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를 물고 어떤 여인을 주시하던 홈즈는 그녀의 직업을 피아니스트라고 한번에 알아맞춥니다. 놀란 여인이 어떻게 눈치챘냐고 묻자, 손가락에 지문이 닳아있는걸 보고 알았다고 홈즈는 대답하죠. 여인은 또 묻습니다. 지문은 타이피니스트도 닳게 되는데 하필 왜 피아니스트를 골랐냐고... 홈즈는 대답합니다. 여인의 눈빛에 어린 예술적 감수성은 타이프를 친다고 생기는게 아니라고...

이렇게 어렸을 적 소설에서 읽었던 홈즈의 이미지는 지적이면서 관찰력이 뛰어난 천재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사는 외골수였구요. 싸움은 그닥 잘하지는 못했던 걸로 기억됩니다. 위기에 빠지면 왓슨이 주로 구해주는 쪽이었죠. 그 이후 등장한 007, 인디아나 존스, 맥가이버 등과는 확연하게 차별화된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셜록 홈즈'는 홈즈를 문무를 겸비한 영웅으로 탈바꿈시켰네요. 액션은 007을, 재치넘치는 유머는 맥가이버를, 그리고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는 인디아나 존스를 닮았습니다. 특히 사이비 종교에 대항하는 모습은 인디아나 존스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네요. 심지어 이종격투기까지 잘하는 슈퍼맨 홈즈입니다. 

영화를 보니 상상력을 발휘해 홈즈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은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잘 표현이 되었네요. 하지만 복잡한 영화 구도는 중간에 지루하게 느껴지게 하더군요. 관객의 궁금증을 끝까지 가져가고 싶어 그랬겠지만, 왜 이렇게 결말이 났는지에 대한 해답을 막판에서야 줄줄이 늘어놓는건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밀린 방학숙제를 개학이 다되어서야 해치우는 느낌이랄까... 중간중간 홈즈가 발견한 사소한 증거물들이 분명 어떤 의미가 있었음에도, 그게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없이 지나가 버리는건 관객에 대한 배려부족이라고 봅니다. 앞서 상상하지 말고 무조건 나만 따라오라는 감독의 오만이죠. 대체 추리영화에서 추리를 빼면 뭘 보라는건지...

그럼에도 이 영화는 볼 만합니다. 일단 21세기형 홈즈의 독특한 캐릭터를 잘 살렸구요. 추리영화이면서도 중간중간 양념처럼 들어간 코믹적인 요소, 액션 장면 등도 재밌었네요. 더불어 런던브릿지의 공사 장면 등 산업혁명이 빛을 발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이모저모를 챙겨보는 것도 나름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잡아 공포를 유발하는 공포기제, 비논리적인 기적을 가능하게 한 과학도 흥미로웠네요. 그리고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교수가 있는걸로 보면 조만간 2탄도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소설이 단편으로 끊임없이 나왔던걸 보면 영화도 그렇게 되겠지요. 벌써부터 2탄이 기대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