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승이 사라지고 연패가 계속 되면 슬럼프라고 한다.

팀이 중심을 못잡고 팀 컬러를 잃어버리면 위기라고 한다.

 

지금 두산은 위기다. 단순히 몇 경기 패배했다고 위기를 얘기하는게 아니다. 최근 두산의 팀 컬러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위기라고 보는 것이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끈끈한 팀웍을 바탕으로 허슬플레이와 창의적인 발야구를 해왔다. 그것은 보수적이기 보다 도전적인 팀 운영을 의미한다. 흔히 하는 말로 빅볼 팀이라고 하면 KBO에서 두산과 롯데 외에는 딱히 꼽을 팀이 없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의 개인 역량으로 빅볼의 롯데를 만들었지만, 두산은 팀 컬러 자체가 빅볼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빅볼이라 할 만한 팀이 없다. 두산 고유의 팀 컬러가 사라진게 가장 큰 이유다.

 

현재 두산의 팀 컬러는 무엇인가?

누구든 대답을 주저한다. 딱히 뭐라 정의할 수 없다. 선수들 면면은 훌륭한데 모아 놓으면 뭔가 애매하다. 투수를 선발, 중간, 마무리로 구분한다면 선발 니퍼트와 노경은, 중간 유희관을 제외하곤 주축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선발야구도 아니고 불펜야구도 아니다. 그냥 전체적으로 무너졌다. 타선도 과거 우동수급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구단보다 화력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 전성기의 김동주를 지금 김동주도 홍성흔도 최준석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우즈도 없다. 창의적인 주루 플레이는 오재원과 정수빈이 전담하고 있지만, 2000년대 후반 고영민의 변태 스타일을 따라가긴 어렵다. 수비는 이종욱으로 대표하는 허슬플레이를 정수빈과 허경민이 이어 받았지만, 아직 두산 기대치를 넘어서진 못한다.

 

[이미지 출처 : 최훈 카툰]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두 말 할 것 없이 김진욱 감독이다. 감독은 야구를 디자인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성적이 안좋아서인지 팀 내부 분위기를 두고 여러 말들이 들린다.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부풀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건 김진욱 감독이 홍성흔을 통해 팀 분위기를 일신하겠다고 했던 점이다. 이 얘기는 두가지 팩트를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작년 선수단 분위기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점. 또 하나는 감독 스스로가 선수단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 어쨌든 홍성흔이란 특출난 선수가 있어야 팀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다는건 감독으로서 불행한 일이다. 톺아 보면 김진욱 감독 취임 당시 선수단 분위기는 환영 일색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김진욱 감독의 온화한 성품이 한몫 했을거고, 김경문 감독의 카리스마에 물린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약한 감독에게 필요한건 선수들의 자발적인 충성심(?)인데, 아쉽게도 김진욱 감독은 이를 끌어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2가지를 꼽는다.

 

여기서부터는 어설픈 추정이므로 문단을 바꿔서 적기로 하자.

 

우선 극심한 경쟁 피로도다. 내외야는 3팀으로 나눠도 될 정도로 뎁스가 깊다. 그러나 야구는 어차피 9명만이 그라운드에 설 수 있고, 긴 페넌트 레이스를 감안해도 현재 선수층은 지나치게 두텁다. 이건 경기에 나가지 못하거나 1군에 오르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의욕저하를 가져다 준다는걸 의미한다. 자칫 개개인의 의욕저하가 좌절감으로 빠질 경우 선수단에 번지는 영향 또한 가볍지 않을 것이다. 트레이드가 필요한데 이마저도 실기한 느낌이다.

 

또 하나는 납득할 수 없는 투수진 운영이다. 타임 횟수를 착각해 투수 교체를 당했던건 애교로 치자. 최근 2군에서 올라 온 투수가 부진한 투구를 하자 교체 없이 계속 던지게 한 후, 다음 날 바로 2군으로 내린 적이 있었다. 여유 없는 불펜 상황을 감안한 결정이었겠지만, 이로 인해 그 투수가 받았을 심정은 어땠을까. 그걸 본 다른 투수들은 감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설픈 추정이므로 진위 여부를 따질 순 없지만,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상당 부분 소실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투수들을 한낱 부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감독에게 누가 충성을 하겠는가. 추정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그렇다면 김진욱 감독은 물러나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 선수단을 장악하지 못했고 미숙한 운영을 했다고 하더라도, 시즌 중 감독교체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건 팬들 화풀이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성적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그렇게 했던 팀들의 운명을 우리는 익히 봐왔다. 두산까지 그런 전철을 밟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즌 중에 교체하더라도 감독대행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팬들도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응원해야 한다. 구단에 바라는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필요한 희생양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두산에게 필요한건 모멘텀이다. 근원지가 감독이건 선수건 팬들이건 모멘텀이 필요하다. 현재 두산 멤버는 우승을 노리기에 손색없는 수준이므로 뭔가 반전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분명 반등은 할 것이다. 다만 모멘텀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지속하느냐가 핵심이며, 이에 따라 김진욱 감독의 성패와 두산 팀컬러의 회복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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