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석에서 야구를 본다는건 비행기 1등석에서 여행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탁 트인 뷰도 그렇지만 넓직한 탁자와 옆사람과의 충분한 공간이 주는 만족감은 꽤 그럴싸 하다. 게다가 일반석에 앉은 사람들을 보면 느끼게 되는 몹쓸 우월감까지. 그도 그럴 것이 그 황금좌석을 구단은 기자 중심으로 제공했고 나머지는 비싼 연간회원으로 채웠으니, 나같이 돈없고 시간 모자란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을 뿐. 



그런 중앙석을 후배의 도움으로 한번 가볼 수 있었다. 후배왈 우선 표가 필요없단다. 중앙현관에서 초대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된다는 것. 후배가 시키는대로 중앙현관에 가니 역시나 이름을 확인하곤 종이띠를 팔목에 채워줬다. 궁금증이 하나 풀리는 순간. 근데 종이띠가 좀 뜬금없긴 했다. 놀이동산도 아닌데 말야. 안으로 들어서니 한번도 보지 못했던 구단 사무실이 보이고 깔끔한 복도가 인상적이다. 일반석과 너무 비교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드디어 들어선 중앙석. 앞으로는 파란 잔디가 내 코앞에 드러누웠다. 선수들 등빨도 실감있게 다가왔다. 뒤로는 중계석. 그날따라 내가 좋아하는 이숭용위원이 해설하고 있었다. 입모양을 보면 뭘 말하고 있는지 확인 가능한 거리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 하나. 중앙석 전용 도우미 통해 이런저런 커피나 음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더라. 아쉽게도 9회 끝나고야 알게 되었다.


선후배들과 여유롭게 맥주 마시면서 치킨 뜯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로마시대 황제와 귀족들이 격투기를 좋아했던건 격투기의 재미를 만끽하기 보다 그들만의 사교클럽을 과시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하는. 일반 국민들과 격리된 공간에서 그들끼리 웃고 떠들며 느끼는건 분명 특권의식이었을게다. 잠실구장 중앙석에서도 꼭 경기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얘기하는 자체가 즐거웠다. 위에 언급했던 몹쓸 우월감까지 포함해서. 그래서 그런가? 경기의 승패는 그리 간절하진 않았다.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 그냥 좋은 사람들과 야구를 함께 본다는 자체가 좋았다. 


경기는 졌다. 시즌 첫 직관하는 날 시즌 첫 패를 당했다. 터벅터벅 걸어나오는데 밤바람이 시렸다. 역시 중앙석이 주는 달콤함도 두산 패배가 주는 쓰라림을 대신해줄 순 없나 보다. 후배는 호기있게 다음에도 중앙석에서 보게 해준단다. 그럼 고맙기야 하지만 부담주긴 싫다. 그리고 야구장에선 다소 불편하더라도 열정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일반석이 아직은 내게 더 맞는 듯 하다. 1등석을 매일 타면 1등석도 이코노미석처럼 느껴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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