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주는 먹먹한 감동을 수치화 한다면, 이 영화는 필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을 것이다. 

영화가 우리의 현실을 이미 반영했기 때문이고, 영화가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기에 먹먹함을 넘어 공포까지 느끼게 된다면 너무 지나친 빈약일까?



영화는 구조적 측면에서 관료주의를, 본질적 측면에서 인간의 자존심을 이야기 한다. 심장병으로 부득이 실업수당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성실한 목수에게 관료 조직은 절망 만을 안겨준다. 신청 절차를 인터넷으로만 받는 공무원에게 시민의 편의는 안중에 없다. 오히려 복잡한 절차를 통해 신청 포기를 유도하는 저의가 숨어 있다. 그런 의도된 불친절에 대항(?)하는 주인공 다니엘(데이브 존스 역)에게 투쟁심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처음에 다니엘은 그런 제도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인터넷 신청을 시도하고, 컴퓨터를 배우고, 이력서 작성하는 강의를 듣고, 그 이력서를 들고 성실하게 동네를 돌았다. 그 성실함에 일자리를 찾기도 했지만, 심장병으로 일 할 수는 없었다. 제도가 개인에게 거짓말쟁이를 강요하는 게 영화 속 현실이다. 



그런 다니엘이 제도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아니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시작했다. 보여주기 위한 증거 수집을 거부하고 수당을 받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것이다. 대신 그는 낙서를 통해 자신의 뜻을 밝히고 항소를 택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을 아직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보며 비텼다. 


그러나 다니엘에게 허락된 현실은 거기까지였다. 항소 승리를 눈앞에 둔 시점에 그는 심부전으로 죽음을 맞고 만다. 그토록 기다리던 승리가 눈 앞에 있었는데...



영화는 가공의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이루고, 듣고 싶던 말을 영화 속 대사로 위안을 얻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실을 더 현실감 있게 묘사한 덕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극장 조명이 환하게 켜져도 먹먹함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더 마음이 아픈 건 영국보다 더 한 대한민국의 빈약한 사회보장 현실 때문이다. 영국은 저소득층에게 식료품을 살 수 있게 해주고, 주거비도 지원해준다. 비록 인간의 자존심을 담보로 주는 지원이지만 대한민국에선 들어본 적이 없다. 영하의 추운 날씨만큼 영화의 뒷 맛이 씁쓸하다. 


개인적으로 별 4개 반 주고 싶다. 




LA LA LAND


주변 칭찬이 자자해서 서슴 없이 골랐다. 뭔가 기대엔 못 미쳤지만 그래도 잘 만든 영화라는 데 동의한다.


영화는 배우를 지망하는 여자 주인공 미아(엠마 스톤 역)와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자 주인공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역)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히 만나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키워간다는 설정은 여느 영화와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영화와 격을 달리 하는 건 기저에 재즈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재즈를 설명하는 장면을 보자. 연주 중간중간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Jam 형식은 뮤지션 간의 대화와 흡사하다고 세바스찬은 말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타협하고 경쟁하는 것이 재즈만의 매력인 셈이다. 사랑도 인생도 그러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타인의 그것과 조화를 이룰 줄 알아야 하며, 불협화음이더라도 서로 부딪혀 가며 낭만을 꽃 피워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이별이라 할지라도. 



<라라랜드>는 꿈을 좇고 서로의 꿈이 되어주는 이야기다. 세바스찬의 가난한 뮤지션의 꿈을 미아는 응원해주고, 미아의 무모한 도전을 세바스찬은 아낌 없이 지원해준다. 사랑을 버리고 그 꿈을 이룬 순간, 사랑은 다시 두 사람의 꿈이 되었지만 말이다. 



영화 마지막은 세바스찬의 환상을 보여준다.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현재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본다. 이 장면은 넣을 필요 없는 영화적 장치였을까? 그렇지 않다. 꿈은 현실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일장춘몽 역시 가치있는 꿈이다. 인생 자체가 꿈의 연속이고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서를 혐오하는 나로선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달가울리 없다. 또 그렇고 그런 형태의 자기 계발서이겠거니 싶었다. 그런 시선들을 의식했는지 이 책은 감수의 글 첫 줄에 어설프게 위로하고 뻔한 인생과 꿈을 이야기하는 미국식 혹은 일본식 자기 계발서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개인 심리학이라고 사전예고를 했다. 최소한 김찬호의 <모멸감>처럼 처럼 감정 사회학이라는 단어로 현혹하진 않았다. 


우선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에 대해 이해를 해야 한다. 책 표지에 담긴 소개는 아래와 같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로 미래 지향적이고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개인 심리학'을 창시했다. 현대 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친 알프레드 아들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egmund Freud)나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오늘날 거의 상식처럼 되어버린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사람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을 내놓았다. 아들러에 의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생에 놓인 문제를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자유도 행복도 모두 용기의 문제이지 환경이나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부른다.


이 책에서 아들러는 우선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개념을 깨버린다.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현재 혹은 미래의 삶이 결정되는 것을 무늬만 인과관계라 폄하한다. 돌발적으로 발생한 과거 사건이 현재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있지만, 그 영향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그 연계성을 도피처 삼아 현재 삶의 위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가령 어렸을 적 부모에게 학대받은 경험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에 나가기 싫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거 경험을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불행 자랑이라는 개념도 도입된다. 자신의 과거가 불행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불행한 경험을 가진 자신을 주위에서 특별하다고 여기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 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화도 설명되어진다.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분노라는 감정을 끄집어 냈다는 것이다.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목적론은 사람들이 목적만 제대로 설정하면 쉽게 인생은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하지만, 이런 목적을 좇는 삶은 끊임 없이 고쳐나가야 하는 고된 작업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는 결심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실천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불리는 듯 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인생을 심플하게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욕구를 거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관점과 일치한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 과제의 분리를 주장한다. 과제의 분리란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가려 그 과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부 안하는 아이에게 공부를 주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듣기에 따라선 극단적이긴 하다. 아들러는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으로 방임주의와는 구분한다. 결국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아들러의 주장대로 인정욕구에서 벗어나, 과제의 분리를 실행하면 인간관계는 원만해질 수 있다. 그리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나 행복이 아닐까? 그래서 아들러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평가에서 자유로운 삶,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기대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런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행복해지는 첫걸음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공동체와의 조화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개인도 공동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개인 심리학에서 본 타자공헌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이므로, 결국 자신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의문은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이 구현될 경우 개인은 행복해질 수 있으나 사회적 문제로 인한 불행, 혹은 재화의 유한성으로 인한 충돌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는 개인 심리학의 영역을 벗어난다. 적어도 아들러는  심리학, 그 중 개인 심리학에서 펼 수 있는 주장은 모두 편 느낌이다. 책은 선생과 학생의 대화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술술 읽힌다. 특별히 어렵지도 않다.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뱀발.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의 몇 구절 중 사랑에 대한 언급은 특히 공감이 간다. 상대를 지배하려는 생각이나 불신으로 대하면 어느 것 하나도 사랑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수직적 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들러이기에 사랑에서도 구속은 그러할 것이다. 아들러다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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