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벼르고 벼르던 영화 '인셉션'을 봤습니다. 보는 내내 머리속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의 두뇌싸움에 시간가는줄 몰랐네요. 2시간 반이 마치 1시간 밖에 안지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몰입도도 높고, 스토리 구조도 탄탄하고, 연기도 훌륭한, 보기 드문 수작이 아닌가 싶네요. 어쩌면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놀란 감독이 낸 퍼즐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거든요.

영화는 예전에 책으로 접했던 장자, 프로이트, 그리고 수업시간에 들었던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등을 떠올리게 하네요. 그 철학적 연관성에 대해 뚜렷한 관점을 갖고 있지 않기에 영화의 내면적 재구성이 힘들긴 하지만, 인터넷에 오른 여러 비평들을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그 고리의 연결구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세상은 보이네요. 지적 호기심을 무한자극하는 놀란 감독님... 놀랍습니다. 
우선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 마지막 장면, 이게 과연 꿈인가 현실인가 하는 부분은 말 그대로 여운으로 남겨둘 수 있는 장면이겠지만... 감독의 의도가 꿈과 현실을 오가는 가운데 상상적 자아와 실체적 자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거라면, 굳이 꿈 혹은 현실이라고 결론맺는 것은 의미없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관객들의 해석영역으로 남겨두는게 현명하겠죠. 그보다 더 중요한건 과연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과의 관계는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모든 것에 의심을 품은 데카르트가 발견한건 의심하고 있는 자아의 확실성이었습니다. 방법론적 회의라고 수업시간에 배웠죠. 그건 한마디로 이성이 작용하는 자아, 즉 의식세계에 주체적 지위를 부여한겁니다. 하지만 프로이트, 라캉 등으로 넘어오면서 의식은 무의식에 의해 조종되는 하나의 객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게 바로 그 이론이죠. 무의식의 공간에 어떤 하나의 생각의 씨앗을 심으면 Inception, 추출하면 Extraction 이라고 하는데요. Inception을 통해 무의식 세계에 뿌려진 씨앗이 의식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나아가 그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는 도그마가 되는겁니다. 단 전제조건은 무의식에 단초를 심는 과정을 의식세계가 인식하지 못해야 효력을 발휘하는건데요. 그건 의식세계는 무의식세계에 침투하려는 생각을 제거하려는 습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만장자 상속자 피셔 쥬니어의 꿈속에서 인식체계를 지키려는 피셔 쥬니어 인식의 공격을 받게 되는거구요. 마치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면역체계가 발동하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 대사에서 그걸 암시하는 말이 나옵니다.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는 생각이라고... 참고로 이 영화는 그냥 허투루 만든 대사가 없더이다...

이런걸 감안하면, 어렸을 적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 소름끼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의식과 자아를 지배하는 무의식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경험같은 감성적인 환경에 의해 조성되기 때문이죠. 결국 무의식 세계에 자리잡은 특정 기제가 의식세계를 리모콘으로 작용한다면, 그 사람을 노무현으로도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전두환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인데요. 그렇다면 결국 지금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우리는 무의식에 의해 움직여지는 아바타가 되는건가요? 또 이론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보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는 호접몽에까지 이를 수 있는건가요? 참 오묘한 심리학의 세계입니다. 

영화에서 꿈은 5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근데 영화를 한번 봐서는 단계별 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좀 헷갈립니다. 첫 장면에 나왔던 사이토의 꿈이 어디에서 연결되었던건지도 명확치 않구요. 따라서 영화를 한번 더 봐야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인터넷의 글들을 좀더 검색하면 분명해지겠지만, 이 영화만큼은 타인의 시각에 의지하고 싶진 않더군요. 그만큼 매력에 풍덩 빠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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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가 맘에 드는 또 한가지, 악당이 없다는 점입니다. 천편일률적인 선과 악의 대립구도(람보, 공공의 적 등)는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지하기 때문에, 끝모를 적개심과 통쾌함을 가장한 권선징악만 나열하는 유치한 이야기죠. 반면 이 영화는 꿈과 현실, 그리고 꿈 속의 꿈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헤쳐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개 선과 악은 한 인물안에 공존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죠. 그렇기에 주인공인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코브 역)가 법률상의 범법자 신분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르거나, 와타나베 켄(사이토 역)가 국경을 넘어서는 초법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부분 등은 이 영화에선 중요하지 않습니다. 

'셔터 아일랜드' 이후 또 한편의 영화다운 영화를 봐서인지 주말 오후가 풍족해졌네요. 최근 방콕같은 날씨에 지쳤는데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를 맞은 느낌입니다. 서둘러 포스팅 마무리하고 수영이나 하러 가야겠습니다. 뇌속에 무의식이 수영복을 챙기라는 명령을 내리네요. 수영장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누군가 내 머릿속에 inception을 한건지도... 모르겠... 음... 그렇담 토템을 돌려봐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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