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5월이 끝나면 찬란한 6월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6월의 현실은 냉혹했다. 


지금 6월은 찬란하기는 커녕 야구와 담을 쌓고 싶은 심정이다. 6월 들어 위닝 시리즈 한번 하더니, 엘지엔 어이없지 지고, 삼성에 스윕까지 당했다. 그것도 2연속 끝내기 홈런을 홍상삼이 맞아 가면서. 오늘로 5연패 늪에 빠졌다.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두산 홈페이지가 엘지 홈페이지와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감독교체 성화다. 심지어 김성근 감독 영입 요구까지 나왔다. 막장의 끝을 향해 치닫는 분위기다. 


전에도 포스팅 했지만, 5월 위기는 팀 컬러가 실종되었다는데 있다. 김진욱 감독의 선발야구가 유명무실해지고, 그렇다고 두산의 전통적인 끈끈한 플레이가 살아나지도 못했다. 김진욱 감독에게 김경문 감독의 뚝심있는 야구를 기대하진 않는다. 아니 그렇게 야구 하라고 해도 하지 못한다. 야구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김진욱 감독은 선발야구가 김경문 감독의 불펜야구를 넘어서길 바랬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5월엔 실패했다. 그리고 6월을 기대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6월도 승패에선 우울하기 짝이 없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징표들일랑 집어 치우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 숫자가 주는 의미 보다 숫자 이면의 의지를 읽고 싶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는 법 아닌가. 우선 김진욱 감독이 지향하는 선발야구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아진걸 꼽을 수 있다. 니퍼트와 노경은 외 5이닝 2실점을 보여준 올슨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95개의 공을 던지면서 앞으로 몸관리를 잘한다면 6~7이닝도 소화할 수 있을 듯 하다. 물론 니퍼트, 나이트, 레이예스 등의 리그 특급 외국인 투수와 견줄 순 없다. 그러나 올슨이 앞으로 5~7승만 해준다면, 두산에게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이용찬의 컴백이다. 현재 불펜피칭을 하고 있어 6월 안에는 컴백할 것이 확실시 된다. 이용찬의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직구가 그리워진다. 유희관도 7이닝 1실점의 호투를 펼쳐 불펜에만 두기에 아까운 실정이다. 그것도 삼성 장원삼을 상대로 한 성적이다. 빌고 승은 기록하진 못했다. 그러나 유희관은 자신의 가치를 가장 크게 어필한 경기였다. 아마 김진욱 감독도 유희관의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금 연패는 선수단의 힘이 아닌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뭔가 심적 부담을 안고 뛰는게 눈에 보인다. 득점 찬스에서 잔루를 남발하니 스윙도 점점 자신 없어지고, 스윙이 무뎌지니 타점이 주는 빈곤의 악순환인 상태다. 감독부터 화이팅을 외쳐야 한다. 감독이 주눅든 상태니 선수들이 힘이 날리 없다. 그러기 위해선 김진욱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발야구가 부활해야 한다. 선발야구가 성과를 거두면 김진욱 감독의 운신의 폭도 한결 넓어질 것이고, 안정적인 선수단 운용은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을까. 김진욱 감독에 대한 진퇴 여부는 시즌 후에 거론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응원으로 선수단의 기를 북돋워줘야 할 타이밍이다. 



연승이 사라지고 연패가 계속 되면 슬럼프라고 한다.

팀이 중심을 못잡고 팀 컬러를 잃어버리면 위기라고 한다.

 

지금 두산은 위기다. 단순히 몇 경기 패배했다고 위기를 얘기하는게 아니다. 최근 두산의 팀 컬러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위기라고 보는 것이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끈끈한 팀웍을 바탕으로 허슬플레이와 창의적인 발야구를 해왔다. 그것은 보수적이기 보다 도전적인 팀 운영을 의미한다. 흔히 하는 말로 빅볼 팀이라고 하면 KBO에서 두산과 롯데 외에는 딱히 꼽을 팀이 없었다.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의 개인 역량으로 빅볼의 롯데를 만들었지만, 두산은 팀 컬러 자체가 빅볼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빅볼이라 할 만한 팀이 없다. 두산 고유의 팀 컬러가 사라진게 가장 큰 이유다.

 

현재 두산의 팀 컬러는 무엇인가?

누구든 대답을 주저한다. 딱히 뭐라 정의할 수 없다. 선수들 면면은 훌륭한데 모아 놓으면 뭔가 애매하다. 투수를 선발, 중간, 마무리로 구분한다면 선발 니퍼트와 노경은, 중간 유희관을 제외하곤 주축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선발야구도 아니고 불펜야구도 아니다. 그냥 전체적으로 무너졌다. 타선도 과거 우동수급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구단보다 화력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 전성기의 김동주를 지금 김동주도 홍성흔도 최준석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우즈도 없다. 창의적인 주루 플레이는 오재원과 정수빈이 전담하고 있지만, 2000년대 후반 고영민의 변태 스타일을 따라가긴 어렵다. 수비는 이종욱으로 대표하는 허슬플레이를 정수빈과 허경민이 이어 받았지만, 아직 두산 기대치를 넘어서진 못한다.

 

[이미지 출처 : 최훈 카툰]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두 말 할 것 없이 김진욱 감독이다. 감독은 야구를 디자인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성적이 안좋아서인지 팀 내부 분위기를 두고 여러 말들이 들린다.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부풀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건 김진욱 감독이 홍성흔을 통해 팀 분위기를 일신하겠다고 했던 점이다. 이 얘기는 두가지 팩트를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작년 선수단 분위기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점. 또 하나는 감독 스스로가 선수단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 어쨌든 홍성흔이란 특출난 선수가 있어야 팀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다는건 감독으로서 불행한 일이다. 톺아 보면 김진욱 감독 취임 당시 선수단 분위기는 환영 일색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김진욱 감독의 온화한 성품이 한몫 했을거고, 김경문 감독의 카리스마에 물린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리스마가 약한 감독에게 필요한건 선수들의 자발적인 충성심(?)인데, 아쉽게도 김진욱 감독은 이를 끌어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2가지를 꼽는다.

 

여기서부터는 어설픈 추정이므로 문단을 바꿔서 적기로 하자.

 

우선 극심한 경쟁 피로도다. 내외야는 3팀으로 나눠도 될 정도로 뎁스가 깊다. 그러나 야구는 어차피 9명만이 그라운드에 설 수 있고, 긴 페넌트 레이스를 감안해도 현재 선수층은 지나치게 두텁다. 이건 경기에 나가지 못하거나 1군에 오르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의욕저하를 가져다 준다는걸 의미한다. 자칫 개개인의 의욕저하가 좌절감으로 빠질 경우 선수단에 번지는 영향 또한 가볍지 않을 것이다. 트레이드가 필요한데 이마저도 실기한 느낌이다.

 

또 하나는 납득할 수 없는 투수진 운영이다. 타임 횟수를 착각해 투수 교체를 당했던건 애교로 치자. 최근 2군에서 올라 온 투수가 부진한 투구를 하자 교체 없이 계속 던지게 한 후, 다음 날 바로 2군으로 내린 적이 있었다. 여유 없는 불펜 상황을 감안한 결정이었겠지만, 이로 인해 그 투수가 받았을 심정은 어땠을까. 그걸 본 다른 투수들은 감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설픈 추정이므로 진위 여부를 따질 순 없지만,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상당 부분 소실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투수들을 한낱 부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감독에게 누가 충성을 하겠는가. 추정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그렇다면 김진욱 감독은 물러나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 선수단을 장악하지 못했고 미숙한 운영을 했다고 하더라도, 시즌 중 감독교체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건 팬들 화풀이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성적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그렇게 했던 팀들의 운명을 우리는 익히 봐왔다. 두산까지 그런 전철을 밟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시즌 중에 교체하더라도 감독대행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팬들도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응원해야 한다. 구단에 바라는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필요한 희생양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두산에게 필요한건 모멘텀이다. 근원지가 감독이건 선수건 팬들이건 모멘텀이 필요하다. 현재 두산 멤버는 우승을 노리기에 손색없는 수준이므로 뭔가 반전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분명 반등은 할 것이다. 다만 모멘텀을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지속하느냐가 핵심이며, 이에 따라 김진욱 감독의 성패와 두산 팀컬러의 회복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1승 1무 16패, 승률 0.568 3위

팀 타율 0.289 1위, 홈런 25개 3위

팀 방어율 4.59 7위, 에러 25개 4위


이상은 두산의 현재 성적표다. 3위를 달리고 있으니 나쁘진 않아 보인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러나 한꺼풀 들여다 보면 입원해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사는 말한다. "이대로 며칠 더 버티다간 수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빨리 입원수속 밟으시죠." 현재 두산의 진단결과다. 


두산의 문제는 투수력이 펑크났다는 점이다. 벌써 5월에만 기록적인 대패를 세번 당했다. SK에게 10점차 리드에서 역전당한 508 참사와 NC에게 17실점을 당한 치욕과 한화에게 14실점을 허용한 것, 모두 투수진의 책임이다. 게다가 NC와 한화는 올 시즌 최약체 팀들이고, SK는 전성기가 지났다. 단순한 패배 이상의 무게감을 갖는 성적표다. 


왜 갑자기 두산 투수진이 무너졌을까? 우선 선발진 붕괴가 가장 크다. 현재 두산 선발진에서 제 역할을 하는 선수는 더스틴 니퍼트 뿐이다. 김선우, 노경은은 기대 이하의 컨디션이고, 이용찬, 올슨은 출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김선우도 현재 2군으로 내려간 상태다. 실질적인 로테이션은 니퍼트-노경은-땜방-땜방-땜방인 상황이다. 과거 리오스-랜들-비-비-비 였던 때가 있었다. 요샌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다. 앞에서 6이닝을 먹어줘야 할 선발이 이 모양이니 중간은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대체자원으로 올라온 선수가 유희관, 이혜천, 이정호 등인데 깜짝선발은 뎁스 확인에는 좋을지 모르나 성적으로 크게 재미보긴 어려운 법이다. 유희관을 제외하곤 노출이 덜됐던 이정호와 들쑥날쑥 제구력의 이혜천은 이미 한차례 이상씩 탈탈 털린 상태다. 중요한건 앞으로도 쉽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올슨이 복귀를 한다 해도 이용찬과 김선우는 여전히 물음표다. 노경은은 작년의 노경은이 아니다. 결국 땜방으로 6월까지는 버텨야 한다는 계산. 유희관은 좌완 희소성으로 선발 전업하긴 어렵고, 시즌 전 선발로 점찍었던 이재우도 부상이고, 김상현은 커브 외엔 주무기가 없고, 이정호는 경험이 일천하다. 그렇다고 2군에서 올릴 자원도 마땅치 않은 상태. 서동환, 정대현, 임태훈, 김명성, 안규영 등은 1군 검증이 아직 끝나지 않았거나 시작도 못한 상태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시계바늘을 잠시 2011년으로 돌려보자. 김진욱감독이 취임하던 해 던진 화두가 바로 선발야구다.  김진욱감독과 전임 김경문감독의 스타일을 가르는 지점에 선발야구와 불펜야구가 서 있다. 김경문감독의 불펜야구는 일단 리드를 잡으면 필승 계투진 투입으로 승리를 지켜내지만, 매경기 4이닝을 책임져야 하는 불펜진 과부하가 부작용이다. 현재 임태훈이 겪는 허리통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김진욱감독의 선발야구는 그간 취약했던 국내 선발진을 키워 10년의 강팀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었다. 당연히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 실제로 김진욱감독은 마무리 이용찬을 선발로 성공시키고 노경은을 국대급 선발로 키워내 지도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런 김진욱감독에게 올 시즌 첫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김진욱감독이 취임한 2011년 이래 이렇게 선발야구가 무너진건 아마도 처음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김진욱감독의 마운드 운영능력은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험대라 할 수 있다. 


김진욱감독 스스로 밝혔 듯이 5월 혹은 길게는 6월까지 버티는 달이 될 것이다. 주축투수들이 복귀할 때까지 아랫돌 빼서 윗돌에 괴어야 하는데, 그 운영의 묘는 김진욱감독과 정명원코치의 몫이다. 다행히 홍성흔을 중심으로 한 극강의 타력이 있어 아주 실망스런 결과를 보이진 않겠지만, 5할 이상의 승률을 쌓기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남은 5월 일정인 넥센-휴식-롯데-넥센에서는 6~7승. 6월 일정인 LG-삼성-SK-휴식-롯데-한화-기아-NC에서는 12~13승 정도 올려야 하반기 반격이 가능할 것이다. 김진욱감독의 버티기 묘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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