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우대영

예전에 선우대영이라는 좌완 투수가 있었다. 원년부터 박철순과 원투펀치를 이뤘고, 잘생긴데다 체격도 훤칠해서 꽤 인기가 좋았던걸로 기억되는. 당시 선우대영의 백넘버는 29번이었는데, 왠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이 번호가 개인적으로는 두산베어스의 든든한 좌완 이미지로 남아있다.

 

2. 장호연

암흑기에 두산을 지켰던 장호연. 장호연은 짱꼴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독특한 가치관으로 유명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에도 그의 어록이 떠돌 정도. 내가 기억하는 대표적인게 이런거다. '방어율? 좋으면 좋죠. 그러나 나쁘면 어때요? 완투해서 1-0으로 지는 것 보단 10-9로 이기는게 훨씬 낫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야구란게 승리하기 위한 경기니까. 또 이런 말도 했다. '굳이 삼진을 잡을 필요가 어디 있어요? 삼진을 잡으려면 최소한 공을 세개를던져야 하잖아요. 그러기보다는 볼 한개를 던져 내야땅볼이나 외야플라이로 잡으면 훨씬 쉽습니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또 그는 이렇게도 얘기했다. '20승 투수는 피곤해요 5년간 20승씩해서 100승을 올리는것보단 10승씩 10년간 해먹는게 야구선수로선 더 행복한 거 아니겠어요?.' 장호연은 이런 투수다. 타자를 압도하는 구위를 갖진 못했지만, 능글능글한 투구로 통산 56 완투승과 16 완투승으로 역대급이다. 역대 1위는 74 완투승의 윤학길, 선동렬은 51 완투승, 최동원은 15 완봉승.(윤학길 기록은 게스트북에 남겨주신 불사조 21님의 댓글에 의해 수정함, 7/31) 


3. 유희관

지금 베어스의 29번은 유희관이다. 역시 좌완이고 선발이다. 위에서 밝혔 듯이 내게 29번은 든든한 좌완이다. 유희관이 좌완 29번의 명맥을 잇고 있으면서 투구내용은 장호연을 빼닮았다. 유희관이 장호연의 배짱까지 가져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투구를 보면 짱꼴라 못지 않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유희관이 현재 당당한 두산의 기대주이자 기둥이 된건 두산의 희망이자, 동시에 비극이기도 하다. 그건 기존 두산 선발진의 몰락이기도 하니까. 사실 유희관은 상무 시절 활약에도 불구하고, 1군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그의 느린 구속 때문에 변칙적인 스타일의 투수로 여겨졌다. 정확히 장호연의 그것과 일치. 그러나 그 느린 공 때문에 그는 야구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세를 타게 됐다. 유희관이 던진 가장 느린 공은 70km 대로 알려져 있다. 예전 기억으로 사회인 야구에서 나오는 구속이 80~100km 정도였으니, 사회인 야구 아리랑볼보다 못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타자들은 잘 때려내지 못한다. 그만큼 로케이션이 좋다는 얘기다. 


아마추어 관점에서 볼 때 유희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유연성이다. 유연성으로 보면 류현진과 비슷하다. 두명 모두 체형 자체가 굉장히 원형에 가깝다. 통통 튀는 고무공 같다고나 할까? 이런 유형은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큰 바람에 소나무는 부러져도 대나무는 유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유희관은 이런 장점으로 100개 넘는 공을 던져도 별 탈이 없는 선발 체질이다. 시즌 초 셋업맨으로 키우려 했던 김진욱감독이 그를 선발로 돌린건 어찌 보면 고육지책이었지만 동시에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김선우와 이용찬이 올해 부진하지 않았다면 유희관이 선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까? 이래서 야구는 정말 모르는 거다. 



참고로 지금 두산 마운드는 니퍼트-유희관-노경은-올슨-이정호 순 로테이션이다. 시즌 전과 비교할 때 니퍼트와 노경은을 제외하면 모두 새 얼굴이다. 그러나 올슨과 이정호가 아직은 믿음을 주지 못한 상황을 감안할 때, 유희관의 존재는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잘한다는 칭찬 보다 고맙다는 표현이 더 유희관에게 어울리지 않을까? 


유희관을 둘러 싼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토요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유희관이 던진 70km 대의 커브를 두고 진갑용이 굉장히 언잖았던 모양이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몇초 째려봤다. 야구를 투수와 타자가 서로 타이밍 뺐기 위한 싸움으로 본다면 유희관의 슬로 커브가 욕먹을 일이 아니다. 다만 최고참으로서 진갑용은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감히 나한테 이런 볼을?' 뭐 대충 그런 심리였던 것 같은데, 제발 그놈의 선배타령은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접어두시길. 이에 유희관이 사과한 모양인데, 그런 면에서 유희관은 장호연의 배짱을 따라가긴 힘든 듯 하다. 진갑용의 도발을 포함해 앞으로 유희관에겐 몇번의 고비를 맞을 것이다. 이미 두산의 주력투수로 떠올랐으니 각 팀의 분석도 더욱 세밀해질 것이고. 부디 군더더기 없는 선우대영의 구위와 맞아도 좋다는 장호연의 배짱으로 버텨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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