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설의 주먹'은 대한민국 40대를 응원하는 영화다. 가족을 위해 직장에서 버티고 돈 벌어야 하는 아버지의 희생이 주인공이다. 소재는 격투기다. 그래서 예전 챔프란 영화도 떠올리면 대략의 스토리 라인이 그려진다. 실제로 영화는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강우석 감독 작품이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반전은 기대하지 마시라. 



영화는 '전설의 주먹'이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케이블TV 프로그램이 무대다. 처음엔 출연을 거절하지만, 가족 혹은 회사를 이유로 왕년의 주먹들이 격투 서바이벌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점점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우승에 도전하게 된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일어났던 사건 사고들은 디저트로 곁들여진다. 근데 영화는 어딘지 불편하다. 고교 시절 추억은 너무 작위적이다. 우연이 지나치면 영화라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법. 고교 동창들이 서바이벌로 모이게 되는 것도 그렇고,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에 떨어진 주인공이 동네 깡패들을 휩쓸고, 경찰의 장난에 의해 살인에 이르게 되는 것들도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PPL 혹은 홍보물 역시 그닥 반갑지 않다. CJ E&M의 XTM, 삼성 갤럭시 노트, 패드는 필요 이상 로고가 노출된다. 또 여자 PD의 무례한 말투도 거슬린다. 아, 사실 이 부분은 대단히 현실적이긴 하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볼 만하다. 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황정민, 유준상, 이요원 등은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해준다. 그러나 투캅스, 공공의 적, 실미도 등을 기억해 보면 이 영화의 한계가 대략 그려지지 않을까? 감독의 역량을 넘어서는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정직하게 담기는 감독의 역량만큼 영화는 작품이 된다. 



영화 신세계.

기대 안하고 봤다가 대박을 건진 느낌이랄까. 재밌는 영화다. 


신세계는 경찰과 폭력조직 사이에 프락치로 일하는 이정재의 고민과 선택을 그린 영화다. 경찰의 기획으로 폭력조직에 밀파되어 황정민 조직의 2인자로까지 컸지만, 이정재의 목표는 늘 현실도피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늘 목숨을 담보로 한다. 처음 시작한 사명감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제 그는 해외로 가족과 함께 뜨고 싶을 뿐이다. 여기서 주목할 건 선택의 기로에 선 이정재의 자세다. 수동에서 능동으로 변하는 그의 선택은 이 영화의 백미다. 


또 하나는 이정재를 대하는 두 조직의 태도다. 경찰은 늘 그를 소모품으로만 여긴다. 경찰에게 이정재는 언제든 오더를 내리면 수행해야 하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일 뿐이다. 게다가 이정재 주변은 경찰이 이정재도 몰래 투입한 프락치들로 넘친다. 심지어 이정재의 아내까지도. 이 모든 시나리오를 기획한 최민식의 싸늘한 시선은 경찰의 몰인정성을 대변한다. 반면 폭력조직은, 특히 황정민은 그를 친동생처럼 아낀다. 여수에서 시작한 둘의 인연은 단순한 브라더의 관계를 넘어선다. 이정재가 경찰 프락치인걸 확인한 순간에도 황정민은 이정재를 보호해주는 입장에 선다.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 이정재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정재에게 남긴 유언, '독하게 살아라'는 결국 이정재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된다. 주어진 삶에서 만들어가는 삶으로의 전환.



최민식, 황정민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다. 늘 배역 이상의 연기를 해낸다. 표정 하나, 눈가 주름 하나에도 메시지가 담기는 그들이다. 이에 반해 이정재가 그간 보여준 연기는 이들에 미치지 못했던게 사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정재는 적어도 기존의 연기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속에서 보여주는 심리변화는 압권. 이정재에게도 이런 연기가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럼 신세계의 의미란 무엇일까? 원래 영화에서 신세계는 폭력조직을 다루는 프로젝트명이다. 그러나 최민식에게는 폭력조직을 경찰의 하수인으로 길들인 편한 세상일거고, 이정재에게는 프락치에서 벗어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일테고, 황정민에게는 폭력조직을 온전히 자신의 손 아래 접수하는 세상이었을게다. 모두 지향점이 다른 신세계를 향한 욕망들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와 만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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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티켓이 있다고 해서 갑작스레 뮤지컬을 봤습니다. 황정민이 출연한 뮤지컬 '나인(Nine)'인데요. 연기력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황정민이 어떻게 변신할까 궁금했었습니다. 사실 전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 연예인이 뮤지컬 하는 것에 대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반반씩 갖고 있거든요. 조승우는 참 좋았던 케이스였는데, 허XX나 유XX 등은 성량도 딸리고 대사 전달력이 분명치 않아 이해하는데 힘들었던 기억이 있죠. 일단 황정민은 좋은 쪽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뮤지컬은 일단 노래를 잘해야 하는데 황정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노래를 잘 하더군요. 목소리도 굵고 꽤 커서 무슨 대사를 하는지 또렷했구요. 듣기에도 편안했습니다. 연기도 물론 잘하구요.

근데 결정적으로 뮤지컬은 그닥 재미없더군요. 원작의 한국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아쉬웠습니다. 뮤지컬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자전적 영화 '8과 1/2'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해서 유명해졌는데 황정민이 바로 그 귀도 역을 맡았죠.

남자주인공 귀도는 9세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추어 버린 듯한 천재 영화감독의 방황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현실은 상당히 피곤한 사람이죠. 아내에게도 이혼을 요구당하는 몽환적인 캐릭터입니다. 아내와의 화해를 위해 떠난 스파여행에서 바람피웠던 여자들이 등장하여 일은 더욱 꼬여만 가다 제작하는 영화도 망하고 와이프 루이사, 애인 칼라도 떠나고 홀로 남게 됩니다.




흡사 남자의 성장영화 같기도 하구요. 사랑과 전쟁을 뮤지컬화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람을 피운 남자의 최후를 그린 권선징악적 성격도 엿보이네요. 근데 귀도가 그렇게 카사노바 행각을 벌이게 된 사실과 과거 어린 시절의 귀도가 카톨릭학교에서 겪었던 성적 충격의 연관성이 그리 잘 표현되어 있지 않아 연결고리 구실을 잘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스토리가 설득적이지 못해 재미가 없구요. 그래서인지 관객들의 호응도 그닥 밋밋했습니다.

저는 재미없는건 잘 참는데 부자연스러운건 못견디거든요. 근데 웃기려고 했던 대사와 시츄에이션이 그렇지 못할 때 느끼는 관객으로서의 당혹감이란... 좀 거시기 합니다. 그래서 그랬나요? 앵콜도 없었구요.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들도 심드렁한 표정이더군요. 같이 봤던 후배도 그닥 재미있어 하진 않았구요. 그저 황정민을 가까이서 봤다는걸로 위안을 삼더군요. 황정민이 다른 뮤지컬을 한다면 기꺼이 볼 의향이 생겼습니다. 조승우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뮤지컬을 해도 괜챦은 배우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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