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가 주룩주룩 내려 촉촉한 아침이다. 이런 촉촉한 날 안개까지 살짝 내려와 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다. 덥지도 해가 눈부시지도 않은 촉촉한 공기, 생각만 해도 상쾌하다. 이런 날엔 집에 있기 아쉽다. 아침부터 가족을 재촉해 산책을 나섰다. 장소는 분당 중앙공원. 


분당 중앙공원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도, 쉽게 찾는 장소는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 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다. 단만에 왔다.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또 찾을까. 주차장에 주차한 후 공원을 크게 한바퀴를 걷기로 했다. 구름 낀 하늘 때문인지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산책하기엔 더 할 나위 없이 쾌적한 조건이다. 산책로는 울창한 나무들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공원이 근처에 있다는건 정말 축복이다. 


꼬마곰은 탄천이 불어난게 신기한 모양이다. 탄천 쪽으로 내 손을 잡아 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홍수를 걱정하는 눈치다. 요새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유난히 무서워 한다. 원래 겁이 많기도 하지만, 어디선가 자연참사 동영상을 본 모양이다. 꼬마곰에게 '그런 지진이나 홍수는 쉽게 나는게 아냐. 걱정 안해도 돼.' 라고 안심을 시켜 줬다. 이런 말이 자극적인 영상의 임팩트를 지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에휴.. 



야외공연장에는 오늘 저녁에 있을 파크콘서트 준비가 한창이다. 김현철과 이루마의 토크 콘서트라고 하는데, 비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나두 왠만하면 갈까 하는데, 역시나 날씨가 변수다. 야외공연장 뒤쪽으로 올라 팔각정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울창한 숲 밑으로 펼쳐진 오솔길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기분 좋은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토끼 한마리를 발견했다. '이런 곳에 왠 토끼일까?' 혹시나 도망갈까 싶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왠걸... 전혀 사람을 무서워 않는다. 그저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그리곤 태연히 나뭇잎만 먹는다. 살그머니 다가갔던 내가 머쓱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토끼는 야생토끼는 아닌 듯 싶다. 털 색이 야생의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애완용은 더더욱 아니다. 주위에 주인은 없었으니까. 결국 공원 측에서 방생하고 키우는게 아닐까 싶었다. 사람을 이렇게 무서워하지도 않는 거 보면 필시 그럴 것이다. 그리고 공원 내엔 천적이 없을테니 번식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는 궁금했다. 다시 어딘가에서 보호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한참 동안 식사하는 토끼를 뒤로 하고 공원 산책을 마쳤다. 꼬마곰은 중간중간 수로에서 물장난도 쳤다. 힘들긴 해도 같이 걷는 시간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아스팔트 위에서는 빨랐던 걸음걸이가 숲속에선 느릿느릿 걷게 된다. 생각도 천천히 하게 되고, 나무도 오래 쳐다보게 된다. 산책하는 동안 비가 안와서 다행이긴 하지만, 또 비가 왔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숲에서 맞는 빗방울은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도심에서 맞는 것과는 다르니까.


덧글..

예전 뉴스에서 여의도 공원에 방생한 토끼가 치킨을 뜯어먹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무심코 버린 음식물이 토끼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토끼의 본능까지 바꿔버린 것이다. 분당 중앙공원에는 다행히 KFC도 패스트푸드점도 근처에 없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게다. 게다가 나뭇잎을 탐닉하는걸로 그 토끼를 봐서도 그렇다. 하지만 어디서나 동물에게 먹이주는건 신중해야 한다. 귀엽다고 던져주는 먹이가 결국 동물의 자생력을 해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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