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곤주는 나이키 본사 빼고는 큰 사업체가 없다. 오히려 유명한건 부가가치세가 없어 쇼핑하기 좋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살기 좋은 동네로 늘 꼽히기도 한다는데, 그런 얘기는 미국 어느 동네가도 비슷하게 들었던지라 뭐 그런가보다 하면 될 말이다. 어쨌든 참 공기가 깨끗하고 숲이 많은건 사실이고 부러웠다. 

누나네 집은 도심에서 약간 산쪽으로 올라가면 길에 있는 동네다. 인구 5만명 겨우 넘는 동네에 도심이라봐야 작은 대학가에 불과하지만. 집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공원과 어린이 놀이터가 위치해 있다. 애 키우기 딱 좋은 배치다. 우리 아기곰도 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단다. 내가 여기 도착하기 전 아기곰이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는데, 그건 집앞에 사슴 한마리가 기웃거리고 있는걸 봤을 때란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펼쳐졌으니 아기곰이 놀랄 수 밖에.. 게다가 동물 만지는걸 유독 무서워하는 아기곰에게 사슴은 사자쯤으로도 여겨졌을 터. 이렇듯 이 동네에는 야생사슴이나 산토끼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사람들도 해치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듣고도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며칠 후 내 눈으로 동네를 활보하는 사슴을 직접 목격하고선 감탄했다.

또 한번은 동네를 아침산책하는데 정말 큰 달팽이를 발견했다. 특별히 비가 온 후도 아닌데 아스팔트 위를 유유자적 이동하는게 아닌가. 그 크기만으로만 보면  한번도 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하마터면 달팽이인 줄도 모르고 밟을 뻔 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프랑스에서 요리로 먹을만 하겠구나 싶었다. 너무 신기해서 일단 손위에 올려놓고 가져가 아기곰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당연히 아기곰은 처음에 질겁했지만 나중에 살짝 손을 대기도 했다. 신기함 반 두려움 반으로 지켜보던 아기곰이 두려움을 덜어낼 즈음, 정원에 놓아주라고 했다. 달팽이의 껍질이 자꾸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기에.. 달팽이 시간을 뺐어서 좀  미안하긴 했지만, 아빠로서 아기곰에게 좋은 경험을 심어주고 싶었다.


집 뒷산에 올라봤다. 가파르지 않은 산등성이가 오르기 편했다. 숲은 우거졌고 중간중간 나무 하나 없이 펼쳐진 벌판에선 밑의 경치를 보기에 좋았다. 큰 개 두마리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 할아버지도 만났다. 어찌나 이 나라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애틋한 눈인사를 보내는지...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문화사적으로 '나는 총도 가지지 않았고 너의 적도 아니니 긴장하지 마라'는 의미란다. 어쨌든 산은 참 푸근했다. 내려와서 경고문을 보기 전까지는. 


올랐던 코스와 다르게 내려오는 길에 웬 게시판이 있어 봤는데, 경고문이었다. 내용인즉 산에는 흑곰과 쿠가가 나타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나? 아.. 그래서 그 할아버지는 개를 끌고 등산을 했던건가? 어쨌든 안만났으니 다행인거고 아는게 병인거다 싶었다. 참고로 그런 동물들을 만나면 시끄럽게 소리지르지도 말고 도망가지도 말아야 한단다. 어차피 뛰어봐야 동물들보다 빠를 수 없으니.. 그리고는 차분히 뒷걸음질로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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