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수 올슨은 허벅지 부상이다. 3년차 이정호가 메운다. 

에이스 니퍼트가 등 부상이다. 유희관이 5.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다. 

마무리 홍상삼의 공이 위력적이지 않다. 미스터 제로 오현택이 수호신으로 거듭 난다. 

고영민이 허리가 좋지 않다. 허경민이 고젯을 잊게 해준다. 

양의지가 홈 쇄도하다 넘어졌다. 박세혁이 호수비를 펼친다. 

정수빈 성장이 더디다. 동갑내기 친구 박건우가 버티고 있다. 

임재철이 초반 출장이 어렵다. 대신 민병헌이 거포 외야수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게 화수분 야구의 바이블, 두산베어스의 요즘 모습이다. 팀을 2개, 3개로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는 두산의 위력적인 뎁스다. 다른 팀들이 부러워할 만 하다. 위에 아직 이름을 올리지 않은 포텐셜들이 더 있다. 최주환, 김재환, 김강률, 김동한, 이우성, 김인태, 류지혁, 안규영 등. 게다가 역대 최강의 포텐셜인 성영훈은 아직 시동도 걸지 않았다. 더욱 희망적인건 예전엔 타자들만 화수분이었는데, 이젠 투수까지 명함을 내밀고 있다는 점이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왼손 파이어볼러만 터져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대체 이현호, 진야곱은 무얼 하고 있는지.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어린이날 시리즈를 위닝으로 이끈건 바로 이 화수분 덕분이다. 토요일 선발 출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니퍼트의 부상으로 구멍이 나자 커피감독은 주저없이 유희관 카드를 빼들었고, 유희관은 보란 듯이 승리를 따냈다. 그것도 프로 첫 승이다. 135km 수준의 직구에 불과하지만 자신감 있는 투구와 미친 제구력으로 니퍼트 이상의 결과를 보여줬다. 오현택은 또 어떤가. 마무리 역할을 유감없이 해주고 있다. 홈 플레이트에서 횡으로 변하는 공을 타자들이 쳐내기 쉽지 않다. 과거 이강철을 연상시키는 움직임이다. 김강률 같은 파이어볼러가 나온 후 올라온다면 타자들은 더더욱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야수도 진영이 탄탄하다. 가장 활약이 뛰어난건 허경민이지만, 이번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빛난건 단연 박세혁이다. 해태 박철우 선수의 아들로도 유명한 그는 원래 양의지, 최재훈에 이은 3번 포수다. 이토 코치의 황태자였던 최재훈에 밀려 백업 출장조차 하기 어려운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양의지의 컨디션 난조로 잡은 기회에서 그는 포텐셜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안정적인 투수 리드는 물론 블로킹까지 수준급이더라. 상대적으로 아쉬운건 도루 저지율과 타석에서의 자신감. 적어도 타격은 장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감안하면 충분히 개선되리라 본다. 대학 시절에도 나름 장타자였고. 이로써 두산은 주전 포수 양의지에 좌타 박세혁과 레이저 송구 최재훈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박세혁은 이두환을 보고 반해 포수를 하게 되었고, 롤모델은 요미우리의 아베란다


두산으로선 주전들의 잔부상이 많은 5월이 위기다. 더스틴 니퍼트, 양의지, 이용찬, 게릿 올슨, 김현수, 김동주, 이종욱, 김재호 등이 이런저런 부상으로 전력 제외되었거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반기 팀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어린이날 시리즈를 잡았으니 한시름 놓은 기분이다. 또한 작년 어린이날 시리즈 패배를 설욕까지 했으니 이번 주말 경기의 또 다른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오늘은 직관 갈 계획이 없었다. 요 며칠 술자리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일찍 귀가하여 쉴까 했는데, 회사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버렸다. 그 놈의 두산팬심이란게 뭔지. 누가 가자고 하면 귀는 펄럭귀가 되고 마음은 이미 잠실을 향해 날아간다. 


잠실구장에 들어설 무렵 이미 1회초부터 실점한 상태였다. 차안에서 선배와 써니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나눴다. 내려간 팔의 각도, 떨어지는 직구 구속에,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멘털문제까지. 지금에서야 말하건대 오늘 선발이 써니여서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장호연 같은 능글맞은 성격도 아니면서 140이 안되는 직구 구속으로 버티기는 쉽지 않은 터. 써니는 너무 양반같은 성격이 흠이다. 그저 5회까지 엘쥐와 비슷하게만 꾸려나가주길 바랬다. 근데 바람은 바람일 뿐. 상대 타자들은 대놓고 휘두르고 있었다. 지켜보기 괴롭다. 중앙석에서 나와 구장 내에 있는 불량식품들로 대충 허기를 채웠다. 경기는 내내 9회말까지 답답한 상황을 연신 카피 앤 페이스트를 해댔다. 이거이거 5월의 악몽이 다시 반복되는건 아닌가 싶었다. 



얼마 전 포스팅 한 '4월의 허슬두'에서 언급했듯이 근자 몇년간 두산에게 5월은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봄 햇살이 잠실벌에 내리 쬐기 시작하면 곰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무너지기 시작했고,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 추락의 발단은 어린이날 시리즈였다. 봄날의 곰에게 엘쥐란 뭔가 꺼림칙한 존재였다. 잠실더비는 객관적인 전력 차이와 상관없는 기싸움이니까. 마치 고교야구와 비슷하다. 한번 말리면 계속 말리게 되는.


결국 어린이날 시리즈 첫 경기는 놓쳤다. 게다가 내일 선발 예정되어 있던 니퍼트가 아파서 한번 거른단다. 대신 선발은 유희관이다. 확실하게 경기를 매조지 할 수 있는 에이스가 빠진다니 기분이 좋지 않다. 그나마 자기 공을 두려움 없이 던질 수 있는 유희관이라니 기대는 갖게 된다. 


사진은 홍성흔이 홈런치고 들어오는 장면이다. 중앙석에서 찍으면 뷰가 탁 트인다. 게다가 홍성흔의 홈런이라니 가슴까지 시원하다. 올해 홍성흔이 없었다면 두산의 클린업은 어땠을까 싶다.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기계는 2할 7푼대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고, 두목곰은 2군 안가는게 다행일 정도다. 홈경기 승률 50%도 안되는건 중심타선의 침묵 때문. 참고로 나의 올 시즌 직관승률은 제로다. 1무 3패. 언제쯤 승리의 직관을 할 수 있으려나. 



어느 팀이나 한 시즌 성패를 좌우하는 경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두산에게는 어린이날 시리즈가 그런 경기 가운데 하나죠. 아마 lg는 더 절박할겁니다. 늘 4월에 좀 치고 달리다가 어린이날 참패를 계기로 쭈욱 미끄러져 왔으니까요. 거의 어린이날 트라우마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근데 올해는 사정이 좀 달라졌네요. 1승 2패로 밀리면서 lg는 상승세를, 두산은 완만한 하향세를 당분간 그릴 듯 합니다. 우울하네요.

하지만 두산은 결국 이겨낼겁니다. 이번 시리즈에서의 패배가 타자들의 극심한 부진 때문이었으며, 투수들은 나쁘지 않았거든요. 찬스에서 살려내지 못한 몇번의 찬스가 점수로 연결되었다면 아마 두산은 쉽게 내주진 않았을겁니다. 뭐 모든 팀에 if라는 가정을 붙이면 우승못할 팀도 없겠지만, 어쨌든 두산이 강팀이란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구요. 그 부활의 계기를 누가 어떻게 마련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다음주 sk전이 전반기의 운명을 가르는 분수령이 되리라 봅니다.

덧글...
신은 두산에게 최고의 야수를 주었지만, 최악의 왼손 불펜을 주었습니다. 시즌 전에는 최고의 야수가 최악의 왼손 불펜을 커버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번 어린이날 시리즈를 치르면서 반대의 상황을 우려하게 되네요. 특히 sk를 꺾기 위해서는 더더욱...

 

'올해 두산은 힘들겠다...'

롯데팬 후배가 위로를 건네자 제가 답한 말입니다. 단순히 3패 때문이 아니라, 어린이날 매치는 3연전 이상의 파급효과를 갖고 있기에 그렇게 대답했죠. 굳이 따진다면 3패가 아닌 6패나 9패쯤 해당하는 충격이랄까요. 하여간 이 트라우마를 빨리 털어버렸으면 좋겠는데요. 언제 어떻게 이 슬럼프에서 벗어날지 참 걱정스럽습니다. 이럴 땐 안쌤, 두목곰, 홍포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말이죠.

경기 내용도 좋지 못했습니다. 3연전 동안 2-22라는 스코어를 기록했는데요. 그중에는 완봉패 포함이구요. 이상하리만큼 두산 방망이는 물에 쩔은 듯 무겁게 돌아갔고, 두산 마운드는 철저히 털렸습니다. LG에게 스윕당한게 언제였는지 기록을 뒤적이지 않아 모르지만, 무척 치욕적인 패배인건 확실하고... 떠올리기조차 수치스럽네요. 삼전도의 굴욕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제 한화랑 3연전 합니다. 일단 연패에서 벗어나는게 중요하고, 어제 일은 지나간 일로 묻어버리는 놀라운 단순함도 필요하죠. 코칭스탭, 선수들, 팬님들 사흘간 모두 욕보셨습니다. 너무 야구만 보지말고 가끔씩은 하늘을 보는 것도 좋을듯 싶네요. ㅡㅡ;;


'허걱... 어.. 어떻게 저런 일이...?'

1회 박경수에게 3점 홈런을 맞고 한동안 멍해지더군요. 정재훈이 초반에 연타맞고 실점은 했지만, 그래도 꾸역구역 추가 실점은 하지 않겠거니 했었는데... 3점 홈런이라뇨? 충격과 공포는 이때 쓰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승부는 여기서 갈렸습니다. 2점차라면 그닥 어렵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5:0이라면 이미 분위기는 넘어간 셈이었죠. 이후 두산선수들의 굼뜬 플레이와 LG선수들의 기세등등한 표정은 뭐... 참... 보기 힘든 장면이자, 계속 어려운 상황으로 끌려가더라구요. ㅜ.ㅜ

어떻게 보면 LG와의 어린이날 매치에서 대패를 당하는게 차라리 낫지 싶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구요. 두산선수들도 반성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저도 2회까지인가 보고서는 띄엄띄엄 보다가 6회 넘어가서는 아예 신경껐습니다. 혹시나 역전의 기미가 보일래나 싶기도 했지만, 상승세를 탄 LG는 바닷속 용궁에서 도망친 토끼마냥 이미 저 멀리 달아나 있었습니다.

굳이 승패의 책임을 묻자면 정재훈입니다. 오늘 전반적으로 공이 높더라구요. 정재훈의 주무기는 타자 배꼽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는 포크볼인데, 타자 가슴에서 배꼽으로 떨어질 정도로 제구가 안되었습니다. 결국 밋밋한 그 공만 노리던 LG선수들은 배팅볼 치듯이 신나게 휘둘렀구요. 휘두르는 족족 펜스까지 굴러가기 바빴습니다. 반면 심수창은 낮게 제구가 잘 되었구요. 물론 심수창이 오늘 소위 공이 긁히던 날이기도 했지만, 두산타자들의 성급한 승부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초반에는 최준석 제외하곤 거의 3구 이내에 내야땅볼로 물러났습니다. 3만 5백명의 관중앞에서 좀더 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심수창은 분명 사냥 가시권에 들어왔을텐데 말이죠.

뭐 어쨌든 경기는 졌습니다. LG팬님들 축하드리구요. 우리 두산선수들 크게 개의치 말고 이왕 진거 화끈한 경험했다고 생각하고 내일 분투해주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오늘 잠실구장에 갔던 어린이들은 인생이 늘 해피엔딩은 아니라는거... 깨달았을겁니다. 하지만 늘 화창한 날만 있을 순 없고... 가끔은 이렇게 폭풍우가 매섭게 치는 날도 있다능... 그리고 나도 소시적에 무참하게 깨지던 경기도 묵묵히 지켜봤었기에... 지금의 맷집(?)이 생겼노라고 위로해주고 싶네요. ㅡㅡ;;


2005년 5월 5일 어린이날.

이 날은 큰아버지와 자형과 함께 야구를 봤던 날이었다. 큰어머니 병간호 하시는 큰아버지도 뵐 겸, 야구도 같이 관람할 겸, 겸사겸사 잠실구장을 찾은 터였다.


비록 큰아버지는 LG팬이셨지만 당시 야구장에서 같이 소리쳐 보니 밖에서 뵐 때와 너무 달랐다. 든든한 아버지를 다시 뵙는 느낌이었다. 아울러 돌아가신 아버지와 생전에 한번이라도 야구장에 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배어나오던 하루였다.

경기는 너무 극적으로 두산이 승리했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홍성흔의 허슬플레이가 제 값을 하던 경기였다. 내  생애 이렇게 극적인 승리가 있었을까 감격해 했던 날이었다. 언제 봐도 가슴 벅찬 승리의 순간. 홍성흔의 헬멧쇼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두산베어스의 507대첩에 이은 또 하나의 505쾌첩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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