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동굴에서 화암약수로 가는 길에 정선의 유명한 먹거리인 곤드레 나물밥 잘하는 곳을 물어봤더니 고향식당을 알려주더군요. 인터넷에서는 다른 집이었지만, 현지인이 추천한 집이 더 신뢰도가 높을 것 같아 고향식당으로 갔습니다. 고향식당은 화암약수 주차장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도 좋네요.


원래 우모는 나물을 듬성듬성 무친거나 밥과 비벼먹는걸 좋아하기에 곤드레 나물밥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곤드레 나물밥도 맛있었지만, 밑반찬도 깔끔하게 입맛을 땡기네요. 특히 된장찌게는 지금까지 먹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대개 된장찌게는 약간 누런색을 띄기 마련인데, 강원도의 된장찌게는 검은색에 가까운 튀튀한 색을 하고 있더군요. 그렇다고 맛이 짜지는 않구요. 발효된 콩이 씹히지도 않았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물어봤더니 강원도 된장찌게가 원래 그렇다네요. 흠... 이런거 서울에서 팔면 괜챦을텐데...

다행히 아버님, 어머님도 좋아라 하시고, 아기곰도 잘 먹네요. 평소에는 먹거리에 큰 신경을 안쓰는데 여행지에 오면 그 지방의 맛집을 챙기게 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소개한 집보다는 현지인에게 들은 정보가 더 유익하다는 점도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되었네요.

덧글...
인터넷에서 뒤져보니 곤드레 나물밥과 의성어인 곤드레 만드레는 특별한 관계는 없다고 하네요. 곤드레 만드레는 고주망태와 비슷한 말이지만, 어원은 불분명하구요. 강원도 산골에서 나는 곤드레에서 유래를 추측할 뿐이라고 합니다. 곤드레는 깊은 산속에서 제멋대로 자생하는데 그 모습이 잔뜩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술꾼들을 연상시킨 것으로 짐작하는 수준이네요. 만드레는 곤드레 뒤에 붙어 운을 주는 형태구요.


올 여름휴가의 첫 행선지는 무창포 비체팰리스입니다. 자형네가 마련한 리조트인데,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 깨끗하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런대로 호평이 많구요. 자형네는 일찍 아기곰 데리고 먼저 출발하고 와이프랑은 금요일 저녁 늦게 시동을 걸었네요. 도착하니 이미 캄캄한 어둠이 깔린 서해바다가 리조트 앞에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누나들과 오후 내내 신나게 놀았던 아기곰은 엄마, 아빠 와도 별로 아는체도 안하고, 마냥 누나들 꽁무니만 쫓아 다니네요.

첫날은 그냥 잠만 자고 둘째날 수영과 스파, 사우나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간만에 수영하게 되는지라 기대를 잔뜩했는데 수영 풀이 좁고 얕아서 운동하기에는 모자람이 많더군요. 그냥 물장구 치고 애들이랑 놀기에 적당했습니다. 워터파크 안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사우나까지 하니 노곤해지네요.결국 4시쯤 못되어서 다들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워터파크의 시설이 안좋은건 아니지만 규모가 작아서 몇번 해보면 더이상 시도할 시설물이 없어서요. 안면도의 오션파크를 생각해도 턱없이 작구요. 집근처의 워터랜드와 비교해봐도 다양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가족끼리 간만에 물놀이 했다는 점 때문에 대체로 만족하게 되네요.


무창포는 관광객 대부분이 가족단위입니다. 들어보니 대천해수욕장은 젊은이들이 운집하는데 반해, 이쪽은 나이대가 높다고 하네요. 실제로 3대 혹은 4대의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참 보기 좋더군요. 핵가족화되어버린 요즘 이런 휴가철 혹은 명절 아니면 한데 모이기도 쉽지 않죠. 덕분에 분위기는 좀 올드합니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제외하면 차분한 편이구요. 통통튀는 분위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재미는 별로...죠.

그리고 무창포는 바닷길이 열리는 곳입니다. 밀물과 썰물의 조수 간만차가 꽤 커서 아침엔 갯벌이 드넓게 제몸을 드러내지만, 밤만 되면 파도가 넘실대죠. 예전에 대부도 갔을 때와 비슷한 풍경이네요. 세째날 모두 열리는 바닷길 따라 섬으로 가볼까 했는데 포기했습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바닷물이 남아있는 돌밭길을 몇 km씩이나 행군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피서를 하러왔지, 찜통속으로 들어가려고 오진 않았기에... 하지만 사람들은 꾸역꾸역 양산을 써가며 기를 쓰고 걸어갑니다. 순간 생각했죠. 참 대단한 이열치열의 민족이구나...

2박3일은 생각보다 일정이 짧네요. 실질적으로는 하루만 놀 수 있고, 나머지는 오고가는데 시간을 버리니... 최소 3박4일은 가야 좀 노는 맛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주 대관령 수련관 행이 기다려지네요.


2009년 8월 21일 오후 4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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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ready..?


기분전환겸 지난주 석모도에 다녀왔습니다. 바다냄새도 맡고 싶고, 갈매기도 보고 싶고 해서 평일에 휴가냈는데요. 평일이라 사람도 많지 않고 한적해서 가을바다를 보고 오기엔 적당하더군요. 석모도는 강화도에서 페리타고 5분만 건너면 눈앞에 보이는 섬입니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컸구요. 중간중간에 산도 있고, 흔적만 남아있긴 했지만 염전도 있습니다. 보문사라는 큰 절도 꽤 볼만 했구요. 

특히 보문사는 조그만 섬에 비교적 큰 규모의 절이 있다는게 의아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아무래도 강화도가 전통적인 군사요충지였고, 교역의 관문이었기에 꽤 번창한 동네가 아니었나 추측해봅니다. 눈썹바위에 조각된 마애상에도 올라갔는데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바다와 주변 경관이 꽤 볼만 하더라구요. 올라가는 계단이 419개인가 했는데 올라가느 동안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의 높이라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특이한건 눈썹바위에서 염불을 외는 스님이 계셨는데요. 무엇을 그리도 열심히 읽으시나 봤더니 사람 이름과 주소, 그리고 그 사람이 기원하는 내용을 쉬지 않고 일정한 리듬에 외우시라구요. 가령 서울 봉천동 어디에 사는 홍길동이 사법고시 합격을 기원한다... 뭐 그런 식이죠. 순간 좀 어리둥절하더군요. 우리나라 종교가 너무 기복신앙처럼 된게 아닌가 싶어서 씁쓸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석모도로 가는 배에서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배가 출항하면 어디서 몰려오는지 수십마리의 갈매기들이 주위를 기웃거리죠. 하늘로 새우깡을 던지면 서커스 공연의 물개처럼 갈매기가 잽싸게 낚아채가구요. 바다에 떨어진 새우깡도 놓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지역 갈매기들이 자연에서 먹이감을 찾지 않고 관광객들의 새우깡에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거지 갈매기'라고도 하더군요.

석모도는 당일 코스로 서울근교에 바다 보고 오기에 딱인 것 같습니다. 그리 멀지도 않고, 배도 탈 수 있고, 주변 관광지도 많구요. 근데 영화 '시월애' 촬영지는 안보는 게 나을꺼 같네요. 찾기도 쉽지 않지만, 서정적인 느낌의 우체통도 예쁜 집도 이미 철수했다고 하네요. 찾아가다 근처에서 포기했습니다. 동네 어르신이 가봐야 볼꺼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시월애'의 흔적이나마 보려고 했는데 아쉬웠습니다.


파리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도시죠. 무대뽀로 건물을 높이 올리고 보는 무철학의 서울과 달리,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건물을 짓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높은 건물을 짓고 싶은 사람은이얼마나 많았을까요? 하지만 당국의 적절한 규제와 구성원들의 똘레랑스가 정착이 되어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순간 '세계 명품도시, 일류 행복도시, 서초'라는 서초구의 케치프레이즈가 떠오르네요. (풉...) 일단 웃어주고요. 땅값 높고 건물만 높다고 일류도시가 된다고 착각하는 천민자본주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이 참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파리에서도 첨단건물이 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파리 외곽으로 나가면 라데팡스라는 곳인데요. 이게 파리가 맞나 싶기도 할 정도로 전혀 분위기는 딴판이죠. 마치 미래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 제가 배낭여행을 할 97년에는 느낌이 그러했습니다.

지상에는 차가 다니지 않도록 차도를 모두 지하에 설계한 것이나, 예술성을 살리면서 첨단 이미지가 묻어나도록 지은 높은 건물이나, 오벨리스크와 일직선 상에 놓이도록 배치한 도시계획 등, 당시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컨셉의 도시여서, 그것도 전통의 도시 파리 외곽에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마 추측컨대, 그런 첨단도시를 파리에 만들 수 없으니 문화재 훼손이 가장 적은 외곽에 계획도시로 지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서울은 유구한 문화재를 갈아 엎고 일단 건물부터 올리고 보자는 생각에 특색없는 콘크리트 도시가 되어버렸고, 이마저 서울로만 집중되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기형적인 형태의 도시가 되어버렸죠.

라데팡스는 발전과 보존이라는 상충개념을 적절히 보완해서 탄생한 도시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 한번 다시 방문해보고 싶네요.

벌써 8년도 넘은것 같네요. 교토에 여행갔던게 2000년 쯤이었으니까... 배낭여행으로 오사카, 교토, 나라를 갔었는데요. 단체여행으로 간 것보다 훨씬 유익했던 것으로 기억이 남네요. 가장 일본적인 것을 보자는 목적에 충실한 여행지였습니다.

특히 교토는 어떤 곳보다 가장 일본적인 느낌이 짙었던 곳이었구요. 도시 전체가 아담하게 꾸며진 작은 일본같은 곳이었죠. 은각사, 금각사, 철학자의 길, 일본식 정원 등 도시 여기저기에 볼꺼리가 많아서 하루에 다 보기는 어렵고 2~3일 정도로 나누어서 감상하면 좋습니다.

만났던 일본사람들도 친절했습니다. 다다미방을 체험하기 위해 찾았던 DAIYA INN이라는 곳의 주인 아주머니는 너무 친절해서 다디미방이 아닌 그녀의 세칸도 하우스(second house)에서 지내기도 했었죠. 다다미방이 초라하다고 느껴서인지 같은 값에 기꺼이 자신의 아파트를 내주는... 무자비한 친절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헉~)

일본어를 모르던 저로서는 다다미방이 더 좋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마냥 어쩔 줄 모르고 웃으며 난처해했죠. 하지만 결국 주인 아주머니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또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덕분에 다다미방에서 지내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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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했던건 독일여행할 때 철학자의 길을 걸었었는데요. 교토에도 똑같이 철학자의 길이 있었다는 겁니다. 누가 먼저인지 어떻게 이런 길을 만든 것인지는 모르지만, 자그마한 길을 걸으면서 왠지 많은 생각을 할 것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철학자의 길은 은각사에서 서쪽으로 나오다 보면 남쪽으로 길게 나있는 구부정한 오솔길입니다. 위의 그림에서는 중간 아래쪽에 세로로 哲者の道라고 씌여 있습니다. 너무 희미한가요?

이 철학자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국제기구가 하나 있는데요. 하도 오래되어서 이름도 까먹었네요. 그 기구에 학교 선배가 있어 차 한잔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인, 특히 선배는 왠지 더 반갑죠. 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습니다만... (쿨럭~)

하여간 과거에 여행을 갔지만 또 가고 싶은 도시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교토는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DAIYA INN 아주머니도 보고 싶고, 자전거 타고 철학자의 길도 가보고 싶고, 예전의 흔적이 어떻게 변했나도 보고 싶네요.

이탈리아 배낭여행할 때인데요.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날씨는 엄청 더워서리 역에서 사탑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지던 그런 날이었죠. 같이 가던 동행은 두어살 어린 친구였는데요. 그도 마찬가지로 찌는 더위로 그닥 유쾌한 기분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짜증나던 날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꽤 큰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서 집시 3명이 다가오더군요. 엄마 집시 10살 정도 된 딸 집시, 그리고 엄마 포대에 안겨있는 아기 집시... 평소 집시의 악명높은 얘기를 들었기에 다소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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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 집시가 내게 다가오더니 뭐라뭐라 하면서 아기 포대를 나한테 넘기려고 쑥 내밀더라구요. 어? 이게 모야? 하면서 얼떨결에 포대를 안받으려고 손사래치는 순간... 바지주머니로 뭔가 쑥 들어오는게 느껴지더군요. (허거걱)

그렇죠. 역시 엄마 집시의 손이었습니다. 한손으로 아기 포대를 넘기면서 한손으로는 바지 속의 지갑을 훔치는 아주 고단수의 손재주를 보여주더군요. 황급히 놀라서 엄마 집시의 손을 잡았을 땐 그녀가 이미 제 지갑을 잡고 있었구요.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지갑을 두고 서로 옥신각신했습니다. 다행히 완력으로 지갑을 다시 뺏긴 했지만, 엄마 집시의 욕을 한참 들어야 했습니다. (아니 이건 모... 주객이 전도된.. ㅡㅡ;;)

더욱 황당한건 대로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냥 보고만 있고 아무런 관심조차 주지 않더란거죠. 그리고 같이 있던 후배도 뭐 그냥 어? 어? 하면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었고... 하여간 그 사건은 저에게 집시에 대한 편견을 갖게 했던 체험담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여행기간 내내 집시를 볼 때마다 경계의 눈초리를 하게 되었구요.

근데 왜 집시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냥 안좋은 기억이 있으니 조심하자는 1차원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근데 마침 집시에 대한 어떤 기사를 보면서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집시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디가나 특정 부분의 문제는 대부분 사회 구조적인 부분에서 기인하지만 사람들은 그 근본원인에는 관심을 두지 않죠. 그냥 현상만 보고 불만갖고 증오하는 습섭을 갖고 있어서리...

이 기사에 의하면 집시들은 수세기 동안 오해와 악의적인 이미지 씌우기로 지배층의 화풀이 대상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정도의 오랜 기간에 지속적인 학대라면 유태인 학살은 그냥 새발의 피 수준이 아닐까요. 집시들도 평균 유럽인의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동등한 질의 주거와 교육이 제공될 수 있었음 합니다. 유럽사람들도 낙인찍는 못된 습관에서 벗어나 각성했음 하구요. 21세기에 불가촉 천민이 뭔가요~ 부끄럽지 않나요, 유럽?


홍콩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목적이 뚜렷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그렇습니다. 쇼핑이나 아기자기한 놀이공원 같은 걸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홍콩은 매력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닥 그저 그런 곳이기 때문이죠. 저는 후자쪽이었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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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홍콩은 처음부터 그런 곳이란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홍콩은 언젠가 한번은 갔다 와야 할 것같은 느낌 때문에... 여름 여행으로 선택을 했었죠. 그래서 2003년인가 갔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볼만한건 야경 정도였구요. 좁디 좁은 땅덩어리에 여러 사람이 살아야 하니 공동묘지나 아파트나 모두 빽빽하게 서있어야 한다는게 이국적으로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여러 조각상 보는 것도 뭐 볼만은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라는게... 무지 아쉽더라구요.

장국영이 자살했다는 호텔을 보러 갈 때도 짜증이 났구요. 어설픈 짜가 쇼핑몰로 관광객들을 돌릴 때는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싸구려 여행을 선택한 내가 잘못이지만... 이미지만 버리는 것 같습니다. 뭐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럭저럭 괜챦아 했었지만...


1997년 유럽 배낭여행할 때의 일입니다. 스위스를 갔었는데요. 그 날은 루체른 시내구경하면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카펠교도 보고 호수에서 배도 타고 간만에 여유있는 일정을 보냈죠.

아래 이미지에 각도가 꺽인 다리가 루체른의 유명한 카펠교인데요. 다리라기 보다는 전시장에 가깝더군요.다리 안에는 여러 그림이 걸려있어서 한적하게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운치있는 다리가 있었으면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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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돌아다니다 보니 카펠교 근처에 'Korea town'이라는 한국식당이 눈에 띄더군요. 한동안 한국음식을 못먹어서 무쟈게 땡겼는데 잘되었다 싶어 들어갔습니다. 스위스의 물가는 유럽에서도 비싼 편이고, 그중에서도 한국음식은 희소성 때문인지 엄청 비쌌었죠. 하지만 역시 한국사람은 고추장을 먹어야 힘을 내는지라 눈물을 머금고 주문했죠.

음식은 너무 깔끔하고 맛있었습니다. 얼큰한 육계장과 반찬을 싹 비웠죠. 물도 주셨는데 간만에 공짜로 물을 먹으니 이게 물인지 꿀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 때만 해도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하진 못했었습니다.

식사 다 마치고, 주인 아주머니와 가벼운 인사까지 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루체른 시내구경하고 유레일을 타러 역으로 갔죠. 그날 오후에 스페인인가로 넘어가려고 했었거든요. 근데 사건은 여기서 터지고 맙니다.
 
열차에 자리잡고 앉았는데, 아뿔사 여권을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분명히 여권을 뒷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ㅠ.ㅠ 뒷주머니에 넣은게 잘못이긴 했습니다. 게다가 여권안에는 유레일패스가 들어있었구요. 바로 앞에서 역무원이 표검사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하늘이 샛노랗게 변하더군요. 갑자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갈팡질팡 고민이 되더라구요. 일단 열차를 타고 나서 찬찬히 가방을 뒤질까, 아니면 기차는 보내고 루체른을 다시 뒤질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차가 움직이려 해서 일단 부리나케 내렸습니다. 아무래도 뒷주머니에 있던 여권이 가방안에서 발견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거든요.

열차를 보낸 후, 플랫폼에서 샅샅이 뒤졌습니다. 역시 없더군요. 이젠 생존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권을 재발급 받아야 하는데 발급받는 동안 거의 여행은 포기해야 되구요. 유레일패스는 유럽에서는 팔지 않으니 정가대로 사고 여행하려면 여행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죠. 여권과 유레일패스를 잃어버리면 사실상 여행은 망치게 됩니다.

돌아다녔던 루체른 시내를 다시 돌았습니다. 길거리에 혹시 있나 그 큰 배낭을 메고 열심히 뒤졌죠. 당연히 없었구요. 그렇게 중요한 여권을 뒷주머니에 허술하게 보관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더군요.

그러다 혹시나 해서 한식당 'Korea town'에 가봤습니다. 근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화장실에 떨어져 있는걸 보관하고 있다면서... 순간 어찌나 고맙던지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근데 그 아주머니는 혹시 제가 집에 전화했을까봐 한국에 있는 저희 집에 전화를 하셨다더군요. 아드님이 여권 잃어버렸다고 하면 식당으로 오라고...

그냥 보관만 해도 되는데 그렇게까지 친절을 베푸시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리고는 집에 전화하라고 하시더군요. 아버님이 한밤중에 전화 받으셔서 아마 놀라셨을꺼라고... 물론 식당에 있는 전화를 그냥 쓰라고 하시구요. 이런게 동포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는 전화에서 칠칠치 못하다는 꾸중을 들었지만 아주머니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구요. 너무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십번 하고 나서야 식당을 나왔습니다. 그 이후로는 허리가방에 항상 여권을 보관하고 다녀 무사히 배낭여행을 마쳤습니다.

언젠가 스위스에 가면 꼭 찾아가보리라 생각하는데 기회는 쉽게 오질 않네요. 10년 전의 일이라 아직 그 식당이 있을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껍니다. ^^


저한테 금문교하면 떠오르는건 강한 바람입니다. 남들은 멋진 금문교의 아치를 생각할텐데 말이죠. 금문교도 멋있었지만 워낙 미친듯 불어대는 바람때문에 풍경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했죠. 그런 바람 때문에 다리 설계도 현재의 모양대로 하지 않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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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형이랑 시애틀에서 출발해서 태평양 연안 따라 미국 종단여행을 할 때입니다. 금문교를 건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금문교 지나기 전에 언덕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까 했었죠. 마침 관광객을 위해 마련한 주차시설도 있어서 카메라 들고 뛰어 나갔습니다.

근데 태평양과 마주해서 그런가요?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엄청난 바람 때문에 서있기 조차 힘들더군요. 사진은 뭐 대충 찍긴 찍었지만, 표정은 거의 일그러지고, 옷은 펄럭거리고, 머리는 뽑아져라 산발이 되고, 몸은 이리저리 휘청거렸죠. 심할 때는 눈뜨기 조차 힘들어서 풍경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그 때 사진은 참 안습이었죠.

지금 구글 인공위성으로 본 금문교는 바람까지는 알 수 없지만 평온해 보이네요. 나중에 한번 바람이 잦을 때 한번 제대로 봤으면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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