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5일 어린이날.

이 날은 큰아버지와 자형과 함께 야구를 봤던 날이었다. 큰어머니 병간호 하시는 큰아버지도 뵐 겸, 야구도 같이 관람할 겸, 겸사겸사 잠실구장을 찾은 터였다.


비록 큰아버지는 LG팬이셨지만 당시 야구장에서 같이 소리쳐 보니 밖에서 뵐 때와 너무 달랐다. 든든한 아버지를 다시 뵙는 느낌이었다. 아울러 돌아가신 아버지와 생전에 한번이라도 야구장에 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배어나오던 하루였다.

경기는 너무 극적으로 두산이 승리했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홍성흔의 허슬플레이가 제 값을 하던 경기였다. 내  생애 이렇게 극적인 승리가 있었을까 감격해 했던 날이었다. 언제 봐도 가슴 벅찬 승리의 순간. 홍성흔의 헬멧쇼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두산베어스의 507대첩에 이은 또 하나의 505쾌첩이라 할 만 하다.


회사에서 담당 회식을 어떻게 할지 우리 수석부서에서 정하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그동안 삼겹살에 소주 일색이었던 회식에 모두 지쳐 있었지만, 사실 회식이란게 그 자체로 달갑지 않아서 영 마뜩챦았다. 차라리 일찍 퇴근시키는게 재충전에 더 좋은데 말이다. 그래도 아이디어는 내야겠기에 영화보며 맥주 마시기를 제안했는데 그냥 그대로 통과되고 말았다. 안하는게 더 좋은데... ㅜ.ㅜ

어쨌든 '괴물' 개봉하는 날에 맞춰 회사동료들과 일찍 퇴근했다. 대부분은 화제작 '괴물'을 보지만 그래도 일부는 '한반도' 등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긴 영화까지 회사사람들이랑 같이 봐야 하느냐는 생각에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난 강우석감독은 별로였고 봉준호감독을 신뢰하고 있었으니 선택은 당연히 '괴물'이었다.

선택은 탁월~ 그 자체였다. '살인의 추억' 보다 짜임새는 덜 했지만, 메시지나 흡인력은 훨씬 나았다. 봉감독은 나를 배신한 법이 없다. 별을 주라고 하면 주저없이 ★★★★★ 쏜다.





배우들의 연기도 물샐틈없이 이어져 well-made 영화라 평을 받은 이유를 알만 했다. 특히나 변희봉씨의 연기는 묵은 장맛의 우수성을 재확인 시켜줬다. 소시민의 이미지, 못난 아들을 감싸는 아버지, 그리고 가족을 위해 모든걸 희생하는 가장의 모습을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가 연기하는 듯 매끄러웠다.


마지막 '괴물'에 공격당하기 직전 변희봉씨의 미소는 전율감마저 느끼게 해주는 명장면이었다.(살짝 눈물이 핑 돌았다) 변희봉씨는 '살인의 추억'에서 그리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었음에도 맛깔스러운 연기가 눈에 선했는데, '괴물'에서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연기력에 걸맞는 비중을 찾았다.


역시나 영화 끝나고 맥주집으로 옮긴 이후 회식 분위기는 좋았다. 다들 회사 얘기는 빼고 영화 얘기로 꽃을 피웠다. 영화는 이 맛에 혼자보면 제 값을 못뽑는 것 같다. 영화라는 텍스트보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각자의 해석을 듣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영화보든 동안 발견못했던 텍스트의 의미를 동료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땐 음.. 이사람 이런 면도 있었네~ 하는 신선한 발견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보고 맥주 한잔 걸치면 시간이 어느덧 택시잡아야 할 시간이 다가와 과음않고 귀가하게 되니 일석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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