 오늘 유일하게 3안타를 치고 윤성환을 괴롭혔던 이종욱이 MVP로 손색이 없습니다. 1차전부터 지금까지 톱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줘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덧글 1...
두산이 1승 2패로 열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보구요. 두산이 이렇게 호락호락 쉽게 물러나리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중심타선이 살아나면 되는데요. 그냥 오늘 릴랙스하고 편안히 휴식을 취했으면 합니다. 예전에 포스트시즌 특별 동영상에 안경현을 소개하면서 이런 문구가 자막으로 나왔더랬죠. '아버지는 말하셨지. 야구를 즐겨라.' 멋지지 않나요? 그냥 그렇게 야구를 즐기듯 플레이했으면 합니다. 유연한 몸놀림에서 두산야구가 나오니까요.
덧글 2...
4차전에는 선발라인업에 변화를 줬으면 합니다. 이제 할매 전상렬이 체력이 부칠 때도 되었으니 유재웅으로 가구요. 이대수 대신 김재호 기용도 고려해볼 만 하네요. 홍성흔은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자기 몫은 해주는 선수니 계속 믿어보구요.
혹시 2001년에 양팀이 맞붙었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난타전이었는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두산이 6실점한 이후 바로 12점인가를 뽑기도 했던 '투수들의 무덤' 시리즈였죠. 8점을 뽑은 후에도 박동희로부터 김동주가 만루홈런까지 터뜨리기도 했구요. 정말 잔인했죠. 정상적인 야구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만화같은 플레이가 시리즈 내내 계속되었구요. 결국 2001년 챔피언은 두산이었습니다. 호쾌한 타격전 덕분에 혹자는 화끈한 명승부로, 혹자는 투수력이 무너진 졸전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번 플레이오프는 힘대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마치 코뿔소끼리의 싸움을 연상케 합니다. 번트도 거의 없고, 작전도 별로 안쓰고, 그냥 가진 힘을 겨루는 쩌렁쩌렁 쇳소리가 나는 시리즈입니다. 김경문감독이야 원래 그런 스타일이지만 선동렬감독까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한층 더 수준이 높아진 야구라고 하는것 같네요. 덕분에 2001년처럼 강한 폭발력은 없지만, 긴장도는 훨씬 더한 살얼음 승부가 계속되었구요. 양팀의 맞대결은 시대와 상관없이 늘 긴장감이 넘치는군요. 그리고 아쉽게도 3차전은 삼성의 완승으로 돌아갔습니다. 완승이라고는 하지만 두점 정도의 차이로 여겨질 정도의 접전이었구요. 두산은 좀더 시리즈 전적에서 1승 2패로 몰렸습니다. 경기평 시작합니다.
1. 롤러코스터 이혜천의 5이닝 2실점
전반적으로 이혜천은 기복이 심한 투수에 속합니다. 그래서 공이 긁히는 날엔 누구도 법접할 수 없는 공을 던지고, 그렇지 않은 날엔 자신도 어디로 공이 갈지 모르는 묻지마 제구력을 선보이곤 하죠. 그렇기에 위기 상황에 등판하는 것보다 선발이 그의 적성에 맞을런지 모릅니다. 이혜천은 2차전에서 릴리프로 나와 달랑 공 하나를 던지고 내려갔는데요. 그 공이 바로 데드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3차전 선발로 올라왔네요. 두산팬으로선 당연히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죠. 왜냐하면 이제 롤러코스터에 올라 탄 셈이니까요.
이혜천이 위기를 맞은건 3회였습니다. 삼성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3회 득점률이 높은데요. 1차전에서는 4점을 뽑았었죠. 아무래도 타순이 한바퀴 돌고나서 투수 공이 눈에 익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오늘도 역시 삼성은 3회말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3회초 만루 찬스에서 김현수가 타점을 올리지 못했던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맞은 3회말 첫 타자를 이혜천이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준건 어떻게든 위기가 찾아온다는 신호탄이었죠. 이후 두 타자를 플라이로 잡아 넘어가는 듯 했지만, 결국 박석민의 안타로 2점을 내줬네요. 그래도 이혜천이 잘한건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 도전없이 성공없다
흔히들 두산야구를 발야구라고 부르는데요. 개인적으로 두산을 발야구로 한정하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산야구의 핵심은 '사고의 틀을 깨는 도전정신'으로 표현하는게 더 정확하거든요.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적인 플레이를, 그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허슬 플레이를 도전하고 성공시키는게 두산야구입니다. 예를 들면, 짧은 우익수 플라이 때 천천히 인계되는 볼을 보고 3루로 달렸던 2루주자 이종욱, 내야땅볼 때 3루를 거쳐 거침없이 홈을 파고들었던 2루주자 고영민같은 플레이가 바로 두산야구의 진면목이죠. 모두 실제 있었던 상황들입니다. 이런걸 두고 혹자들은 하기 쉬운 말로 발야구라고 하지만요.
하지만 창의적인 야구는 때론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오늘의 경우 오재원의 주루사가 참 안타까웠죠. 1루에 있던 오재원은 내야땅볼 때 2루를 거쳐 3루로 돌진하려고 했는데요. 3루수 김재걸이 이걸 눈치채고 1루가 아닌 2루로 던져 오재원을 아웃시켰습니다. 결과론에 입각해서 얘기하면 오재원이 한템포 늦춘 후 3루로 뛰어도 괜챦았을 겁니다. 어차피 3루는 비어있었으니까요. 그래서 TV 해설자는 오재원의 본헤드플레이라고 하던데요. 그건 두산야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겁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두산야구가 아니거든요. 또 과감한 도전없이는 성공이란게 존재할 리 없죠.
모르긴 해도 김경문감독은 스타일상 오재원을 책망하진 않았을겁니다. 오히려 상대인 김재걸의 침착한 플레이를 체크했겠죠. 오재원의 과감한 주루플레이가 아쉬운건 3루수가 백전노장 김재걸이었음을 감안하지 못한 것일 뿐, 도전정신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네요.
3. 고영민이 날면 진갑용이 운다
비록 점수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6회에 재밌는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고영민과 진갑용의 기싸움이었는데요. 안타치고 나간 고영민이 삼성 배터리의 신경을 건드리자, 진갑용이 원스트라이크 투볼에서 피치아웃을 시도합니다. 도루를 하려던 고영민은 진갑용의 피치아웃에 급거 귀루를 하게 되구요 간발의 차이로 겨우 아웃을 면했죠. 원투에서 왠만하면 빼지 않는데 진갑용은 과감한 피치아웃을 하더군요. 진갑용의 시도도 훌륭했지만, 고영민의 폭넓은 시야와 순발력이 압권이었습니다. 왠만하면 스타트 끊은 이후 몸을 되돌리기가 어려운데 말이죠. 고제트의 센스가 주루사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진갑용은 다음 타자의 초구에서 두번째 피치아웃을 감행합니다. 이번엔 고영민이 딱 걸렸는데요. 다행히 진갑용의 송구가 원바운드로 가면서 신명철이 놓치고 말았죠. 타이밍상 완벽한 아웃이었습니다. 도루에 성공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고영민은 진갑용의 분석에 대비를 해야할 것 같네요. 두번에 걸치 피치아웃 성공은 그냥 우연만은 아니거든요. 진갑용의 노련함에 말려들면 자칫 시리즈를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고영민의 도발이 이어졌습니다. 채상병 타석에서 3루로 냅다 뛴거죠. 이번엔 진갑용도 예측하지 못한 스타트였기에 고영민은 여유있게 서서 들어갔구요. 결국 고영민은 진갑용과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이게 두산 주루플레이의 힘인데요. 이런 식의 영리한 주루 플레이가 계속 된다면 삼성의 난공불락 계투진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4. 아쉬운 중간 계투진 김상현과 이승학
이혜천에 이어 올라온 김상현은 첫 이닝에서 3점을 허용합니다. 첫 타자를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게 컸네요. 왜 이번 시리즈에서는 볼넷을 많이 내주는걸까요?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이후 박석민의 2루타를 맞고, 그리고 결국 최형우에게 쓰리런 홈런을 맞아 점수는 5:1로 벌어졌습니다. 패인이 짙게 드리워진 순간이기도 했죠.
김상현은 각도 큰 커브가 일품인 투수인데요. 홈런 맞은 공은 각도는 나름 예리했습니다. 하지만 화면상으로 본 김상현의 공은 자신감이 없어 보이더군요. 혼이 실리지 않았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큰 경기에서의 부담감, 첫 타자를 너무 쉽게 내준 이후 맞은 2루타가 심리적 타격을 가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첫 타자만 잘 잡았어도 2~3이닝은 끄떡없이 막아주는데 말이죠. 그리고 최형우도 칭찬할만 하네요. TV 해설위원은 늘 결과론에 의지해 해설하니까 공이 밋밋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최형우가 잘쳤다고 하는게 맞지 싶네요.
더 아쉬운건 이승학입니다. 7회에 내준 1점은 뼈아팠습니다. 이승학은 1, 2차전을 던지지 않았기에 체력소모가 없었죠. 그런 그에게 기대하는건 롱릴리프입니다. 그것도 실점없는 롱릴리프. 하지만 신명철에게 2루타를 맞고 또 한점을 내줬네요. 두산으로서는 거의 카운터펀치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용찬이 무난히 2차전의 실패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입니다. 비록 지고 있는 경기에 마지막 투수로 나와 부담감은 덜했지만 1이닝을 무실점으로 잘막아줬네요. 아직 이용찬의 깜짝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긴장하지말고 포수 글러브만 보고 투구했으면 합니다.
5. 홍성흔이 없는 두산은 너무 밍밍하다
오늘 경기에서 두산은 잔루가 너무 많았습니다. 무려 13안타 6볼넷으로 19명이 나갔지만 겨우 2명만 생환한 저조한 기록을 남겼네요. 선두타자가 나가더라도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죠. 그 후속타의 주인공은 홍성흔이었어야 했는데, 홍성흔은 오늘 침묵했습니다. '님의 침묵'은 아름답지만 '홍성흔의 침묵'은 전혀 아름답지 않군요.
'홍성흔의 침묵'이 아쉬운건 삼성투수들이 좀처럼 김동주에게 승부를 걸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워낙 홍성흔이 부진하니 김동주에게는 유인공 혹은 공하나 빠지는 코스로 승부를 피하게 되구요. 성질 급한 두목곰 김동주는 그 공을 건드려 동반 부진에 빠졌습니다. 어쨌든 두산의 클린업트리오는 김동주를 사이에 두고 김현수와 홍성흔이 든든히 지켜야 본 모습을 찾을텐데요. 홍성흔의 라이트 어퍼컷 세리머니가 빨리 나와주길 기대합니다.
다행히 오늘 마지막 타석에서 바가지 안타를 터뜨렸으니 내일부터는 정상 컨디션을 찾으리라 희망해보구요. 대구벌이 홍성흔의 포효소리로 메아리칠 것이라 믿습니다. 홍포는 늘 실망시키지 않았으니까요. 언젠가는 분명히, 반드시, 꼭, 포텐셜을 터뜨릴겁니다.
6. 누가 박진만을 한물갔다고 했는가
북경올림픽 선수 선발 이후 어느 기자는 TV에서 박진만의 기량을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었습니다. 요지는 그랬죠. 박진만이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떨어지고 공을 처리하는 수비범위가 협소해졌다, 그래서 안타가 될 공은 아예 잡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물론 그 기자의 말대로 수비범위가 좁아졌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유격수는 기능적인 면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닙니다. 유격수는 내야수비의 사령관으로 전체적인 시각으로 조율하고 안정감을 꾀하는 역할이 크거든요. 농구에서 리바운드를 키큰 선수만 잡아내는게 아닌 것과 유사합니다. 데니스 로드맨은 키는 그닥 크지 않았지만 탁월한 센스와 자리뺏기로 리바운드 왕에 올랐었죠. 그런 면에서 박진만이 유격수의 역대 최고봉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구요. 오늘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대표적인게 김현수의 안타성 타구 두개를 극단적인 센터쪽 수비 포메이션으로 잡아낸거죠.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빠졌다면 오늘 경기는 정말 안갯속으로 돌입했을테구요. 호수비에 잡힌 김현수의 실망스러워하는 얼굴이 아직 눈에 선하네요. 오늘 경기중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뽀너스 #1. 오늘의 MVP
오늘의 MVP는 3점홈런을 날린 최형우에게 돌아갔네요. 홈런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최형우가 차지하긴 했지만 박진만에게 줘도 무방했을것 같네요. 두산은 박진만에게 당했다는 이순철의 분석에 동의합니다. 뭐 삼성쪽은 그렇구요. 두산은 오늘 유일하게 3안타를 치고 윤성환을 괴롭혔던 이종욱이 MVP로 손색이 없습니다. 1차전부터 지금까지 톱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줘서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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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이 1승 2패로 열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보구요. 두산이 이렇게 호락호락 쉽게 물러나리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중심타선이 살아나면 되는데요. 그냥 오늘 릴랙스하고 편안히 휴식을 취했으면 합니다. 예전에 포스트시즌 특별 동영상에 안경현을 소개하면서 이런 문구가 자막으로 나왔더랬죠. '아버지는 말하셨지. 야구를 즐겨라.' 멋지지 않나요? 그냥 그렇게 야구를 즐기듯 플레이했으면 합니다. 유연한 몸놀림에서 두산야구가 나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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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전에는 선발라인업에 변화를 줬으면 합니다. 이제 할매 전상렬이 체력이 부칠 때도 되었으니 유재웅으로 가구요. 이대수 대신 김재호 기용도 고려해볼 만 하네요. 홍성흔은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자기 몫은 해주는 선수니 계속 믿어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