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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집에만 있어 답답해 했던 와이프와 아기곰을 위해, 이번 신정 연휴기간 동안 바람을 쐬기로 했다. 원래 연휴 첫날인 토요일, 코엑스에 있는 세계인형박람회에 가려고 했으나, 그놈의 늦잠 덕에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집에서 가깝고 드라이브 하기도 좋은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차를 몰았다.

무슨 미술품이 있어서 간다기 보다는 그냥 떠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근데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특별전이 있다기에 뭘까 하는 호기심에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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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전시설명회가 있어서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니키 드 생팔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다. 사진처럼 미모의 여성이었다. 11세 때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 약간 정신이 이상해지기도 했고, 남자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니키는 병원에서 정신치료의 일환으로 미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게 그녀의 삶을 바꿔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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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을 보면 초기에는 아주 남성을 혐오하는, 그리고 죽이고 싶어하는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을 했단다. 이름하여 슈팅페인팅... 작품에 페인트 주머니를 놓고 총으로 쏴서 터뜨리는 작품이다. 그녀로서는 일종의 대리만족이기도 하고 과거를 잊는 의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초기작들은 정말 싸이코 작품이란게 한눈에 알 수 있다. 저 다트를 던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저걸 보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절레절레..)

하지만 그녀도 나이가 들면서 작품패턴은 남자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된다. 점점 여성에 집중하게 되고 아름다운 섹스심벌로서의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여성에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나오느 작품들은 어딘지 매력이 없는 여성들 뿐이다. 허벅지가 굵거나 못생기거나 고릴라 같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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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있는 고릴라가 물구나무 선 듯한 작품이 <나나>라는 니키의 대표작이다. 물론 여자다. 아름다운 여자를 표현한 것이다.

니키를 잘은 모르지만 작품의 면면이 상업화하기 딱 좋다고 생각되었다. 그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작품들의 색이 예쁘다. 달력으로 만들어도 펜던트로 만들어도 예쁠 것 같았다. 게다가 니키는 미모의 여자다. 누가 봐도 참 섹시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상은 상당히 페미니스트적이다. 이런 이율배반이 또한 니키의 장점이다. 섹시한 외모의 남성지향적 외모를 가진 여자가 여성의 삶을 고민하는 여성 지향적인 머리도 가졌다니 얼마나 완벽한 조화일까. 여자들이 더 동경할 만한 컨셉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술관 현관 옆에는 그녀의 작품으로 수첩이니 달력이니 여러 상품을 팔고 있었다. 자본주의를 혐오했던 체게바라가 아이러니하게 자본주의 상품의 상징이 된 것처럼, 니키도 비슷하게 변해가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연말 나들이가 뜻밖에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어 더욱 풍성해졌다. 나중에 니키의 사상을 담은 책도 읽어볼 참이다.

아래는 국립미술관과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퍼온 니키의 작품세계와 삶이다.  

'앗상블라주'에 포함된 작품들은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제작된 초기작들이다. 니키 드 생팔 특유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상상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사격회화’는 60년대 전반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된 작품들로서, 실제로 남성셔츠를 걸어두고 머리부분에 과녁을 설치하여 관객들이 직접 다트를 던지도록 했던 <다트 초상화>에서부터 여러 가지 사물을 화면에 부착하여 준비한 캔버스에 실제 사격을 해서 완성한 <사격회화>들까지 다양한 시도들을 만날 수 있다.      

‘괴물’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비교적 중성적인 내용을 가졌던 초기 사격회화와는 달리 보다 구체적인 상상의 세계 - 특히, ‘괴물’로서 대변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나나’는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 중 하나로서, 화려한 색채로 장식한 뚱뚱한 흑인 여성을 미의 화신처럼 묘사함으로써 20세기 중후반 여성에 대한 서구 남성들의 고정관념을 비웃고 성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공개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던지고 있다. <에리카>, <얼굴 없는 나나> 등의 초기작부터 <물구나무 선 나나> 등 대표작까지 다양한 나나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공공조각’은 1966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 설치된 <그녀 Hon>를 비롯하여 1967년 몬트리올 엑스포의 프랑스관을 위해 제작한 <환상적인 천국>, 1971년-72년 예루살렘 라비노비치 공원의 놀이조각 <골렘>, 1982년 퐁피두센터의 <스트라빈스키 분수>, 무엇보다 1978년에 착수하여 일반에 공개될 때까지 거의 20여년의 세월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역작 <타롯 공원> 등 작가의 공공 프로젝트와 관련된 드로잉, 판화, 모델 등과 후기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누이이 출생.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헤어져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 외로운 유년기를 보낸 탓인지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18세 때 모델로 일하다가 20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1952년부터는 신경쇠약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평범한 여성으로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세계에 대한 욕구와 사회의 모순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1961년에 '슈팅 페인팅 shooting painting'으로 누보레알리슴 작가로서 이름을 얻었다. 슈팅 페인팅이란 마을 축제와 같은 전시장에서 관객에게 총을 주어 캔버스 위에 매달아 놓은 물감 주머니를 쏘게 함으로써 무작위적인 추상화를 연출하는 것이다.

또 사격조각의 모체가 되었던 《내사랑의 초상화 Portrait of my Lovers》(나무, 셔츠, 타이, 타깃, 화살, 채색, 72×55×7㎝, 1961)는 여성에 대해 무책임한 남성들을 상징적으로 죽이는 작품으로, 표창을 던질 표적과 남성용 셔츠에 타이를 매어 나무에 붙이고 표창을 던짐으로써 남성에 대한 증오심을 치료하였다. 또 낡은 장난감, 그리스도 수난상, 폐품 등을 모아 놓고 전체를 금색으로 칠한 부조물을 만들어 종교예술에 대한 공격적인 패러디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나나 NaNa》 시리즈에서는 밝게 채색된 그로테스크한 조각상이 등장한다. 낙천적이고 맵시 없이 과장되게 부푼 모습들은 밝고 재미있는 색채를 띠어 활기차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약점이나 두려움, 불확실성 등에 대한 역설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 스톡홀름 미술관에 거대하게 세워진 《혼 Hon》(1966)은 여성의 육체를 본떠 만든 조각품으로, 어느 남성보다 크고 강한 조각품을 만들고자 하여 만든 것인데, 그 몸 속에 유원지를 연상케 하는 환경을 설계하여 영원한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여성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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