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한번 보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평가도 좋았지만, 임순례감독과 오지혜, 박해일, 류승범이라는 매칭이 믿음을 줬거든요. 특히 오지혜는 의식있는 영화배우로서 화려하지 않지만 풋풋한 들꽃같은 연기를 그동안 보여줬죠. 이런 오지혜만의 매력이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서 늘 관심이 가던 배우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역시 훌륭한 감독과 배우들의 조합이 기대에 부족함이 없네요. 수작입니다.  

하와이의 해변 이름에서 따온 와이키키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하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하는 꿈을 상징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밴드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은 꿈을 꾸지만, 실제 생활은 그저 가라오케에서 반주하고 캬바레에서 남의 노래나 부르는 신세죠. 와이키키를 꿈꾸지만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은 대천 앞바다인 것과 비슷한... 그리고 와이키키는 밴드가 바라보는 세상과 세상이 바라보는 밴드의 시각차를 나타냅니다. 왠지 와이키키는 경치도 좋고, 예쁜 여자들도 많을 것 같아 지었지만, 그건 그들만의 생각이구요. 정작 사람들은 와이키키를 시골 캬바레에나 어울림직한... 칙칙한 느낌으로 받아들였죠.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이름을 듣고 여고생들이 보여준 첫반응은 킥킥...하는 웃음이었습니다. 
 


또한 영화 속의 등장인물은 모두 하나같이 결핍을 갖고 있더군요. 주인공 성우(이얼, 박해일역)는 애정, 정석(박원상 역)은 책임감, 강수(황정민 역)는 성실함, 인희(오지혜, 문혜원 역)는 정착 등에 대한 결핍을 앓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입니다. 어쩌면 사회에서 낙오된 그래서 조금은 구질구질하고 구차한 군상들이죠. 그런 밑바닥 인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굳이 아름답게 채색하지도,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하려고도 않는 착한 연출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기법이 오히려 더 진한 여운을 남기는 법이죠. 그래서 이 영화가 잔잔하면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가 봅니다.

[시네토크] 임순례감독과 오지혜가 말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한가지 더 놀라운 점은 임순례감독이 여자면서도 남자들의 세계나 심리묘사를 잘 한다는 점입니다. 대개 페미니즘에 매몰되기 쉬운데 남자감독들보다 더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솜씨를 봐서는 예사 감독은 아니지 싶네요. 그리고 오지혜의 노래 솜씨도 정말 대단하더군요. 영화 내내 야채장사하는 촌스런 모습을 보여주다, 마지막에 내뿜는 요염한 자태와 가창력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괜히 배우가 아니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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