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일 좋아하는 야구선수가 누구냐고 물어오면 늘 대답하는게 우모는 홍성흔입니다. 베어스만큼 홍성흔을 격하게 사랑하기에 홍성흔이 없는 베어스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홍성흔을 아끼는건 실력 이상으로 야구에 대한 그의 열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홍성흔은 성실하면서도 이타적인 자세로 두산팬들뿐만 아니라 타팀팬들도 많이 확보하고 있는 선수죠. 그리고 언제나 주위 사람들의 엔돌핀을 돌게 하는 희망 바이러스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그가 두산을 떠난다는건 두산에게 정말 큰 타격이 될겁니다. 당장 두산팬들의 분노가 분열로 이어질 것이고, 두산팬들을 내년 야구장에서 보기 어렵게 되겠죠. 다른 유니폼을 입고 뛰는 홍반장을 어쩧게 보겠습니까? 차라리 안보고 말지요. OB에 박철순이 있다면 두산엔 홍성흔이 있다는게 우리 팬들의 생각이거든요.

TO 두산구단...
홍성흔을 잡아야 하는 이유 중에 첫번째는 홍성흔의 가치입니다. 전에도 포스팅에서 얘기했지만 프랜차이즈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이 소중하거든요. 왜냐하면 그건 팬들의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팬들의 머리속에서 홍성흔에 대한 기억을 이식수술하는 것처럼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두산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홍성흔은 존재만으로도 두산의 팀컬러를 세워주는 선수입니다.

또 하나는 명문구단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홍성흔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뉴욕양키스, 레알마드리드 등의 클럽명문들은 선수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 법이죠. 지금 1~2억을 아끼기 위해 프랜차이즈를 헐값에 주저앉힐 생각만 한다면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처럼 머니게임만 하는 구단에 머물 뿐입니다. 두산이 명문구단이란걸 증명하기 위해선 팀을 대표할 수 있는 간판, 그리고 그 간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구단을 보고 후배선수들에게 더 열심히 야구할 수 있는 충성심을 심어줘야 합니다. 기업을 하려면 일류기업이 되어야 하고, 야구단 운영하려면 명문구단이어야죠. 안그런가요..? 두산그룹..?

마지막으로 구단에 당부하고 싶은건 홍성흔을 보고 두산매니아가 된 수십만의 어린 팬들의 가슴에 못을 박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박철순을 보고 두산팬이 된 우모가 평생 두산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처럼, 야구를 보기 시작하면서 두산을 응원한 팬들에게 상처를 주면 돌이킬 수 없는 무형자산의 소실이 됩니다. 애초 프로야구의 기치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이라는거 아니었나요? 초심으로 돌아가 1~2억에 어린 팬들의 가슴에 응어리를 남기지 않기 부탁드립니다.

TO 홍성흔...
솔직히 홍성흔은 학교후배라서 내 새끼같은 느낌이 듭니다. 오재원도 그런 케이스긴 합니다만... 어쨌든 홍성흔은 학연으로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선 두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 홍성흔이 좋은 대우를 받고 영원한 두산의 프랜차이즈가 되어주길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프로야구선수는 아마가 아니기에 돈이 중요하다는 것, 잘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어요. 가장의 의미를 알기에... 그래서 우즈, 리오스, 이혜천의 일본행, 그리고 김동주의 일본행 추진을 보며 아쉽지만 이해는 하는 입장이죠.

하지만 돈만큼 중요한 가치도 있다는 것 알아주었으면 해요. OB의 박철순, 해태의 선동렬, 삼성의 이만수, 롯데의 박정태, 한화의 장종훈, LG의 김용수처럼 어느 팀의 상징이 되어 평생 기억에 자리잡는다는 것, 그 역시 행복하고 가치있는 일 아닐까요?

특히 LG에서 영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은데, LG가 원하는건 홍성흔을 데려와서 전력을 강화한다기 보다 두산에 댓한 열등감을 홍성흔으로 뒤엎어보겠다는 수준의 전략이란거... 아마 본인이 더 잘 알겁니다. 한화라면 모르지만 LG는 가봐야 LG 적자들의 뒤치닥거리하는 용병일 수 밖에 없다는거 지켜보는 팬 입장에서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립니다.

이제 곧 겨울이네요. 두산구단과 홍성흔선수 뜨거운 가슴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되 두산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정은 하지 않기 바랍니다. 내년에도 잠실벌에서 홍성흔 응원가를 부르길 간절히 기대해봅니다.

두산에 홍성~흔! (짝짝짝~짝) 두산에 홍성~흔! (짝짝짝~짝) 두산에 홍성~흔! 워워워 두산에 홍성흔! (짝짝짝~짝)
두산에 홍성~흔! (짝짝짝~짝) 두산에 홍성~흔! (짝짝짝~짝) 두산에 홍성~흔! 워워워 두산에 홍성흔! (짝짝짝~짝)


그게 1995년이니까 군대에 있을 때 입니다. 한창 쫄병 시절인지라 내무반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군기 바짝 든 상태로 일만 하고 있었죠. 그날도 그냥 마대자루로 바닥 밀고 걸레로 침상 닦고 있었습니다.

한 내무반에 고참들이 모두 모여 TV를 보고 있었는데요. 바로 두산(당시 OB)과 롯데의 한국시리즈 7차전이었죠. 1995년의 챔피온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였기에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일병이 TV를 볼 수 있나요. 그랬다간 당장 집합 걸릴텐데요. 내무반 밖으로 들려나오는 고참들의 함성소리로 짐작만 할 뿐이었죠.


그러다 어렵사리 걸레로 침상을 닦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른 내무반은 후딱 닦고 TV가 있는 내무반에서 정말 광이 나게 닦고 또 닦고 했습니다. 다 닦아도 나가기 싫어서 눈치를 보며 밍기적 대고 있었죠.

그때 누구였는지 고참이 저를 보며 얘기하더군요.

고참 : "야 너 야구 보고 싶지?"

속에서는 "네!~~" 외쳤지만 그럴 수야 있나요.

쫄병 : (당황한듯) "아.. 아닙니다. 괜챦습니다."
고참 : "마 괜챦긴 뭐가 괜챦아. 보고 싶으면서 뭘~ 그냥 앉아서 봐"
쫄병 : (머뭇...)
고참 : "그냥 보래두~ 괜챦아. 내가 보라면 보는거야"
쫄병 : (긁적긁적) "아.. 예 알겠습니다!"

그 때 그 고참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누가 면회오는 것보다 훨씬 더 반가운 말이었죠. 아쉽게도 그 고참이 누구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1995년의 우승은 좀 특별합니다. 박철순 형님이 13년을 기다려온 마지막 현역 우승이었거든요. 허리 디스크로 몇년을 재기했다 실패하고 다시 재기했는데, 현실적으로 95년이 형님에겐 거의 마지막 도전이었죠. 그런 까닭에 박철순은 우승한 후 그라운드에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저도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속으로는 눈물을 엄청 흘렸구요.

아직도 마지막 투수 앞땅볼을 처리하던 권명철의 마지막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그라운드에서 뒤엉킨 선수들도 또렷이 기억하구요.^^

올해는 SK에 복수전으로 꼭 우승했음 싶네요. 그 때의 감격을 또 한번~


오늘 두산의 개막전이 있었는데 관심이 좀 떨어지네요. 야구장에도 안갔지만 TV나 인터넷으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두산 야구만 나오면 온 신경을 쏟곤 했었는데 말이죠. 외출한 이후 피곤해서 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홍성흔, 안경현이 없는 팀에 대한 서운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네요.

아무리 실력 위주로 선수를 뽑는다 하더라도 팀의 상징에 대해서 홀대하는건 분명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메이저리그에도 분명히 고참선수에 대한 예우가 있고 서열이 엄격합니다. 특히 최고 명문 양키스가 그렇죠. 이렇게 명문구단일수록 프랜차이즈를 우대하는건 그들의 역사를 지키기 위함인데요.

두산은 그런 면에서 아쉽습니다. 오늘 롯데의 마해영은 홈런을 쳤는데요. 덕아웃 앞에서 마해영과 로이스터 감독이 껴안는 모습은 두산팬인 저에게도 짜릿한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한경기 이기는 것보다 팬들은 이런 드라마를 원하는거거든요. 롯데팬들 지금 얼마나 기뻐하며 술잔을 기울일래나... 에혀~ 부러워라..

OB가 하위권을 맴돌던 80년대 암울했던 시절에 그래도 변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건 박철순이라는 불사조 신화가 큰데, 이런걸 어떻게 값어치로 환산할 수 있나요? 실력이 우선순위였다면 아마 박철순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이제사 인터넷에서 보니 오늘 두산이 우리 히어로즈를 4:1로 이겼네요. 잘했네요. 근데 뭐 그닥 기쁘지도 않고 그렇습니다. 언제쯤 신명나게 응원을 할 수 있을런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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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두산베어스 플레이어스 데이 주인공은 박철순입니다. 박철순형님은 제 영웅이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불사조의 이미지로 남아있고, 이 나이에도 박철순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가슴이 설레네요. 그래서 오늘만큼은 꼭~~~~ 잠실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일이 겹쳐 가지는 못했습니다. ㅜ.ㅠ 하지만 집에 있는 내내 마음은 잠실로 달리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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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사진들을 검색해 봤습니다. 박철순 은퇴식 장면이네요. 이날이 1997년 4월 29일이었는데요.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불사조가 은퇴한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요. 학교 수업 듣는둥 마는둥 헐레벌떡 갔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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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LG랑 경기했었는데 졌을겁니다. 6:2인가 뭐 그렇게 졌던것 같은데 마지막에 등판하기를 학수고대했지만 불사조는 등판하지 않았죠.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박철순선수가 등판하려면 1명이 2군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해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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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나오셨네요. 뭘 입으셔도 잘 어울리지만 두산유니폼도 간지 납니다. 최근에 대장안 수술받으셨다는데 건강은 많이 회복되신것 같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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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구의 배터리는 김경문 감독입니다. 원년 우승 당시의 배터리였는데 한명은 감독으로 한명은 야인으로 만나게 되는군요. 역시 인생사 아무도 모릅니다. 철순형님 인터뷰에서 같이 그라운드에 있어도 좋을꺼 같은데 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라운드에 미련은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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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 야인으로 계신 지금의 모습이 더욱 좋습니다만, 혹 복귀하신다면 지도자 보다는 구단경영에 참여하시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박철순 감독도 좋지만 박철순선수라는 전설을 잃기는 싫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박철순형님의 동영상 올려봅니다. 언제 봐도 감동적인, 그리고 추억에 젖게 하는 'My Way' 이지 않나요? ^_^




내가 야구란걸 알게 된건 초등학교 무렵이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 공터에는 방과 후마다 또래 애들이 모여 어설프게나마 야구란걸 하고 놀았다. 공은 테니스공에, 야구 방망이는 싸구려 알루미늄 배트에, 글러브는 가죽 아닌 비닐이었지만 갖출 것은 대충 갖추고 했었다.

그러다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이 어설픈 동네 야구놀이에 불을 당기게 해 주었다. 각자 좋아하는 선수들의 폼을 흉내내며 난 박철순, 넌 김봉연, 뭐 그런 식으로 놀았다. 나야 당연히 박철순처럼 와인드업 이후 오른손을 살짝 엉덩이 근처에서 머물렀다가 공을 뿌려댔다. (참고로 나의 주무기는 '낙차 큰 직구'다)


위 사진은 우연히 박철순의 폼과 비슷하게 찍힌 내 경기 사진을 합친 이미지다. 편집이나 조작이 아니다. 근데 이렇게 보니 정말 비슷하게는 보인다. 하지만 연결동작으로 보면 별로 비슷하진 않다. 나도 나한테 맞는 폼을 개발했다고나 할까... ㅎㅎ 누군가의 폼을 흉내내는건 대개 심리적 만족감 내지는 우월감만을 느끼게 해줄 뿐, 공을 빠르게 한다든가 하는 경기력 향상에는 별 효과가 없다.

어찌 됐든, 박철순의 등장은 나로선 서태지의 '난 알아요' 만큼 쇼킹한 사건이었다. 멋진 몸매와 잘생긴 얼굴, 곱슬한 머리, 깨끗한 매너에, 섹시한 미소까지...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선수였다. 사실 박철순은 이미 마이너리그 경험을 통해 야구 수준이 국내 다른 선수들보다 한단계 위였다. 너클볼이라는 이상한 볼을 유일하게 실전에 써먹을 줄 아는 선수였고, 투구 이후 수비자세가 가장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이런 외적인 실력보다 더 나를 사로잡은건 바로 불굴의 의지다. 내가 기억하기로 박철순은 82년 우승 이후 거의 10년 넘게 부상과 재기를 거듭했다. 허리 수술도 몇차례 했었고 병원에서 등판불가 판정도 나왔었지만, 그는 그라운드에 서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기와의 싸움에 매진했다. 그 결과 95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우승을 맛보게 된다. 95년 박철순의 성적은 9승인가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때 최고령 관련 기록들을 다 갈아치우기도 했다. (이들중 대부분이 송진우에 의해 또 경신되었지만서두...)

두산팬이라면 1995년 권명철이 마지막 타자를 처리하고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그라운드에서 울부짓는 박철순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난 내무반에서 걸레질 하며 눈치껏 TV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때의 그 짜릿한 환희감이란... 난 속으로 남 모를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우와~~~ X발... 우승이다... 우승!!!! ㅜ.ㅠ '

그런 박철순이 은퇴식을 거행했다. 나두 당연히 만사 제쳐두고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진한 눈물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LG전이었는데 경기는 6 : 2론가 졌다. 경기 내내 그의 등판을 기다렸건만 끝끝내 그는 등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박철순이 등판하려면 누군가 2군에 내려가야 하는데 한번 내려가면 2주인가 못올라 오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단다. 역시 박철순 다운 결정이었다.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은퇴식에 욕심을 내기 마련인데...

아래는 박철순 기념 동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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