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야구란걸 알게 된건 초등학교 무렵이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 공터에는 방과 후마다 또래 애들이 모여 어설프게나마 야구란걸 하고 놀았다. 공은 테니스공에, 야구 방망이는 싸구려 알루미늄 배트에, 글러브는 가죽 아닌 비닐이었지만 갖출 것은 대충 갖추고 했었다.
그러다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이 어설픈 동네 야구놀이에 불을 당기게 해 주었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들의 폼을 흉내내며 난 박철순, 넌 김봉연, 뭐 그런 식으로 놀았다. 나야 당연히 박철순처럼 와인드업 이후 오른손을 살짝 엉덩이 근처에서 머물렀다가 공을 뿌려댔다. (참고로 나의 주무기는 '낙차 큰 직구'다)
위 사진은 우연히 박철순의 폼과 비슷하게 찍힌 내 경기 사진을 합친 이미지다. 편집이나 조작이 아니다. 근데 이렇게 보니 정말 비슷하게는 보인다. 하지만 연결동작으로 보면 별로 비슷하진 않다. 나도 나한테 맞는 폼을 개발했다고나 할까... ㅎㅎ 누군가의 폼을 흉내내는건 대개 심리적 만족감 내지는 우월감만을 느끼게 해줄 뿐, 공을 빠르게 한다든가 하는 경기력 향상에는 별 효과가 없다.
어찌 됐든, 박철순의 등장은 나로선 서태지의 '난 알아요' 만큼 쇼킹한 사건이었다. 멋진 몸매와 잘생긴 얼굴, 곱슬한 머리, 깨끗한 매너에, 섹시한 미소까지...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선수였다. 사실 박철순은 이미 마이너리그 경험을 통해 야구 수준이 국내 다른 선수들보다 한단계 위였다. 너클볼이라는 이상한 볼을 유일하게 실전에 써먹을 줄 아는 선수였고, 투구 이후 수비자세가 가장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이런 외적인 실력보다 더 나를 사로잡은건 바로 불굴의 의지다. 내가 기억하기로 박철순은 82년 우승 이후 거의 10년 넘게 부상과 재기를 거듭했다. 허리 수술도 몇차례 했었고 병원에서 등판불가 판정도 나왔었지만, 그는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기와의 싸움에 매진했다. 그 결과 95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우승을 맛보게 된다. 95년 박철순의 성적은 9승인가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때 최고령 관련 기록들을 다 갈아치우기도 했다. (이들중 대부분이 송진우에 의해 또 경신되었지만서두...)
두산팬이라면 1995년 권명철이 마지막 타자를 처리하고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그라운드에서 울부짓는 박철순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난 내무반에서 걸레질 하며 눈치껏 TV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때의 그 짜릿한 환희감이란... 난 속으로 남 모를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와~~~ X발... 우승이다... 우승!!!! ㅜ.ㅠ '
그런 박철순이 은퇴식을 거행했다. 나두 당연히 만사 제쳐두고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진한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LG전이었는데 경기는 6 : 2론가 졌다. 경기 내내 그의 등판을 기다렸건만 끝끝내 그는 등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박철순이 등판하려면 누군가 2군에 내려가야 하는데 한번 내려가면 2주인가 못올라 오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단다. 역시 박철순 다운 결정이었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은퇴식에 욕심을 내기 마련인데...
아래는 박철순 기념 동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