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자신이 펼치고 싶은 영화적 실험과 대중적인 성공을 동시에 구가하고 있는 감독은 거의 없을 겁니다. 기존의 영상문법과는 차별화된 스타일을 고집스레 끌고 나가면서도 그 안에 관객을 유인하죠. 대중과 영합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을 끌어모을 줄 안다고나 할까요? 그런 감독이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입니다. 전세계 감독들이 꿈꾸는 그런 인물이 아닐까 싶은데요. <펄프픽션>, <데쓰 프루프>, <킬빌>에서 보듯 어딘지 70년대 촌스러운 분위기를 앞세웁니다. 하지만 이 맛에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힘들죠. 타란티노는 마치 몇달 푹 삭힌 하드코어 홍어같은 맛의 감독입니다.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역시 딱 타란티노 감독 스타일의 영화네요. 지금까지의 영화에서 얘기했던 복수가 개인적인 것이었다면,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공적인 영역으로 격상시켰습니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악의 축 나치에 대한 여러 군상들의 복수가 테마구요. 복수극은 유태인 소녀 소샤나에서 시작해 소샤나에 의해 끝을 맺지만, 소샤나는 여러 인물들 중 한명에 불과합니다. 무자비한 특수 공작원 알도(브래드 피트 역)와 그의 부하 8명 모두 1/N 만큼의 무게를 갖구요. 그 총합의 끝이 관객의 감동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한명의 스타에 의지하지 않고 팽팽하게 긴장선을 유지할 수 있는 영화는 감독의 힘을 느끼게 하는데요. 타란티노 영화의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브래드 피트보다 오히려 한스 란다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왈츠가 돋보입니다. 유태인 사냥꾼의 냉혈한 이미지와, 불리한 상황에서 스파이를 자처하는 교활함, 그리고 독일인 특유의 예의바름을 똑부러지게 연기했네요. 처음엔 굉장히 젠틀하게 상대를 대하다 담배를 물면서 시작되는 그의 심문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과거 일제시대의 순사와는 또 다른 이미지더군요. 만약 한스같은 군인과 독대를 한다면 음... 오줌을 지리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요?

영화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았습니다. 원신연, 타란티노, 박찬욱 같은 색깔을 아끼는 스타일인지라... 다만 와이프는 무척 거북해 하더군요. 영화속에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 살인, 머리가죽 벗기기, 몽둥이로 죽이기 등의 타란티노적인 폭력문법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극장 나오면서 한소리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걸 왜 보자고 했냐... 보기 전에 이런 장면이 있다는건 알려줘야 되는거 아니냐... 면서... 결국 다음부터는 혼자 보라고 하네요. 예전 올드보이 볼 때와 비슷한 반응...^^;;


킬빌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라서 '데쓰 프루프(Death proof)'는 언젠가 꼭 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말 새벽에 봤는데요. 타란티노 감독의 색채가 물씬 풍겨나더군요. 역시 독특한 감독임에 틀림없습니다. 명장의 반열까지는 모르겠고, 여느 감독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맛이 매력적입니다. 왜 타란티노가 박찬욱감독을 좋아하는지도 알 것 같네요. 뭔가 묘하게 풍기는 둘만의 공통점이 눈에 뜨이네요.

'데쓰 프루프'는 2007년에 제작되었구요. '킬빌'은 2003년과 2004년에 만들어졌는데요. '킬빌'이 동양적 느낌의 복수극이라면, '데쓰 프루프'는 웨스턴 무비 스타일의 복수극이라 할 수 있죠. 두 영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키워드가 복수라는 것 외에도 많습니다. 복수의 대상이 남자고, 주인공은 여자라는 점, 흑백의 장면이 사용된다는 점, 잔혹한 장면이 희화화된다는 점, 그리고 '킬빌'에서 휘파람으로 불렸던 노래가 '데쓰 프루프'에서는 핸드폰 컬러링으로 사용된다는 점... 등 '킬빌'의 후예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타란티노 감독이 말하는 바가 무얼까 생각했습니다. 미치광이의 말로는 이렇다는 것일까? 아니면 자동차는 함부로 몰면 안된다는 걸까? 딱히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감독의 의도가 헷갈렸거든요. 근데 곰곰 생각해 보면, 아마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섹스의 쾌감을 표현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영화 전반부에는 마초적인 냄새가 가득합니다. 사이코적인 커트 러셀에게 미모의 여자들이 달라붙고 유혹하기도 하거든요.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죠. 기괴한 차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순순히 올라타는 미녀, 그리고 무턱대고 들이대는 사이코에게 호감을 감추지 않는 또 하나의 미녀... 모두 남성본위의 섹스 판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차안에서 죽음에 이르는 미녀가 사이코에게 애원하는 장면, 그리고 그 모습에 쾌감을 느끼며 웃음을 짓는 사이코 모습은 마초의 궁극 절정이 아닌가 싶네요.

하지만 후반부에는 달라지죠. 처음에는 사이코에게 당하지만, 결국 보이시한 여자들의 복수로 사이코는 처절하게 응징을 당하거든요. 복수의 주인공들은 강간을 혐오하기에 늘 총을 휴대하고 다니는가 하면, 스턴트우먼의 길을 걷기도 하고, 터프한 운전실력을 갖추고 있는 등 범상치 않은 여자들입니다. 여성상위시대의 전사가 아닐까 하는... 결국 이들의 등장과 함께 영화는 철저하게 여자의 시각에서 진행되죠. 영화의 스토리부터 여자들의 수다로 이끌어지구요. 별다른 장면없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수다로 스토리의 앞뒤가 꿰맞춰집니다. 그리고 달리는 차 위의 본넷에 오른 조이 벨의 희열은 오르가슴을 상징하지 싶네요. 이런 오르가슴을 방해한 사이코는 여전사 4명의 무차별 구타로 뻗구요. 최후의 일격은 공포의 스템핑이었습니다. 사이코의 눈을 정확히 찍었죠. UFC에서도 보기 힘든... 그런 기술... 흠냘...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타란티노 감독은 엽기적인 상상력으로 재밌게 해줬구요. 영화 보는 내내 짜릿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짜릿함이 감독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나 싶네요. '킬빌'도 결국 그런 패턴이었구요. 영화 '데쓰 프로프'가 국내에서 개봉했었는지는 모르지만, 흥행까지는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킬빌'에 비해 영화적 재미는 다소 떨어졌거든요. 어쩌면 타란티노 감독에게 늘 '킬빌'을 능가하는 강렬한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것, 그건 흥행의 약이자 독이니까요.

덧글...
예전 영화 '탱고와 캐쉬'에서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했던 커트 러셀... 많이 늙었더군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게 역시 세월인가 봅니다. 커트 러셀의 사이코 연기도 꽤 잘 어울리구요. 역시 대배우의 변신은 무죄라능... 흠... 그리고 예전에 단짝친구와 휘젖고 다닐 때, 그 친구는 탱고로 우모는 캐쉬로 불리기도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능...(퍽!)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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