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에 풀렸나 보네요. 여기저기 포스팅으로 떠있습니다. 음악이야 뭐 지금까지 많이 들었으니까 더 이상의 포스팅은 별 의미없을꺼 같구요. 뮤직비디오에 비친 서태지의 모습은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네요.


알기로는 서태지(정현철)가 72년생 2월생, 즉 빠른 72년생이라고 하는데 그럼 우리나라 나이로는 37~38세로 봐야 하는데요. 저 장난기 어린 눈빛과 뽀얀 그 피부를 누가 불혹을 얼마 앞둔 아저씨로 볼까요. 흠.. 특히나 뮤직비디오 뒷부분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예전 데뷔때나 별 차이가 없더이다.

흠... 태지흉아! 그 비법좀 어케 알려줌 안될까...~~?


음악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데 회의적이지만, 음악이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노래는 참 착한 음악입니다. 멜로디도 참 쉬우면서도 따라하기 좋구요. 랩도 그런대로 괜챦습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참여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가요? 꽤 인지도가 높네요.



 특히 가사는 사회성이 짙어서 음미해보면 그냥 휘갈린 가사는 아니구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습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랩에서 이런 가사를 만나기도 쉽지는 않은데 말이죠.


서태지의 신곡 모아이(Moai)는 기대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주네요. 처음에는 '흠.. 좀 독특한데?' 하는 느낌이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괜챦네요.

이번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도 그렇지만, 특히 모아이는 음의 흐름이 쉽지는 않으면서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멜로디라인을 보여줍니다. 대개 가요가 팬들의 빠른 반응을 끌기 위해서 도입부에서 클라이막스까지 예상할 수 있는 음의 배열을 주로 채택했다면, 그래서 팬들에게 익숙한 음으로 인식시키는데 노력했다면, 서태지는 그런건 별로 안중에 없는 듯합니다.


그냥 자신이 펼치고 싶은 음악과 가사를 휘갈겨쓰듯 노래하네요. 평범해 보이지 않는 멜로디, 몇번씩 곱씹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 가사가 그걸 말해줍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들으면 역시 이런게 서태지의 음악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다고나 할까... 하여간 괜챦습니다.

전에 서태지를 괜챦은 마케터로 포스팅했었는데, 역시 상품이 좋아야 마케팅도 되는법. 음악도 서태지는 서태지답군요.


요새 서태지가 연일 화제의 중심입니다. 8집 앨범 발매후 10만장이 사전예약 되었다고 하는데요. 최근의 음반시장이 불황인 점을 감안할 때 10만장은 과거 100만장에 맞먹는다고 봐야겠죠. 역시 서태지의 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서태지라는 브랜드 네임만으로도 예약판매는 충분히 값어치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 서태지 은퇴선언 이후 가요에 대한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 이후 신곡을 찾아서 듣는 패턴은 없어졌죠. 물론 CD를 사서 듣게 되지도 않았구요. 그냥 앵무새 같은 가수만 양산시키는 풍토가 참 한심스러웠구요. 지금도 그닥 달라지진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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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컴백에 즈음에서 주목하고 싶은게 있는데요. 서태지의 신비주의 전략과 그의 존재감입니다. 가요계에 활동하는 여러 가수 중에서 서태지가 유독 돋보이는건 그의 뛰어난 실험정신도 있지만 철저히 뮤지션으로서 승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가수들, 가수인지 개그맨인지 의심스러운, 중에 풀타임잡과 파트타임잡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죠. 대중에게 과다하게 노출되는게 돈벌이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뮤지션으로서의 가치는 가벼이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이에 반해 서태지는 대중에게 노출도를 최소화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TV에서 가수를 희화화하는 프로그램에는 절대 출연하지 않음으로써 가수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죠. 서태지도 데뷔 초기에는 그런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제 그에게 그런 출연을 요구하는 간 큰 방송사는 없구요. 서태지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시청자도 없습니다. 모두 서태지의 신비주의 전략 덕분입니다.

마케팅에서 STP 전략이라고 있죠. Segmentation-Targeting-Positioning인데요. 시장을 세분화하고 이중에서 목표시장을 설정하고 자신의 상품을 어떻게 포장하느냐 하는 방법론입니다. 서태지만큼 이 STP전략을 훌륭하게 이행하고 있는 마케터도 드물다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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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처럼 TV 노출도와 가수의 영향력을 4-Box로 정리하면 서태지의 진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가수 혹은 개그맨들은 주로 A 혹은 D에 위치해 있습니다. 가수로서의 영향력도 유지하면서 TV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는 경우가 A일테고, 그렇지 않은 가수 혹은 개그맨(?)들이 D에 있겠죠. 그리고 셀 수 없이 더 많은 가수들이 C에 있을껍니다.

하지만 음악적 영향력이 큰 A나 B에 위치하려면, 서태지처럼 음악적으로 독보적 성과를 올리거나 TV에 많이 출연해서 대중을 웃기거나 즐겁게 해줘야 하죠. 후자의 경우는 참 한국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가수를 가수로 쓰지 않고 개그맨으로 보는 방송사 행태때문에 한국 대중음악이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어떻게든 인지도를 높여서 돈이나 벌어보겠다는 A나 D에 속하기를 열망하는 연예인, 기획사가 많다는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이 나오지 못하고, 거기서 거기인 천편일률적인 음악이 난립하는 원인이 되고 있죠.

특히 D 그룹은 음악은 그저 TV에 출연하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구요. 자신이 CD를 냈던 가수였다는 사실조차 개그의 소재로 삼는 부류죠. 개인적으로는 이들을 재미있는 개그맨으로 분류하지 괜챦은 가수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풍토 때문에 서태지는 진가를 더욱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케터로서도 훌륭한 텍스트가 되고 있구요. 이런 음악인을 동시대에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간만에 서태지 음악에나 빠져볼까요?


그냥 이유없이 떠나고 싶을 때가 있죠. 일상의 짐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초연한 마음자세로 길을 나서고 싶은... 하지만 현실상, 마냥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죠. 직장에 가정에 왜 이렇게 의무조항은 널려만 있는지... 휘유~~~

그래서 대학시절을 누구나 그리워하나 봅니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도 기회비용이 가장 적은 시기가 바로 대학시절이니까요. 그 시기에 나름 많이 여행을 했다고 하는데도 아쉬운거 보면, 여행은 떠나지 못하는 사람의 영원한 노스텔지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길이 나를 마구 불러제낄 때 들으면 좋은 노래가 있습니다. 김동률의 '출발'인데요. 잔잔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사자후보다 더 호소력 짙은 그런 좋은 음악이죠. 김동률만의 매력이라고 할까요. 그가 부르면 왠지 혼자 떠나는 여행마저 외롭지 않을꺼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김동률의 음반이 올해 처음으로 10만장을 돌파했죠. 데뷔 15주년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는건 의미있는 일입니다. 꼭두각시처럼 기획사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뻐꾸기들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영역을 펼치는 김동률같은 가수가 전 더 좋습니다. ^^

 그나저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휘뤼뤽 떠나고만 싶네요. 여름휴가가 언제더라..?? (달력 뒤적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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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고른 책이 꽤 괜챦은 내용일 때 마치 잔디밭을 걷다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듯한 느낌인데요. <굿바이 클래식>이라는 책이 바로 그런 케이스네요. 주위에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한번 읽어들 보시지요.^^


이 책은 클래식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은 비서구권, 특히 한국에서의 서양문물 권력화에 대한 냉철한 비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 뿐만 아니라 폭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서양 제국주의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두가지의 문화도구를 퍼뜨렸는데요. 하나가 기독교(찬송가)이고 또 하나가 의학이죠.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외부 문물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으로 이 두가지 무기가 각각 음악과 의학분야에서 독보적인 정서권력과 생체권력을 차지하게 되었구요. 더 나아가 국내에서 스스로 그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하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까지 기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생체권력이라는 용어는 미셸푸코가 서양의학이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로 정의를 내렸다네요.

하지만 정작 서양에서는 두가지 모두 절대권좌에서 물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클래식이라 불리우는 서양고전음악은 링거로 연명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예쁜 음악만을 추구하는 서양고전음악은 현대에 들어와 한계에 부닺쳤다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물론 저자의 개인적인 평가입니다만,누군가 해야 할 말을 콕 집어 한 듯한 느낌이더군요.

이런 서양음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뮤지션들이 혁신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서양악기의 속성상 음악다운 음악을 구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플륫과 대금을 비교했는데요. 플륫은 기껏 불어봐야 400m 정도 퍼지기도 힘든데, 대금은 10리, 즉 4km를 퍼진다고 하네요. 이렇게 될 수 있는건 대금이 갈대의 속청으로 만든 청공(淸孔)이란게 있어 위력적인 사운드를 내기 때문이구요. 물론 멀리 퍼지는 소리의 힘이 악기를 평가하는 주요인은 아니지만, 이런 속성 때문에 한국음악은 자연에 더 가깝고 자연속에서 훨씬 더 매력적으로 들리게 됩니다.

이 역시 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음악이 우월하다고 말하는건 아니겠죠. 하지만 적어도 한국전통음악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부분, 그리고 애써 부정해왔던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음악계는 이런 조류에 민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적입니다. 서양고전음악을 음악의 중심으로 놓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육도 서양고전음악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의 음악은 부수적인 분야로 취급당하고 있죠. 저자는 이런 현상을 기득권 고수, 고액과외를 위한 카르텔 등으로 풀고 있는데요. 상당히 공감가는 바가 많습니다.

책에서 한가지 재미난 비유를 하네요. 허스키 이야기인데요. 얘기인 즉슨 이렇습니다.

캐나다에 허스키라는 개가 있는데요. 캐나다 사람들은 개의 습성이나 생김새 등을 고려할 때 허스키를 명견으로 자부하고 있답니다. 이걸 본 한국사람이 크게 깨달아 한국의 진돗개는 명견이 아니구나, 똥개구나 하고 스스로 격하시킨거죠. 그래서 그 한국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가 허스키를 키우고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허스키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이 생겼을 무렵 다시 캐나다로 갔는데, 여기서 또 한번 충격을 받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이 허스키를 수많은 개의 한 종으로 취급해 진돗개, 풍산개 등과 동등한 위치로 평가하고 있었거든요. 캐나다 사람들은 개는 개일 뿐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거죠.

이에 한국사람은 개탄합니다. 어떻게 명견 허스키를 저렇게 몰라줄 수 있는가 하면서 오히려 분개합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타락한 캐나다 사람을 탓하며 더욱 허스키 숭배에 빠지게 되죠. 결국 캐나다에 없는 허스키 숭배사상이 한국에서 오히려 만연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뒤통수에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 혹시 안드시나요? 이게 허스키나 음악만의 얘기가 아니라, 종교, 정치,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심한 작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은 클래식 천동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합니다. 아니 이미 클래식을 중심으로 음악계가 움직인다는 천동설은 서양에서 이미 소멸했는데도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천동설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음악을 음악으로 보는 지동설로의 전환을 주장합니다. 그래야 클래식 울렁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면서요.



우천취소로 두산경기가 없는 한가한 토요일 오후...
스카이라이프에서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다가 <스카우트>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안봤으면 후회할 뻔 했네요. 배꼽잡게 웃다가도 결코 웃기지 않은 진한 메시지를 발견하면서 감탄하곤 했습니다.

영화는 뭐 불세출의 야구선수 선동렬을 스카웃하기 위한 스카우터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요. 하지만 선동렬은 낚시일 뿐, 정작 주인공은 그 주변 인물들입니다.

우선 등장하는 이호창(임창정 역)은 야구만 아는 다소 무대뽀 스카우터인데요. 선동렬을 스카웃하러 광주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첫사랑을 만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중에 떨어진 깃발을 돌려주려고 나섰다가 졸지에 시위주동자로 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호창이 그런 캐릭터로 생각하면 될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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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의 애인역으로 나오는 김세영(엄지원 역)은 과거 운동권 학생이었고, 전두환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는 시민군으로 나오죠. 다소 단순무식한 이호창과 사랑에 빠졌을 만큼 순수한 면이 있는 여자죠.

영화는 이 두사람의 사랑이야기를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5.18 민주항쟁을 핵심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실에 둔감했던 남자가 우연한 기회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고 할까... 하여간 선동렬 영화에서 선동렬은 그저 실마리에 불과합니다. 세월이 흐른뒤 김세영은 선동렬과 이종범을 TV에서 보며 이호창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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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영화에서 선동렬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귀여운(?) 순돌이가 선동렬 역을 맡는데요. 의외로 비슷하더군요. 과연 둘중에 누가 더 기분이 나쁠지... ^^

그리고 영화 패러디한 부분도 재미있더군요. 김세영을 사랑하는 서곤태(박철민 역)가 당구대 위에서 시를 쓰는 장면은 아마데우스를 따온거 같구요. 이호창이 진압대원들의 머리를 밟고 김세영을 만나러 가는 장면은 크로커다일던디의 뉴욕 지하철역 장면과 유사하더군요.

이 영화 덕분에 두산경기 없는 무료한 주말 오후를 유쾌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역시 야구없는 우울한 날엔 가볍고 재밌는 영화가 제격이군요.  


유비쿼터스 시대의 멀티미디어, 최근에 부득이하게 읽게 된 책입니다. 여기서 '부득이 하게' 라는 의미는 '자발적' 이라는 단어의 반대되는 개념인데요. 뭐 왜 읽게 되었는가는 중요하진 않구요. 읽다 보니 대부분 업무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에 응용하기 보다는 대학교재로 쓰기에 더 적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현재 멀티미디어 관련 분야는 산업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롤 진화를 하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조금 뒤쳐져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뒤쳐진다기 보다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게 맞겠네요.

IT분야의 경우 대학의 변화속도가 산업현장을 추월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요. 그래서 이 책은 산업현장에서의 멀티미디어 발전상황을 학문적으로 분류하고 분석하는데 주로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더 깊이있는 연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적당한 책이 아닐겁니다. 

결국 이 책은 대안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내세우는 그런 책은 아니구요. 지금까지의 멀티미디어 기술을 조망하고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사람, 특히 학부생들에게는 적당한 책입니다.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연습문제 내고 풀게 하는 방식도 그렇구요. 간만에 중간고사 공부하듯 읽어 봤습니다. ^^


베토벤을 처음 연습했는데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네요. 의욕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지리산을 넘어야 백두산을 오르는데 남산 한번 넘었다고 바로 백두산에 도전한 느낌입니다. 작년에 누군가 도전했다가 심한 좌절감을 맛보고 중도하차했다는 단장님의 얘기도 가슴에 와닿구요. 괜히 베토벤에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기초만 망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네요.

어쨌든 오페라의 유령이라도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 정기연주회는 참가가 어려워지니까요. 일단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대한의 노력하는 것! 외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태평양으로 나가는 배가 뱃머리를 바다로 돌리자마자 엄청난 파도에 휩쓸리는 꼴이네요. ㅋㅋ 그래도 좋은 선원은 파도가 만들어주니까 최대한 긍정의 마인드로 버텨야겠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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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감성사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도 가볍고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아보여 부담없이 꺼내 들었는데요. 쉽게 볼 책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특히 이외수의 독창적이면서 독특한 관점은 한번쯤 세상을 보는 눈을 정화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국어사전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다만 단어를 사전적 정의가 아닌 이외수 문법으로 풀어헤친 것이 특징이죠.

예를 들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의미는 '라면 세그릇으로 가득 채운 상'이라는 뜻이라네요. 그리고 고스톱은 또 이렇게 정의해놨군요. '금세기에 이르러 방방곡곡 가가호호마다 유행하기 시작한 개인 금융사업의 일종'이라고... ㅎㅎ...

어찌 보면 개콘에서 등장하는 일종의 언어유희처럼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요. 비범한 관점에서 관찰하는 이외수의 세상은 이렇게 때로는 유머와 해학으로 가득 차 있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보통 사람의 평범한 시각에서도 쉽게 이해되도록 미려한 글솜씨로 채우네요.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이런 유머로 채워지는건 아닙니다. 세상이 항상 유쾌하진 않으니까요. 때로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미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도 이외수에게 걸러지면서 의미있는 구성원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에게 소망이란 이렇네요.

소망 :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욕망이라고 하고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소망이라고 한다. 욕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고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욕망은 영웅을 따라다니지만 소망은 신을 따라 다닌다. 그러나 소망과 욕망은 같은 가지에 열려 있는 마음의 열매로서 환경의 지배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형태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구구절절히 마음을 울리지 않나요? 옳은 소리가 감동을 줄 수는 없지만, 진솔한 소리는 마음을 움직이는 법입니다. 다른 소설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외수의 글을 읽으면 어딘가 골방에서 며칠이고 고뇌하며 쥐어 짜낸 듯한 느낌을 주네요. 그러기에 아무나 글을 쓰는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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