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배낭여행할 때인데요. 피사의 사탑을 보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날씨는 엄청 더워서리 역에서 사탑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지던 그런 날이었죠. 같이 가던 동행은 두어살 어린 친구였는데요. 그도 마찬가지로 찌는 더위로 그닥 유쾌한 기분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짜증나던 날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꽤 큰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서 집시 3명이 다가오더군요. 엄마 집시 10살 정도 된 딸 집시, 그리고 엄마 포대에 안겨있는 아기 집시... 평소 집시의 악명높은 얘기를 들었기에 다소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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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 집시가 내게 다가오더니 뭐라뭐라 하면서 아기 포대를 나한테 넘기려고 쑥 내밀더라구요. 어? 이게 모야? 하면서 얼떨결에 포대를 안받으려고 손사래치는 순간... 바지주머니로 뭔가 쑥 들어오는게 느껴지더군요. (허거걱)

그렇죠. 역시 엄마 집시의 손이었습니다. 한손으로 아기 포대를 넘기면서 한손으로는 바지 속의 지갑을 훔치는 아주 고단수의 손재주를 보여주더군요. 황급히 놀라서 엄마 집시의 손을 잡았을 땐 그녀가 이미 제 지갑을 잡고 있었구요.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지갑을 두고 서로 옥신각신했습니다. 다행히 완력으로 지갑을 다시 뺏긴 했지만, 엄마 집시의 욕을 한참 들어야 했습니다. (아니 이건 모... 주객이 전도된.. ㅡㅡ;;)

더욱 황당한건 대로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냥 보고만 있고 아무런 관심조차 주지 않더란거죠. 그리고 같이 있던 후배도 뭐 그냥 어? 어? 하면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었고... 하여간 그 사건은 저에게 집시에 대한 편견을 갖게 했던 체험담이었습니다. 이후로는 여행기간 내내 집시를 볼 때마다 경계의 눈초리를 하게 되었구요.

근데 왜 집시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냥 안좋은 기억이 있으니 조심하자는 1차원적인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근데 마침 집시에 대한 어떤 기사를 보면서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집시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디가나 특정 부분의 문제는 대부분 사회 구조적인 부분에서 기인하지만 사람들은 그 근본원인에는 관심을 두지 않죠. 그냥 현상만 보고 불만갖고 증오하는 습섭을 갖고 있어서리...

이 기사에 의하면 집시들은 수세기 동안 오해와 악의적인 이미지 씌우기로 지배층의 화풀이 대상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정도의 오랜 기간에 지속적인 학대라면 유태인 학살은 그냥 새발의 피 수준이 아닐까요. 집시들도 평균 유럽인의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동등한 질의 주거와 교육이 제공될 수 있었음 합니다. 유럽사람들도 낙인찍는 못된 습관에서 벗어나 각성했음 하구요. 21세기에 불가촉 천민이 뭔가요~ 부끄럽지 않나요,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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