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대표팀 2차 엔트리가 발표되었습니다. 김인식감독의 고뇌가 그대로 담겨있긴 한데, 아쉬운 점이 있네요. 누가 뽑혀야 했는데 안뽑혔다는 수준의 문제제기가 아니라 대표팀 구성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입니다. 우선 국가대표팀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개인사는 접어두고라도 태극마크를 달아야 하는게 정상인 것처럼 인식되어왔죠. 물론 대아(大我)를 위해 소아(小我)를 희생하는게 전통적인 충효관점에서 보면 당연한거겠죠. 하지만 미국의 경우 국가대표의 의미가 절대적인 영역은 아니거든요. 일본도 우리만큼 구속적이진 않습니다. 야구만 그런가요? 축구도 선진국의 경우 개인이나 클럽성적을 국가 대항전보다 우선시하는 풍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우리는 국가대표가 최고라는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까요? 아니 그런 명제에 토라도 달면 역적이 되는걸까요?

우선 민주주의를 생각해보면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 시스템이구요. 전체주의와 대별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관습상 전체주의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게 많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국가가 보장하는 정치체제에서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는건 넌센스죠. 그런 의미에서 김인식감독의 '국가가 있기에 야구가 있다'는 발언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사실관계를 따지면 스포츠는 국가의 영속성과는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불편하거나 힘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거든요.

물론 김인식감독이 그런 정치적인 의미로 얘기하진 않았겠죠. 하지만 그 논리는 일제시대에 일왕에게 충성을 강요했을 때도 같은 논조였구요. 나치시대에 히틀러에게도 비슷한 톤의 충성발언이 횡행했더랬죠. 과거 아픈 기억이 있는 우리 민족으로서 과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네요. 너무 침소봉대한 것 같나요?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현실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데릭 지터가 미국대표팀을 뛰지 않는다고 매국노로 낙인찍는 집단 히스테리는 없거든요. 지터가 미국대표팀 선발을 거부한게 잘했다는건 아닙니다. 또 굳이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죠. 다만 지터같은 선수도, 도미니카 대표팀으로 뛰는 A-Rod도 개인 선택의 결과라고 너그러이 봐줄 수 있는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거구요. 그게 바로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사회의 모습인데, 우리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점 인정해야 합니다.

김인식감독은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대표팀 차출을 거부한 박찬호, 이승엽을 또 굳이 리스트에 올려놨습니다. 박찬호나 이승엽이 그간 국가에 봉사하지 않은 선수들도 아닌데, 여전히 대아(大我)는 소아(小我)에 우선한다는 전체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싶네요. 이렇게 뽑아 놓으면 어떻게든 뛴다고 본거겠죠. 결국 박찬호와 이승엽은 울며 겨자먹기로, 혹은 불타는 애국심으로 출전할지 모릅니다. 근데 그렇게 출전하는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WBC 4강 성적이 우리네 삶의 질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모르지만, 분명 우리 사회가 거부할 수 없는 집단주의 관습에 쩔어있는건 확실해 보입니다. 이에 대한 비판기사조차 찾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문제의식조차 낯선 사회의 경직성, 사실 이게 더 무섭네요.

그리고 언제까지 박찬호, 이승엽이 한국야구를 떠받들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소수의 엘리트 선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쳐 올림픽 금메달만 따면 야구수준이 세계1위가 되는건가요? 북경에서 금메달을 따왔건만 아직도 KBO 총재는 여권핵심부에서 임명해야 되고, 지방 야구장은 붕괴직전의 위험속에 있고, 8개 구단 체제도 아슬아슬하고, 야구만 배워온 대다수 선수들은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면 바로 사회 무능력자로 전락하는 정글같은 현실에서 야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과위주의 엘리트 스포츠에만 집중해온 폐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곰꼬리...
괜히 국가를 위해 고생하시는 김인식감독님의 예를 들었지만, 글의 논조는 김인식감독님을 비판하고자 한건 아니었다는거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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