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어딘가로 무조건 떠나야 한다는 욕망이 가슴 속에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간절하게... 지금까지 이토록 절박하게 일상탈출을 원했던 때도 없지 않았나 싶네요. 때 마침 회사에서 부상으로 받은 여행상품권이 있어 이번 연말에 '아무 생각없이' 바로 떠날 수 있는 곳을 정말 '아무 고민없이' 골랐습니다. 하이난 3박 5일 짜리 상품입니다...

사실 출발하기 전에 징후가 좋지 않았죠. 회사일도 바빴지만 아기곰이 열이 있어서 떠나기 하루 전까지도 꼭 지금 떠나야만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거든요. 다행히 감기기운은 잦아들던 상태여서 상비약을 준비하기로 하고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게다가 내년에는 시간내기가 더 힘들 것 같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구요. 하지만 개인적인 욕망이 결정타였음은 부인하지 못하겠네요. 어쨌든... 떠났습니다...


하이난(海南)

면적 : 33,920 km²
인구 : 8,030,000 명
별칭 : 중국의 하와이라고 불리움

솔직히 하이난에 대해 잘 모릅니다. 올해 초 하이난에 워크샵 한번 갈 기회가 있었다가 무산되었다는 점 빼고는 정보가 거의 없었죠. 게다가 이번 여행의 컨셉은 '묻지마 여행'이었기에 떠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일정표에는 대략 시내관광과 해양스포츠로 되어 있어서 여차하면 스킨스쿠버 하고, 귀챦으면 호텔에서 수영이나 하고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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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텔에 있는 수영장을 보는 순간 수영이나 하고 지내야 겠다는 생각은 깨끗이 접었습니다. 시설도 4성급 호텔치고는 만족스럽지 않았구요. 바람도 많이 불어 수영하다가는 감기가 더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반 관광코스대로 쫓아다니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첫날은 새벽 1시 넘어 도착했기에 일단 숙소에 짐풀고 잠자기 바빴습니다. 다행히도 아기곰의 상태도 나빠지진 않았구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둘째날 여행에 나섰습니다. 코스는 원숭이섬이라고 하네요. 예전에 뉴스에서 저질 관광지로 어느 나라의 원숭이섬인가 원숭이공원인가를 언급했던걸 본 기억이 있어서 혹시 거기는 아닌가 했었죠. 거기는 그냥 돈내고 갈만한 데가 아닌데 유료상품으로 판매해서 뉴스에서 얻어 맞았었는데 다행히 하이난의 원숭이섬은 아닌것 같더군요.

섬은 케이블카로 이어져 있어서 홍콩의 구룡공원인가 가는 코스와 비슷했습니다. 위의 사진이 케이블카에서 찍은 모습인데요. 수상가옥촌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면 가정집 뿐만 아니라 잡아놓은 물고기들을 모아놓은 양식장 같은 시설도 있더군요. 주거를 넘어 생산의 기능까지 담당하는 수상가옥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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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섬에는 시설이 잘 정돈되어 있었구요. 몇가지 간단한 쇼도 있었죠. 원숭이와 사람의 만담극도 있엇고, 원숭이가 자전거 타고 다니는 쇼도 있었고, 원숭이가 말이나 염소들과 함께 하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물을 학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하이난이 생각보다는 커서 원숭이섬에 다녀오니 오후시간이 거의 다 가버리더군요.

저녁에는 발맛사지를 받았습니다. 전에 홍콩에서 받았을 때보다는 덜 시원했지만 1시간 정도 받았고, 가격은 저렴했습니다. 20달러 정도니까 그리 비싸다는 생각은 안들었구요. 덕분에 여행 첫날의 피로는 어느 정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없다면 여행은 그냥 관광에 지나지 않는다. 죽기전에 언제 다시 와보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철저히 해야 여행의 참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작 여행보다 여행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혁명과 허영’ 백야 두얼굴
‘제1의 도시’ 모스크바 위용
화려한 페테르부르크 볼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시베리아 1만㎞ 대장정 3. 우랄산맥을 넘어

러시아를 상징하는 문양은 두 개의 머리가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쌍두독수리다. 조선말에 우리가 수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 대립했다면 러시아에서는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를 내세운 양대 진영이 쌍두독수리처럼 서로 다른 식으로 러시아를 이끌고자 대립해 왔다. 슬라브주의는 러시아식으로 살아가자는 민족주의요, 서구주의는 러시아의 후진성을 벗고 개혁을 통해 서구문명을 더 빨리 받아들이자는 입장이다. 슬라브주의를 대표하는 도시가 모스크바요, 서구주의를 대표하는 도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짧은 여정에 무엇이 슬라브 식이고 무엇이 서구식인지 파악할 순 없지만 크렘린과 아르바트거리의 모스크바가 로마와 파리의 걸작 건축물을 모델로 계획한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러시아 냄새가 한결 더 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두 도시의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러시아 정교회조차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보다 서구화된 모습을 본다.

차를 타고 모스크바의 순환도로를 한 바퀴 돌다 보면 과연 과거 냉전 당시 미국과 자웅을 겨룬 나라의 수도다운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이 유명한 도시에 도착했군.” 나폴레옹의 말대로 우리도 레닌 언덕에 올라 모스크바강 건너 북동쪽으로 펼쳐진 웅장한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모스크바 구경을 시작했다. 붉은 광장과 크렘린을 돌다 보면 온갖 피부색의 지구인들을 볼 수 있다.

붉은 광장 북쪽 가운데의 국영백화점. 옛 소련의 해체와 그로 인한 혼란기에 실패한 사회주의 경제의 본보기가 되었던 곳이 이제는 명품과 쇼핑객이 넘쳐흐르는 쇼핑명소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는 관광객의 호기심용 액세서리로 전락했을 뿐이다.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마르크스로 분장한 이들이 곳곳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해주고는 돈을 받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박제된 건축물의 도시다. 자신의 원래 용도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관광객의 눈길만을 위해 존재하는 강요된 건축물의 집합소. 도스토예프스키나 푸슈킨 또는 고골리의 문학과 무소르그스키,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탄생한 곳이요, 레닌의 혁명무대며 2차대전의 최대 격전지 중의 한곳이라는 역사가 아니라면 이 박제된 건축물의 도시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고 보면 도시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이 도시에 존재의 이유를 부여한 것은 문화의 숨결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베네치아에 버금가는 운하의 도시다. 배를 띄워 골목처럼 나있는 물길을 따라 둘러보는 맛이 쏠쏠하다. 동물의 박제는 외형만 남기고 내장은 모두 긁어내지만 이 도시의 박제된 건물은 내부 인테리어가 호사의 극치다. 레닌의 공산혁명을 불러온 로마노프 왕조의 허영이 도시 전체에 스며있다. 이 인간의 탐욕이 싫어 레닌이 모스크바 천도를 결정한 것이 아닐까. 레닌이 혁명 후 바로 죽지 않고 계속 공산 혁명을 이끌었다 해도 이 도시가 레닌그라드로 불렸을까.

레닌 묘소관람 경찰관 맘대로

레닌의 시신은 방부처리되어 붉은 광장의 남쪽에 있는 크렘린 성벽 쪽에서 북쪽을 향해 대리석 묘소에 안장되어 있다. 모스크바에만 사흘을 머물면서 날마다 레닌 묘소를 찾는 삼고초려를 했지만 결국 레닌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레닌의 묘소는 한 번에 서른 명 정도씩 입장을 시키는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공개시간 안내판이 없다. 첫날 오후 3시쯤 붉은 광장을 찾았을 때 레닌의 묘소는 이미 닫혀있었고 붉은 광장은 인파로 넘치고 있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민박집을 나와 붉은 광장에 도착한 아들과 나는 이번엔 시간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첫날 둘러보지 못한 크렘린의 남쪽과 동쪽 성벽을 둘러보고 줄서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30여 분 기다려 우리 뒤에도 제법 긴 줄을 섰는데 제복을 입은 이가 와서는 러시아어로 방송을 하고 가니 우리 뒤의 줄이 3분의 2가 흩어진다. 또 30여 분을 기다려 이제 우리 차례가 다 되었는데 또 아까의 그 제복이 와서는 방송을 한다. 이번에는 앞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흩어져 버린다. 단지 몇몇만 “웬 떡이야” 하며 앞으로 줄을 줄인다. 모두 러시아말을 못 알아듣는 외국인들이다. 줄 맨 앞으로 갔더니 경찰과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경찰은 “문 닫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관광객은 “1시에 닫는다 하곤 왜 15분 일찍 문을 닫느냐?”고 따지는가 하면 “멀리서 왔다. 오늘 모스크바를
떠난다. 마지막이니 꼭 보게 해달라”고 애걸하기도 한다. “내일은 언제 여느냐”고 물으니 “11시에 연다”해서 다음날 세 번째로 갔는데 월요일인 이날은 아예 휴관하는 날이었다. 삼고초려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2006-10-19
전상우 junsw@state.gov


내가 꿈꾸던 45세 이후의 삶을 누군가는 벌써 살고 있었다.
너무 부러울 뿐이다. 그리고 각오를 다시 새롭게 한다.


푸른 언덕에∼ 푸른 호수에∼ 반가워라, 초록의 향연
‘시베리아 푸른눈’ 바이칼호 감동
우랄산맥 노보 도시엔 문화 향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시베리아 1만㎞ 대장정

2. 울란바토르에서 시베리아까지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북경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걸린 시간과 비슷한 서른 한 시간의 여정이다. 베이징에서는 아침 출발이라 하룻밤을 열차서 보내지만 이르쿠츠크행 열차에는 저녁 일곱 시에 떠나기 때문에 이틀 밤을 차에서 지새워야 한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열차 두 량만 여기저기 잡초가 보이는 철길 위에 휑하니 서있다. 러시아와의 국경이다. 수흐바타르역은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의 구절처럼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새벽잠을 자고 있다. 대합실에 들어서니 밤을 지새운 듯 퀭한 눈빛을 한 초로의 할아버지·할머니 서넛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몽골 출국과 러시아 입국을 위해 거의 일곱 시간을 두 국경 역에서 보내야한다. 객실에서 책을 들고 뒹굴기도 하고 역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눈이 마주친 관광객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마침 우리와는 반대로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베이징으로 가는 독일인 부자를 만났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를 보여주고 싶어” 아들 녀석을 ‘모시고’ 이 피곤한 여행길에 올랐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식이 뭔지” 하며 웃었다.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은 동서가 다를 바 없나 보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까지는 약 65km. 흐루시초프는 1960년 미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소련 방문을 맞아 이 멋진 호수를 보여주기로 작정하고 이 구간에 당시로서는 최고수준의 고속도로를 놓으라고 명령한다. 아이젠하워의 방문까지는 단 두 달. 명령이 명령인지라 공사를 끝내긴 했다. 하지만, 소련을 정찰하던 미국의 U2기 추락 사건으로 아이젠하워의 방문은 취소되고 이로 인해 이 고속도로는 오히려 유명해졌다.

침엽수와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숲 속을 왕복 2차선의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달려 관광객을 한 시간 만에 바이칼호에 내려놓는다. 춘원은 이곳을 와보기나 하고 ‘유정’의 한 무대로 삼았을까?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숫가를 산책하다 같은 열차를 탔던 독일 남녀 학생과 우리보다 먼저 이르쿠츠크의 호스텔을 떠난 이탈리아에서 온 사촌 형제를 다시 만났다. 여기서 배를 타고 알혼섬으로 간단다. 뱃시간을 알아 두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뇨, 그냥 가보고 없으면 내일 가죠 뭐”하며 천하태평이다.

우랄산맥 동쪽의 노보시비르스크는 오브강을 건너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철교를 놓기 위한 전초기지로 1893년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다. 지금은 러시아 3대 도시이자 교통중심지로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산업원자재를 우랄지역 서쪽으로 수송하기 위한 중간 집하장이 되었다.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사흘간 머물며 오페라와 발레의 향기에 젖어보려 했는데 여름에는 단원들이 단체로 휴가를 가는 하면기(夏眠期)란다.

노보의 2차대전 전승기념탑도 막 결혼한 신랑·신부의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도 전쟁기념관에서 결혼식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전승기념탑 기념촬영 문화를 서양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를 안내한 민박집 아가씨에게 물었더니 “나라를 지킨 이들을
위한 추모 공원이니 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이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평화도 없었을 것이고 결혼도 못했을 것 아닌가?” 하며 오히려 의아해 한다. 정말 세상은 넓고 민족마다 생각의 차이도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

- 친절한 심사관 오만한 경찰관

러시아의 출입국 심사는 여행 안내서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무뚝뚝한 관리들의 횡포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나훗스키역의 심사관은 우리의 이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는다. “러시아어?” 함께 탄 20대의 남녀 독일학생과 우리가 “니에트(‘No’란 뜻의 러시어말)”라고 대꾸하자 “잉글리시 오케이?” 하며 영어로 “한 시간 동안 여권 확인을 하겠다. 불편하겠지만 그동안 객실 안에만 있어주기 바란다. 화장실도 갈 수 없다. 여권을 다시 돌려받으면 마음대로 주위를 돌아다녀도 좋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 좋은 여행 바란다”며 여권을 가져간다. 웃는 얼굴의 친절한 입국심사관. 여기가 러시아 맞아? 밥맛 떨어지게 한다는 관리들의 악명은 사실이 아니었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빠스뽀뜨?”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한 열차가 오브강의 철교를 건너기도 전에 러시아 경찰과 막 부닥쳤다. 외국인들이라면 누구나 흔히 겪는 러시아 경찰의 통행세 징수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여권을 돌려주지 않으면 답답하기 때문에 일정 바쁜 관광객은 몇 푼 건네주게 마련이다. 같은 객실에 탄 미모의 러시아 처녀가 통역을 하면서 몇 푼 집어주라는 손짓을 했지만 한국대사관 직원이 입회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더니 “좋다. 모스크바에서 보자”며 여권을 돌려준다. 결국, 별 문제가 없었지만 야로슬라브스키역으로 마중 나온 후배를 만나기 전까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2006-10-12
전상우 junsw@state.gov


출근길에 우연히 본 메트로 기사를 퍼왔다.
역시 세상은 넓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도 많다.


해발 1500m의 삶 … 평화만 숨쉬네
모래바람 속 붉은 일몰 장관
몽골 유적엔 ‘공산주의 흔적’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시베리아 1만㎞ 대장정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열차를 타고 1만㎞의 여정을 만끽하고 싶지 않습니까. 시베리아 횡단. 누구나 한두 번씩은 들어보았겠지만 어떻게 준비하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가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의 공보관으로 재직 중인 전상우씨는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19일까지 인천에서 출발 중국,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 우랄산맥을 넘는 1만km 대장정을 해냈습니다. 메트로 신문은 기차여행의 전문 가이드도 없이 28박 29일간의 횡단을 마친 부자의 여행기를 3회에 걸쳐 싣습니다.

1. 베이징에서 몽골까지

넓고 시끄러운 베이징역, 넘치는 인파와 고함 속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모인 곳을 눈여겨 찾았더니 과연 울란바토르행 열차를 타는 곳이다. 울란바토르행 열차는 화요일과 토요일 아침 7시40분에 베이징역을 뜬다.

올림픽 준비로 분주한 베이징에서 출발한 열차가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팔달령 만리장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은 ‘내몽고’라 하여 중국 땅이 되어버렸지만 팔달령을 넘으면 옛 몽골 땅이다. 농경문화의 중국과 유목 기마문화를 가진 몽골의 진정한 경계가 팔달령이다. 여기서 모스크바까지는 평지와 구릉만 이어지는 대평원이 펼쳐진다.

◆ 베이징 인근 사막화 진행

목축을 하던 몽골인과 달리 농경생활을 하던 중국인들이 경작을 위해 초원을 다듬기 시작하면서 베이징 인근은 서서히 사막화가 진행되었으며 그로 인해 모래바람의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봄철 한국에서 겪었던 황사의 위력이 새삼 실감난다.

13시간을 달려 저녁이 되니 언제부턴가 온 열차 안에 연기가 자욱하다.차안의 연기에 가려 바깥 모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열차는 이미 고비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연기가 아니라 모래먼지였다. 베이징서 출발할 때부터 열차가 먼지투성이였는데 이제 그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모랫바닥에 그저 철길 두 가닥만 깔아 두었으니 열차가 달리는 속도에 모래먼지가 날린 것이다.

그러나 고생 끝에 달콤함도 있는 법.

왼쪽을 보니 붉은 불덩이가 사막 아래로 넘어간다.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느라 난리다. 사방에 펼쳐진 모래 지평선, 직선 운동하는 열차와 시속 50km의 물체가 일으키는 모래바람, 그리고 천천히 넘어가는 붉은 기운. 모래바람에 맞서고서라도 봐야 할 장관이다.

고비사막을 넘는 일몰의 흥분을 싣고 한 시간 남짓 갔을까. 열차가 멈춰선다. 어느새 창문도 열어두었고 모래먼지도 가라앉았다. 맑은 공기라도 쐴까 해서 내리려 했더니 군인들이 내리지 말라는 손짓을 한다. 몽골 국경에 닿은 것이다.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열차 속 출입국 수속이 시작된다. 국경도시에서 멈춘 열차에서 희한한 광경이 눈에 띈다. 열차의 바퀴를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울란바토르 역은 몽골 체험을 하러 온 외국인들과 마중하는 현지인들로 어느 역 못지 않게 붐빈다. 옛 소련에 이어 두 번째로 공산국가가 됐던 이 나라는 이제 자본주의를 향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가깝게 지내려 하고 우리의 경험을 배우려 안간힘이다.

◆ 칭기즈칸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울거나 슬퍼해 적이 눈치채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순신 장군이 임종 직전에 한 말로 알고 있는 이 말은 칭기즈칸도 했다고 한다.(‘잃어버린 제국: 몽골의 재발견’ 재스퍼 베커 저, 셉터 출판사 간; 39쪽) 우리와 너무 쏙 빼닮은 몽골인들이다. 울란바토르 관광의 일번지인 수흐바타르 광장과 보그드 칸의 여름궁전 박물관을 거닐 때나 울란바토르 인근의 테를지 국립공원 등을 돌아다닐 때도 입만 닫고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외국인 취급하지 않는다.

“이 절은 원래 3000명이 넘는 스님이 기거하는 큰 절이었으나 1930년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터만 남아있던 것을 3년 전에 복원하였다.” 몽골의 라마 불교 사원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안내문이다. 이 표현마저도 우리와 너무나 비슷해서 묘한 동질감을 준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언제 언제 다시 지었다고 하는 우리 절들의 안내문과 같지 않은가.

울란바토르 인근의 몽골은 어디를 둘러보나 초원이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다. 우리가 ‘평화롭다’라고 할 때 떠올리는 장면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초록의 풀밭에서 풀을 뜯는 양과 소 그리고 말달리는 목동들. 열차에서 만난 서양인들도 ‘원더풀’을 연발하며 녹색 그림에 넋을 잃는다. 이 평화로운 그림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 곳이 바로 몽골이다. 평균 고도가 1500m에 달해 쉽게 피곤해지지만, 또 넉넉한 자연이 주는 시원함은 피로를 잊게 하는 회복제이기도 하다. 대자연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몽골인들. 그들의 착한 심성을 보면서 자연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내린 듯하다.


* 기차 바퀴를 바꾼다고요? 철길 너비 달라 국경서 교환

표준궤도(4피트 8.5인치)의 중국 철길에 비해 몽골과 러시아의 철길은 너비가 조금 넓은 5피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의심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혹 이웃나라가 철길을 따라 쳐들어올까 걱정해 살짝 늘려놓았다고 한다. 철길의 너비가 서로 다르니 객차는 가만 두고 아래의 바퀴만 교체하는 것이다. 기관차는 무겁고 번잡해 아예 기관차 자체를 바꾼다. 객차 하나씩 해나가면 몇 시간이나 걸릴 것으로 생각되지만 17량의 객차를 하나씩 떼어 내서 한꺼번에 교환하고 다시 연결하기에 1시간반이 걸렸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승객들은 객차 안에 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안내원에게 말하면 내려서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할 수 있다.
2006-09-28
전상우 junsw@state.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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