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베어스 팬들에게 FA란 Fade Away 혹은 Fly Away라는 말이 있습니다. FA를 통한 전력보강은 그저 남의 집 일인지라, 이번엔 누가 나갈까 싶어 스토브리그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죠. 그래도 신은 공평하셔서 두산에게 화수분의 전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나마도 없었다면 두산의 올해는 정말 암흑이었을겁니다.
그간 두산의 FA 선수들을 뽑아보니 아래와 같네요. 인터넷에서 뒤진거라 틀릴 수도 있으니 만약 사실과 다른게 잇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두산 -> 두산
2000 조계현 2.8억/1년
2002 안경현 15억/4년
2003 장원진 5.5억/2년
2005 전상렬 4억/2년
2006 홍원기 0.8억/1년
김창희 1억/1년
2008 김동주 9억/1년
두산 -> 타팀
2004 정수근 롯데 40.6억/6년
2007 박명환 LG 40억/4년
2009 홍성흔 롯데 2,79억/1년
이혜천 야쿠르트 400만달러/2년
타팀 -> 두산
全無
위의 내용을 얼핏보면 두산이 FA 선수를 많이 잡은 것 같지만. 타팀의 FA 선수 영입한 케이스는 한명도 없었구요. 내부 FA 잡은 선수도 김동주와 안경현, 장원진을 제외하면 솔직히 대어급은 아니었습니다. FA라고 하기에도 머쓱한 금액도 있었구요. 반면 프랜차이즈 선수들의 이탈은 심했습니다. FA로만 봐도 정수근, 박명환, 홍성흔, 이혜천이 떠났구요. FA는 아니었지만 최일언, 김형석, 이명수, 김경원, 김상진, 심정수, 진필중, 안경현 등이 자유계약선수로 풀리거나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벗어야 했죠.
이런 아픔의 역사가 있었기에 두산팬들의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착은 유독 강했습니다. 박철순 이후 프랜차이즈 스타로 은퇴식을 하고 영구결번하는 선수가 탄생하길 손꼽아 기다렸죠. 그 가능성에 근접했던 안쌤, 홍포의 이탈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위야 어찌됐든 팬들의 실망감은 김경문감독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구요. 저도 안쌤, 홍포를 내보낸 달감독이 왠지 미웠습니다. 사실 홍포는 달감독이 내친게 아니었음에도...
하지만 2009 시즌이 중반에 치닫고 있는 지금 두산은 1위를 하고 있고, 세대교체를 가장 성공적으로 한 팀이 되었습니다. 이용찬, 홍상삼, 임태훈 등의 주축 투수들은 19~21살 정도이고, 정수빈, 김현수, 민병헌, 고영민 등의 야수들도 20대 초반에 불과하죠. 다른 팀에 가면 중간급 정도 밖에 안되는 손시헌이 고참행세를 하고 있으니, 타팀의 부러움을 받을 수밖에 없죠. 그만큼 두산의 미래는 탄탄합니다. 덕분에 지금 두산팬들은 홍성흔, 안경현, 이혜천을 그리워하면서도 젊은 선수들에게 애정을 쏟게 되네요. 이원석이 대표적인 케이스인데요. 홍포의 보상선수로 와서 트레이드 대상으로 전락하더니 지금은 두산의 없어서는 안될 유틸리티 선수가 되었죠. 우윳빛깔 이원석이라는 쌔끈한 별명도 얻었구요. 홍성흔의 롯데행이 없었다면 이원석은 두산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겁니다.
이런걸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되나요? 아니면 새옹지마라고 해야 되나요? 김경문의 경쟁체제가 프랜차이즈의 퇴출로 이어졌지만, 또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가져왔으니... 물론 모든게 결과가 좋으니 이렇게 얘기하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하일성 아저씨가 야구는 모른다고 했지 싶습니다. 어쨌든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공은 당연히 달감독입니다. 김현수, 정수빈, 홍상삼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죠? 이들은 시즌 전 달감독이 주목해야 할 선수로 언급했던 히든카드였죠. 그리고 보기좋게 성공했구요. 달감독이 선수를 볼 줄 아는 좋은 안목을 지녔다는데 이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습니다. 한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홍성흔에게 포수마스크를 벗기려했던 것도 수긍이 가구요.
프랜차이즈의 이적이 아쉽긴 하면서도 쑥쑥 커가는 아기곰들을 보는 맛에 익숙해져간다는건... 떫은 차맛속에 담백한 단맛을 맛본 듯한 느낌입니다.
흠... 그러고보니 김경문도 두산의 자랑스러운 프랜차이즈였네요.
시즌 전 두산의 1루수 주전 후보는 오재원, 최준석, 이성열이었습니다. 이 3명을 특징별로 나눈다면 공수주 3박자의 오재원, 수비는 떨어지지만 장타력이 돋보이는 최준석, 호타준족의 기대주 이성열이라 할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큰 경기에서는 수비가 중요하니까 오재원이 주전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고, 최준석과 이성열은 타격이 일취월장해야 주전입성을 이룰 수 있을꺼라 예상했었습니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고 난 후 뚜껑을 열고보니 최준석이 정말 열심히 했다는게 눈에 보이더군요.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 랭크되어 있고, 확실한 두산의 5번타자가 되었죠. 반면에 오재원은 약간의 전투력만 상승했고, 이성열은 아직 물음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재원은 수비와 빠른 발이 있기에 주전으로서의 가치가 있지만, 이성열은 선풍기의 오명을 털어내지 못하는 한 쉽지 않을꺼 같네요.
도대체 최준석과 이성열의 차이는 뭘까요? 둘다 거포로서의 신체적 장점은 갖고 있는데, 성적에서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제가 보기엔 선구안으로 보이는데요. 최준석은 약점인 변화구 대처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시켰거든요.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하나 빠지는 볼, 혹은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드는 슬라이더에 그간 헛손질을 했었죠. 그러다보니 직구에 집중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인구에 속지 않게 되면서 투수들이 던질 곳이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바깥쪽 공을 결대로 밀어치다보니 안쪽, 바깥쪽, 직구, 변화구 모두 약점이 별로 보이지 않게 된거죠. 하지만 최준석... 아직은 부족합니다. 볼넷 보다 삼진 숫자가 아직은 더 많습니다. 14개와 18개니까요.
이에 반해 이성열은 선구안이 안습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시력이 안좋다고도 하는데, 그보다는 타격폼에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죠. 타격시 고개가 좌상향으로 미리 올라가는 듯 한데요. 그러다보니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볼에 속수무책입니다. 오늘은 안경을 벗고 렌즈를 낀 것 같은데, 정말 시력이 문제라면 시즌 전에 어떻게든 교정을 했어야 하니까, 어쨌든 그 역시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성열은 오늘 삼성과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번타자로 선발출장했지만, 3타수 무안타로 번번히 찬스를 날려먹기만 하고, 결국 1사 1, 3루 찬스에서 정수빈에게 대타 교체되고 말았네요.
이왕 말이 나왔으니 정수빈과 비교하면, 정말 정수빈은 극강의 선구안을 갖고 있습니다. 고졸 1년차라는게 믿어지지 않을만큼 침착하고 또 변화구에 속는 일도 거의 없더군요. 8회말 2사 만루에서 결승 밀어내기 뽑아낸거 보면 예사 솜씨는 아니죠. 타격폼도 이성열은 건들거리는데 반해 정수빈은 안정된 상태에서 당겨치는 타법이구요. 하여간 언젠가 포텐셜을 터뜨려주겠지 하고 기대는 하지만, 이성열은 늘 희망고문이네요. 달감독이 언제까지 기회를 줄지 모르겠습니다만, 기회는 주어질 때 잡지 않으면 지나고 나면 바람일 뿐이어서, 이성열은 정말 정신 바짝차려야 됩니다. 외야는 임재철, 민병헌, 정수빈에 밀리고, 1루는 오재원, 최준석에 밀리는게 현실이거든요. 그나마 왓슨이 이천에 내려갔기에 그나마 잠실 공기 마시는 겁니다.
덧글...
오늘 삼성과의 더블헤더는 1승 1패 했습니다. 누가 싸대기동맹 아니랄까봐 사이좋게 나눠가졌네요. 토요일 비가 온게 아쉽게도 두산 7연승의 기세를 한풀 꺾어놨구요. 에이스라 하기엔 뭔가 쑥쓰러운 김선우의 부진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두산이 강팀이지만 최강팀이 되기엔 2% 부족하구나 또 느끼게 해준 경기였네요. 확실한 에이스 없이 스크를 꺾는건 뭐... 참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천쌀밥을 먹고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 세데뇨에게 기대를 걸어햐 하나 봅니다. 에혀...
반면에 마무리 이용찬은 참 이쁘네요. 박빙의 승부에서 최형우, 양준혁을 삼진잡고 박진만을 내야땅볼로 셧아웃시켰습니다. 국내 최고의 152km 강속구, 종으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슬라이더, 그리고 자신있게 뿌리는 기세등등한 모습... 예전 김경원과 진필중을 보는 듯 하군요. (흐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