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이상하게 직관 승률이 안좋다. 1무 3패. 돈내고 야구장 갔는데 지면 열받을 것 같지만, 생각만큼 우울하진 않다. 그냥 푸른 잔디만 봐도 일단 기분은 좋아진다. 다만 직관 승리 좀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커질 뿐. 작년엔 그래도 승률이 좋았는데, 올해는 정말 별로다. 


언젠가 기록은 깨지기 마련. 그날이 왔다. 모임에서 야구장에 가기로 했다. 그것도 한번도 안가본 테이블 석에서 본다. 두산 구단 관계자 통해서 미리 13장을 예매하고 3루쪽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52만원어치다. 일찌감치 자리잡고 앉았는데, 카톡으로 메시지가 온다. 오늘 '미란다 커'란 친구가 시구한단다. 검색해보니 호주의 모델이다. 반응들이 뜨겁다. 평소 지각하던 선배들이 득달같이 달려온다. 특히 세번째로 도착한 선배는 오자마자 미란다 커를 찾았다. 그러나 그땐 이미 미란다가 시구를 마치고 경기장을 떠날 무렵이었다. 선배는 내가 준 표를 받아 쥐더니 바로 사람들 많은 쪽으로 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집어 든 핸드폰 카메라로 마구 찍어댔다. 미란다가 차타고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사실 시구하러 나올 때 본 미란다는 생각보다 늙어 보였다. 모델 특유의 핏은 참 착한데, 백인 특유의 푸석푸석한 피부가 좀 그랬다. 미리 말해줄걸 그랬나? 어쨌든 그 선배는 사진찍기에 성공했고, 자기를 보기 위해 차창을 내렸다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이제 야구는 됐고 집에 가도 된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참고로 이 선배는 잘나가는 변호사다. 모임 사람들이 한명 한명 올 때마다, 난 표를 전달하러 들락날락 거려야 했다. 정작 내가 주장해서 찾은 야구장인데, 4회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도 틈틈히 확인한 스코어는 행복했고 올슨은 대견스러웠다. 


라면은 내무반에서 먹어야 제 맛이고, 치킨은 야구장에서 뜯어야 최고다.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두런두런 얘기하며 맥주까지 마시면 세상 부러울게 없다. 어제도 그랬다. 마주 보는 것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얘기하는게 더 편하다. 남들은 필드에서 많은 얘기하며 친해진다는데, 난 그게 야구장이다. 게다가 경기도 이겼다. 6연패 뒤 2연승이다. 스크에게서 위닝시리즈를 가져왔다. 올슨이 리그 첫승을 신고했고 최재훈도 맹타를 날렸다. 술이 목구멍 뒤로 꿀꺽꿀꺽 넘어갔다. 


경기 끝나고 가진 뒷풀이는 경기장 밖 좌판에서 이어졌다. 다들 아스팔트 위에 앉아 술마셔 본지 정말 오랜 만이었다. 아마 대부분 학부 시절 이후 처음이었으리라. 경기 내내 이어진 흥겨운 분위기 탓도 있지만, 엉덩이를 타고 전해지는 아스팔트 촉감이 사람들을 들뜨게 했다. 술 마시는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제 오늘 밴드에 각자 올린 사진들 중 일부를 올려본다.



잔인한 5월이 끝나면 찬란한 6월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6월의 현실은 냉혹했다. 


지금 6월은 찬란하기는 커녕 야구와 담을 쌓고 싶은 심정이다. 6월 들어 위닝 시리즈 한번 하더니, 엘지엔 어이없지 지고, 삼성에 스윕까지 당했다. 그것도 2연속 끝내기 홈런을 홍상삼이 맞아 가면서. 오늘로 5연패 늪에 빠졌다.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두산 홈페이지가 엘지 홈페이지와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감독교체 성화다. 심지어 김성근 감독 영입 요구까지 나왔다. 막장의 끝을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전에도 포스팅 했지만, 5월 위기는 팀 컬러가 실종되었다는데 있다. 김진욱 감독의 선발야구가 유명무실해지고, 그렇다고 두산의 전통적인 끈끈한 플레이가 살아나지도 못했다. 김진욱 감독에게 김경문 감독의 뚝심있는 야구를 기대하진 않는다. 아니 그렇게 야구 하라고 해도 하지 못한다. 야구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김진욱 감독은 선발야구가 김경문 감독의 불펜야구를 넘어서길 바랬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5월엔 실패했다. 그리고 6월을 기대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6월도 승패에선 우울하기 짝이 없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징표들일랑 집어 치우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 숫자가 주는 의미 보다 숫자 이면의 의지를 읽고 싶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는 법 아닌가. 우선 김진욱 감독이 지향하는 선발야구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아진걸 꼽을 수 있다. 니퍼트와 노경은 외 5이닝 2실점을 보여준 올슨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95개의 공을 던지면서 앞으로 몸관리를 잘한다면 6~7이닝도 소화할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니퍼트, 나이트, 레이예스 등의 리그 특급 외국인 투수와 견줄 순 없다. 그러나 올슨이 앞으로 5~7승만 해준다면, 두산에게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이용찬의 컴백이다. 현재 불펜피칭을 하고 있어 6월 안에는 컴백할 것이 확실시 된다. 이용찬의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직구가 그리워진다. 유희관도 7이닝 1실점의 호투를 펼쳐 불펜에만 두기에 아까운 실정이다. 그것도 삼성 장원삼을 상대로 한 성적이다. 빌고 승은 기록하진 못했다. 그러나 유희관은 자신의 가치를 가장 크게 어필한 경기였다. 아마 김진욱 감독도 유희관의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연패는 선수단의 힘이 아닌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뭔가 심적 부담을 안고 뛰는게 눈에 보인다. 득점 찬스에서 잔루를 남발하니 스윙도 점점 자신 없어지고, 스윙이 무뎌지니 타점이 주는 빈곤의 악순환인 상태다. 감독부터 화이팅을 외쳐야 한다. 감독이 주눅든 상태니 선수들이 힘이 날리 없다. 그러기 위해선 김진욱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발야구가 부활해야 한다. 선발야구가 성과를 거두면 김진욱 감독의 운신의 폭도 한결 넓어질 것이고, 안정적인 선수단 운용은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을까. 김진욱 감독에 대한 진퇴 여부는 시즌 후에 거론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응원으로 선수단의 기를 북돋워줘야 할 타이밍이다. 



두산에서 왼손 투수는 귀하다. 누구 말대로 수맥 때문인진 몰라도 좋은 자원이 들어와도 잘 터지지 않는게 왼손 투수다. 윤석환 이후 임팩트 있는 왼손은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왼손 파이어볼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다른 팀의 평균 정도만 해줘도 좋으련만. 


신인 드래프트에서 좋은 자원을 뽑아도 오른손에 비해 성장이 더디다. 화수분 야구의 대명사인 두산에서도 왼손 투수는 예외인가 보다. 역대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왼손 투수는 주요 선수만 정리해도 아래와 같다. 이 중에서 남아있는 선수들도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활약하고 있는 선수도 드물다. 유희관, 정대현 뿐이다. 개인적으로 장민익과 이현호는 아직 기대가 크다. 특히 이현호는 류현진 급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봤는데, 어이없이 개에 물려 재활치료하는거 보면 수맥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이현호는 현재 상무에 있다.  


2003년 : 전병두(2차 1R)

2005년 : 조현근(2차 2R), 금민철(2차 4R)

2006년 : 남윤희(1차)

2008년 : 진야곱(1차)

2009년 : 유희관(2차 6R)

2010년 : 장민익(1R), 정대현(3R)

2011년 : 이현호(2R)


외부 수혈도 상황은 비슷하다. 채상병을 주고 데려온 지승민은 삼성 시절 권혁 다음으로 구질이 좋았지만, 간염 여파로 방출되었다. 금민철에 10억을 얹어 받았던 이현승도 2009년 전반기까지만 활약하고 2011년까지 허리와 어깨 부상으로 고전하다 군에 입대했다. 외국인 선수도 마찬가지. 세데뇨는 KBO 사상 처음으로 산업 연수생이란 용어를 만들어 낸 육성형 외국인 선수였고,  트위터리안으로 인기를 모았던 니코스키도 평작 이상의 성적은 올리지 못했다. 왈론드도 비슷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실연의 상처로 부진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프로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다. 고교야구도 아닌데.. 어쨌든 왈룐드는 그나마 포스트 시즌에서 미들맨으로 꽤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긴 했다. 가장 괜찮았던 외국인 선수는 레스였다. 2001년 기아에서 퇴출된 레스는 두산에서 202이닝을 던지고 16승을 거줬다. 2003년 요미우리로 갔다 돌아온 2004년에도 17승을 거둬 변함없는 실력을 보여줬다. 이후 다시 라쿠텐으로 갔다가 2008년 컴백했지만 3승 2패의 초라한 성적을 올리곤 가족 건강문제로 시즌 중간에 떠나 버렸다. 



현재로선 이혜천이 왼손의 주축돌이 되어야 맞다. 그러나 이혜천은 만성적인 제구력 불안이 치명적이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일본에서 컴백한 2011년 시범경기에서 볼넷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더랬다. 드디어 우리도 제대로 된 왼손 파이어볼러 가져보나 엄청 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시즌 성적은 1승 4패 방어율 6.45. 역시나 이혜천의 제구력은 일본 유학으로도 교정되지 않았다. 특히 주자가 있을 때 흔들리는 악습은 여전했다. 팬들의 원성은 63빌딩 보다 높았고 만리장성 보다 길었다. 


또 한명 해줘야 할 왼손 투수는 괜찮은 마무리 스콧 프록터를 포기하고 데려온 게릿 올슨이다. 최소 프록터, 최대 게리 레스 정도의 기대치였는데, 현재 스탯은 수염 난 이혜천이다. 구위는 그렇다 치고, 한계투구가 60개 정도라는게 실망스럽다. 당연히 두산 스카우터의 책임이다. 주로 중간에서 던졌던 선수를 선발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본 건 대체 어떤 근거였는지 묻고 싶다. 그저 아직 한국 무대에 적응 중이라는 미신 섞인 희망을 가져볼 뿐이다. 벌써 시즌이 6월인데도. 그리고 남는 선수는 정대현, 원용묵, 김창훈 정도다. 기대 보다 성장이 더디다. 정대현은 묵직한 공을 갖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 원용묵도 마찬가지. 한화에서 이적한 김창훈도 지금은 원포인트 릴리프지만, 사실 북일고 시절엔 첫 손에 꼽는 선수였다. 


그럼에도 팬으로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진 않다. 군 복무 중인 이현승과 이현호, 장민익이 있다.  이젠 노망주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진야곱도 대기하고 있다. '굿바이 홈런'의 배경 원주고 출신 함덕주도 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잠룡들이 이천에서 박박 기고 있을거라 믿는다. 이들이 왼손 투수들의 무덤인 두산 마운드에서 랜디 존슨 같은 대투수가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