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잠실 라이벌전이 기대된다고 하자 회사 선배가 말하더라. "엘쥐는 라이벌이 아냐. 앙숙일 뿐이지." 그렇다, 언제부터 엘지가 라이벌이었다고. 우린 그저 앙숙이었을 뿐이다. 한쪽이 지면 한쪽이 이기는 제로섬 게임처럼 엘지는 앙숙일 뿐이다. 라이벌엔 져도 앙숙에 지면 화나는 이유다. 


이번 현충일 시리즈에 더 관심이 모이는건 두 팀이 모두 상승세에 있기 때문이다. 악몽의 5월을 보낸 후 2연승 중인 두산과 최근 5연승 중인 엘지 모두 컨디션 최정점이다. 과거의 예를 볼 때, 이번 시리즈의 성패가 양팀의 6월 분위기를 좌우하게 된다. 게다가 두산은 불과 반게임 차로 엘지에 앞서 있다. 단순한 시리즈가 아닌 이유다. 앙숙전은 기싸움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실력은 두번째이고 기싸움에서 확실히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리드하고 있어도 불안하다. 앙숙전은 분위기가 좌우한다. 점수 차가 몇점이건 간에 분위기가 넘어가면 5점 차든 10점 차든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그래서 끝까지 긴장을 풀 수 없다.


오늘 경기는 앙숙전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9-7이란 점수가 말해주 듯 박빙이었다. 주키치가 일찍 무너져 게임은 쉽게 흘러갈 듯 보였지만, 앙숙전은 작은 플레이 하나에도 분위기가 넘어가기 쉽다. 도루 하나, 호수비 하나, 뭐 이런 것들이 분위기를 업시킬 수 있고 경기 흐름을 바꾸곤 한다. 그 역할이 오늘은 오지환이었다. 비록 5타수 1안타로 부진했지만, 그 1안타가 필승 계투조로 나온 이재우에게 뽑은 홈런이었다. 등판해서 제구가 잡히기도 전에 맞은 홈런으로 이재우는 안타와 볼넷을 내주고 내려가고 말았고. 베테랑 투수로서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이 홈런으로 엘지 타선은 살아났고 맹추격의 발판이 되었다. 만약 이재우 뒤를 이어 올라온 홍상삼이 분위기를 셧다운시키지 못했다면 오늘 경기 결과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더불어 홍상삼은 비록 실점도 하고 9회 이대형에게 홈런도 맞긴 했지만, 자신감있는 공을 뿌렸다. 특유의 건방구름 잔뜩 낀 표정은 홍상삼이 컨디션이 좋을 때 짓는 표정이다. 그 표정에서 이미 승리를 예감하긴 했다. 


[사진 출처 : OSEN]


타선은 오늘도 뻥뻥 터졌다. 워낙 김진욱 감독이 주키치에 강한 타순을 짜긴 했다. 박건우-민병헌-김현수-홍성흔-오재원-허경민-양의지-김재호의 타순. 특히 오재원은 좌타자임에도 0.786의 가공할 타율을 갖고 있었고, 오늘도 2타수 1안타 1득점을 올렸다. 결국 주키치는 3이닝 5자책 6실점. 무려 104개를 던졌다. 홈런을 날린 홍성흔, 3안타의 민병헌도 잘했지만, 주목하고 싶은 선수는 김재호다. 손시헌의 백업도 억울한데 허경민에까지 밀리면서 존재감이 미미하긴 했다. 그러나 한풀이라도 하듯 오늘 4안타에 2타점을 올렸다. 타석수가 적긴 하지만 시즌 0.438의 고타율이다. 김재호를 평가할 때, 수비는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올랐지만 공격력이 미흡하다고들 한다. 그게 저평가의 원인이 되었고. 아마 올 시즌에도 주전보다 백업으로 나올 날이 훨씬 많을 것이다. FA를 맞는 손시헌에 기회가 더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김재호는 충분히 주전을 차지할 능력이 있고 시즌은 긴 만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분명 돌아갈 것이다. 


내일 선발은 김선우와 우규민이다. 김선우에겐 5이닝 2실점을 기대한다. 그동안 초반 3이닝은 잘 던지다 이후 체력이 떨어지면서 몰매를 맞기 일쑤였다. 앙숙전인 만큼 초반에 실점할 가능성도 크다. 오늘 막판에 보여준 엘지 공격력을 볼 때 분위기는 내일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우규민 역시 긴 이닝을 소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누가 먼저 선발을 내리느냐의 싸움이 될 듯 싶다. 



두산의 내야진이 얼마나 뎁스가 깊고 럭셔리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나왔네요. 어제 한화전에서 막판에 이원석-김재호-손시헌-이대수로 이어지는 내야라인을 선보였거든요. 모두 유격수 출신인데다 다른 팀에 가면 주전을 할 선수들인데 후보로 출전해 1루에서 3루까지 채워놓은거죠. 주전멤버는 오재원-고영민-손시헌-김동주로 국대급 수준인데요. 백업으로 구성해도 왠만한 다른 팀 1군보다 면면이 화려하네요.(수비력만 보면...)

그래서 한편 이대수, 김재호, 이원석에게는 미안한게 사실이에요. 풀타임 주전의 실력을 갖추고도 벤치에서 응원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래서 지난 스토브리그에 트레이드를 주장하기도 했었는데요. 지금 보니 트레이드가 별로 필요없을꺼 같네요. 오재원 부상에서 보듯 한 시즌 내내 부상선수 없이 구단을 운영하기는 힘들구요. 탄탄한 백업멤버가 있어야 기존 선수들도 실력이 일취월장하죠. 그리고 결국 수비가 탄탄한 팀이 단기전에서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백업멤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아의 양현종이나 히어로즈의 이현승과의 트레이드를 꿈꾸기도 했는데... 이젠 접을랍니다. 쏠쏠한 좌완도 좋지만 탄탄한 내야가 더 눈에 쏙 들어온다능... 넘 설레발 팬심인가요? ㅎㅎ


eunie2님과 김재호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는지, 어느 정도 아는 사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선수를 아끼는 팬의 마음과 팬의 정성을 마음에 새기는 선수의 모습을 보니 야구가 참 아름다운 스포츠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엠팍에서 우연히 김재호의 미니홈피를 보고 선수와 팬이 교감하는 두산팬이란게 새삼 뿌듯해지네요. 그리고 김재호 꼭 멋지게 이뤄내기를 바랍니다.


목이 약간 쉬었습니다. 비록 8연패한 경기였지만 정말 코리안시리즈인양 열심히 응원한 덕분입니다. 아쉽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롯데가 더 잘했으니 진건 당연하겠죠. 같이 잠실야구장에 간 롯데팬 선배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뭐 축하는 해주는데... 가슴이 먹먹해 오더만요.

한마디로 롯데의 이대호와 가르시아에게 완패한 날입니다. 따라갈만한 분위기에서 두명에게 투런포를 맞은게 결정적이었죠. 두산의 공격력은 찬스에서 몇번 날린 것 빼고는 나쁘진 않았습니다. 다만 약팀들이 대개 역전하지 않을만큼만 따라가는데 아쉽게도 두산이 그런 모습을 오늘 보여줬습니다. 전혀 두산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면서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두산의 투지를 봤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허슬두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예전의 가공할 위력을 다시 재현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 홍성흔의 기습번트 안타 이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어떻게든 살아나가겠다는 의지 눈에서 불을 뿜더군요. 롯데전 1차전의 쓰리런 홈런만큼 기뻤습니다. 이대호의 뒤뚱대는 수비는 안습이기도 했지만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2. 김재호 삼진 이후 헬멧던지기
오늘 경기의 마지막 타자는 김재호였는데요. 강영식에게 삼진을 당한 후 못내 분한 듯, 방망이를 땅에 버리고 헬멧으로 땅을 치더군요. 그렇게 아쉬워하고 분해하는 모습이 김재호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보구요. 그 투지를 계속 살려 일취월장하기 바랍니다.

3. 홍성흔 삼진 이후 방망이 집어 던지기
오늘은 져서 그런가? 계속 이런 모습만 떠오르네요. 홍성흔이 강영식에게 8회말인가 삼진으로 물러날 때였는데요. 화이팅 넘치면서도 예의바른 홍성흔이 방망이를 집어 던지는 경우는 오늘 처음 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두산선수들이 승리에 목말라 있었는데요. 역시 그래도 홍성흔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구나 싶었습니다.

4. 최주환의 2루타
최주환이 채상병 대신 대타로 들어설 때 롯데팬 선배가 묻더군요. 뭐하는 친구냐고... 최주환은 2군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치고 있는 내야수로, 우투좌타에 호타준족의 유망주라고 했죠. 선배는 그런 친구일수록 위험하다고 한마디했는데 바로 2루타로 타점을 올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최주환은 배트 스피드가 과거 전성기 김재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빠르고 센스가 있어 앞으로 대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1군에 남아 멋진 모습 자주 보여줬음 싶네요.

두산은 드라마같은 9연승 이후 8연패를 기록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군요. 지금 두산에게 필요한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올림픽 브레이크 동안 전력을 재정비해서 8월말부터는 다시 두산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바라겠습니다. 참고로 정재훈은 2군으로 내려갔고 레이어는 퇴출되었습니다.

두산베어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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