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발리를 꿈꿨던 건 제주에서 처음 서핑을 배울 때다. 


잔뜩 구름 낀 아직은 쌀쌀한 오월의 어느 날, 누르스름한 해변에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파도가 거의 없는 바다 위에 어설프나마 서프 위에 몸을 띄웠다.  서퍼들은 이런 바다를 장판같다며 재미없어 한다. 하지만 초보로선 용기 낼 수 있는 바다이기도 하다. 그 잔잔한 바다의 파도를 쥐어짜며  파도를 배우다 보니 문득 발리가 떠올랐다. 그래 발리의 꾸따에 한 번 가보자. 



여름 내내 양양이나 제주 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핑을 배우진 않았다. 서핑에 대한 열망도 며칠 간 식탁 위에 내팽개쳐진 찐빵처럼 식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발리에 대한 생각은 가시지 않았다. 서핑에서 비롯된 발리의 꿈이 서핑이 사라져도 식지 않은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낙엽이 스산하게 떨어지기 시작하던 시월 어느 날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린 뱃사람처럼 난 발리행 티켓을 끊었다. 


11월의 발리는 우기가 시작된다. 비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볼 것인가가 중요했다. 우선 꼬마곰과 함께 서핑을 하고, 래프팅을 타고, 제트스키나 파라세일링 등을 하리라. 그리고 꼬마곰도 좋아하는 마사지도 받아보리라.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여행은 늘 변덕 심한 사춘기 소녀처럼 꿈틀거렸다. 



먼저 포기해야 했던 건 서핑. 파도가 너무 세서 꼬마곰이 하기엔 위험하단다. 이게 웬말? 서핑 때문에 찾은 발리였는데.. 웬만하면 도전하겠는데 꼬마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말에 돌아서고 말았다. 대신 워터붐이라는 워터파크로 행전지를 정했다. 완전히 꼬마곰을 위한 선택이다. 워터붐은 그리 크지 않지만 깔끔하고 붐비지 않아 좋았다. 가장 난이도 높은 것 빼곤 타볼 건 대충 다 타봤다. 그 중 부메랑이라는 슬라이드는 처음에 공포, 그 자체였으나 타고 난 후 별거 아닌 녀석임을 알아차렸다. 꼬마곰과 입에서 단내 나도록 타고 놀았다. 하루 해가 짧았다. 


마사지샵 사장님이 발리에서 가장 만족도 높은 건 래프팅이라 하셨다. 과연 그 말씀은 옳았다. 오지에서 출발하는 래프팅은 강 양쪽으로 솟은 원시림과 그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뚫고 가는 코스였다. 이런 그림 같은 풍경은 스위스나 라오스의 그것과 코스의 격을 달리 한다. 그렇다고 한가롭게 풍경을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살이 만만치 않다. 4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코스도 있으니 살짝 무섭기도 하다. 그래도 꼬마곰도 탄 수준이니 그리 겁 먹지 마시라. 마음을 내려놓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대신 파라세일링,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의 해양 스포츠는 실망스러웠다. 요원들의 안전의식이 희박해 순간 순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쯤은 즐겨볼 만 하지만 추천하고 싶진 않다. 특히 파라세일링은 보라카이에서와는 달리 시간도 짧고 경치도 멋지지 않았다. 백사장에서 도움닫기를 하는 파라세일링일 줄은 미처 몰랐다. 보라카이의 파란 바다를 가르는 하얀 요트가 몹시도 그리웠다. 



발리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게 매력이다. 아름다운 발리의 자연을 품고 있는 사원은 때론 수백 미터 절벽 위에, 때론 고즈넉한 숲 속에 수 백년을 웅크리고 똬리 틀고 있다. 사원을 벗어나 도로를 달리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부대들을 보게 되고, 우붓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나도 몰래 지갑 속 루피아를 세게 한다. 세미냑의 아기자기한 카페거리에서 맛 본 아이스크림은 동화처럼 달콤했다. 또 산간 지방에 펼쳐진 계단식 논은 어떠한가. 그 가파른 경사의 한 줌 논에 벼를 심고 물을 대는 농부를 보면 손자의 볼을 어루만지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 스페인 사내들, 바가지 씌울 줄 모르는 솔직한 가이드까지 발리의 얼굴들이 벌써 그립다. 다시 발리에 가고 싶어진다. 한국에 도착한 후 Widarsa와 나눈 카톡을 보니 더욱..


Matur Suksma, Bali. 

감사합니다, 발리. 



꼬마곰이 좋아하는 영화 보러 갔다. 제목은 몬스터 대학교. 몬스터 시리즈 중 세번짼가 네번째다. 사실 꼬마곰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주인공 설리반 보다는 어린 꼬마 여자아이 '부'다. 그냥 말도 제대로 못하는 여자 아기인데, 꼬마곰에게는 가장 귀여운 모양이다. 몬스터 대학교에는 '부'가 출연하지 않지만, 어쨌든 영화는 재밌게 봤다. 



이 영화는 왜 마이크와 설리반이 몬스터 주식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과거로 돌아간 스토린데 스타워즈 시리즈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설리반 보다는 마이크. 마이크의 빛나는 과거와 왜 설리반과 친해지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보다 보니 역시 픽사 영화 답게 어른이 봐도 괜찮지 싶다. 특히 꿈을 잃지 않으면 언제든 이룰 수 있다는 다소 진부한 스토리도 설득력 있게 다가 온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스타인 설리반이 사실 처음엔 우편실 근무자였다는 설정도 요즘 같은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시사점을 준다. 



그리고 픽사의 보너스 애니메이션 The Blue Umbrella. 우중충한 도심 속에서 벌어지는 우산들의 러브스토리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잔잔한 감동이 있는 이 동영상은 오늘같이 비오는 날에 제격이다.  



지난 한가위 연휴 때 장동산림욕장에 잠깐 들렀다. 대전에서 갈 만한 곳 중 하나가 장동산림욕장인데, 숲과 개울이 있어 찾을 때마다 마음이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특히나 길게 나있는 황톳길은 맨발로 걷기에 아주 그만이다. 발바닥으로 뭉개면 발가락 사이로 간지르는 듯 삐져 나오는 황토 진흙은 발건강에도 좋아서 장동산림욕장을 찾고 싶어하는 주된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연휴 때 찾은 산림욕장은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장동산림욕장이 좋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대전에 쉴 만한 곳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 겨우 주차하고 오른 산림욕장은 몇년 전 왔을 때나 별 달라진 것이 없다. 길게 뻗은 길 한쪽엔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고, 그 양 옆으로 시원한 숲과 드문드문 쉴 공간과 개울이 흐른다. 적당히 황톳길 밟다 발을 씻기에 적당하다. 


꼬마곰과 맨발로 황톳길을 걸었다. 기억이나 할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왔을 땐 꼬마곰을 업고 다녔다. 그래도 제법 많이 컸다. 처음엔 생경한 느낌이 재밌는지 꼬마곰이 여기저기 밟아댄다. 그러나 금방 싫증이 났는지 돌연 그만 하잔다. 이런... 왠만하면 끝까지 황톳길 밟으며 오르려 했는데... 싫다는 꼬마곰을 끌고 올라갈 순 없다. 어쩔 수 없이 꼬마곰과 옆 세면대로 가서 발을 닦았다. 다음에 올 땐 꼬마곰과 끝까지 한번 오르고 싶다. 그땐 꼬마곰이 좀더 성장했을게다. 몸도 마음도.



올해 여름휴가는 제주도다. 

꼬마곰이 노래를 부른 탓이다. 


어디서 누구에게 좋다고 들은건지 모르지만, 꼬마곰에겐 제주도 바람이 들어 버렸다. 외국을 얘기해도 제주도다. 사실 개인적으로 휴가지로 제주도는 마뜩찮았다. 왠지 바가지에 복잡할 듯 싶었다. 게다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한여름 아닌가. 초등학교 방학에 맞추다 보니 가을은 언감생심이다. 사실 내가 계획을 잡는다면 가을쯤 올레코스를 돌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결정권은 꼬마곰에게 달려 있는걸. 



4박 5일 계획은 3개 코스로 잡았다. 금능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한 서부권, 쇠소깍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 사려니 숲길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 그리고 프로그램은 꼬마곰 중심으로 짰다. 말 타고, 카트라이더 타고, 바다에서 수영하고. 하여간 2013년 여름휴가는 제주도다. 



밤새 비가 주룩주룩 내려 촉촉한 아침이다. 이런 촉촉한 날 안개까지 살짝 내려와 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다. 덥지도 해가 눈부시지도 않은 촉촉한 공기, 생각만 해도 상쾌하다. 이런 날엔 집에 있기 아쉽다. 아침부터 가족을 재촉해 산책을 나섰다. 장소는 분당 중앙공원. 


분당 중앙공원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도, 쉽게 찾는 장소는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 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다. 단만에 왔다.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또 찾을까. 주차장에 주차한 후 공원을 크게 한바퀴를 걷기로 했다. 구름 낀 하늘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산책하기엔 더 할 나위 없이 쾌적한 조건이다. 산책로는 울창한 나무들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공원이 근처에 있다는건 정말 축복이다. 


꼬마곰은 탄천이 불어난게 신기한 모양이다. 탄천 쪽으로 내 손을 잡아 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홍수를 걱정하는 눈치다. 요새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유난히 무서워 한다. 원래 겁이 많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자연참사 동영상을 본 모양이다. 꼬마곰에게 '그런 지진이나 홍수는 쉽게 나는게 아냐. 걱정 안해도 돼.' 라고 안심을 시켜 줬다. 이런 말이 자극적인 영상의 임팩트를 지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에휴.. 



야외공연장에는 오늘 저녁에 있을 파크콘서트 준비가 한창이다. 김현철과 이루마의 토크 콘서트라고 하는데, 비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나두 왠만하면 갈까 하는데, 역시나 날씨가 변수다. 야외공연장 뒤쪽으로 올라 팔각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울창한 숲 밑으로 펼쳐진 오솔길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기분 좋은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토끼 한마리를 발견했다. '이런 곳에 왠 토끼일까?' 혹시나 도망갈까 싶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왠걸... 전혀 사람을 무서워 않는다. 그저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그리곤 태연히 나뭇잎만 먹는다. 살그머니 다가갔던 내가 머쓱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토끼는 야생토끼는 아닌 듯 싶다. 털 색이 야생의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애완용은 더더욱 아니다. 주위에 주인은 없었으니까. 결국 공원 측에서 방생하고 키우는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을 이렇게 무서워하지도 않는 거 보면 필시 그럴 것이다. 그리고 공원 내엔 천적이 없을테니 번식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는 궁금했다. 다시 어딘가에서 보호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한참 동안 식사하는 토끼를 뒤로 하고 공원 산책을 마쳤다. 꼬마곰은 중간중간 수로에서 물장난도 쳤다. 힘들긴 해도 같이 걷는 시간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아스팔트 위에서는 빨랐던 걸음걸이가 숲속에선 느릿느릿 걷게 된다. 생각도 천천히 하게 되고, 나무도 오래 쳐다보게 된다. 산책하는 동안 비가 안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또 비가 왔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숲에서 맞는 빗방울은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도심에서 맞는 것과는 다르니까.


덧글..

예전 뉴스에서 여의도 공원에 방생한 토끼가 치킨을 뜯어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음식물이 토끼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토끼의 본능까지 바꿔버린 것이다. 분당 중앙공원에는 다행히 KFC도 패스트푸드점도 근처에 없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게다. 게다가 나뭇잎을 탐닉하는걸로 그 토끼를 봐서도 그렇다. 하지만 어디서나 동물에게 먹이주는건 신중해야 한다. 귀엽다고 던져주는 먹이가 결국 동물의 자생력을 해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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