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김선우가 두산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내 주위엔 김선우가 선발인 날엔 직관을 피하겠다는 팬들도 많다. 승패를 떠나서 답답한 투구를 보기 싫어서다. 마운드의 대들보여야 할 써니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팬 입장에서 보면 무뎌진 팔의 각도가 계속 눈에 밟힌다. 오버스로였던 폼이 언제부턴가 쓰리쿼터로 떨어지더니, 지금은 사이드암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완만한 각도가 공의 위력을 떨어뜨린건지, 떨어진 공의 위력을 올리기 위해 각도를 내린건지, 그건 알 수 없다. 확실한건 전성기에 비해 팔이 내려갔다는 점이다. 어쨌든 140km가 안되는 직구와 횡으로 벌어지는 변화구가 타자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체력도 문제있어 보인다. 올해 가장 많이 던진게 90개였다. 5 2/3이닝이다. 이후 평균 60개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 수준으로 보면 맥시멈 6이닝이고 현실적으로 5이닝을 목표로 던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선발 목표가 고작 5이닝이라면 불펜에겐 부담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김선우를 불펜으로 내릴 수도 없다. NC 손민한이 선발로 뛸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비슷하다. 두산의 고민이다.결국 김선우가 선발인 날엔 불펜이 바빠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롱릴리프 역할이 중요해진다. 오늘 김상현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것처럼. 


[사진 출처 : OSEN]


그렇다고 김선우의 가치를 폄하할 순 없다. 그가 두산에 기여한 바가 크고, 베테랑의 역할을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경험이 투수진에 미치는 영향을 가벼이 볼 수 없다. 다만 노쇠화에 접어든 김선우를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지, 두산 코치진은 해법을 내놔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2008년 6승에서 시작해 2011년 16승으로 최정점을 찍은 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참고로 2012년 6승으로 급감한 뒤 올해 2승 5패 기록 중이다. 


머지 않은 날에 김선우 등판일이 글루미데이가 아닌 써니데이가 되리라 믿는다. 메이저리거는 분명 클래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재응이 제구력으로, 김병현이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각각 4승씩을 거두고 있는 것처럼. 


오늘 경기는 엘지에게 졌다. 3회 박용택에게 만루홈런을 맞은 후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준 계투진 덕분에 역전의 발판은 마련했는데, 거기까지 였다. 8회에 정의윤에게 잡을 수 있는 플라이를 놓쳐 실점하면서 분위기를 뺐겼다. 마지막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한게 아쉽다. 그러나 이제 두산 마운드가 5월의 악몽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전투력을 갖췄음을 보여준 경기였다. 내일은 반드시 이겨 현충일 시리즈를 위닝으로 마무리하길 기대한다. 선발은 니퍼트와 신정락이다. 



오늘 잠실 라이벌전이 기대된다고 하자 회사 선배가 말하더라. "엘쥐는 라이벌이 아냐. 앙숙일 뿐이지." 그렇다, 언제부터 엘지가 라이벌이었다고. 우린 그저 앙숙이었을 뿐이다. 한쪽이 지면 한쪽이 이기는 제로섬 게임처럼 엘지는 앙숙일 뿐이다. 라이벌엔 져도 앙숙에 지면 화나는 이유다. 


이번 현충일 시리즈에 더 관심이 모이는건 두 팀이 모두 상승세에 있기 때문이다. 악몽의 5월을 보낸 후 2연승 중인 두산과 최근 5연승 중인 엘지 모두 컨디션 최정점이다. 과거의 예를 볼 때, 이번 시리즈의 성패가 양팀의 6월 분위기를 좌우하게 된다. 게다가 두산은 불과 반게임 차로 엘지에 앞서 있다. 단순한 시리즈가 아닌 이유다. 앙숙전은 기싸움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실력은 두번째이고 기싸움에서 확실히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리드하고 있어도 불안하다. 앙숙전은 분위기가 좌우한다. 점수 차가 몇점이건 간에 분위기가 넘어가면 5점 차든 10점 차든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그래서 끝까지 긴장을 풀 수 없다.


오늘 경기는 앙숙전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9-7이란 점수가 말해주 듯 박빙이었다. 주키치가 일찍 무너져 게임은 쉽게 흘러갈 듯 보였지만, 앙숙전은 작은 플레이 하나에도 분위기가 넘어가기 쉽다. 도루 하나, 호수비 하나, 뭐 이런 것들이 분위기를 업시킬 수 있고 경기 흐름을 바꾸곤 한다. 그 역할이 오늘은 오지환이었다. 비록 5타수 1안타로 부진했지만, 그 1안타가 필승 계투조로 나온 이재우에게 뽑은 홈런이었다. 등판해서 제구가 잡히기도 전에 맞은 홈런으로 이재우는 안타와 볼넷을 내주고 내려가고 말았고. 베테랑 투수로서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이 홈런으로 엘지 타선은 살아났고 맹추격의 발판이 되었다. 만약 이재우 뒤를 이어 올라온 홍상삼이 분위기를 셧다운시키지 못했다면 오늘 경기 결과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홍상삼은 비록 실점도 하고 9회 이대형에게 홈런도 맞긴 했지만, 자신감있는 공을 뿌렸다. 특유의 건방구름 잔뜩 낀 표정은 홍상삼이 컨디션이 좋을 때 짓는 표정이다. 그 표정에서 이미 승리를 예감하긴 했다. 


[사진 출처 : OSEN]


타선은 오늘도 뻥뻥 터졌다. 워낙 김진욱 감독이 주키치에 강한 타순을 짜긴 했다. 박건우-민병헌-김현수-홍성흔-오재원-허경민-양의지-김재호의 타순. 특히 오재원은 좌타자임에도 0.786의 가공할 타율을 갖고 있었고, 오늘도 2타수 1안타 1득점을 올렸다. 결국 주키치는 3이닝 5자책 6실점. 무려 104개를 던졌다. 홈런을 날린 홍성흔, 3안타의 민병헌도 잘했지만, 주목하고 싶은 선수는 김재호다. 손시헌의 백업도 억울한데 허경민에까지 밀리면서 존재감이 미미하긴 했다. 그러나 한풀이라도 하듯 오늘 4안타에 2타점을 올렸다. 타석수가 적긴 하지만 시즌 0.438의 고타율이다. 김재호를 평가할 때, 수비는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올랐지만 공격력이 미흡하다고들 한다. 그게 저평가의 원인이 되었고. 아마 올 시즌에도 주전보다 백업으로 나올 날이 훨씬 많을 것이다. FA를 맞는 손시헌에 기회가 더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김재호는 충분히 주전을 차지할 능력이 있고 시즌은 긴 만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분명 돌아갈 것이다. 


내일 선발은 김선우와 우규민이다. 김선우에겐 5이닝 2실점을 기대한다. 그동안 초반 3이닝은 잘 던지다 이후 체력이 떨어지면서 몰매를 맞기 일쑤였다. 앙숙전인 만큼 초반에 실점할 가능성도 크다. 오늘 막판에 보여준 엘지 공격력을 볼 때 분위기는 내일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우규민 역시 긴 이닝을 소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누가 먼저 선발을 내리느냐의 싸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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