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슬러>, 이 영화는 주인공 미키 루크 하나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미키 루크는 80년대 <나인 하프 위크>의 섹시가이 대명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다. 어둠 속에 얼굴 반이 그림자로 드리워진 그의 입체적인 마스크는 남자가 봐도 멋있었다. 그런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다 늙은, 아니 추하게 구겨진,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줘 충격과 감동을 안겨줬다. 충격이라면 생물학적 노화현상일 것이고, 감동이라면 그럼에도 빛나는 삶에 대한 의지를 말할 것이다. 



영화는 미키 루크의 데칼코마니라 할만큼 그의 삶과 유사하다. 80년대의 레슬링 스타 랜디(미키 루크 역)는 두 삶을 살고 있다. 링 안의 삶과 밖의 삶. 링 안에선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지만, 밖에선 딸로부터 외면 받고, 생활고에 찌들린채, 단골 술집 스트리퍼인 캐시디와의 썸만이 유일한 안식처인 독거남이다. 두 삶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지만, 그는 늘 열정적이면서 본능적으로 돌진한다. 그래서 링 위에 오를 때와 식료품 상점에 출근할 때의 그를 비추는 카메라 워크는 똑같다. 그의 육중한 뒷모습을 따라가며 원테이크로 길게 잡는 신은 몇번을 봐도 종교의식같은 장엄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랜디는 링 안팎의 삶을 전투하 듯 살았을 것이다. 


"링에서 모든 걸 잃었고 모든 걸 얻은 나는 레슬러입니다." 



그런 그가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은퇴를 결심하게 되고, 이를 기점으로 삶에 변화가 오게 된다. 캐시디의 권유로 딸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캐시디와 진전된 사랑을 시도하고..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남은 건 그저 식료품 상점에서 왕년의 스타가 아닌 점원으로 사는 굴종의 삶. 


하지만 랜디는 그런 삶에 타협하지 않았다. 비록 의사의 경고가 있었지만, 심장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다시 링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다. 캐시디와 함께. 영화의 마지막 신은 랜디가 링 위에서 몸을 날리며 끝난다. 이후 암전은 많은 여운을 준다. 랜디가 승리했을 수도, 심장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커튼 뒤에 숨겨진 결과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랜디는 자기 삶에 대해 늘 솔직하게 살아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모습이 아무리 추하다 하더라도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미키 루크의 흉한 얼굴을 보고 혹자들은 성형 중독자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난 큰 관심 없다. 내 눈엔 미키 루크의 일그러진 얼굴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가 더 도드라지게 보일 뿐이다.


뱀발.

사실 레슬링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스포츠라 생각하지 않았다. 스포츠를 가장한 엔터테인먼트라 여겼다. 그래서 단체명이 WWF가 WWE(entertainment)로 바꿨을 때 솔직한 인정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엔터테인먼트라 할지라도 그 속엔 치열한 삶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평가들의 평점이 높은 영화는 왠지 부담스럽다. 

과연 나도 비평가 수준의 안목을 가졌을까 혹은 비평가들이 좋다고 하니 따분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선입견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따분하지 않을 만큼 재미 있고, 지루하지 않을 만큼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별 4개 주고 싶다, 아낌없이.



우선 이 영화는 마초적인 냄새가 곳곳에서 짙게 배어난다. 비중있는 캐릭터는 죄다 남자들 뿐이며, 영화를 관통하는 코드는 가족에 대한 남자의 책임감이다. 게다가 총이 등장하고 무대는 텍사스다. 어디선가 말보로 담배를 피우는 카우보이가 튀어나올 듯 하다. 실제로 카우보이 복장을 한 전형적인 텍사스 마초들이 이 영화를 끌고 나간다. 


등장하는 두 인물은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와 형 태너(밴 포스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은행에 집과 땅을 넘겨줄 위기에 처한 토비가 출소한 태너와 함께 은행털이를 시작한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작은 은행의 지점을 습격하고 큰 돈은 가져가지 않는 수법을 쓴다. 덕분에 연이어 성공하지만, 베테랑 레인저인 마커스를 만나면서 상황은 추격전으로 바뀐다. 다음에 털 것으로 예상되는 은행으로 달려가는 레인저들과 형제는 총격전을 벌이게 되고, 결국 형 태너는 마커스의 총에 죽고 만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태너의 선택. 동생을 위해 자신이 기꺼이 레인저들을 유인하고 담담하게 최후를 맞는다. 전적으로 동생을 위한 형의 고독한 결정이다. 토비 또한 그러하다. 은행 턴 돈으로 대출금을 모두 갚자 아낌 없이 집과 땅의 명의를 아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그 집을 출퇴근하며 지키는 역할에 만족한다. 이혼했지만, 아들을 위한 아빠의 고독한 결정이다.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남자의 모습이 박물관의 박제처럼 쓸쓸하게 그려진다. 


토비의 대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비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건 아닐런지. "가난은 전염병 같아서 대를 이어 전해지죠. 하지만 내 자식들은 안돼요."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영화에서 꼬집는 미국의 현실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총기, 추억을 곱씹으며 마을을 지키는 노인들, 그리고 은행과 석유회사라는 거대한 자본에 착취당하는 토착민들의 삶까지 뭔가 황량한 벌판처럼 답답하다. 폴폴 날리는 먼지는 켜켜이 쌓여간다. 저물어가는 미국을 상징한다. 은행털이에 사용했던 차들을 땅속에 묻는 장면도 예사롭지 않다. 레인저 마커스가 동료 알베르토에게 날리는 인종차별적 농담도 사실 미국 백인의 속내를 대변한다. 도덕적 양심 혹은 어디서든 날아올 수 있는 총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금기어들이 마커스를 통해 쏟아진다. 


며칠 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의 누적된 언행과 경력을 감안할 때 의외의 결과로 여겨지지만, 이 영화의 저변에 깔린 정서를 보면 그릴 놀랄 일도 아니지 싶다.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자신들의 삶을 구원해 준 것도, 자존심을 세워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트럼프는 자신들의 정서를 충족시켜 주는 대리인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을 테다. 아마도 비평가들은 이런 잔잔한 현실 풍자와 서부 영화에 대한 현대적 해석으로 높은 점수를 주는 듯 하다. 내 기대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고. 


이 영화의 원제는 미국의 오늘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Hell or High Water.



막연히 발리를 꿈꿨던 건 제주에서 처음 서핑을 배울 때다. 


잔뜩 구름 낀 아직은 쌀쌀한 오월의 어느 날, 누르스름한 해변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파도가 거의 없는 바다 위에 어설프나마 서프 위에 몸을 띄웠다.  서퍼들은 이런 바다를 장판같다며 재미없어 한다. 하지만 초보로선 용기 낼 수 있는 바다이기도 하다. 그 잔잔한 바다의 파도를 쥐어짜며  파도를 배우다 보니 문득 발리가 떠올랐다. 그래 발리의 꾸따에 한 번 가보자. 



여름 내내 양양이나 제주 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핑을 배우진 않았다. 서핑에 대한 열망도 며칠 간 식탁 위에 내팽개쳐진 찐빵처럼 식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발리에 대한 생각은 가시지 않았다. 서핑에서 비롯된 발리의 꿈이 서핑이 사라져도 식지 않은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낙엽이 스산하게 떨어지기 시작하던 시월 어느 날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린 뱃사람처럼 난 발리행 티켓을 끊었다. 


11월의 발리는 우기가 시작된다. 비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볼 것인가가 중요했다. 우선 꼬마곰과 함께 서핑을 하고, 래프팅을 타고, 제트스키나 파라세일링 등을 하리라. 그리고 꼬마곰도 좋아하는 마사지도 받아보리라.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여행은 늘 변덕 심한 사춘기 소녀처럼 꿈틀거렸다. 



먼저 포기해야 했던 건 서핑. 파도가 너무 세서 꼬마곰이 하기엔 위험하단다. 이게 웬말? 서핑 때문에 찾은 발리였는데.. 웬만하면 도전하겠는데 꼬마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말에 돌아서고 말았다. 대신 워터붐이라는 워터파크로 행전지를 정했다. 완전히 꼬마곰을 위한 선택이다. 워터붐은 그리 크지 않지만 깔끔하고 붐비지 않아 좋았다. 가장 난이도 높은 것 빼곤 타볼 건 대충 다 타봤다. 그 중 부메랑이라는 슬라이드는 처음에 공포, 그 자체였으나 타고 난 후 별거 아닌 녀석임을 알아차렸다. 꼬마곰과 입에서 단내 나도록 타고 놀았다. 하루 해가 짧았다. 


마사지샵 사장님이 발리에서 가장 만족도 높은 건 래프팅이라 하셨다. 과연 그 말씀은 옳았다. 오지에서 출발하는 래프팅은 강 양쪽으로 솟은 원시림과 그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뚫고 가는 코스였다. 이런 그림 같은 풍경은 스위스나 라오스의 그것과 코스의 격을 달리 한다. 그렇다고 한가롭게 풍경을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살이 만만치 않다. 4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코스도 있으니 살짝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꼬마곰도 탄 수준이니 그리 겁 먹지 마시라. 마음을 내려놓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대신 파라세일링,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의 해양 스포츠는 실망스러웠다. 요원들의 안전의식이 희박해 순간 순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쯤은 즐겨볼 만 하지만 추천하고 싶진 않다. 특히 파라세일링은 보라카이에서와는 달리 시간도 짧고 경치도 멋지지 않았다. 백사장에서 도움닫기를 하는 파라세일링일 줄은 미처 몰랐다. 보라카이의 파란 바다를 가르는 하얀 요트가 몹시도 그리웠다. 



발리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게 매력이다. 아름다운 발리의 자연을 품고 있는 사원은 때론 수백 미터 절벽 위에, 때론 고즈넉한 숲 속에 수 백년을 웅크리고 똬리 틀고 있다. 사원을 벗어나 도로를 달리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부대들을 보게 되고, 우붓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나도 몰래 지갑 속 루피아를 세게 한다. 세미냑의 아기자기한 카페거리에서 맛 본 아이스크림은 동화처럼 달콤했다. 또 산간 지방에 펼쳐진 계단식 논은 어떠한가. 그 가파른 경사의 한 줌 논에 벼를 심고 물을 대는 농부를 보면 손자의 볼을 어루만지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 스페인 사내들, 바가지 씌울 줄 모르는 솔직한 가이드까지 발리의 얼굴들이 벌써 그립다. 다시 발리에 가고 싶어진다. 한국에 도착한 후 Widarsa와 나눈 카톡을 보니 더욱..


Matur Suksma, Bali. 

감사합니다,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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