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홍채는 지문과도 같아 누구와도 겹칠 수 없다.

그러나 홍채가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는 통계의 오류일까? 

아니면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 때문일까?


영화 'I Origins'는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을 던진다. 우선 첫번째 주인공인 이안은 논리적이고 지적인 홍채 전문 과학자다. 이안은 진화과정에서 홍채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어떤 요소들을 이용해 눈이 없는 생물에 시각을 부여하여 창조론의 존립기반을 깨뜨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실제 실험으로 이를 증명해낸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인 소피. 소피는 정형화되지 않은 도발적인 매력을 지녔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라 라틴계의 느낌을 지닌 그녀는 순탄하지 않은 가족사를 겪었다. 이안과의 만남을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인연으로 여길만큼 과학적인 사고방식과도 거리가 멀다. 아니 과학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믿는다. 


살고 있는 도시 빼곤 공통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현상에 이끌려 만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비극적인 엘리베이터 사고로 소피가 죽게 되면서 끝을 맺는다. 아마도 이안에게 소피는 한바탕 퍼부은 소나기 뒤에 떠오른 무지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할로윈 파티에서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 소피의 눈과 비슷한 광고사진, 연속되는 특정한 숫자 11, 그리고 11을 따라가다 지하철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확률적인 통계론 설명이 무의미하다. 규명할 수 있는 데이터만을 중시하는 이안에게 벌어진 기이한 사랑이라니 더욱 아이러니하다. 하긴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게 사랑일 테지만..



이안의 삶속에서 사라진 소피는 7년 후 홀연듯 다시 나타나게 된다. 후배 연구원 카렌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안의 아기가 자폐증으로 의심된다는 병원의 연락이 오고 부터다. 병원에서 실시한 자폐증 검사방식에 의문을 품었던 이안과 카렌은 과학자답게 검사의 진의를 알아낸다. 그건 자폐증 검사가 아닌 홍채가 같은 두 사람의 연관성을 실험했던 것. 아기가 태어나기 바로 전 아기와 같은 홍채를 가졌던 사람이 사망했던 점에 주목해 병원은 아기에게 그 죽은 사람에 관한 사진을 보여주고 반응을 살폈던 것이다. 아기는 놀랍게도 죽은 사람과 관련한 사진에 웃고 우는 반응을 보였다. 이 때부터 이안과 카렌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가설, 즉 윤회설에 눈을 뜨게 된다. 물론 합리적인 의심의 영역에서 말이다. 


이제부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원치 않으면 이전 페이지로 이동하시길 권한다.


그러던 중 소피와 같은 홍채를 지닌 사람이 인도에 실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안은 고민 끝에 찾아 나선다. 아마도 두가지의 호기심이 이안을 인도로 이끌었을 것이다. 윤회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픈 이성적 호기심과 옛 사랑을 직접 확인하고픈 감성적 호기심.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찾은 대상자가 유의미한 실험 결과로 나오지 않자 크게 실망한다. 그런 그에게 펼쳐진 반전은 바로 대상자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여준 반응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대상자는 극심한 공포감에 이안에게 안겼던 것이다. 그리고 대상자의 눈을 바라본 이안은 꼬마에게서 소피의 눈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우는 대상자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는 이안이 대상자와 문을 열고 나서는 것으로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대상자는 소피와 같은 홍채를 지닌 7살 여자 아이다.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왠지 소피와 묘하게 일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영화는 굳이 윤회설을 얘기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안이 연구했던 눈 속에서 진화론의 증거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도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되 계몽적이지 않은 영화는 늘 박수의 대상이다. 게다가 짙은 여운의 결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해준다면 기립박수도 아깝지 않다. 'I Origins'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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