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긴 읽어야 하는데 읽지 못한 고전, '단테의 신곡'을 숙제하듯 읽어냈다. 예상했던대로 '단테의 신곡'은 중세시대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분히 기독교를 위한, 기독교에 의한, 중세 기독교의 책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다면 자신을 위로하며 응원하는 장치가 숨어있다고 할까?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배치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단테의 신곡'은 몇 가지 측면에서 센세이셔널하다. 우선 작가가 직접 소설 속에 등장한다. 이런 형식이 '단테의 신곡' 이전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획기적인 구성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이 소설은 지옥과 연옥, 천국에 처한 사람의 실명이 언급되는 상당히 정치적인 책이다. 단테의 의도에 따라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파와 친척들은 미화되고 반대쪽 인물들은 악으로 규정된다. 단순한 소설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무서울 정도로 단순화되는 선과 악의 구분은 지금까지도 서방세계 가치관에 녹아있다.

 

 

동시에 이 책은 지배계층에 종교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농노에게는 귀족을 향한, 왕과 귀족에게는 교황과 성직자를 향한 존경과 순종을 강요한다. 이를 거부할 경우 무시무시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는 매우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다. 일종의 공포 마케팅인 셈이다. 현실세계의 불만을 사후세계의 안녕으로 잠재울 수 있다는 것, 나아가 현실세계의 충직한 복종을 이끌어낸다는 건 종교가 아니고선 불가능에 가깝다.

 

돌아 보면 묵직한 종교의 힘은 당대 황제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마교황인 그레고리우스 7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에게 파문을 내린 카노사의 굴욕도 중세라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 아무리 황제라 한들 사후에 지옥으로 떨어진다는데 어찌 눈밭에 서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의문을 해소하는데 상당한 부분을 할애한다. 예수 강림 이전의 사람들이 죽으면 천국에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심지어 아담이 왜 귀양살이를 하게 되는지 등에 대해 풀어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얼마 전 앙코르와트 벽면에서 봤던 지옥의 모습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혀를 뽑고, 유리가루에 짓이기는 등 불교와 힌두교에서 그린 지옥 역시 서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공포 마케팅을 쓰는 통치방식 역시 비슷했다. 동양과 서양은 그렇게 그렇게 근대에 이르렀으며 점점 종교의 그늘에서 벗어난 셈이다.

 

책을 덮으며 덧붙인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때 가장 극대화되는 공포심을 이겨내는 방법은 과연 있을지, 인간에게 사후세계는 과연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인지 궁금해진다.

 


 

백화점에서 충동구매하듯 이 책을 집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들 중에 왜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하얀 표지에 제법 두거운 하드커버, 그리고 제목에 이끌렸을 뿐이다. (내가 본 책은 왼쪽 이미지와는 다른 하얀색이었다.) 

 

목차를 보니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약 2000년 간 아내라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술한 책이었다. 다분히 서양의 관점이다. 동양 관점도 있을까 둘러봤지만, 딱히 보이지 않아 읽기로 했다. 꽤 두꺼웠지만, 첫 페이지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 덮을 수 있었다. 그다지 어렵지도 그다지 고민할 필요도 없는 그냥 역사적인 서술에 가까웠다.

 

이 책에서 고대라 함은 성경에 나오는 시대를 뜻한다. 당시엔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던 만큼 아내의 지위는 철저히 종속적이다. 결혼보다 하위 개념이며 가정이 평화로우면 아내의 역할은 충실히 했다고 평가받는 시대다. 하지만 결혼관에는 서로 다른 두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결혼이 종족번식과 관계있다고 믿는 유대교와 종교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기독교. 전자를 따르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아내가 행복의 대상이었기에 아내의 노출과 화려한 의상이 용인되었으나, 후자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장신구들이 비난의 대상이었단다. 그럼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시각엔 두 종교에 차이가 없었다. 

 

그리스, 로마문명을 거치면서 여자의 소유물이라는 개념은 좀더 구체화된다. 결혼식이란 신랑과 신부 아버지 간의 계약이며 이를 증거하기 위해 예물을 주고 받는 것으로 발전한다. 식장에서 신부는 아버지에게서 신랑으로 인도되는 의식을 치르는 것도 그런 때문이며, 현재도 유효하다. 종교의 권위가 맹위를 떨치던 중세시대엔 섹스가 타락의 지름길로 치부되었다 정확히는 남성의 섹스 환타지는 암묵적으로 권장하되 여성의 그것은 철저하게 은폐시켜야 했다. 중세 신학이 육체는 죄악의 근본이며 결혼은 필요악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던 까닭이다. 역사 해석에서 종교적인 관점을 제외한 18세기 계몽사상가들 역시 여성의 종속성을 의심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성의 인식은 점점 성장하여 프랑스 혁명과 미국 공화정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아내의 사회적 지위가 점차 확대되는 원동력에 대해선 별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역사적 팩트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알고 싶은 내용은 빠져있다. 이후에 벌어지는 서부개척시대, 근대, 현대의 여성은 예상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책 읽는 흥미는 급감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서양 역사 속에서의 여성 인권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미시적인 정보가 실려있으며, 페미니즘의 입문서로도 충분히 권할 만 하다.

 


사람의 홍채는 지문과도 같아 누구와도 겹칠 수 없다.

그러나 홍채가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는 통계의 오류일까? 

아니면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 때문일까?


영화 'I Origins'는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첫번째 주인공인 이안은 논리적이고 지적인 홍채 전문 과학자다. 이안은 진화과정에서 홍채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어떤 요소들을 이용해 눈이 없는 생물에 시각을 부여하여 창조론의 존립기반을 깨뜨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실제 실험으로 이를 증명해낸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인 소피. 소피는 정형화되지 않은 도발적인 매력을 지녔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라 라틴계의 느낌을 지닌 그녀는 순탄하지 않은 가족사를 겪었다. 이안과의 만남을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연으로 여길만큼 과학적인 사고방식과도 거리가 멀다. 아니 과학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믿는다. 


살고 있는 도시 빼곤 공통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현상에 이끌려 만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비극적인 엘리베이터 사고로 소피가 죽게 되면서 끝을 맺는다. 아마도 이안에게 소피는 한바탕 퍼부은 소나기 뒤에 떠오른 무지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할로윈 파티에서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 소피의 눈과 비슷한 광고사진, 연속되는 특정한 숫자 11, 그리고 11을 따라가다 지하철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확률적인 통계론 설명이 무의미하다. 규명할 수 있는 데이터만을 중시하는 이안에게 벌어진 기이한 사랑이라니 더욱 아이러니하다. 하긴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게 사랑일 테지만..



이안의 삶속에서 사라진 소피는 7년 후 홀연듯 다시 나타나게 된다. 후배 연구원 카렌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안의 아기가 자폐증으로 의심된다는 병원의 연락이 오고 부터다. 병원에서 실시한 자폐증 검사방식에 의문을 품었던 이안과 카렌은 과학자답게 검사의 진의를 알아낸다. 그건 자폐증 검사가 아닌 홍채가 같은 두 사람의 연관성을 실험했던 것. 아기가 태어나기 바로 전 아기와 같은 홍채를 가졌던 사람이 사망했던 점에 주목해 병원은 아기에게 그 죽은 사람에 관한 사진을 보여주고 반응을 살폈던 것이다. 아기는 놀랍게도 죽은 사람과 관련한 사진에 웃고 우는 반응을 보였다. 이 때부터 이안과 카렌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가설, 즉 윤회설에 눈을 뜨게 된다. 물론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에서 말이다. 


이제부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원치 않으면 이전 페이지로 이동하시길 권한다.


그러던 중 소피와 같은 홍채를 지닌 사람이 인도에 실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안은 고민 끝에 찾아 나선다. 아마도 두가지의 호기심이 이안을 인도로 이끌었을 것이다. 윤회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픈 이성적 호기심과 옛 사랑을 직접 확인하고픈 감성적 호기심.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찾은 대상자가 유의미한 실험 결과로 나오지 않자 크게 실망한다. 그런 그에게 펼쳐진 반전은 바로 대상자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여준 반응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대상자는 극심한 공포감에 이안에게 안겼던 것이다. 그리고 대상자의 눈을 바라본 이안은 꼬마에게서 소피의 눈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우는 대상자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는 이안이 대상자와 문을 열고 나서는 것으로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대상자는 소피와 같은 홍채를 지닌 7살 여자 아이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왠지 소피와 묘하게 일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영화는 굳이 윤회설을 얘기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안이 연구했던 눈 속에서 진화론의 증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도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되 계몽적이지 않은 영화는 늘 박수의 대상이다. 게다가 짙은 여운의 결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준다면 기립박수도 아깝지 않다. 'I Origins'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다.



상대가 lg인 이상, 플레이오프는 경기가 아닌 전쟁이다. 

lg에게 지는 플레이오프는 야구팬의 기억이 존재하는 한 계속 회자되면서 놀림감이 되고 트라우마로 남기 때문이다,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안경현의 동점홈런이 지금까지도 자랑스러운 대첩으로 남는 것처럼..


그래서 이번 플레이오프에 쏟아지는 팬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lg팬들은 11년 만에 치르는 가을야구라 티켓파워에서 상당한 힘을 보여줬다. 10년 넘게 눌려온 설움을 한번에 터뜨릴 수 있는, 게다가 다시 언제 올지 모를 기회인데 그냥 집에서 볼 순 없었을게다. 구름같이 몰려드는 lg팬들,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1차전 잠실야구장은 lg팬들이 60% 정도 차지 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어렵게 티켓을 구해서 직관했는데, 외야쪽 두산 관중석에 태반이 유광점퍼였다. 그 한풀이에 다소 초반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선수들과 팬은 혼연일체로 승리를 따냈다. 



1차전 승리는 의미가 있다. 넥센과의 피말리는 접전 끝에 올라와 체력이 소진한 두산이 lg를 이길거라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정확히는 박동희 빼고는 없었다. 그런 일방적인 전망과 열악한 살풀이 분위기 속에서 엮어낸 첫승은 남달랐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의 초보생인 lg로서는 첫 패배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 압박감은 실제 시리즈 내내 lg를 에러로 괴롭혔다. 2차전은 리즈의 인생투구로 완패했다. 160km의 강속구와 140km의 슬라이더가 제구력을 갖추니 더 이상 어떻게 손 쓸 수가 없었다. 깨끗하게 손들었다. 그래, 리즈 너가 짱먹어라. 


그리고 맞은 두산 홈게임인 3, 4차전. 3차전에서 다소 피곤한 니퍼트를 올려 승부수를 던졌던 김진욱 감독의 작전이 맞아 떨어졌다. 힘 떨어진 구위를 노련한 운영으로 만회하며 3실점으로 막아줬다. 특히 9회초 4연타석 안타를 맞으면서도 홈에서 2명을 잡아낸 임재철과 민병헌의 보살은 역대급 충격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막아 5-4 승리. 두산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강팀이란걸 lg에게 분명히 보여줬다. 마지막 4차전에선 lg팬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멘붕으로 몰아넣었다. lg의 상징인 마무리 봉중근에게서 8회말에 홈런 1개, 3루타 2개, 안타 1개 등으로 단숨에 3점을 뽑아낸 것. 아마 lg팬들 뇌리에는 치욕이라는 단어가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이로써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온갖 불리한 조건을 딛고 업셋을 성공시켜 '미라클 두산'의 위용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lg팬에게는 트라우마이겠지만, 두산팬으로선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명승부도 남겼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상대는 삼성. 굳이 설명안해도 현존 최고 전력의 삼성이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당연히 삼성이 우승이라고 하겠지만, 이미 미라클 두산의 힘으로 업셋을 이뤄온 만큼 충분히 해볼 만 하다. 또 하늘의 기운이 두산을 감싸고 있지 않은가? 이왕 여기까지 온거 끝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올해 우승을 해야 만년 준우승팀이란 오명도 씻을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죽기 살기고, 최!강!두!산! 화이팅~~!!!

 


벙커 탈출은 잘 하는 대신 퍼팅은 잘 못하는게 두산야구다. 감동을 주는 승부는 많지만, 정작 그 만큼의 우승은 이루지 못한 팀. 그래서 더더욱 우승에 대한 갈증이 심하지 않을까? 물론 다른 팀들도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크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올해는 퍼팅까지 잘해서 꼭 그린자켓을 입었으면 한다. 


올 포스트시즌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이다. 상대는 넥센. 껄끄럽다. 페넌트 레이스 막판까지 2위 싸움을 벌이다 4위로 추락했기에 그닥 유쾌하진 않았다. 게다가 2위는 lg인 탓에 자존심까지 상했더랬다. 어쨌든 이번 준플은 마뜩찮은 시리즈다. 그래서 그런지 1, 2차전 모두 아쉽게 내줬다. 박병호라는 괴물에 된통 당했다. 그가 날린 홈런은 니퍼트를 무너뜨렸고 목동에서 1승도 건지지 못했다. 목동에서 약했던 징크스가 현실화 됐다. 이렇게 되면 5차전까지 간다 한들 lg를 이길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는 상황. 우울했다.


그리고 맞은 3, 4차전. 넥센에 박병호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최재훈이 있었다. 부진했던 양의지를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쓴 최재훈은 믿기 어려운 활약을 투타에서 보여줬다. 포수의 제 1덕목인 투수 리드는 전성기의 박경완을 연상시켰고, 그가 날린 홈런 하나는 시리즈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단기전에서는 누군가 미쳐줘야 한다고 하는데, 그 주인공이 최재훈일 줄은 아마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이제 행복했던 잠실과는 이별하고 목동에서 마지막 결판을 남겨놨다. 사실상 4차전 승리로 분위기는 이미 우리가 가져왔다. 리버스 스윕을 예상하긴 했다. 남은 변수는 목동구장의 작은 사이즈일 뿐.



마지막 5차전. 선발은 유희관. 유희관을 나는 구세주라고 부르고, 130km 대의 아리랑볼을 나는 불꽃직구라 부른다. 유희관은 올 시즌 내내 초인적인 성적을 보여줬다. 그 성적을 혹자는 우연으로 격하시키기도 하지만, 유희관은 이를 실력으로 완전히 불식시켰다. 7이닝 1안타 9삼진 무실점. 완벽했다. 덩달아 이원석도 3점 홈런을 날려 9회말 투아웃까지 앞섰다. 그러나.. 그러나 넥센에는 박병호가 있었다. 박병호는 니퍼트의 승부에서 기어코 3점 홈런을 날려버렸다. 혹시나 했던 동점이 눈앞에 펼쳐졌을 땐 허탈했다. 너무 진이 빠져 이대로 끝내기로 진다해도 아쉬울게 없었다. 오히려 이 괴로운 승부를 빨리 누군가 끝내주길 바랐다. 그리고 야구를 당분간 끊고 싶었다. 아마 두산 응원하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기나긴 승부 끝에 13회초 최준석과 오재원의 홈런으로 두산은 넥센을 물리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누구도 하지 못한 리버스 스윕을 두산은 두번이나 해낸 것이다. 자랑스럽긴 했지만 심장병 걸릴지도 모를 경험을 했다. 누가 그랬다. 두산야구는 건강에 해롭다고.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빠져드는건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플레이오프가 오늘부터 시작한다. 준플에 이겼을 때는 플레이오프는 덤이라 생각하자고 했는데, 막상 플레이오프 게임데이가 되니 막상 마음을 그렇지가 않다. 상대가 lg라 그런지 더더욱 전투력이 상승한다. 닥치고 V4!


꼬마곰이 좋아하는 영화 보러 갔다. 제목은 몬스터 대학교. 몬스터 시리즈 중 세번짼가 네번째다. 사실 꼬마곰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주인공 설리반 보다는 어린 꼬마 여자아이 '부'다. 그냥 말도 제대로 못하는 여자 아기인데, 꼬마곰에게는 가장 귀여운 모양이다. 몬스터 대학교에는 '부'가 출연하지 않지만, 어쨌든 영화는 재밌게 봤다. 



이 영화는 왜 마이크와 설리반이 몬스터 주식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과거로 돌아간 스토린데 스타워즈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설리반 보다는 마이크. 마이크의 빛나는 과거와 왜 설리반과 친해지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보다 보니 역시 픽사 영화 답게 어른이 봐도 괜찮지 싶다. 특히 꿈을 잃지 않으면 언제든 이룰 수 있다는 다소 진부한 스토리도 설득력 있게 다가 온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스타인 설리반이 사실 처음엔 우편실 근무자였다는 설정도 요즘 같은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시사점을 준다. 



그리고 픽사의 보너스 애니메이션 The Blue Umbrella. 우중충한 도심 속에서 벌어지는 우산들의 러브스토리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잔잔한 감동이 있는 이 동영상은 오늘같이 비오는 날에 제격이다.  



지난 한가위 연휴 때 장동산림욕장에 잠깐 들렀다. 대전에서 갈 만한 곳 중 하나가 장동산림욕장인데, 숲과 개울이 있어 찾을 때마다 마음이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길게 나있는 황톳길은 맨발로 걷기에 아주 그만이다. 발바닥으로 뭉개면 발가락 사이로 간지르는 듯 삐져 나오는 황토 진흙은 발건강에도 좋아서 장동산림욕장을 찾고 싶어하는 주된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연휴 때 찾은 산림욕장은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장동산림욕장이 좋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대전에 쉴 만한 곳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 겨우 주차하고 오른 산림욕장은 몇년 전 왔을 때나 별 달라진 것이 없다. 길게 뻗은 길 한쪽엔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고, 그 양 옆으로 시원한 숲과 드문드문 쉴 공간과 개울이 흐른다. 적당히 황톳길 밟다 발을 씻기에 적당하다. 


꼬마곰과 맨발로 황톳길을 걸었다. 기억이나 할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왔을 땐 꼬마곰을 업고 다녔다. 그래도 제법 많이 컸다. 처음엔 생경한 느낌이 재밌는지 꼬마곰이 여기저기 밟아댄다. 그러나 금방 싫증이 났는지 돌연 그만 하잔다. 이런... 왠만하면 끝까지 황톳길 밟으며 오르려 했는데... 싫다는 꼬마곰을 끌고 올라갈 순 없다. 어쩔 수 없이 꼬마곰과 옆 세면대로 가서 발을 닦았다. 다음에 올 땐 꼬마곰과 끝까지 한번 오르고 싶다. 그땐 꼬마곰이 좀더 성장했을게다. 몸도 마음도.



미국에게 911사태가 트라우마라면, 두산에겐 508참사가 악몽이다.

숙적 sk에게 당한 508참사는 9점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당한 경기를 말한다

당시엔 정말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을 뿐.

 

그 악몽같은 참사를 912대첩으로 되갚아줬다. 이른바 리벤지에 성공한 것. 그것도 김광현의 호투와 박근영심판의 역대급 오심을 딛고 이뤄낸 쾌거다. 사실 이 경기를 내줬다면 선두권 싸움 보다 3, 4위권 싸움에 내몰릴 뻔 했다. 덕분에 lg에 2.5게임, 삼성과는 1게임 뒤진 3위를 유지했다. 4위 넥센과는 1.5게임차.

 

[이미지 출처 : 두산베어스 트위터]

 

912대첩의 히어로는 단연 김동한이었다. sk 마무리 박희수를 상대로 날린 역전 3점홈런은 두산팬 뿐만 아니라 야구팬 모두에게 그의 존재감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간 2군에서 숨은 보석이라 얘기하는걸 몇번 듣긴 했었다. 1군에서 봤을 때도 타격자세가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두산 내야진이 어디 김동한 한명 뿐이랴. 그러나 김동한은 이 한방으로 두산 야수진의 'One of them'에서 'Remarkable one'으로 등극했다. 최재훈도 빼놓을 수 없다. 추격을 알리는 3점홈런의 주인공이다. 레이저 송구에 비해 빈약한 타격으로 양의지의 백업에 불과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큰 일을 하나 해냈다.

 

또 한명 주목하고 싶은 선수는 바로 윤명준이다. 지금 마무리인 정재훈의 Plan B는 윤명준이 맡아줘야 한다. 직구 외에 결정구가 없는 홍상삼에 비해 구위는 조금 떨어져도 폭포수 같은 슬라이더를 갖췄기에 타자들이 더 어려워 한다. 게다가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까지 보유해 마무리로 손색 없다. 윤명준은 곧 복귀할 이용찬의 컨디션에 따라 보직이 결정될 듯 하다.  

 

 

최재훈 인터뷰 장면

김동한 인터뷰 장면

박근영 심판의 오심장면

최재훈-김동한 무서운 백업.. 두산이 강팀인 이유

 

이제 912대첩을 발판 삼아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향해 질주할 때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삼성을 넘어 lg까지 단 2.5게임이다.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꿈 같은 'Again 1995'가 이루어지는 것.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만루 찬스에서 어이없이 병살타를 칠 때, 

불 끄라고 올려보낸 투수가 계속 포볼을 내줄 때, 

에러로 내준 점수로 두산이 질 때 듣는 음악이다. 



Walk, Foo Fighters


A million miles away.

Your signal in the distance.

To whom it may concern.

I think I lost my way.

Getting good at starting over.

Everytime that i return.


Learning to walk again.

I believe I've waited long enough.

Where do I begin?

Learning to talk again.

Can't you see I've waited long enough?

Where do I begin?


Do you remember the days.

We built these paper mountains.

Then sat and watched them burn.

I think I found my place.

Can't you feel it growing stronger.

Little conquerors.


Learning to walk again.

I believe i've waited long enough.

Where do I begin?

Learning to talk again.

I believe I've waited long enough.

Where do I begin?


Now!

For the very first time.

Don't you pay no mind.

Set me free, again.

To keep alive, a moment at a time.

That's still insde, a whisper to a riot.

The sacrifice, the knowing to survive.

The first decline, another state of mind.

I'm on my knees, i'm praying for a sign.

Forever, whenever, i never wanna die.

I never wanna die.

I never wanna die.

I'm on my knees, I never wanna die.

I'm dancing on my grave.

I'm running through the fire.

Forever, whenever.

I never wanna die.

I never wanna leave.

I'll never say goodbye.

Forever, Whenever.

Forever, Whenever.


Learning to walk again.

I believe I've waited long enough.

Where do I begin?

Learning to talk again.

Can't you see I've waited long enough?

Where do I begin?


Learning to walk again.

I believe i've waited long enough.


Learning to talk again.

Can't you see I've waited long enough?




매년 중앙공원에서 열리는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 작년엔 와이프 친척들과 함께 봤었는데 중간에 소나기가 내려 고생했더랬다. 올핸 다행히 맑은 날씨여서 그런대로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동네에서 열리는 야외 음악회치곤 꽤나 알려진 행사라 관객들은 늘 많다. 아무래도 장한나라는 네임 브랜드 탓이리라. 주변에 주차하기도 어려울 정도. 



매년 열리는 이 행사는 매번 오디션으로 젊은 연주자들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방식이라 나름 의미가 있단다. 올해 연주곡은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와 레스피키의 '로마의 축제'.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곡이지만, 제목만으론 무슨 곡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클라이막스 가니 아 이곡이구나 싶더라. 어쨌든 아기곰과 와이프와 돗자리와 간식거리 들고 잔디밭에 앉았다. 굳이 앞에 앉을 필요도 없다. 뒤쪽이라 해도 들릴 것 다 들리고 보일 것 다 보인다. 그런데 아무래도 야외 음악회이기에 콘서트홀보다는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연주 중간에 발 옆으로 뭔가 쥐 같은게 기어다니길래 자세히 봤더니 애완용 고슴도치. 다행히 뛰어다니진 않고 동작이 굼떠 사람들이 크게 놀라진 않았는데, 옆에 앉았던 부부 두명은 결국 돗자리 들고 뜨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주인이 고슴도치 없어진걸 알곤 찾아서 가방 속에 넣었다. 짧은 해프닝. 애완동물 간수 제발 잘 하시길..


사실 음악의 한 장르에 불과한 서양 고전음악에 너무 무거운 의미를 붙이지 않았음 싶다. 어느 시점엔 박수 치면 안되고, 어디선 박수 쳐야 한다는 식의 현식논리가 음악을 진정 즐기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런 야외에서 편한 자세로 듣는 음악회가 난 좋다. 한가지 아쉬운건 서양 고전음악 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음악도 이런 무대가 많아졌음 한다는 것. 정작 실내악에 어울리는건 서양 고전음악이고, 야외 음악은 우리 전통음악이 진수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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