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주룩주룩 내려 촉촉한 아침이다. 이런 촉촉한 날 안개까지 살짝 내려와 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다. 덥지도 해가 눈부시지도 않은 촉촉한 공기, 생각만 해도 상쾌하다. 이런 날엔 집에 있기 아쉽다. 아침부터 가족을 재촉해 산책을 나섰다. 장소는 분당 중앙공원. 


분당 중앙공원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도, 쉽게 찾는 장소는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 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다. 단만에 왔다.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또 찾을까. 주차장에 주차한 후 공원을 크게 한바퀴를 걷기로 했다. 구름 낀 하늘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산책하기엔 더 할 나위 없이 쾌적한 조건이다. 산책로는 울창한 나무들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공원이 근처에 있다는건 정말 축복이다. 


꼬마곰은 탄천이 불어난게 신기한 모양이다. 탄천 쪽으로 내 손을 잡아 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홍수를 걱정하는 눈치다. 요새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유난히 무서워 한다. 원래 겁이 많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자연참사 동영상을 본 모양이다. 꼬마곰에게 '그런 지진이나 홍수는 쉽게 나는게 아냐. 걱정 안해도 돼.' 라고 안심을 시켜 줬다. 이런 말이 자극적인 영상의 임팩트를 지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에휴.. 



야외공연장에는 오늘 저녁에 있을 파크콘서트 준비가 한창이다. 김현철과 이루마의 토크 콘서트라고 하는데, 비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나두 왠만하면 갈까 하는데, 역시나 날씨가 변수다. 야외공연장 뒤쪽으로 올라 팔각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울창한 숲 밑으로 펼쳐진 오솔길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기분 좋은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토끼 한마리를 발견했다. '이런 곳에 왠 토끼일까?' 혹시나 도망갈까 싶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왠걸... 전혀 사람을 무서워 않는다. 그저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그리곤 태연히 나뭇잎만 먹는다. 살그머니 다가갔던 내가 머쓱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토끼는 야생토끼는 아닌 듯 싶다. 털 색이 야생의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애완용은 더더욱 아니다. 주위에 주인은 없었으니까. 결국 공원 측에서 방생하고 키우는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을 이렇게 무서워하지도 않는 거 보면 필시 그럴 것이다. 그리고 공원 내엔 천적이 없을테니 번식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는 궁금했다. 다시 어딘가에서 보호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한참 동안 식사하는 토끼를 뒤로 하고 공원 산책을 마쳤다. 꼬마곰은 중간중간 수로에서 물장난도 쳤다. 힘들긴 해도 같이 걷는 시간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아스팔트 위에서는 빨랐던 걸음걸이가 숲속에선 느릿느릿 걷게 된다. 생각도 천천히 하게 되고, 나무도 오래 쳐다보게 된다. 산책하는 동안 비가 안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또 비가 왔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숲에서 맞는 빗방울은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도심에서 맞는 것과는 다르니까.


덧글..

예전 뉴스에서 여의도 공원에 방생한 토끼가 치킨을 뜯어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음식물이 토끼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토끼의 본능까지 바꿔버린 것이다. 분당 중앙공원에는 다행히 KFC도 패스트푸드점도 근처에 없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게다. 게다가 나뭇잎을 탐닉하는걸로 그 토끼를 봐서도 그렇다. 하지만 어디서나 동물에게 먹이주는건 신중해야 한다. 귀엽다고 던져주는 먹이가 결국 동물의 자생력을 해칠 수 있으니..



간만에 서판교 쪽으로 자전거 나들이 갔다. 어디선가 색소폰 소리가 나길래 자전거를 돌렸더니, 운중천 카페거리 작은 음악회란다. 이름과 어울리게 규모가 아주 작은 음악회다. 다리 한쪽 구석에 연주자가 있고 그 앞에 스무명 정도 앉아 감상하고 있다. 공간이 좁아서 더 많은 관객을 모으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마 지역 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런 행사가 기획된 듯 한데, 연주 수준에 비해 관객들은 좀 썰렁하긴 했다. 



뜬금없긴 하지만, 밴쿠버 섬 여행할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쉐마이누스(Chemainus)였다. 쉐마이누스는 벽화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었는데 우연히 마을 축제를 여행하다 보게 되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축제는 사실상 장기자랑에 가까웠다. 음악 연주를 하는 주민들까리 한 구석에서 기타 연주하기도 하고, 아줌마들끼리 아코디언을 연주하기도 하고, 다같이 탱고를 춤추기도 했다. 그런 자발적인 참여가 소박하지만 아름다워 보였다. 


아마 운중천 작은 음악회의 주체는 주민이 아닌 지역상인일 것이다. 매상을 올리려는 목적의 축제는 스토리가 빈약할 수 밖에 없다. 음악회 연주자가 초대손님일테니 지역과 밀착된 스토리가 축적되기도 어렵다. 판교라는 동네가 역사가 짧아 어쩔 수 없긴 하다. 좀더 시간이 흘러 지역색이 짙어져 진정한 지역주민에 의한 지역주민의 축제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가기로 한건 순전히 꽃구경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한적하게 산책하면서 좋은 경치를 둘러보고 싶었다. 여의도는 벚꽃 보다 사람들에 치여 고생만 할게 뻔하고, 집 근처는 봄나들이 하는 맛이 안나 찾은게 청남대다. 청남대는 그 외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길도 있어 볼거리가  많지 싶었다.

 

청남대 자동차 예약한 날은 4월 20일. 근데 아침부터 대전엔 눈이 내렸다. 처음엔 진눈깨비인가 했는데 나중엔 함박눈이더라. 4월말에 내리는 함박눈이라니, 게다가 봄꽃구경 가는 날에... 쩝... 그러나 어차피 예약한건 오후이니, 오후에 개인 날씨를 기대했다. 오후 청남대에 도착할 즈음엔 눈이 비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날씨가 풀린건 아니고, 눈이나 비나 스산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람이 찹다.

 

그래도 제법 관람객들은 많았다. 전국 각 지방에서 일부러 찾는 관광버스가 제법 되니 날씨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분들 중 상당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로 찾는 분들이지 싶었다. 사진 찍는 패턴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 게시판과 동상 주변엔 장년층들이 많았다. 젊은 층은 대개 노대통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박정희 동상 주변을 지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 "이래 산게 그래도 다~ 박대통령 덕분 아이가". 그래, 우리는 언제부턴가 옳게 사는 법 보다 잘 사는 법을 더 숭상하게 되었다. 어떻게 되든지 남보다 잘만 살면 과정은 사리살짝 무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 생각이 국가적으로 확대되면 국격으로 둔갑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축소되면 출세라 불리는 법이다.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눈과 비 때문에 산책로는 걷기 힘들 정도로 질었다. 여유있게 산책하면서 계절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여건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김대중 대통령이 주로 책을 읽었던 정자까지를 뒤로 한채 발길을 돌렸다. 아쉽지만 4월 20일 청남대는 봄꽃 보다 늦은 봄눈으로 기억되지 싶다. 한가지 더 있다면 자전거 타는 노무현 대통령의 넉넉한 웃음 정도.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좋아하는 것중 하나가 여행이라고 답했던 때가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말하기 쑥스러워졌다. 좋아하지만 자주 가지 못하는 여행을 취미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것이다. 취미가 아닌 위시리스트를 물어봐야 여행을 입밖에 내지 않을까. 


인터넷 서핑하다 여행갔던 나라를 색칠해주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대략 칠해보니 여행갔던 나라보다 그렇지 않은 나라가 더 눈에 들어온다. 욕심 탓일까? 그러나 이나마도 대부분 학부 시절 배낭여행으로 얻은 훈장들이다. 지금은 생활에 쫓겨 쉽게 배낭을 싸긴 어려워졌고. 게다가 그때야 철이 덜 들었을 때니 제대로 지역공부도 하지 않고 가서 남는건 사진 뿐. 참고로 북한은 금강산여행으로 갔더랬다. 쓸데없는 오해일랑 접어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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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칠하고 보니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예전에 술한잔 했던 아이오와의 펫몰도 가고 싶고, 말들이 뛰어노는 몽고의 대초원도 보고 싶다. 대자연의 뜀박질하는 아프리카의 강한 생명력도 느껴보고 싶고, 쿠스코의 사라진 유적들도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미리 준비를 많이 해서 눈만 즐거운게 아닌 머리로 깨우치고 가슴으로 뭔가를 담을 수 있는 여행이면 더욱 좋겠지.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건 그 느낌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 작업을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기 전엔 그 글모음을 내 이름으로 출판해고프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여행하면서 그 나라 축제를 볼 수 있다는건 행운이다. 미리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나라의 풍습을 확인하기엔 축제만한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독립기념일 전야제를 볼 수 있었던건 전쟁터에서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과 비슷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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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역사가 짧아 축제가 다양하지 못하다. 그나마 유럽의 축제를 이민자들이 기념하는게 대부분인 만큼, 미국 고유의 축제는 찾기 힘들다. 그렇게 보면 미국 독립기념일은 미국 고유의 축제라 할 수 있겠다. 우리로 따지면 광복절이랄 수 있는 독립기념일을 Corvallis에서는 동네 공터에서 음악축제 형식으로 행사를 치렀다. 행사장에는 무료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입구에서 목걸이 판매를 권하고 있어 실은 유료나 다름없었다. 그런걸로 봐선 관에서 주도한다기 보다 커뮤니티에서 자체적으로 치르는 듯 보였다. 목걸이는 성조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빨간색, 하얀색 세가지로 가격은 기억나지 않으나 대략 10달러 정도였던 듯 싶다. 


행사장은 밴드가 공연하는 무대를 중심으로 그 옆에 약간의 노점상들이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일본 유학생과 한국 유학생 무리가 있어 잠시 얘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부분 백인이고 유색인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 역사가 일천하니 축제에 딱히 전통스러운 이벤트랄게 없었다. 그저 시골동네의 잔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행사를 즐기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가장 미국적인지도 모르겠다. 인디언들의 전통을 축제로 승화시키지 않는 한,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는 미국보다 더 예스러운 미국은 없는 셈이다. 



Bend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Crater lake이다. 아니 Crater lake을 오르기 위해 Bend에 간다는게 맞는 말이겠다. Crater lake을 천지와 비교한다면 산의 높이는 비슷하지만 호수의 깊이는 두배 정도 깊다. 가장 깊은 곳이 594m 란다. 서해바다 평균 수심이 44m라는걸 감안하면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호수에 오르다 보면 기압과 온도가 떨어지는걸 체험할 수 있다. 한 여름이건만 정상엔 눈이 키높이만큼 쌓여있는 곳이 있을 정도니까 옷은 두둑히 챙겨야 한다. 그렇다고 영하는 아니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오르는 길에 미국적인 모습을 봤다. 자전거로 산을 오르는 2명의 라이더와 마주쳤는데, 2명 모두 할머니였다. 순간 잘못 봤나 싶어 뒤돌아 봤는데 맞다. 할머니다. 어디서부터 라이딩을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SUV가 힘겹게 오르는 그 길을 페달을 밟고 계셨던거다. 누가 미국이 스포츠 천국아니랄까봐. 대단한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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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르고 차에서 Crater lake을 바라본 우리의 반응은 헉하는 탄성이었다. 아니 비명에 가까웠다. 파란 하늘 밑에 더 파란 호수는 산을 경계로 나뉘어 있지만 하나였고, 하늘을 품은 호수가 그 자체로 하늘이었다. 그리고 발밑으로 깎아지는 듯 내리치는 절벽은 어지러워 시선을 아래에 두기 꺼려졌다. 그 와중에 그 위에 누워 태연스레 책을 보는 미국아이나 그걸 보고 있는 부모나 대단하다 싶었다. 자세히 보니 아이 셋인 그 가족은 한 아이는 절벽 위 경계석에, 두 아이는 SUV 천정위에 누워서 독서하고 있었다. 신기해 하는 나를 의식했는지 그 아이의 엄마는 내게 자기 아이들은 쉬고 있는 중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줬다. 


유심히 보니 호수 안에는 또 하나의 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섬에서 수영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관광코스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섬에 가기 위해선 한길 낭떠러지 같은 길을 줄잡고 내려가야 했고, 날씨 탓인지 그 배도 운항하지 않았다. 차라리 고민거리를 없애줘서 다행이다. 호수 주위를 한바퀴 돌아 보기에도 시간은 빠듯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계산하면 밑에 내려가는건 무리였다. 호수 주변 곳곳에는 사진찍기 좋은 전망대를 갖추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세워 구경하기에도 하루 해는 짧았다. 


호수에서 내려와 집으로 가는 길은 길고 피곤했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몸도 몸이지만, 고해상도의 이미지와 동영상들을 기억 속에 저장시키느라 머리도 휴식이 필요했다. 



Bend에서 하루 묵은 후 본격적으로 Crater lake 여행에 나섰다. Crater lake은 화산이 폭발해서 생긴 칼데라 호수인 만큼 주변에 화산지형의 볼거리가 많다. 오르는 길에 틈틈이 들르기로 했다. 우선 찾은 곳은 High Desert museum.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인 장소를 무시할 수 없다. 


여긴 지역 동물들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괜히 먼 곳에서 애먼 동물을 잡아 가두지 않아 보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특히 도마뱀과 뱀을 직접 만질 수 있는 프로그램은 겁이 많은 아기곰에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처음엔 손대기 꺼려하던 아기곰도 자원봉사자 할머니 안내에 따라 만지게 되었고 그 경험으로 동물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낸 듯 했다. 그 이후에 강아지를 서슴없이 쓰다듬게 되었으니까... 어린이 놀이방에서는 사촌누나들과 이런저런 게임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동전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려 기념품을 만들기도 했다. 새롭게 알게 된건 비버가 생각보다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물속에서 놀던 수달에 손을 뻗어보니 바로 이빨을 드러내며 뛰어오르던 모습은 좀 충격이었다. 생긴 모습이 그리고 이미지가 순할 듯 했지만 그건 미디어가 조장한 왜곡일 뿐. 참고로 OSU의 상징은 비버다. 





다음 찾은 곳은 Newberry National volcanic monument. 화산 폭발이 주변의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엔 땡볕에 그늘 하나 없는 현무암 산을 올라야 한다는게 달갑지 않았다. 위에서 바라본 장관을 보기 전까진 그랬다. 뜨거운 용암이 대지를 뒤덮고 식으면서 만든 현무암 지형은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돌무덤이었다. 여러 기암괴석을 만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론 생태계를 철저히 파괴했으니까. 하지만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은 그 속에서 꽃을 피우고 풀들이 자라게 했다. 그리고 전망대에 오르고 내려다본 그곳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아래로 검은색이 뒤덮은 지역과 초록색이 저항한 지역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풍경에 우린 감탄사를 연발했다. 백두산도 화산 폭발로 생긴 지형이니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은 돌아다녀도 식당이 많지 않다. 관광지라도 예외없다. 불편하긴 한데 그만큼 자영업자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는 거고 그만큼 자연 훼손이 적다는게 아닐까 싶다. High Desert museum 관람을 마친 후, 돗자리 깔고 먹은 김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Crater lake에 오르기 위해 Bend에서 하루 묵었다. Bend의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차들은 과속하지 않았다. 너무 조용해서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전형적인 미국의 소도시였다. 우리가 묵은 Shilo Inn은 도심에 있었고 실내 실외수영장까지 모두 갖춰 시간 보내기에 좋았다. 다만 중간에 1시간 동안 정전사태로 실내수영장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게 옥의 티라면 티였다. 



Inn 주면의 쇼핑몰을 잠시 둘러본 다음, 우리 가족은 Drake 공원과 다운타운을 구경하러 갔다. 공원은 크진 않았지만 강을 끼고 있고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수달과 비슷한 동물도 볼 수 있었다. 우리끼린 수달이다 쥐다 말은 많았지만, 뭐 결론은 안났다.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으니..ㅋ 그림같이 아름다운 노을을 등지고 향한 NW Wallstreet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술집엔 흥청거리는 손님들도 있고 제법 명동거리 같은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백미터 남짓일 뿐 규모가 크진 않다. 거리 초입에 있는 동상은 흥미로웠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신사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인데 실제 1달러가 들어있었다. 누군가 넣어둔 듯. 다른 지폐도 넣을까 하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을 듯 싶어 자리를 떳다. 


밤이 늦어 Inn으로 가는 길에 누나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유인즉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았다고. 걱정이 되어 차에서 내려 누나차로 갔더니 경찰도 아주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하고 조심하라는 구두경고만 줬다. 다행이다. 행여 카드라도 끊었다면 귀챦았을텐데. 그렇게 Bend의 아름다운 노을은 저물었다.

 


가끔씩 해외여행가면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휴가를 보내는 패턴의 차이다.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반해, 외국 사람들 특히 서양쪽은 어느 한군데에 캠프를 짓고 마냥 지내는 스타일이다. 우리 눈에 보면 무료하게 한군데서 지낼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그들은 그곳에서 책도 읽고 산책도 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건 아무래도 기회의 차이와 문화의 차이가 원인이 아닐까 싶다. 



기본적으로 한국사회는 휴가에 인색하다. 경쟁이 치열하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분위기라 휴가 자체도 별로 없다. 장기휴가를 계획할라치면 돌아와서 자리 걱정부터 해야하는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러니 이왕 어렵게 나간거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지 않을까? 나부터도 그렇고. 또 하나는 휴가에 대한 인식이 좀 다르지 싶다. 우리는 휴가를 여행에 가깝게 인식하고 있지만, 서양 사람들은 휴식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굳이 피곤하게 장소를 옮기지 않고 한군데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휴식을 부여하는거다. 이를테면 독서, 낚시, 수영 등의 취미활동을 하면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방식인데, 내 눈엔 재미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는 민족성 혹은 국민성이랄 수 있는 성향의 차이일게다. 농경사회에서 수천년을 살아온 한국인들은 휴가지에서도 주섬주섬 뭔가를 하고 움직인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매일 뭔가를 해야하는 생활습관이 배어있지 않다. 때가 되면 사냥하고 움직이면 되는거지 굳이 부지런하게 나서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두 민족 사이에는 기본적인 생체시계가 다르게 수천년을 살아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하루종일 쉬었다가 낚시 한번 하고 다시 쉬는 그들의 휴가일정이 나에겐 참 게으르고 재미없어 보인다. 


언젠가 은퇴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때가 오면 그런 휴가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때는 돌아다니고 싶어도 몸이 안따라 주겠지만..

 


사람들이 꼽는 오레곤에서 가야할 곳 중 하나인 Crater lake. 화산 폭발 후 생긴 칼데라 호수라 볼게 참 많은데,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탓에 하루에 가긴 어려운 거리다. 그래서 1박 2일을 잡았고 가는 도중에 여러 호수와 화산폭발로 생긴 지형 등을 구경하기로 했다. 


지도 한장 달랑 들고 두 가족을 태운 차는  여기저기 섭렵했다. 들를 곳은 자형이 주로 정했고 우리는 따랐다. 아무래도 높은 산악지형을 드라이브하는 통에 귀가 띵하니 막히기도 했지만, 이국적인 풍광에 눈은 참 즐거웠다. 처음 들른 곳은 Odell lake. 한참을 달린 탓에 차에서 졸았는데 이 호수를 보자마자 잠은 확 달아났다. 이렇게 커다란 호수가 이렇게 울창한 숲속에 숨어있을 수 있는건지.. 호수는 웅장한 크기에 걸맞지 않게 작은 오두막 몇개의 숙박시설만을 제공하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낚시하는 두명만 눈에 띄었다. 참 이 나라사람들은 넓은 땅을 소심한 몇명이 독점하다시피 즐기니 그 스케일이 부러울 뿐이다.  중간에 놀이터도 있는걸로 봐선 가족단위 여행객도 배려한 모양인데 정작 이용하는 사람없다. 우리 아기곰만 신났을 뿐. 물맛을 봤다. 당연히 소금기 없는 신선한 맛이다. 예전에 시카고의 오대호에 갔을 때도 물맛을 일부러 봤는데 파도치는 호수가 신기할 뿐이다. 



차량은 계속 고도를 높였다. 이제 눈쌓인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만 이제 7월인데 눈이라. 신기한 광경이 마냥 즐거웠다. 사실 중간에 만난 호수는 참 많았다. 호수 뿐 아니라 자연발화로 타다 남은 나무들도 이국적이었고 현무암으로 이룬 산도 평생에 다시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대체 어디서 서서 봐야 하는건가 싶었다. 그러다 들른 Devils lake. 뭐 이름과는 달리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호수를 향해 쓰러진 나무들도 호수 한켠에 쌓인 눈들도 주위의 정적과 함께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냥 둘러보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Odelle lake resort 같은 곳에서 며칠 묵으면서 쉬는 휴가도 보내보고 싶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행에 익숙해져있어서 가능할런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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