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은 방대하지만 스토리는 좀 황당무계하다는게 재난영화의 특징이죠. 주인공에게 포커싱할 수 밖에 없는 영화적 특수성 때문이기도 한데요. 영화적 감동에 집착하다보니, 자연의 재앙에 대항하는 소수의 인간을 초인으로 과대포장하지 않을 수 없죠. 근데 이게 지나치면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됩니다. 영화 <2012>는 이런 재난영화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포맷을 보여줬네요. 장대한 스케일은, 뭐 말 할 필요도 없이, 헐리우드 기술이 총망라되어 볼만 한데요. 스토리의 황당무계함과 슈퍼맨 집착증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네요. 미국사람들 영웅 참... 좋아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종말론은 태양의 이상 폭발로 인한 지구 내부온도의 급상승... 그리고 이로 인해 연쇄적으로 화산, 지진, 쓰나미가 몰아쳐 결국 대륙이 이동된다는게 핵심입니다. 종말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신천지가 열리는거죠. 지구가 폭발해서 모든 존재물이 없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지구의 종언이 아닌, 새로운 대륙을 잉태하기 위한 자연질서의 재편입니다. 이 거대한 천지개벽에 인간은 뭐 보잘 것 없는 낙엽과도 같구요. 하지만 주인공은 낙엽중에서도 슈퍼 울트라 낙엽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는 도로를 거침없이 헤집고 뚫고 나가구요. 화산폭발도 피해 비행기를 띄우구요. 인류의 생존이 걸린 노아의 방주의 고장을 직접 고치기도 합니다. 물론 주인공인 슈퍼 울트라 낙엽은 글쓰는 직업의 평범한 이혼남입니다. (돌싱 만세~)

한가지 생각해 볼 점은 최후의 인류를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에서 노아의 방주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많거나 권력을 가진, 이른바 특권층들입니다. 제어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인류였기에, 아무래도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이 가능한 부자들에게 탑승권을 팔았던거죠. 비인간적이지만 현실감은 있습니다. 참고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에서는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는 사람들을 능력에 기반해 선발하죠. 자율성, 사회성, 동기부여, 건강, 젊음, 가족이 없을 것, 전문기술 보유 등의 기준으로 나쁜 성향을 적게 가진 사람을 뽑는 방식인데요. 170만 지원에 14만 합격입니다. 아마도 베르베르는 인류가 능동적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상상했기에 이런 지원에 의한 선발방식을 택했을겁니다. 

슬프긴 하지만 이 영화와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난다면, 특권층이 먼저 안전한 도피처를 확보한 다음 일반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상황은 재현되지 않을까요? 한국전쟁 때도 그랬구요. 베트남에서 탈출하는 미군들도 그랬으니까요. 만인은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이론상의 선언적 문구일 뿐, 현실은 냉혹합니다. 탑승권을 가진 아이가 그렇지 못한 아이에게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는 영화속 장면은 그래서 더 슬프네요. 참고로 탑승비는 10억 유로였습니다. 물론 인당이구요. 10억 유로면 얼마죠...? 허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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