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더 무슨 말이 필요하나요?
이 정도까지 싸우고 진거라면 지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후회없이 잘 싸웠고 한국남아의 기개를 만방에 떨쳐줬고, 감독님, 코치진, 그리고 우리 선수들 너무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회사에서 이런저런 회의로 제대로 못보고 눈팅만 해서 감동을 지대루 느끼지는 못했지만, 기사만 읽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봉중근의 눈물을 보니 더더욱...

9회말 투아웃에서 고영민이 다르빗슈를 상대로 멋진 끝내기 안타를 날려줬다면 깜놀하며 우황청심환 찾았을텐데... 이 정도 투지만 보여줘도 행복할 뿐입니다.

김인식감독님이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들이 지배하는 야구판에 위대한 도전을 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위대한 도전이 아쉽지만 은메달로 끝났기에 앞으로의 도전은 계속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음 WBC에서 일본을 격파하기 위해 젊은 선수들이 부단히 실력을 연마하고, 또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금메달을 딴다면 위대한 도전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겠지요. 우리는 한국 프로야구를 열심히 응원하고 돔구장 등 인프라 투자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올해도 우모는 야구장으로 고고씽~~^^

우리 국민감독 김인식감독님, 코치, 선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졌다고 기죽지 마세요. 내일은 금메달입니다!


어제 퇴근 무렵 라디오에서 WBC 결승전 예상을 하는데 한국이 압도적으로 이길꺼라고 모기자가 예언하더군요. 순간 머리속이 멍~해지더군요. 그 기자가 바로 베이징올림픽에서 고전을 예상했던 박펠레였거든요. 고전도 고전이지만 심지어 네덜란드도 쉽지 않을꺼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박펠레가 압도적으로 이길꺼라고 했으니...
사실상 오늘의 경기는 이기더라도 겨우 이기거나 아니면 진다고 봐야 되나요...? 흠...

참고로 포스팅하는 현재까지 3:1로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펠레... 박펠레... ㅠ.ㅠ


일본이 미국을 이겨 결국 한국의 결승상대는 일본으로 정해졌습니다. 농담처럼 얘기했던 한국과 일본이 최대 5번까지 만날 수 있다는게 현실이 되어버렸네요. 아무리 더블 일리미네이션이라는 제도가 원래 그렇다 하더라도, 한 팀과 경기하는 횟수가 다른 팀과 만나는 횟수와 비슷하다면, 이 제도가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거의 한국과 일본의 더비시리즈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거든요.

야구가 축구처럼 국가간 실력차가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다고 봤을 때, 더블 일리미네이션 제도를 채택하는 한 내년에도 한일 더비시리즈가 될 확률이 농후합니다. 여전히 일본과 예선에서 두번 경기할 것이고, 본선에서도 그럴 확률이 상당히 높죠. 한국, 일본, 쿠바 3강을 본선에서 같은 조에 배치한데 대한 카스트로의 불만도 그래서 이해가 갑니다. 아무리 미국이 야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공정하지 못하게 운영하면 WBC의 권위는 떨어지고 회원은 이탈하겠죠. 과거 잉글랜드 중심의 축구 질서에 대항한 프랑스가 피파(FIFA)를 주도한 것처럼, 야구도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주도의 대회가 탄생할 수도 있는겁니다.

이는 모두 오만한 MLB의 이기주의 때문인데요. 대회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공공연히 WBC를 MLB 입성하는 선수들을 위한 장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점도 못마땅하구요. 국가대표를 평가할 때 MLB 선수가 몇명 있는가가 기준이 되는 것도 그닥 비호감이네요. 어차피 철저한 자본주의의 사회인 미국에서 MLB만큼 상업적 가치가 없는 WBC에 세심한 배려를 해달라고 하는게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요.

근데 이렇게 궁시렁 궁시렁 불만 많음에도 불구하고...
WBC를 애타게 기다리는 나는 대체 뭘까요...?


일본전 승리에 대한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군요. 뉴스에도 온통 야구얘기구요. 사람들도 모이면 모두 야구얘기 뿐입니다. 심지어 야구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정도니 뭐... 회사에서 야구 좀 안다고 알려진 덕분에 포스아웃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네요. 괜시리 뿌듯한 마음에 여기저기 규칙 설명해주고 선수들 프로필 알려주느라 조금은 어깨가 으쓱했던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WBC가 전국민적인 이슈가 된건 야구가 재밌기도 하지만, 국가대항전, 특히 일본전이라는 특수성이 크지 않은가 싶습니다. 일본전이라면 어떤 스포츠도 피가 끓는건 사실이니까요.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가 한국인 DNA에 박힌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스포츠가 국가간 투쟁의식을 합리적인 틀 안에서 해소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그래서 저도 스포츠광이 되었구요.

그런데 이제는 한일전에 대한 인식이 좀더 성숙해질 때가 아닌가 싶네요. 1회 WBC에서 일본을 꺾었을 때는 객관적인 열세를 딛고 이겼기에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는 세리머니가 꽤나 통쾌했더랬죠. 처음 보는 장면이기도 했고,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는 장면이 마치 일본땅을 점령한 듯한 느낌이랄까... 카타르시스랄까... 하여간 경기 승리만큼이나 짜릿한 전율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도 그 세리머니는 어김없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느낌은 통쾌라기 보다는 머쓱함에 좀더 가깝더라구요. 우리가 야구 종주국 미국이나 아마 최강 쿠바를 이겼을 때 저런 세리머니를 했던 적이 있나요? 꼭 일본을 이겨야만 태극기 꽂기 세리머니하는건 올림픽 챔피언 답지 않네요. 그것도 결승도 아닌 2라운드인데 말입니다. 이젠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게 흔한 일이 된만큼 승리했다고 마치 우승한 듯한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덤덤히 마운드로 나와서 하이파이브 하는 모습이 일본사람들을 더 열받게 하지 않을까요?

야구는 국제경기가 흔치 않기에 일본을 이길 기회가 축구에 비해서 적어 이런 격한 세리머니가 나왔다고 믿고 싶습니다. 아마 올 WBC에서 한국이 우승하고 또 계속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내면 일본에 대한 감정의 패턴이 달라지겠지요. 이런 과정을 겪다보면 양국이 보다 성숙한 라이벌 관계로 발전할겁니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패한 팀에 대한 매너도 생각을 해야겠지요. 축구의 반은 예의라고 K리그의 알툴감독이 얘기했는데 야구라고 예외는 아니니까요. 승리의 기쁨 표현방식도 이제는 세련되게 했으면 하네요.

어야둥둥 우리 선수들 너무 잘해서 기쁩니다. 경제도 정치도 암울한데 야구만이라도 전 국민에게 웃음을 주니 너무 기분좋네요. 올해도 프로야구 관중대박은 확실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야구 화이팅입니다. *^^*


스포츠가 국가간의 대결을 대리한다는 견지에서 본다면 이번 올림픽에서 한일전의 의미는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교과서 파동도 그렇고 독도 관련 망언도 그렇고 현재로선 결코 화합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죠. 오늘 올림픽 야구 한일전은 그런 특수관계 속에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역시 관중석에도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플래카드가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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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인식 때문인지 대결도 역시 팽팽했습니다. 김광현에 이어 나온 윤석민이 홈런을 맞아 2:0으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호는 바로 투런홈런으로 맞불을 놓았습니다. 2:2 동점. 그리고 운명의 9회. 후덜덜덜....

김동주의 안타에 이어 이대호의 보내기 번트로 맞은 1사 2루의 찬스. 하지만 이진영은 범타로 물러났구요. 이어 진갑용이 볼넷을 골라 나간 순간 김경문감독은 김현수를 대타로 내세웁니다. 김현수! 김현수가 누군가요? 두산의 상징 아닙니까? 호시노 감독이 가장 믿는 이와세를 상대로 김현수가 깨끗한 중전안타를 터뜨리네요. 푸하하하하하... 아유.. 눈물이 다나네요. 역시 김현수입니다. 아유 이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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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김현수의 도루가 이어지면서 2사 2, 3루. 여기서 이종욱은 이종욱 다운 기습번트를 성공시키면서 진갑용을 홈으로 불러들이죠. 점수는 순식간에 4:2!!! 푸하하하하하하... 역시 대한민국 리드오프는 이종욱입니다.
 
이종욱의 진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종욱이 타석에서 안타로 한점을 뽑았다면 주루 플레이로 한점을 더 뽑게 되죠. 이종욱의 도루를 잡으려던 아베 포수의 송구가 터무니 없이 중견수 방향으로 날라가면서 3루 김현수도 득점에 성공합니다. 덕분에 5:2로 달아나네요. 완전히 두산의 발야구가 일본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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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도 만만치 않더이다.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한기주의 난조를 틈타 1점을 뽑았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구요. 경기는 5:3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은 경기 내내 긴장감이 낮아지지 않았는데, 역시나 태극전사들은 승부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하하하^^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통쾌한 한일전 승리에 떠오르는 독도 광고가 있습니다. 예전에 김장훈씨가 뉴욕타임스에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광고를 냈었죠. 바로 선행가수 김장훈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는데요. 오늘의 한일전 승리는 감동이었지만, 그때의 광고는 기쁘기도 하면서 우리 자식을 우리 자식이라고 꼭 광고해야만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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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이 다른 국가와의 경기처럼 평범하게 여겨지는 날이 어서 빨리 왔음 좋겠는데, 일본이 정신을 언제 차리느냐가 관건이 되겠지요. 일본이 군국주의 망령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스포츠에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재밌긴 하지만 과도한 긴장으로 피곤하기도 하니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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