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탈출은 잘 하는 대신 퍼팅은 잘 못하는게 두산야구다. 감동을 주는 승부는 많지만, 정작 그 만큼의 우승은 이루지 못한 팀. 그래서 더더욱 우승에 대한 갈증이 심하지 않을까? 물론 다른 팀들도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크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올해는 퍼팅까지 잘해서 꼭 그린자켓을 입었으면 한다. 


올 포스트시즌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이다. 상대는 넥센. 껄끄럽다. 페넌트 레이스 막판까지 2위 싸움을 벌이다 4위로 추락했기에 그닥 유쾌하진 않았다. 게다가 2위는 lg인 탓에 자존심까지 상했더랬다. 어쨌든 이번 준플은 마뜩찮은 시리즈다. 그래서 그런지 1, 2차전 모두 아쉽게 내줬다. 박병호라는 괴물에 된통 당했다. 그가 날린 홈런은 니퍼트를 무너뜨렸고 목동에서 1승도 건지지 못했다. 목동에서 약했던 징크스가 현실화 됐다. 이렇게 되면 5차전까지 간다 한들 lg를 이길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는 상황. 우울했다.


그리고 맞은 3, 4차전. 넥센에 박병호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최재훈이 있었다. 부진했던 양의지를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쓴 최재훈은 믿기 어려운 활약을 투타에서 보여줬다. 포수의 제 1덕목인 투수 리드는 전성기의 박경완을 연상시켰고, 그가 날린 홈런 하나는 시리즈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단기전에서는 누군가 미쳐줘야 한다고 하는데, 그 주인공이 최재훈일 줄은 아마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이제 행복했던 잠실과는 이별하고 목동에서 마지막 결판을 남겨놨다. 사실상 4차전 승리로 분위기는 이미 우리가 가져왔다. 리버스 스윕을 예상하긴 했다. 남은 변수는 목동구장의 작은 사이즈일 뿐.



마지막 5차전. 선발은 유희관. 유희관을 나는 구세주라고 부르고, 130km 대의 아리랑볼을 나는 불꽃직구라 부른다. 유희관은 올 시즌 내내 초인적인 성적을 보여줬다. 그 성적을 혹자는 우연으로 격하시키기도 하지만, 유희관은 이를 실력으로 완전히 불식시켰다. 7이닝 1안타 9삼진 무실점. 완벽했다. 덩달아 이원석도 3점 홈런을 날려 9회말 투아웃까지 앞섰다. 그러나.. 그러나 넥센에는 박병호가 있었다. 박병호는 니퍼트의 승부에서 기어코 3점 홈런을 날려버렸다. 혹시나 했던 동점이 눈앞에 펼쳐졌을 땐 허탈했다. 너무 진이 빠져 이대로 끝내기로 진다해도 아쉬울게 없었다. 오히려 이 괴로운 승부를 빨리 누군가 끝내주길 바랐다. 그리고 야구를 당분간 끊고 싶었다. 아마 두산 응원하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기나긴 승부 끝에 13회초 최준석과 오재원의 홈런으로 두산은 넥센을 물리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누구도 하지 못한 리버스 스윕을 두산은 두번이나 해낸 것이다. 자랑스럽긴 했지만 심장병 걸릴지도 모를 경험을 했다. 누가 그랬다. 두산야구는 건강에 해롭다고.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빠져드는건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플레이오프가 오늘부터 시작한다. 준플에 이겼을 때는 플레이오프는 덤이라 생각하자고 했는데, 막상 플레이오프 게임데이가 되니 막상 마음을 그렇지가 않다. 상대가 lg라 그런지 더더욱 전투력이 상승한다. 닥치고 V4!


1. 선우대영

예전에 선우대영이라는 좌완 투수가 있었다. 원년부터 박철순과 원투펀치를 이뤘고, 잘생긴데다 체격도 훤칠해서 꽤 인기가 좋았던걸로 기억되는. 당시 선우대영의 백넘버는 29번이었는데, 왠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이 번호가 개인적으로는 두산베어스의 든든한 좌완 이미지로 남아있다.

 

2. 장호연

암흑기에 두산을 지켰던 장호연. 장호연은 짱꼴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독특한 가치관으로 유명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도 그의 어록이 떠돌 정도. 내가 기억하는 대표적인게 이런거다. '방어율? 좋으면 좋죠. 그러나 나쁘면 어때요? 완투해서 1-0으로 지는 것 보단 10-9로 이기는게 훨씬 낫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야구란게 승리하기 위한 경기니까. 또 이런 말도 했다. '굳이 삼진을 잡을 필요가 어디 있어요? 삼진을 잡으려면 최소한 공을 세개를던져야 하잖아요. 그러기보다는 볼 한개를 던져 내야땅볼이나 외야플라이로 잡으면 훨씬 쉽습니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또 그는 이렇게도 얘기했다. '20승 투수는 피곤해요 5년간 20승씩해서 100승을 올리는것보단 10승씩 10년간 해먹는게 야구선수로선 더 행복한 거 아니겠어요?.' 장호연은 이런 투수다. 타자를 압도하는 구위를 갖진 못했지만, 능글능글한 투구로 통산 56 완투승과 16 완투승으로 역대급이다. 역대 1위는 74 완투승의 윤학길, 선동렬은 51 완투승, 최동원은 15 완봉승.(윤학길 기록은 게스트북에 남겨주신 불사조 21님의 댓글에 의해 수정함, 7/31) 


3. 유희관

지금 베어스의 29번은 유희관이다. 역시 좌완이고 선발이다. 위에서 밝혔 듯이 내게 29번은 든든한 좌완이다. 유희관이 좌완 29번의 명맥을 잇고 있으면서 투구내용은 장호연을 빼닮았다. 유희관이 장호연의 배짱까지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투구를 보면 짱꼴라 못지 않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유희관이 현재 당당한 두산의 기대주이자 기둥이 된건 두산의 희망이자, 동시에 비극이기도 하다. 그건 기존 두산 선발진의 몰락이기도 하니까. 사실 유희관은 상무 시절 활약에도 불구하고, 1군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그의 느린 구속 때문에 변칙적인 스타일의 투수로 여겨졌다. 정확히 장호연의 그것과 일치. 그러나 그 느린 공 때문에 그는 야구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유희관이 던진 가장 느린 공은 70km 대로 알려져 있다. 예전 기억으로 사회인 야구에서 나오는 구속이 80~100km 정도였으니, 사회인 야구 아리랑볼보다 못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타자들은 잘 때려내지 못한다. 그만큼 로케이션이 좋다는 얘기다. 


아마추어 관점에서 볼 때 유희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유연성이다. 유연성으로 보면 류현진과 비슷하다. 두명 모두 체형 자체가 굉장히 원형에 가깝다. 통통 튀는 고무공 같다고나 할까? 이런 유형은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큰 바람에 소나무는 부러져도 대나무는 유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희관은 이런 장점으로 100개 넘는 공을 던져도 별 탈이 없는 선발 체질이다. 시즌 초 셋업맨으로 키우려 했던 김진욱감독이 그를 선발로 돌린건 어찌 보면 고육지책이었지만 동시에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김선우와 이용찬이 올해 부진하지 않았다면 유희관이 선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이래서 야구는 정말 모르는 거다. 



참고로 지금 두산 마운드는 니퍼트-유희관-노경은-올슨-이정호 순 로테이션이다. 시즌 전과 비교할 때 니퍼트와 노경은을 제외하면 모두 새 얼굴이다. 그러나 올슨과 이정호가 아직은 믿음을 주지 못한 상황을 감안할 때, 유희관의 존재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잘한다는 칭찬 보다 고맙다는 표현이 더 유희관에게 어울리지 않을까? 


유희관을 둘러 싼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토요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유희관이 던진 70km 대의 커브를 두고 진갑용이 굉장히 언잖았던 모양이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몇초 째려봤다. 야구를 투수와 타자가 서로 타이밍 뺐기 위한 싸움으로 본다면 유희관의 슬로 커브가 욕먹을 일이 아니다. 다만 최고참으로서 진갑용은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감히 나한테 이런 볼을?' 뭐 대충 그런 심리였던 것 같은데, 제발 그놈의 선배타령은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접어두시길. 이에 유희관이 사과한 모양인데, 그런 면에서 유희관은 장호연의 배짱을 따라가긴 힘든 듯 하다. 진갑용의 도발을 포함해 앞으로 유희관에겐 몇번의 고비를 맞을 것이다. 이미 두산의 주력투수로 떠올랐으니 각 팀의 분석도 더욱 세밀해질 것이고. 부디 군더더기 없는 선우대영의 구위와 맞아도 좋다는 장호연의 배짱으로 버텨나가길 바란다.  


잔인한 5월이 끝나면 찬란한 6월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6월의 현실은 냉혹했다. 


지금 6월은 찬란하기는 커녕 야구와 담을 쌓고 싶은 심정이다. 6월 들어 위닝 시리즈 한번 하더니, 엘지엔 어이없지 지고, 삼성에 스윕까지 당했다. 그것도 2연속 끝내기 홈런을 홍상삼이 맞아 가면서. 오늘로 5연패 늪에 빠졌다.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두산 홈페이지가 엘지 홈페이지와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감독교체 성화다. 심지어 김성근 감독 영입 요구까지 나왔다. 막장의 끝을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전에도 포스팅 했지만, 5월 위기는 팀 컬러가 실종되었다는데 있다. 김진욱 감독의 선발야구가 유명무실해지고, 그렇다고 두산의 전통적인 끈끈한 플레이가 살아나지도 못했다. 김진욱 감독에게 김경문 감독의 뚝심있는 야구를 기대하진 않는다. 아니 그렇게 야구 하라고 해도 하지 못한다. 야구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김진욱 감독은 선발야구가 김경문 감독의 불펜야구를 넘어서길 바랬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5월엔 실패했다. 그리고 6월을 기대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6월도 승패에선 우울하기 짝이 없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징표들일랑 집어 치우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 숫자가 주는 의미 보다 숫자 이면의 의지를 읽고 싶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는 법 아닌가. 우선 김진욱 감독이 지향하는 선발야구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아진걸 꼽을 수 있다. 니퍼트와 노경은 외 5이닝 2실점을 보여준 올슨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95개의 공을 던지면서 앞으로 몸관리를 잘한다면 6~7이닝도 소화할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니퍼트, 나이트, 레이예스 등의 리그 특급 외국인 투수와 견줄 순 없다. 그러나 올슨이 앞으로 5~7승만 해준다면, 두산에게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이용찬의 컴백이다. 현재 불펜피칭을 하고 있어 6월 안에는 컴백할 것이 확실시 된다. 이용찬의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직구가 그리워진다. 유희관도 7이닝 1실점의 호투를 펼쳐 불펜에만 두기에 아까운 실정이다. 그것도 삼성 장원삼을 상대로 한 성적이다. 빌고 승은 기록하진 못했다. 그러나 유희관은 자신의 가치를 가장 크게 어필한 경기였다. 아마 김진욱 감독도 유희관의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연패는 선수단의 힘이 아닌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뭔가 심적 부담을 안고 뛰는게 눈에 보인다. 득점 찬스에서 잔루를 남발하니 스윙도 점점 자신 없어지고, 스윙이 무뎌지니 타점이 주는 빈곤의 악순환인 상태다. 감독부터 화이팅을 외쳐야 한다. 감독이 주눅든 상태니 선수들이 힘이 날리 없다. 그러기 위해선 김진욱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발야구가 부활해야 한다. 선발야구가 성과를 거두면 김진욱 감독의 운신의 폭도 한결 넓어질 것이고, 안정적인 선수단 운용은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을까. 김진욱 감독에 대한 진퇴 여부는 시즌 후에 거론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응원으로 선수단의 기를 북돋워줘야 할 타이밍이다. 



우울한 5월의 마지막 날. 에이스 니퍼트가 올라왔는데도 졌다. 4연패다. 날개없는 곰은 수직낙하를 계속 했고, 상위권 팀들 보다 하위권 팀들이 더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6월이 왔다. 상대는 1위팀 넥센. 물량공세로 겨우 한게임 잡고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마지막 경기는 넥센의 벤 헤켄을 유희관이 넉아웃시키면서 2연승을 달렸다. 5월의 악몽이 6월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6월의 시작은 찬란했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홍성흔이 얘기했단다. 두산 선수들에겐 5월 트라우마가 있다고. 맞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5월은 내리막을 타는 시기가 되어 버렸다. 두산 팬들이 언급하기 꺼려하는 그 사건 이후, 두산은 거짓말처럼 내리막길로 떨어지기도 했다. 결국 시즌을 5위로 마감했더랬지. 그리고 2011년 어린이 날 LG에 4-12로 대패하면서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기도 했다. 당연히 선수단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래도 오월동주라는 말처럼 5월이면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두목곰도 있었는데, 그 역시 완연한 노쇠화 분위기다. 


어쨌든 올해도 5월은 우울한 분위기로 마감했다. 9승 15패. 외견상 완전 망조는 아니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선발과 불펜진이 무너진 최악이었다. 그나마 버텨준건 니퍼트와 노경은 뿐, 김선우, 김상현, 올슨은 사라졌고, 땜방 선발들은 버티기에 한계를 노출했다. 믿었던 미스터 제로 오현택도 몇차례 블론 세이브를 승을 날렸다. 중간에서 과부하 걸렸던 탓이다. 특히 SK에게 당한 10점차 역전패는 선수들과 팬들에게 진정한 멘붕의 의미를 곱씹게 했다. 이른바 508참사의 후유증으로 투수진들은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6월엔 올슨이 일단 올라왔고, 이용찬도 복귀한다는 소식이다. 처음부터 작년의 위력적인 공을 뿌리긴 어렵겠지만, 두산으로선 희망가를 부를 만 하다. 손시헌도 컴백한단다. 허경민과 김재호가 잘 막아주긴 했지만, 손시헌의 안정감과는 아직 차이가 있다. 예전의 클러치 능력까지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이종욱도 타격감이 살아났고, 윤석민도 홈런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기쁜건 기계의 안타. 이번주 내내 안타 1개 밖에 생산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안타를 뽑아내면서 부진탈출을 예고했다. 특히 덕아웃에서 이종우과 껴안으며 파안대소하는 모습은 컨디션 좋은 기계를 기대케 한다. 


다음 주가 또 하나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5연승으로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LG와 주초에, 1위 팀 삼성과는 주말에 만나기 때문. 5월과 다른 6월 분위기를 이어 나가려면 다음주 최소 3승 나아가 4승은 따내야 한다. 모두 어웨이로 치러진다. 



두산에서 왼손 투수는 귀하다. 누구 말대로 수맥 때문인진 몰라도 좋은 자원이 들어와도 잘 터지지 않는게 왼손 투수다. 윤석환 이후 임팩트 있는 왼손은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왼손 파이어볼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다른 팀의 평균 정도만 해줘도 좋으련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좋은 자원을 뽑아도 오른손에 비해 성장이 더디다. 화수분 야구의 대명사인 두산에서도 왼손 투수는 예외인가 보다. 역대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왼손 투수는 주요 선수만 정리해도 아래와 같다. 이 중에서 남아있는 선수들도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활약하고 있는 선수도 드물다. 유희관, 정대현 뿐이다. 개인적으로 장민익과 이현호는 아직 기대가 크다. 특히 이현호는 류현진 급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봤는데, 어이없이 개에 물려 재활치료하는거 보면 수맥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현호는 현재 상무에 있다.  


2003년 : 전병두(2차 1R)

2005년 : 조현근(2차 2R), 금민철(2차 4R)

2006년 : 남윤희(1차)

2008년 : 진야곱(1차)

2009년 : 유희관(2차 6R)

2010년 : 장민익(1R), 정대현(3R)

2011년 : 이현호(2R)


외부 수혈도 상황은 비슷하다. 채상병을 주고 데려온 지승민은 삼성 시절 권혁 다음으로 구질이 좋았지만, 간염 여파로 방출되었다. 금민철에 10억을 얹어 받았던 이현승도 2009년 전반기까지만 활약하고 2011년까지 허리와 어깨 부상으로 고전하다 군에 입대했다.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 세데뇨는 KBO 사상 처음으로 산업 연수생이란 용어를 만들어 낸 육성형 외국인 선수였고,  트위터리안으로 인기를 모았던 니코스키도 평작 이상의 성적은 올리지 못했다. 왈론드도 비슷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실연의 상처로 부진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프로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다. 고교야구도 아닌데.. 어쨌든 왈룐드는 그나마 포스트 시즌에서 미들맨으로 꽤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긴 했다. 가장 괜찮았던 외국인 선수는 레스였다. 2001년 기아에서 퇴출된 레스는 두산에서 202이닝을 던지고 16승을 거줬다. 2003년 요미우리로 갔다 돌아온 2004년에도 17승을 거둬 변함없는 실력을 보여줬다. 이후 다시 라쿠텐으로 갔다가 2008년 컴백했지만 3승 2패의 초라한 성적을 올리곤 가족 건강문제로 시즌 중간에 떠나 버렸다. 



현재로선 이혜천이 왼손의 주축돌이 되어야 맞다. 그러나 이혜천은 만성적인 제구력 불안이 치명적이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일본에서 컴백한 2011년 시범경기에서 볼넷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더랬다. 드디어 우리도 제대로 된 왼손 파이어볼러 가져보나 엄청 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시즌 성적은 1승 4패 방어율 6.45. 역시나 이혜천의 제구력은 일본 유학으로도 교정되지 않았다. 특히 주자가 있을 때 흔들리는 악습은 여전했다. 팬들의 원성은 63빌딩 보다 높았고 만리장성 보다 길었다. 


또 한명 해줘야 할 왼손 투수는 괜찮은 마무리 스콧 프록터를 포기하고 데려온 게릿 올슨이다. 최소 프록터, 최대 게리 레스 정도의 기대치였는데, 현재 스탯은 수염 난 이혜천이다. 구위는 그렇다 치고, 한계투구가 60개 정도라는게 실망스럽다. 당연히 두산 스카우터의 책임이다. 주로 중간에서 던졌던 선수를 선발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본 건 대체 어떤 근거였는지 묻고 싶다. 그저 아직 한국 무대에 적응 중이라는 미신 섞인 희망을 가져볼 뿐이다. 벌써 시즌이 6월인데도. 그리고 남는 선수는 정대현, 원용묵, 김창훈 정도다. 기대 보다 성장이 더디다. 정대현은 묵직한 공을 갖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 원용묵도 마찬가지. 한화에서 이적한 김창훈도 지금은 원포인트 릴리프지만, 사실 북일고 시절엔 첫 손에 꼽는 선수였다. 


그럼에도 팬으로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진 않다. 군 복무 중인 이현승과 이현호, 장민익이 있다.  이젠 노망주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진야곱도 대기하고 있다. '굿바이 홈런'의 배경 원주고 출신 함덕주도 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잠룡들이 이천에서 박박 기고 있을거라 믿는다. 이들이 왼손 투수들의 무덤인 두산 마운드에서 랜디 존슨 같은 대투수가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외국인 투수 올슨은 허벅지 부상이다. 3년차 이정호가 메운다. 

에이스 니퍼트가 등 부상이다. 유희관이 5.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다. 

마무리 홍상삼의 공이 위력적이지 않다. 미스터 제로 오현택이 수호신으로 거듭 난다. 

고영민이 허리가 좋지 않다. 허경민이 고젯을 잊게 해준다. 

양의지가 홈 쇄도하다 넘어졌다. 박세혁이 호수비를 펼친다. 

정수빈 성장이 더디다. 동갑내기 친구 박건우가 버티고 있다. 

임재철이 초반 출장이 어렵다. 대신 민병헌이 거포 외야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게 화수분 야구의 바이블, 두산베어스의 요즘 모습이다. 팀을 2개, 3개로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는 두산의 위력적인 뎁스다. 다른 팀들이 부러워할 만 하다. 위에 아직 이름을 올리지 않은 포텐셜들이 더 있다. 최주환, 김재환, 김강률, 김동한, 이우성, 김인태, 류지혁, 안규영 등. 게다가 역대 최강의 포텐셜인 성영훈은 아직 시동도 걸지 않았다. 더욱 희망적인건 예전엔 타자들만 화수분이었는데, 이젠 투수까지 명함을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왼손 파이어볼러만 터져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대체 이현호, 진야곱은 무얼 하고 있는지.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어린이날 시리즈를 위닝으로 이끈건 바로 이 화수분 덕분이다. 토요일 선발 출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니퍼트의 부상으로 구멍이 나자 커피감독은 주저없이 유희관 카드를 빼들었고, 유희관은 보란 듯이 승리를 따냈다. 그것도 프로 첫 승이다. 135km 수준의 직구에 불과하지만 자신감 있는 투구와 미친 제구력으로 니퍼트 이상의 결과를 보여줬다. 오현택은 또 어떤가. 마무리 역할을 유감없이 해주고 있다. 홈 플레이트에서 횡으로 변하는 공을 타자들이 쳐내기 쉽지 않다. 과거 이강철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이다. 김강률 같은 파이어볼러가 나온 후 올라온다면 타자들은 더더욱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야수도 진영이 탄탄하다. 가장 활약이 뛰어난건 허경민이지만, 이번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빛난건 단연 박세혁이다. 해태 박철우 선수의 아들로도 유명한 그는 원래 양의지, 최재훈에 이은 3번 포수다. 이토 코치의 황태자였던 최재훈에 밀려 백업 출장조차 하기 어려운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양의지의 컨디션 난조로 잡은 기회에서 그는 포텐셜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안정적인 투수 리드는 물론 블로킹까지 수준급이더라. 상대적으로 아쉬운건 도루 저지율과 타석에서의 자신감. 적어도 타격은 장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감안하면 충분히 개선되리라 본다. 대학 시절에도 나름 장타자였고. 이로써 두산은 주전 포수 양의지에 좌타 박세혁과 레이저 송구 최재훈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박세혁은 이두환을 보고 반해 포수를 하게 되었고, 롤모델은 요미우리의 아베란다


두산으로선 주전들의 잔부상이 많은 5월이 위기다. 더스틴 니퍼트, 양의지, 이용찬, 게릿 올슨, 김현수, 김동주, 이종욱, 김재호 등이 이런저런 부상으로 전력 제외되었거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반기 팀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어린이날 시리즈를 잡았으니 한시름 놓은 기분이다. 또한 작년 어린이날 시리즈 패배를 설욕까지 했으니 이번 주말 경기의 또 다른 수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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