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충동구매하듯 이 책을 집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들 중에 왜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하얀 표지에 제법 두거운 하드커버, 그리고 제목에 이끌렸을 뿐이다. (내가 본 책은 왼쪽 이미지와는 다른 하얀색이었다.) 

 

목차를 보니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약 2000년 간 아내라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기술한 책이었다. 다분히 서양의 관점이다. 동양 관점도 있을까 둘러봤지만, 딱히 보이지 않아 읽기로 했다. 꽤 두꺼웠지만, 첫 페이지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 덮을 수 있었다. 그다지 어렵지도 그다지 고민할 필요도 없는 그냥 역사적인 서술에 가까웠다.

 

이 책에서 고대라 함은 성경에 나오는 시대를 뜻한다. 당시엔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던 만큼 아내의 지위는 철저히 종속적이다. 결혼보다 하위 개념이며 가정이 평화로우면 아내의 역할은 충실히 했다고 평가받는 시대다. 하지만 결혼관에는 서로 다른 두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결혼이 종족번식과 관계있다고 믿는 유대교와 종교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기독교. 전자를 따르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아내가 행복의 대상이었기에 아내의 노출과 화려한 의상이 용인되었으나, 후자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장신구들이 비난의 대상이었단다. 그럼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시각엔 두 종교에 차이가 없었다. 

 

그리스, 로마문명을 거치면서 여자의 소유물이라는 개념은 좀더 구체화된다. 결혼식이란 신랑과 신부 아버지 간의 계약이며 이를 증거하기 위해 예물을 주고 받는 것으로 발전한다. 식장에서 신부는 아버지에게서 신랑으로 인도되는 의식을 치르는 것도 그런 때문이며, 현재도 유효하다. 종교의 권위가 맹위를 떨치던 중세시대엔 섹스가 타락의 지름길로 치부되었다 정확히는 남성의 섹스 환타지는 암묵적으로 권장하되 여성의 그것은 철저하게 은폐시켜야 했다. 중세 신학이 육체는 죄악의 근본이며 결혼은 필요악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던 까닭이다. 역사 해석에서 종교적인 관점을 제외한 18세기 계몽사상가들 역시 여성의 종속성을 의심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성의 인식은 점점 성장하여 프랑스 혁명과 미국 공화정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아내의 사회적 지위가 점차 확대되는 원동력에 대해선 별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역사적 팩트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알고 싶은 내용은 빠져있다. 이후에 벌어지는 서부개척시대, 근대, 현대의 여성은 예상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책 읽는 흥미는 급감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서양 역사 속에서의 여성 인권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미시적인 정보가 실려있으며, 페미니즘의 입문서로도 충분히 권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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