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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산베어스 플레이어스 데이 주인공은 박철순입니다. 박철순형님은 제 영웅이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불사조의 이미지로 남아있고, 이 나이에도 박철순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레네요. 그래서 오늘만큼은 꼭~~~~ 잠실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일이 겹쳐 가지는 못했습니다. ㅜ.ㅠ 하지만 집에 있는 내내 마음은 잠실로 달리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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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사진들을 검색해 봤습니다. 박철순 은퇴식 장면이네요. 이날이 1997년 4월 29일이었는데요.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불사조가 은퇴한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학교 수업 듣는둥 마는둥 헐레벌떡 갔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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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LG랑 경기했었는데 졌을겁니다. 6:2인가 뭐 그렇게 졌던것 같은데 마지막에 등판하기를 학수고대했지만 불사조는 등판하지 않았죠.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박철순선수가 등판하려면 1명이 2군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해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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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나오셨네요. 뭘 입으셔도 잘 어울리지만 두산유니폼도 간지 납니다. 최근에 대장안 수술받으셨다는데 건강은 많이 회복되신것 같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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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구의 배터리는 김경문 감독입니다. 원년 우승 당시의 배터리였는데 한명은 감독으로 한명은 야인으로 만나게 되는군요. 역시 인생사 아무도 모릅니다. 철순형님 인터뷰에서 같이 그라운드에 있어도 좋을꺼 같은데 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라운드에 미련은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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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 야인으로 계신 지금의 모습이 더욱 좋습니다만, 혹 복귀하신다면 지도자 보다는 구단경영에 참여하시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박철순 감독도 좋지만 박철순선수라는 전설을 잃기는 싫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박철순형님의 동영상 올려봅니다. 언제 봐도 감동적인, 그리고 추억에 젖게 하는 'My Way' 이지 않나요? ^_^





늘 그래왔지만 역시 엘쥐는 보약입니다. 스스로도 인정하듯 두산에겐 엘쥐 한의원이네요.
좀 재미없긴 했지만 그래도 하이라이트로 나마 남깁니다. 학교 갔다 오느라 사실 보질 못했거든요.

15:1... 이만하면 떡실신이라 할만 하죠?^^




두산베어스 홈페이지에 갔다가 608대첩 동영상을 퍼왔습니다. 보고 또 봐도 신나네요. 6:3으로 뒤진 9회 마지막 공격에서 당시 최고 마무리중 한명인 이상훈을 상대로 무려 8점을 뽑아 결국 11:8로 역전시킨 이 경기.... 아놔~ 이 곰들의 무한한 각목질 실력이란 ㅋㅋ



그러고 보면 미러클 두산에게는 명경기도 참 많은것 같습니다. 507대첩에, 608대첩, 505대첩 등을 비롯해 많은 대첩들이 두산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지요. 그래서 두산 팬들은 행복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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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환이 SK로 트레이드 된 이후 첫 대결이네요. 리오스와 맞붙어서 삼진 아웃됐습니다. 참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되는군요. 좋아해야 할런지, 슬퍼해야 할런지, 흑...

나주환 선수는 3루수로서는 김동주, 윤석민에 가리고, 유격수로서는 손시헌, 안상준에 밀리고, 2루수로서는 고영민에 딸리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래도 올해 손시헌의 군입대로 유격수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봤는데, SK 이대수 선수와 유니폼을 맞바꾸어 입었네요.

유틸리티맨으로서 팀 캐미스트리의 일원으로서 참 기대가 큰 선수였는데 야구가 뭔지 참 서글퍼집니다. 특히나 나주환 선수는 활짝 웃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죠. 언젠가는 포수로도 출전해서 도루도 저지하는 깜짝쇼를 펼쳐 두산팬들을 흐믓하게 했는데 말이죠.

그런 그가 이제 주유소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섰습니다. TV 중계가 없는게 차라리 다행입니다. 이런 허무한 장면은 차라리 문자중계로 보는게 잘된거 같아요. 어쨌든 주유소에 가서도 야구 잘하고 대성하기 바랍니다. 새로 온 식구 이대수 선수도 화이팅이구요.

우울한 밤입니다.


겨우내 기다렸던 프로야구가 드디어 개막했습니다. 올해 두산야구는 김동주의 컴백과 박명환의 FA 이적으로 성적을 가늠하기 어려웠죠. 특히 이혜천의 전력이탈은 무척 아쉽네요. 그래도 언제나 미라클 두산을 이뤄왔던 팀 전통으로 봐서 4위권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성적은 최하위네요. 우울합니다. 정말 거짓말 좀 보태서 살맛 안납니다. 뭐 우리 엄니 얘기로는 두산에서 십원 한장 보태주지도 않는데 뭘 그리 열성이냐 그러시는데, 뭐 맞는 말입니다. 두산구단으로부터 물질적으로는 받은거 없습니다. 일방적인 짝사랑인 셈이죠.

근데 그게 그렇더라구요. 소시적부터 베어스는 나의 팀이다 생각해왔고, 지금은 뼈속 깊이 두산베어스 인(人)인가 봅니다.

어제는 강의를 듣는 중에도 경기 상황이 너무 궁금하데요. 무척 재미있는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죠. 그래서 와이브로폰으로 중간중간 봤는데, 결과는 2:1로 졌습니다. 어찌나 허탈한지...

집에 와서도 힘이 없네요. 원래 강의듣고 오는 날은 완전 피곤인데 어제는 2배는 더 힘들더라구요. 오늘은 이겼으면 좋겠는데, 날씨도 꾸물꾸물하네요. 그래도 힘내야겠죠?

두산베어스 화이팅~~


요샌 정말 인터넷으로 야구 하이라이트 동영상 보면서 야구의 그리움을 달랜다.

이 경기는 당시에 TV로 직접 봤었는데 긴장감 돌면서 나름 웃겼던 게임이었다. 4분 55초 정도 보면 정의윤이 3루 도루를 하면서 배로 그라운드를 쓸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나 웃음이 났던지... 지금 봐도 한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 하다. 기분이 우울할 땐 한번씩 보면 풀릴 것 같다.



[영상 출처 : 베어스 투데이]

아마 신인으로서 의욕이 넘쳐서 미리 슬라이딩을 했던가, 아니면 그라운드 분위기에 압도되어 본헤드 플레이를 했던가 둘 중의 하나일꺼다. 정의윤을 차세대 간판으로 여기는 LG팬으로서는 뼈아픈 장면이다.
 
그리고 진필중을 두드려서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한때 두산의 수호신이었는데...


 
2006년 5월 17일...
아마 내기억엔  천하무적 오승환이 거의 유일하게 박살났던 경기였다. 그래서 더욱 통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저나 요새처럼 프로야구가 없는 겨울엔 유난히 야구장의 푸른 잔디가 그립다. 올해는 몇번이나 잠실야구장을 갈 수 있으려나... 더도 덜도 말고 한달에 한번씩만이라도 가면 좋으련만...쩝~


내년 부터 박명환이 LG 유니폼을 입는단다.
헐~ 이걸 어떻게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을까?

명환이가 누군가?
15년 동안 두산의 토종 에이스였지, 영화 '아는 여자'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했던 명환이 아닌가. 그동안 정들었던 명환이가 일본으로 간다고 했을 땐 상심이 덜했는데, 국내 다른 구단, 그것도 엘쥐로 팔려 간다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두산팬으로써 이런 경험이 한두번도 아니다. 정수근에 심정수에 진필중에 셀 수도 없이 많다. 돈없는 구단팬이라는 이유로 참 많이도 상심했다. 하지만 두산베어스의 박명환을 좋아했기에 엘쥐 유니폼 입고 마운드에 서는 날, 우린 적이다. 또 그게 멋진 승부의 세계 아닐까 싶다.  

명환아! 열심히 최선을 다해 던져라. 그때 보자.
나도 열심히 두산 응원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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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준우승을 하고도 열화와 같은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신문광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바로 떠왔다.

당시 회사 끝나기도 전에 동료들이랑 수원구장으로 가서 미친 듯이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코리안시리즈 0-3으로 지고 있다가 3-3까지 타라 붙고 막판에 3-4로 진 정말 아쉬웠던 시리즈. 수원구장에서 6차전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짜릿하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정수근이 아쉬워하는 응원석에 올라와 "져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내년에 꼭 우승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정말 2001년 우승을 했더랬다. 이래저래 패해도 아름답던 2000년이었다.

그나저나 내년 4월 시즌개막 때까지 뭘하고 기다리나... 쩝


내가 야구란걸 알게 된건 초등학교 무렵이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 공터에는 방과 후마다 또래 애들이 모여 어설프게나마 야구란걸 하고 놀았다. 공은 테니스공에, 야구 방망이는 싸구려 알루미늄 배트에, 글러브는 가죽 아닌 비닐이었지만 갖출 것은 대충 갖추고 했었다.

그러다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이 어설픈 동네 야구놀이에 불을 당기게 해 주었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들의 폼을 흉내내며 난 박철순, 넌 김봉연, 뭐 그런 식으로 놀았다. 나야 당연히 박철순처럼 와인드업 이후 오른손을 살짝 엉덩이 근처에서 머물렀다가 공을 뿌려댔다. (참고로 나의 주무기는 '낙차 큰 직구'다)


위 사진은 우연히 박철순의 폼과 비슷하게 찍힌 내 경기 사진을 합친 이미지다. 편집이나 조작이 아니다. 근데 이렇게 보니 정말 비슷하게는 보인다. 하지만 연결동작으로 보면 별로 비슷하진 않다. 나도 나한테 맞는 폼을 개발했다고나 할까... ㅎㅎ 누군가의 폼을 흉내내는건 대개 심리적 만족감 내지는 우월감만을 느끼게 해줄 뿐, 공을 빠르게 한다든가 하는 경기력 향상에는 별 효과가 없다.

어찌 됐든, 박철순의 등장은 나로선 서태지의 '난 알아요' 만큼 쇼킹한 사건이었다. 멋진 몸매와 잘생긴 얼굴, 곱슬한 머리, 깨끗한 매너에, 섹시한 미소까지...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선수였다. 사실 박철순은 이미 마이너리그 경험을 통해 야구 수준이 국내 다른 선수들보다 한단계 위였다. 너클볼이라는 이상한 볼을 유일하게 실전에 써먹을 줄 아는 선수였고, 투구 이후 수비자세가 가장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이런 외적인 실력보다 더 나를 사로잡은건 바로 불굴의 의지다. 내가 기억하기로 박철순은 82년 우승 이후 거의 10년 넘게 부상과 재기를 거듭했다. 허리 수술도 몇차례 했었고 병원에서 등판불가 판정도 나왔었지만, 그는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기와의 싸움에 매진했다. 그 결과 95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우승을 맛보게 된다. 95년 박철순의 성적은 9승인가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때 최고령 관련 기록들을 다 갈아치우기도 했다. (이들중 대부분이 송진우에 의해 또 경신되었지만서두...)

두산팬이라면 1995년 권명철이 마지막 타자를 처리하고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그라운드에서 울부짓는 박철순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난 내무반에서 걸레질 하며 눈치껏 TV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때의 그 짜릿한 환희감이란... 난 속으로 남 모를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와~~~ X발... 우승이다... 우승!!!! ㅜ.ㅠ '

그런 박철순이 은퇴식을 거행했다. 나두 당연히 만사 제쳐두고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진한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LG전이었는데 경기는 6 : 2론가 졌다. 경기 내내 그의 등판을 기다렸건만 끝끝내 그는 등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박철순이 등판하려면 누군가 2군에 내려가야 하는데 한번 내려가면 2주인가 못올라 오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단다. 역시 박철순 다운 결정이었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은퇴식에 욕심을 내기 마련인데...

아래는 박철순 기념 동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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