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기 전에 소설가의 성향을 보면 대충 어떤 스타일일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다른 작가들에 비해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는 과학적 호기심을 지적으로 자극하는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의 문학화'라고 해야 될까요? 과학을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조련하는 솜씨가 예사스럽지 않죠.


파피용...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그의 포스가 책 첫 페이지에서부터 물씬 풍기더군요. 과거 뇌에서 받았던 충격을 기대하며 책을 읽어 내려 갔습니다. 그런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늘 기대치를 훌쩍 넘어 버리는 그의 능력에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이번에는 인간과 우주의 탄생이라는 매우 탐색하기 어려운 주제를 삼았네요. 현대과학이 빅뱅이론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을 얘기한다면, 베르베르는 인간의 능동적인 탐험에 의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소재가 그러하듯 이야기도 일면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우주의 정착지를 향해 14만 4천명이 우주선을 타고 1000년 동안 우주여행한다는 뼈대는 그 다음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켜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죠. 우주선 안에 중력을 만들어 정상적인 도시생활을 영위하게 한다는 점, 지구를 떠난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동참하는 14만명, 그 14만명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규모의 우주선, 그리고 그 우주선을 조종하는 돛대 등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설정이 난무합니다. 하지만 이 황당한 뼈대를 독자로 하여금 과학적으로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믿게 하는 기술은 전적으로 베르베르의 글솜씨구요. 이야기에 한없이 빠져들게 하는 마력도 역시 베르베르의 힘입니다. 

그리고 14만명이 동거하는 우주선에서의 생활방식이 처음에는 '공동생산 공동분배'라는 유토피아적 사회로 시작하지만, 결국 질서유지를 빌미로 행정, 사법, 입법의 통제 위주로 회귀한다는 구조는 인간의 DNA에 새겨진 근원적 파괴본능과 권력에의 의존성을 실감하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파피용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결론입니다. 어딘지 모르는 행성에서 신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을 성경의 그것과 유사하게 묘사한 것은 베르베르식 세계관이 아닌가 싶더군요. 종교와 과학이 믹스되어 경계가 모호해지는 불확실성의 세계는 그의 소설에서 일관되게 읽혀지는 부분이죠. 솔직히 전 결론 부분을 애매하게 끝내주길 바랬으나, 베르베르는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줌으로써 오히려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버리네요.

천재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베르베르를 보면 이런 문구가 생각납니다. 
상상력의 한계가 그 사람의 한계다.

덧글 1...
참고로 위의 문구는 최경환선수가 두산선수시절 했던 말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흠 정말?)

덧글 2...
파피용에 나오는 퀴즈 하나 풀어보실래요?
저는 읽자마자 바로 눈치를 챘습니다만... (쿨럭)

이것으로 밤이 시작하고
이것으로 아침이 끝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달을 쳐다볼 때 보인다.

여기에서 이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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