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지금 홍성흔 타석이야. 빨리와~"
잠실운동장역을 막 뛰어 올라가는데 롯데팬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울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 실망감이 철철 흘러 넘치네요.
"아~ 근데 초구에 파울 플라이 아웃이야~ 어휴..."

롯데팬 선배는 표를 끊어놓고 경기장 안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구요. 우모는 회사에서 대충 일 마무리 짓고 뛰어 오면서 어디서 만날지 전화하는 통이었습니다. 그렇게 홍성흔의 두산전 첫 타석은 아웃으로 시작되었죠. 밖에서 치킨윙 사서 들어가는 동안 내내 홍포 생각만 맴맴 돌았습니다. '쩝... 이젠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오늘 경기는 시즌 전부터 점찍어 둔 꼭 봐야 하는 must have 였는데요. 이유는 뭐 다름 아닌 홍성흔 때문이었습니다. 갈매기 유니폼을 입은 홍성흔을 적으로 만나는 게임인지라 안볼래야 안볼 수가 없었죠. 기분은 그닥 유쾌하진 않았구요. 홍성흔이 안타 혹은 홈런을 치고 어떤 세리머니를 할 지, 그 때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머릿 속은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바티스투타가 골 넣고 세리머니 없이 고개를 파묻었을 때 피오렌티나 팬들은 피눈물을 흘렸는데, 그 기분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해보기도 했구요. 그런 일이 두산팬들에게 닥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등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홍성흔의 오늘 성적은 데드볼 한개 포함 3타수 무안타였네요. 예전의 날카로운 스윙, 파이팅 넘치는 손짓은 찾아볼 수 없고, 허공만 가르는 방망이가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통쾌하게(ㅜ.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슬럼프에 빠져 있는데도 홍포는 수비가 끝나면 덕아웃 앞에서 제일 먼저 선수들을 맞이하는 버릇... 여전하더군요. 이런 홍포의 마음 씀씀이가 항상 믿음직스럽게 했었는데요. 간만에 보니 미소가 절로 그려지구요. 다만 상대 덕아웃에 서있는 모습... 그건 왜 그렇게 어색한지요. 마치 일장기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서있는 손기정옹을 보는 듯 했습니다. 또 지명타자로만 나서는 바람에 벤치에 앉아있기 미안했는지 틈나는대로 불펜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몸을 푸는 모습... 보기 좋았습니다. 안스럽기도 했구요. 혹자는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정말 홍포를 몰라서 하는 얘기구요. 홍포를 오래 봐온 팬들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죠. 성실하면서 허슬플레이를 펼치는 홍포 아니 홍지명은 분명 슬럼프에서 벗어나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으리라 믿습니다.

위의 사진은 모두 홍성흔을 찍은건데요. 이중 좌하단에 있는건 홍지명이 1루에 나가 있을 때 장면입니다. 나름 의미있는 그림이겠다 싶어 찍었던건데... 바로 1루수가 이원석이었거든요. 오늘 이원석은 선발 6번타자 1루수로 출장해서 홈런 포함 3타수 1안타 2타점을 올렸습니다. 롯데만 만나면 펄펄 나는 이원석을 보면서 홍지명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어쨌든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니까 홍지명도 더 분발하겠죠?


보너스로 불펜에서 이리저리 몸푸는 홍포 모습 올려봅니다.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이글거리는 빛이 느껴지지 않나요? 저런 눈빛이 10년간 두산의 덕아웃을 지켰는데... 에혀... 머지 않은 날에 다시 두산 유니폼을 입을 홍포를 기대해 봅니다. 성공한 갈매기로 돌아오길... 꼭~

덧글...
경기는 11:3으로 두산이 이겼습니다. 홍상삼이 잘 던졌는데 고비는 못넘겨 역전당한채 내려왔구요. 두산타자들의 매서운 방망이질로 재역전시켰습니다. 김현수, 이원석의 홈런이 좋았구요. 손시헌의 적시타가 결정적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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