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차별화(Differentiation)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하죠.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무엇, 이런게 경쟁을 유발하여 선의의 발전으로 이어지면 괜챦은 구도가 되는데요. 역으로 타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구도로 간다면 역사는 퇴행하게 됩니다. 비견한 예로 히틀러의 인종주의나 한국의 지역감정... 등이 있겠죠. 세상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미국에는 흑백갈등이 있습니다. 


이 책은 흑인으로 흑인차별이 횡행하던 1959년 분장(?)한 백인이 남부를 여행하면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분장이 단순한 데코레이션이 아닌 의학적 시술에 의한 피부탈색이구요. 이 모험을 감행한 사람은 존 하워드 그리핀입니다. 직업은 뭐 다양해서 하나만 집어 말하긴 어려운데요. 소설가겸 작가이자, 사진작가이고, 음악학자이기도 하다네요. 중요한건 그가 인종차별을 몸소 체험하고 그 부당성을 알렸다는 측면에서 인종철폐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던 센세이셔널한 체험담은 그닥 관심에 있지 않았습니다. 백인인 그가 흑인이 되어 겪었던 쇼킹한 일들은 황인인 나에게까지 쇼킹한건 아니니까요. 그냥 그렇겠거니 인지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오히려 더 심한 체험담도 책으로 봤었죠. 흑인소녀가 백인학교에 입학하면서 겪게 되는 비참한 체험이야기... 실화여서 더욱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전 이 책이 내리는 결론이 집중했는데요. 결론적으로 그리핀은 1959년 10월 28일 여행을 시작해서 12월 15일에 마쳤습니다. 여기서 여행을 마쳤다는건 다시 의학적으로 백인으로 돌아간걸 의미하겠죠? 그의 생생한 경험담은 당시 미국이 인종차별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자위하던 주류사회에 경종을 울렸구요. 진정한 역지사지 입장에서 구술한 책으로 평가받아 지금까지 고전으로 뽑힌다고 하네요.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더 주목받는게 아닌가 싶습니다요. 

이 책이 주는 결론? 그런거 없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보다는 현실적이지만, 타자로서의 자아가 경험한 사회와 자아로서의 자아가 경험한 현실은 분명 다르니까요. 다만 그동안 애써 눈감아 왔던, 모른체 해 왔던 현실에 경종을 울렸구요. 흑인과 백인은 피부색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준 것 뿐입니다. 썼기는 이렇게 썼지만 그렇게 자신을 일시적이나마 실험대상으로 써가며 진실알리기에 나선 용기와 지혜는 감탄스럽습니다. 백인이 구축해 놓은 사회구조에 적응하기 위해 수동적이면서 미련하고도 온순한 흑인상에 가깝게 스스로 행동하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왜곡된 흑인 이미지 고착화에 기여한다고 지적한 점이 인상적이네요.

돌아보면 우리도 예외는 아니죠. 특정 지역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도 그렇구요. 통일 이후 닥칠 남북 주민간의 차별화(Differentiation)도 걱정됩니다. 신해철인가 그랬다죠? 연변의 조선족 중 상당수가 독립투사의 후손인데 한국에 와서 천대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그렇죠. 사실 국내에서 친일파면서 떵떵거리는 후손들 아직도 있으니 뭐... 쩝...

하여간 선입견 없이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 어렵지만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잠실로 와서 좋은 유일한 점은 대형서점이 빌딩 안에 있다는 겁니다. 분당이 신체적으로 리프레시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다면, 여기는 대신 정신적인 여유를 즐길 곳이 많이(?) 있거든요. 사실 운동할 수 있는 인프라가 약하기 때문에 억지 춘향격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쿨럭... 어쨌든 그나마 이런 혜택이라도 있는게 어디야...? 하는 심정으로 책을 집어들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의 여유란게 기껏해야 30분 정도라서 어려운 책을 읽기는 힘들구요. 일단 가볍게 시작한다는 면에서 재밌는 소설부터 읽고 있습니다. 다독을 즐기는 모 블로거님 서평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감탄을 하곤 하는데요. 최근 책과 멀어졌던 자신을 반성하며 30분이라는 미미한 시간이나마 투자해볼까 합니다. 가뜩이나 머릿속에서 나가는건 많은데 들어오는게 없어서 가끔씩 답답하기는 했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서점안에 사람들이 더 많네요.

















어느 산악인이 그랬다죠.
저기에 산이 있기에 오른다고...


우모는 저기에 신세계가 있기에 도전해야 하는데... 할까 말까 살짝 고민하고 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냐 의미있는 도전이냐의 갈림길인데... 그보다 지금 이 도전을 할 때인가 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능...ㅡㅡ;;

흠냘~
음악은 좋죠?


간만에 한국무용 공연을 봤습니다. 그동안 한국사람이면서도 서양문화인 뮤지컬만 주로 봐왔던데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있었는데요. 언젠가 한번 봐야지 봐야지 했었는데, 이번 주말에 그 소원을 풀었습니다. 국립극장에서 하는 '코리아 환타지'라는 공연인데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한국 정서를 여러 장르의 춤으로 표현했더군요. 


이 작품은 어느 각도에서 보면 공연소개에서 나오듯, 전통춤과 신무용, 창작춤까지 아우르는 한국춤 미학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구요.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한국춤을 여러 시각에서 해석하다보니 좀 산만한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올림픽 개최지 선정지에서 벌어지는 한국 전통 소개 프로그램 느낌이랄까...

전통문화의 퓨전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봤다면 괜챦았을텐데, 우모가 기대했던 전통공연은 그냥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공연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그리 재밌던 공연은 아니었습니다. 도쿄에서 봤던 가부끼 공연처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전통이 한국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죠. 투덜대는 우모에게 와이프는 어느 나라의 전통이든지 원형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하나라는 이해할 듯 말 듯한 얘기로 전통의 구분이 큰 의미없다고 하더라만...

흠... 어쨌든 다음에는 퓨전이 아닌 가급적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공연을 볼까 합니다. 명창의 흥보가 완창이라든가,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승무같은...

국립극장에는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왔더군요. 외국인도 꽤 있었구요.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이 있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에 적쟎이 놀랐습니다. 특히 무용 전공하는 듯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진지한 눈빛은 인상적이었구요. 이런 관심들이 있는 한 전통문화의 저변은 계속 확대되리라 믿어봅니다.

덧글...
공연이 춤 중심이다 보니 음악은 거의 테입에 의존하더군요. 심지어 립싱크까지 있어서 당황스러웠다능... 하여간 앞으로는 완전 100% 라이브로 공연하는 작품도 보고 싶습니다.



올해 정기연주회의 메인곡이 신세계교향곡으로 정해졌다고 하네요. 대충 들어보니 난이도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단원들의 실력과 기대치가 동반상승되고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정기연주회에 대한 우모의 열정은 만만디로 변해버렸네요. 대신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늘었다고나 할까...


근데 동영상을 들어보니 어디선가 들었음직한 익숙한 멜로디는 거의 없네요. 클래식에 관한한 무식한 수준임을 또 한번 깨달았습니다. 신세계교향곡은 들어보긴 했는데 말이죠.

하여간 올해 정기연주회에 참석할지에 대한 질문이 곧 닥쳐올텐데요.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좀 해봐야겠습니다. 산에 오를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한번에 올라갈지 여러번에 나눠 올라갈지의 문제인지라...


주말에 대학로에서 연극 한편을 봤습니다. '우리사이'라는 작품인데요. 인간군상들의 다양한 관계를 주제로 삼은 연극이더라구요. 그 관계는 아는 사이, 그 때와 지금 사이, 모르는 사이, 모자지간, 남자와 여자사이, 부자지간, 여기와 거기사이 등 돌아보면 언젠가는 경험했음직한 상황들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어찌보면 스토리로 뽑아내기도 뭐한 그런 이야기조차 섬세한 터치로 잡아내더군요. 개인적으로 영화 감독이 되면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 연극이 그런 구조와 유사하더군요.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키네파노라마라는 용어를 쓰면서 설명하던데, 이런게 키네파노라마가 아닌가 싶네요. 참고로 프로그램에 적혀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키네파노라마(Kinepanorama)
키네파노라마는 대형화면방식으로서 다중 카메라와 분리 스크린을 이용해서 360도 원통형 스크린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연극 '우리사이'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8개의 장면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며 맺게되는 다양한 '사이'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연극은 몇가지 특징을 보여주네요.

우선 대개의 경우 연극은 기승전결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작품은 일상생활의 단면을 뚝 잘라 가감없이 보여주기에 클라이막스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밭에서 무뿌리를 뽑아 칼로 뚝뚝 8개로 잘라 먹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각각의 스토리가 연계구조를 갖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연극에 가공적인 사운드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음향효과는 물론 배경음악까지 모두 배우들이 연출을 하더라구요. 각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배우들이 오카리나, 기타, 트라이앵글, 아코디언 등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친근한 느낌을 더하네요. 마치 학예회같은 분위기이기도 하고, 언플러그드 공연같은 필도 나고... 하여간 립싱크 음악을 보다 라이브 음악을 볼 때의 신선함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네요. 대사로만 이어지는, 때론 대사없이 표정과 상황연출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배우들은 모두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줬습니다. 와이프 얘기로는 맥베스에서 열연했던 실력파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더라구요. 더불어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도 연극을 더욱 풍성하게 해줬습니다.

영화,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이 많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극을 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배우의 사람냄새를 가까이에서 맡을 수 있어 좋기도 하구요. 좁은 소극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삶의 에너지를 받기도 하거든요. 덕분에 봄내음 가득한 주말을 기분좋게 보냈습니다.

덧글...
연극을 같이 본 엄니는 그닥 재미있어하진 않더군요. 와이프와 저는 꽤 재밌게 봤는데... 역시 세대차이란 기호의 차이에서 가장 리얼하게 드러나는 것 같네요.



오늘 첼로 레슨은 선생님이 개인적인 일로 빠지고 다른 선생님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기존 선생님이 첫 선생님인지라 잘 가르치는지 어떤지 판단을 내릴 근거가 아예 없었는데요. 새로 오신 선생님을 보니 그간 잘배웠다는 느낌은 안드네요. 새로 오신 선생님이 훨씬 열정적이고 기초에 충실하시더라구요. 기존 선생님은 착하긴 한데 제대로 가르친다는 느낌은 그닥... 역시 교습법도 경험과 실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은 오늘 진도를 나가기 보다 폼을 교정해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너무 기뻤습니다. 그동안 소리에만 집중한 레슨을 받다 보니 기본이 허술했거든요. 역시나 우모의 첼로 기초는 볼품 없었습니다. 취미로 하는 수준으로는 잘하는 축이라고 말씀은 해주셨지만... 쩝... 

선생님의 원포인트 레슨을 종합해보면... 왼손도 앞에서 봤을 때 네모 모양이어야 하는데 많이 무너져 있었고, 엄지도 세워야 하는데 힘에만 의존하다보니 비스듬한 자세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른쪽 어깨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구요. 전반적으로 양 어깨가 올라간 어정쩡한 상태에서 연주를 해왔던 겁니다. 결국 왼손은 각기 손가락을 세운 상태로 피아노치듯, 헤머링하듯 위에서 직각으로 눌러야 되는거죠. 그럴려면 검지에서 약지까지의 손가락은 힘을 주되, 엄지와 어깨는 힘을 쭈욱 빼고 늘어뜨려야 하구요. 특히 엄지가 첼로 뒷목의 가운데 부분을 넘어가면 안된다는 점... 지대루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 기본적인 이론은 배웠으니 이제 혼자서 연습만 꾸준히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듣기만 하는건 의미없으니까요. 혹시나 싶어 어디서 강의하냐고 여쭤보니 어느 초등학교에서 첼로 가르치고, 예원학교인가에서 입시반을 지도하신다네요. 아울러 개인레슨도 하시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너무 비싸서 학생들이 잘 신청하진 못한다고 하더군요. 순간 움찔했습니다. ㅡㅡ;;

하여간 소중한 원포인트 레슨을 받은 것 같네요. 혼자 연습할 때도 선생님의 충고를 잘 새겨야 겠습니다. 뭐든 가장 중요한건 기초라는 점...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습니다.


주말에 와이프랑 조카들이랑 영화를 봤는데요.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가자는 말에 그냥 길을 나섰습니다. 영화 시작할 때까지 제목도 모르고 본 영화는 처음이네요. 블라인드 테스트 하는 느낌이었는데, 뭐 기대가 커서인가요? 영화 본 느낌은 그냥 그렇더군요. 완전히 미국의 10대들을 위한 영화여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능....

영화는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조카들은 이미 세번째 보는지라 누나와 자형도 이미 본 영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를 보낸거였구나 싶었습니다. 그럼 그렇지...ㅡㅡ;; 영화 제목은 '하이스쿨 뮤지컬 : 졸업반'이었구요.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적 재미보다는 미국 교육제도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주목했습니다. 보면 볼수록 연신 부러러워지더군요. 우리는 언제나 저런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영화는 미국 고등학생들의 진로결정이 주된 스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꼭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야 한다는 강요를 받지도 않고, 명문대를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더군요. 물론 스탠포드 같은 명문대를 가면 좋지만 그게 절대적인 필요조건은 아니죠. 그냥 선택할 수 있는 원 오브 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과외도 없구요.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에서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할지가 가장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주위환경도 본인의 결정을 서포팅하는 수준이었구요.

우리는 그에 비하면 완전 꼭두각시 키우는 수준이죠. 그저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자율권없이 오로지 시험만을 위해 점수 높이는 전략에만 몰두하고 있거든요. 그러려면 당연히 원리보다는 암기가 주를 이뤄야 되구요. 창의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전근대적인 교육시스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저 대학만 일단 가고보자는 분위기입니다. 모든건 대학입학하고나서 고민하자는건데... 게다가 자신의 진로가 대학과 별 상관없는 아이들은 5~6년을 그냥 허비하고 마는 셈이죠. 얼마나 비효율적인 제도인지... 게다가 이명박정권은 한술 더떠 전국 일제고사를 추진한다고 하네요. 좋아하는건 학원원장들 뿐이고, 불쌍한건 사교육의 쓰나미에 쓸려가는 우리 아이들뿐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주를 이루는 시대는 이젠 지났습니다. 그 시대에는 단기간에 효율을 높이는 인재가 필요했고 그런 식으로 교육을 했더랬죠. 하지만 이제 물량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가고 창의적인 시대가 왔습니다. 그에 맞는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윗분들이 70년대 포크레인 개념에서 벗어나질 않으니... 쩝...

덧글...
영화중에 졸업식 댄스파티라는 의미로 prom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더라구요. 영어 잘하는 조카에게 물어보니 그냥 prom이라고 하는데 느낌에 promnade의 준말이 아닌가 싶었죠. 물어봤더니 조카들은 잘 모르겠다고 하던데, 찾아보니 promnade의 준말이 맞네요.


바쁘다는 이유로 첼로연습을 게을리 한지 꽤~ 되었네요. 2월에는 레슨도 한번 밖에 못받았구요. 어쩌다 잡으면 왜 이렇게 생소한지요. 첼로에 익숙해질만 하면 손을 놔서 그런가 싶네요. 애꿎은 첼로만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케이스에 쳐박혀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디 가서 악기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첼로 얘기를 꺼내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첼로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첼로를 연주한다는 이미지를 사랑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ㅡㅡ;;

어쨌든 반성이 필요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참 어렵다는거 알지만, 그래도 첼로를 처음 잡았을 때의 희열을 다시 되새김질 해얄꺼 같아요. 어제도 레슨이 있었지만, 후배가 회사 그만둔다는 말에 레슨을 포기하고 후배에게 달려갔거든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죠. 하지만 솔직히 레슨을 빠질 수 있는 합리적 명분이 생겨서 한편 기쁘기도 했답니다. 모두 첼로에 대한 애정이 식어간다는 증거겠지요. 누가 같이 배우고 함께 연주하면 훨씬 재밌긴 할텐데...

작년에는 없는 실력에 정기 연주회에 참가하겠다는 열정으로 첼로를 디립따 파기도 했는데, 올해는 그 열정마저 그닥 샘솟진 않네요. 그냥 취미로만 즐기겠다는 포지셔닝으로 자체 타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취미라고 하기에도 너무 열정이 식었다는거거든요. 올봄에는 다시 마음을 추스려서 첼로와 사랑을 나눠야겠습니다. 권태기에 빠져있기에는 아직 사귄 기간이 얼마 안되어서...


축구를 보면 국민성이 드러난다고 하는데요.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영화에는 한국영화만의 문법이 있고, 중국영화에도 그들만의 독특한 프레임이 있거든요. '황후화'도 전형적인 중국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형적인 중국영화는 일단 인구대국답게 등장인물의 규모가 방대합니다. CG가 아니라면 어떻게 저 인원들을 통제할까 상상이 안가는 수준이구요. 그리고 중화사상이 짙게 배어있는 스토리에 역사적 우월감을 곳곳에 드러내기에 안간힘을 쓰죠. 간혹 그런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만... 쿨럭...

'황후화'는 당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나라 왕을 둘러싼 왕가의 얽히고 설킨 가족사가 주 내용인데요. 화려해보이는 왕족들의 이면에는 추악한 스토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권력을 잡기 위한 비정함도 드러나고, 근친상간도 튀어나오고, 가족간 살륙도 서슴치 않는 야만성도 기어나오죠. 사랑이 없는 가족이 현상유지를 위해서 위선을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미간이 찌푸려지더라구요. 가족끼리 그냥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하면 될 것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결과적으로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가족은 위선을 선택한 셈입니다. 위선의 댓가로 권력을 얻었구요. 하지만 달콤한 권력은 가족을 그냥 두진 않았죠. 권력에 탐닉하면 할수록 커지는 공허함, 그리고 진실과의 괴리는 권력의 단맛보다 썼습니다. 파멸의 길로 들어선 가족은 마지막에 공멸하는 길을 걷고 맙니다.

영화는 중국 당나라 말기의 왕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특수한 시기의 특정 계층에만 해당하는 얘기만은 아니기에 관객들의 공감을 얻지 않았나 싶네요. 현대사회에서도 가족해체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구요. 내부적으로는 곪아터질 지경이지만, 겉으로는 온화해보이는 가족도 심심챦게 보입니다. 최근의 모 재벌가의 이혼소송도 그런 시각에서 보면 얼추 이해가 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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