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 승리에 대한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군요. 뉴스에도 온통 야구얘기구요. 사람들도 모이면 모두 야구얘기 뿐입니다. 심지어 야구를 잘 모르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정도니 뭐... 회사에서 야구 좀 안다고 알려진 덕분에 포스아웃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했네요. 괜시리 뿌듯한 마음에 여기저기 규칙 설명해주고 선수들 프로필 알려주느라 조금은 어깨가 으쓱했던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WBC가 전국민적인 이슈가 된건 야구가 재밌기도 하지만, 국가대항전, 특히 일본전이라는 특수성이 크지 않은가 싶습니다. 일본전이라면 어떤 스포츠도 피가 끓는건 사실이니까요.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에 대한 보상심리가 한국인 DNA에 박힌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어쨌든 스포츠가 국가간 투쟁의식을 합리적인 틀 안에서 해소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그래서 저도 스포츠광이 되었구요.

그런데 이제는 한일전에 대한 인식이 좀더 성숙해질 때가 아닌가 싶네요. 1회 WBC에서 일본을 꺾었을 때는 객관적인 열세를 딛고 이겼기에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는 세리머니가 꽤나 통쾌했더랬죠. 처음 보는 장면이기도 했고, 태극기를 마운드에 꽂는 장면이 마치 일본땅을 점령한 듯한 느낌이랄까... 카타르시스랄까... 하여간 경기 승리만큼이나 짜릿한 전율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도 그 세리머니는 어김없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느낌은 통쾌라기 보다는 머쓱함에 좀더 가깝더라구요. 우리가 야구 종주국 미국이나 아마 최강 쿠바를 이겼을 때 저런 세리머니를 했던 적이 있나요? 꼭 일본을 이겨야만 태극기 꽂기 세리머니하는건 올림픽 챔피언 답지 않네요. 그것도 결승도 아닌 2라운드인데 말입니다. 이젠 우리가 일본을 이기는게 흔한 일이 된만큼 승리했다고 마치 우승한 듯한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덤덤히 마운드로 나와서 하이파이브 하는 모습이 일본사람들을 더 열받게 하지 않을까요?

야구는 국제경기가 흔치 않기에 일본을 이길 기회가 축구에 비해서 적어 이런 격한 세리머니가 나왔다고 믿고 싶습니다. 아마 올 WBC에서 한국이 우승하고 또 계속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내면 일본에 대한 감정의 패턴이 달라지겠지요. 이런 과정을 겪다보면 양국이 보다 성숙한 라이벌 관계로 발전할겁니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패한 팀에 대한 매너도 생각을 해야겠지요. 축구의 반은 예의라고 K리그의 알툴감독이 얘기했는데 야구라고 예외는 아니니까요. 승리의 기쁨 표현방식도 이제는 세련되게 했으면 하네요.

어야둥둥 우리 선수들 너무 잘해서 기쁩니다. 경제도 정치도 암울한데 야구만이라도 전 국민에게 웃음을 주니 너무 기분좋네요. 올해도 프로야구 관중대박은 확실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야구 화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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