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역사에 빛나는 승리 하나, 507 대첩

두산 역사에 감추고픈 치욕 하나, 508 참사.


10점차로 이기고 있다 9회말 끝내기 역전패 당한 믿지 못할 경기가 오늘 일어났다. 그것도 숙적 SK를 상대로 말이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어떻게 두산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화가 나지만, 사실 되짚어 보면 위기의 징후는 계속 있어 왔다. 투수진이 붕괴된 경고등을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애써 묻어왔을 뿐이다. 


현재 두산은 강팀인가? 냉정하게 말하면 4월까지는 그랬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라는게 내 생각이다. 우리 모두 착시현상에 빠져 있다. 우선 어제까지 두산 승률이 6할이 넘는다? 그러나 좋아할 것 없다. 리그에 2할대 승률 팀이 두팀이나 있다. 이 팀을 제외하면 5할 언저리에 있었을 것이다. 뎁스가 두텁다? 물론 남부럽지 않은 뎁스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야구장에 올라오는 선수는 9명 뿐이다. 뎁스는 장기 레이스에선 위력을 발하지만, 단기 레이스에선 다른 얘기다. 두산이 가을야구에는 꾸준히 참가하지만 주인공이 못되는 이유다. 팀 방어율이 어제 기준 3.48로 전체 1위다? 하지만 5선발 제대로 돌려보지도 못했고 계투진도 시즌 전 계획과 완전히 뒤틀려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선발진 중 그나마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는 선수는 니퍼트와 김선우 뿐이다. 이정호, 김상현, 유희관, 이재우 등은 모두 계획에 없던 '플랜 B' 였다. 예쁘게 포장하면 화수분이지만 거칠게 폄하하면 잇몸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사진 출처 : 두산베어스]


두산이 우승을 원한다면 투수 보강은 필수조건이다. 투수 보강을 하려면 트레이드가 유일무이한 답이다.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구단과 커피감독은 과감하게 트레이드 추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내년에 군입대할 선수들을 거론하며 모두 아쉬운 자원들이라고 보듬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건 핑계다. 아깝지 않은 자원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내 새끼 같은데 누군들 보내고 싶겠는가. 그러나 프로야구는 아마와 달리 비즈니스다. 주가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꺼리는건 일종의 배임일 뿐. 


그저께 기아와 SK는 김상현과 송은범을 교환했다. 대부분 SK가 패자라고 평했다. 아니다. 패자는 기아와 SK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패자다. 두 팀의 전력상승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하니까. 특히나 가을야구에서 맞붙을 확률이 높은 두 팀인 만큼 실질적인 데미지는 두산과 삼성, 넥센일 것이다. 벌써 두산은 어제 김상현에게 카운터 펀치를 맞은 바 있다. 이제 두산도 좀 더 적극적으로 세일즈에 나설 때다. 현재의 투수진은 4강권일 뿐 우승권은 분명 아니다. 이용찬과 올슨이 컴백한다 해도 트레이드 필요성은 유효하다. 사실 SK와의 트레이드는 우리가 했어야 했다. 송은범, 신승현.

  


두산 장원진을 흔히 소리없는 강자라고 합니다. 수상경력도 많지 않고,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늘 묵묵히 팀이 원할 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에, 팬들은 그렇게 부르죠. 굳이 타격성향을 따지자면 장거리는 아니고, 중거리형 교타자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느 해인가 이병규와 최다안타왕을 다투기도 했었습니다. 장원진의 장점은 야구실력만큼이나, 팀의 후배로서 또는 선배로서 조화를 잘 이루는 성격으로 유명하죠. 덕분에 현재 구단 지원 하에 소프트뱅크에서 코치 연수 중입니다. 끝나면 두산 프런트에서 스카우트와 전력분석을 맡는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장원진하면 떠오르는 경기는 LG와의 507대첩에서 동점타를 날렸을 때입니다. 507대첩이야 뭐 워낙 유명한 역사이기에 딱히 긴 설명은 하지 않지만요. 10:5로 지고 있다 9회초 주자없는 투아웃 이후 무려 5점을 뽑아 연장전으로, 그리고 연장전에서 1점을 뽑아 역전시켰던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만화속에서나 나오는 경기였습니다. 여기서 장원진은 동점타를 만들었죠. 당시 장원진의 붉게 상기되면서도 앳된 얼굴이 기억에 또렷합니다. 이 경기 이후 LG팬들의 원망은 은퇴할 때까지 끊이지 않았구요.

이렇게 한번도 다른 팀으로의 이적없이 두산맨으로 은퇴한 장원진에게 은퇴식이 없다는건 좀 의아합니다. 만약 그동안 코치 연수 때문에 기회가 없었다면, 그가 복귀하면 서둘러 은퇴식을 치러주는 것이 두산에 젊음을 바친 열정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 싶네요. 적어도 은퇴식을 하려면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여야 하구요. 뛰어난 기록을 갖고 있어야 하구요. 가급적 두산구단에 뼈를 묻어야 합니다. 히어로즈 정민태 코치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어쨌든 이적 후 다른 팀에서 은퇴했다면 조금 망설여지기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원진은 이런 조건들에서 어느 하나 빠지지 않죠. 프랜차이즈 스타인데다, 각종 훌륭한 기록을 갖고 있고, 뼈속까지 두산맨이거든요. 다만, 기존의 두산 코치진들, 가령 김광수코치도 훌륭한 기록을 갖고 있음에도 은퇴식이 없었기에, 선배들 앞에서 밥그릇 챙기기가 쑥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두산이라면 티켓을 파는게 아니라 추억을 파는 구단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에서, 장원진 은퇴식은 꼭 실현되어야 합니다.

우모 기억에는 박철순, 윤동균만이 두산구단 공식 은퇴식의 주인공이었는데요. 원년 우승의 명문구단에서 두명 정도만 은퇴식을 했다고 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뜩이나 김형석, 안경현, 홍성흔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에 대한 대우가 소홀했었는데요. 이번 기회에 이미지 쇄신도 하고 팬 프렌들리한 구단이 되었으면 하네요. 장원진 은퇴식한다고 하면 아마 구름떼처럼 관중들이 몰려들겁니다. 특별히 두산 올드유니폼데이와 맞추면 금상첨화겠구요. 지난 한국시리즈 때 김장훈 형님이 깜짝 등장해서 공연할 때 입은 져지가 바로 37번 장원진이었습니다. 아마 장훈형님도 오지 않을까요? 

예전 박철순 은퇴식에서 흐르던 My way의 벅찬 감동을 기억하시나요? 그 때의 짜릿함이 가슴에 새겨진 우모로서는 장원진 은퇴식 또한 가벼이 넘기기가 어렵네요. 대한민국의 명문답게 두산구단이 앞으로 어떤 기준을 설정해서 은퇴식을 팬들과 함께 하는 전통을 세워줬으면 합니다.


두산베어스의 전설적인 507 대첩.
9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5점을 뒤집은 이 경기는 야구는 9회 투아웃부터라는 말을 증명한다.

이 살인적인 전율을 경험한 야구팬들은 이 경기를 507 대첩으로 부른다.
이날은 두산베어스기를 집앞에 달아놓아도 되지 않을까~



507대첩’ 9회초 투아웃부터 5점차를 뒤집다.


9회초 투아웃, 스코어는 5-10.


누가 봐도 한 쪽으로 기운 상태. 승부를 지켜보던 팬들도 결과를 예상하고 대부분 떠나버렸고 덕아웃에서도 슬슬 자기 짐들을 챙기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나온 안경현의 안타. 모두가 그러려니 했다. 다음타자 홍성흔도 깨끗한 중전안타를 터뜨리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쳤다.


그런데 다음 타석에 들어선 강혁이 우측을 넘기는 파울홈런을 치자 관중석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고 결국 상대투수 차명석이 자신감있게 승부하지 못한 탓에 볼넷을 얻어 만루를 만들었다. 보다 못한 LG 이광은 감독이 마무리 최향남 투입을 지시했다. 점수차는 컸지만 주자가 꽉 차서 세이브 요건이 충족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향남이 의욕 있게 던질 수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최향남도 마음먹은 대로 던지지 못하고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타석에 섰던 김민호는 가만히 서서 타점 하나를 챙긴 셈이었다.


분위기를 감지한 김인식 감독은 최후의 보루로 이도형을 대타로 내세웠다. 8회에 최훈재를 이미 대타로 써버려서 ‘한방’이 있는 이도형이 마지막 카드였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던 최향남은 바깥쪽 직구를 택했고 이도형은 그걸 시원하게 밀어쳤다. 우중간을 가른 주자일소 2루타. 스코어는 어느새 9-10으로 순식간에 박빙의 승부가 되었다.


그래도 원아웃만 잡히면 LG의 승리로 끝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선 장원진이 집중력을 발휘해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쳐냈고 죽을 힘을 다해 뛴 대주자 이종민이 홈을 밟으면서 한국야구역사상 가장 극적인 동점 승부를 만들어냈다.


우즈의 삼진으로 9회말로 넘어갔고 LG는 선두타자 이종렬이 볼넷을 얻고 출루, 유지현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절호의 찬스를 만들어 두산을 압박했다. 다음타자는 김재현. 9회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 5타수 4안타로 쾌조의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던 상황. 역시 그 감을 속일 순 없었는지 김재현은 우전안타성 라인드라이브를 때려냈고 이대로 끝내기안타가 되는 듯 싶었으나 공은 1루수 강혁의 글러브 속에 빨려 들어갔다. 온 힘을 던져 건져낸 다이빙캐치였다.


곧바로 이어진 10회초 두산 공격. 심정수와 안경현이 연속 볼넷으로 찬스를 잡았고 홍성흔이 유격수 플라이로 투아웃이 되었지만 강혁이 우익선상을 가르는 2루타로 대망의 역전에 성공했다. 5-10을 11-10으로 만든 기적. 두산팬들은 이날을 507대첩으로 기억한다.

<글 출처 : Xports 윤욱제 기자,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원문 발췌>


경기기록표 (2000년 05월 07일)

구단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연장 득점 안타
두산 2 0 2 1 0 0 0 0 5 1 11 14
LG 1 0 3 4 0 1 1 0 0 0 10 16

양팀간 전적[두산 3승0무3패] 잠실구장[관중 26551명] 경기시간 4시간 27분

두산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0회



통산
타율
정수근
좌비 유비 좌비 二땅볼 4 0 0 0 .310
전상열 6
4구 0 0 0 0 .000
이도형 9
우중2 1 0 1 3 .217
주좌 이종민 9
0 1 0 0 .190
좌중 장원진 9
一비 우안타 투땅볼 三실책 삼진 중안타 6 1 2 1 .322
우즈
4구 좌선2 삼진 4구 삼진 삼진 4 2 1 0 .316
김동주
좌선2 유안타 삼진 삼진 유직선 삼진 6 1 2 1 .375
심정수
좌안타 4구 4구 二비 유땅볼 4구 3 1 1 2 .284
안경현
삼진 사구 사구 4구 좌안타 4구 2 1 1 0 .373
홍성흔
우안타 포一병 유땅볼 삼진 중안타 유비 6 1 2 0 .388
강혁
삼진 우선2 우안타 포파비 4구 우선2 5 2 3 1 .351
홍원기
중비 좌월2 중비 3 0 1 1 .395
최훈재 8
포파비 1 0 0 0 .143
김민호 8
4구 삼진 1 1 0 1 .167
2루타:6  3루타:0  홈런:0  도루:0  잔루:13 42 11 14 10 .315


LG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10회



통산
타율
유지현
4구 좌안타 4구 유땅볼 우안타 투희번 3 4 2 0 .311
김재현
중안타 중안타 유안타 二땅볼 우안타 一직선 6 2 4 1 .313
이병규
삼진 중안타 중희비 중안타 4구 삼진 4 2 2 2 .314
양준혁
좌선2 一땅볼 중안타 중안타 포파비 二땅볼 6 1 3 2 .224
최익성
삼진 좌안타 좌중2 一땅볼 유땅볼 좌안타 6 0 3 4 .370
윤현식 10
0 0 0 0 .000
안상준
포파비 좌비 三땅볼 우안타 삼진 유땅볼 6 0 1 0 .258
안재만
삼진 4구 삼진 2 0 0 0 .364
김선진 6
三땅볼 우비 2 0 0 0 .228
김정민
삼진 1 0 0 0 .233
조인성 3
삼진 중비 삼진 三땅볼 4 0 0 0 .239
이종열
삼진 중안타 4구 一땅볼 4구 3 1 1 0 .268
2루타:2  3루타:0  홈런:0  도루:1  잔루:11 43 10 16 9 .275


두산 경기 회수 타자 투구 타수 안타 4사 삼진 실점 자책 방어율
최용호 0.0 6 0 1 0 3 17 75 15 6 2 6 4 4 8.50
이혜천 4.9 16 3 1 1 2 14 56 11 6 2 1 5 5 2.78
김유봉 6.5 20 3 0 1 1⅓ 6 19 6 2 0 1 1 1 1.27
차명주 7.2 15 0 1 1 1⅓ 6 26 5 1 1 1 0 0 4.50
진필중 8.8 12 2 2 8 2⅓ 8 31 6 1 1 1 0 0 1.12


LG 경기 회수 타자 투구 타수 안타 4사 삼진 실점 자책 방어율
류택현 0.0 12 2 1 0 2⅓ 14 52 12 6 2 2 4 4 7.17
신영균 3.6 2 0 0 0 0⅔ 4 17 3 2 1 0 1 1 3.38
이승호 4.1 9 0 1 0 2⅔ 11 40 9 1 2 2 0 0 1.26
최원호 6.3 5 2 0 0 1⅓ 6 26 4 0 2 2 0 0 2.33
차명석 8.9 10 0 0 0 1⅔ 9 32 7 2 2 2 3 3 7.20
최향남 9.9 6 0 1 3 1⅓ 10 39 7 3 3 3 3 3 2.70


데일리 베스트 = 두산 강혁(연장 10회 역전 결승 2루타 포함 5타수 3안타 1타점)
최고수비 = 두산 강혁(9회 김재현의 강습타구 다이빙 캐치)
홈런 = 없음
심판 = 오석환(주심), 허운, 이영재, 최수원
기록정리 = 정효진 명예기자

실책 = 안상준(6회)
도루 = 양준혁 2호(4회, 2-3루)
도실 = 홍성흔(2회, 1-2루)
주루사 = 이종열(9회, 2루)
견제사 = 홍원기(4회, 2루)
폭투 = 류택현(심정수) 신영균(안경현) 최용호(이상 3회, 안재만) 이혜천 2개(4회
포일 = 없음


2005년 5월 5일 어린이날.

이 날은 큰아버지와 자형과 함께 야구를 봤던 날이었다. 큰어머니 병간호 하시는 큰아버지도 뵐 겸, 야구도 같이 관람할 겸, 겸사겸사 잠실구장을 찾은 터였다.


비록 큰아버지는 LG팬이셨지만 당시 야구장에서 같이 소리쳐 보니 밖에서 뵐 때와 너무 달랐다. 든든한 아버지를 다시 뵙는 느낌이었다. 아울러 돌아가신 아버지와 생전에 한번이라도 야구장에 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배어나오던 하루였다.

경기는 너무 극적으로 두산이 승리했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홍성흔의 허슬플레이가 제 값을 하던 경기였다. 내  생애 이렇게 극적인 승리가 있었을까 감격해 했던 날이었다. 언제 봐도 가슴 벅찬 승리의 순간. 홍성흔의 헬멧쇼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두산베어스의 507대첩에 이은 또 하나의 505쾌첩이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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