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핑크모자 쓰고 야구장가자던 쌍둥이들과의 약속을 지난 주말 지켰습니다. 자형과 쌍둥이, 아기곰과 우모, 모두 5명이 갔는데요. 경기는 허무하게 졌습니다. 쌍둥이들의 첫 출격을 승리로 장식해주고 싶었는데... 쩝... 이원석이 김광현으로부터 역전 3루타 쳐냈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 정말 좋았는데, 임재철의 공 빠뜨리는 실수 하나가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았습니다. 역시 야구는 겸손하게 몸을 굽혀야 되는 스포츠네요. 아쉽습니다. 올시즌 우모 직관은 4승 3패네요.

원래 일요일에는 관중이 그닥 많지 않은데, 어제는 정말 많더라구요. 주차장이 꽉차서 잠실야구장 진입하는데만 거의 20분 동안 도로에 서있었습니다. 집계수로는 20,061명인데 글쎄요... 체감으로는 25,000명은 너끈히 되어 보이던데요. 잠실구장에 들어갔을 때 이미 두산 관중이 1루쪽과 본부석 뒤쪽, 그리고 3루쪽의 일부를 아예 점령했구요. 우익수 뒤 외야도 거의 찼었죠. 3루측 내야와 외야만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결국 자리가 없어 3루쪽에서 봐야 했습니다. 그나저나 상대팀 응원석에서 응원하는건 좀 불편하더군요. 소리지를 때도 좀 조심하게 되고, 주위의 시선도 의식하게 되고... 어제는 SK 관중석의 상당수는 두산팬들이어서 덜했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운건 매한가지입니다. 햇빛이 너무 강하기도 해서 겸사겸사 외야로 옮기긴 했습니다. 

어제 경기에서 박민석을 얘기안할 수 없네요. 스코어가 재역전당하자 김경문감독은 박민석을 올리고선 내리지 않더군요. 아마 패하는 경기에서 투수소모율을 낮추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우모가 볼 땐 박민석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게 아닌가 싶어요. 불펜에 아무도 몸을 풀지 않았거든요. 강하게 살아남으라는 정글의 법칙 수업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박민석이 도무지 영점조준이 안되지라 보는 내내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어떻게 겨우겨우 막고는 넘어갔지만 아직 1군에 올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이더군요. 근데 작년만 해도 괜챦은 사이드암이었는데, 올해는 왜 이렇게 흐트러진건지 알 수가 없네요. 박태환처럼 뭔가 방심을 했던건가요...? 얼굴도 미끈해서 쫌만 해주면 팬클럽은 당장 불어날텐데 말입니다. 하여간 보는 내내 관중석에서 내리라는 소리 여러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날도 더운데 우리 쌍둥이들은 아기곰과 야구장에서 잘 놀았습니다. 처음에는 풍선방망이 휘두르면서 응원 열심히 하더니, 나중에는 계단 오르내리면서 나름 놀이꺼리를 찾더군요. 오는 차안에서도 재미있었다고 삼촌 고맙다고 하는데, 두산 열성팬 두명을 또 확보한 듯 싶습니다.

덧글 1...
주차장에 파킹하고 오는데 희한한 기상현상을 봤습니다. 소방서 근처였는데요. 소방서 옆은 소나기가 오고 있는데, 그 바로 옆은 비가 안오는 겁니다. 한동안 계속 되었는데요. 주위에 보던 사람들 야구장가는 발걸음 멈추고 구경했죠. 예전 공항 관제탑에서 있었을 때 유사한 현상을 봤었는데, 간만에 또 보네요.

덧글 2...
날은 화창한데 소나기가 오는, 소위 호랑이 장가가는 날씨가 경기 내내 계속 되었습니다. 결국 기아가 7년만인가 처음 정규리그 1위했습니다. 이럴려고 하늘이 그렇게 변덕을 부렸나 보네요.

두산은 늘 깜짝스타가 나오는 팀이죠. 체계화된 팜시스템과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는 전통 덕분인데요. 그래서 다들 '미러클 두산'이라고 부릅니다. 뭐 '미러클 두산'에 대한 애증은 있지만, 그래도 허슬플레이로 무장된 깜짝스타를 보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네요.

올해 깜짝스타로 떠오른 선수는 많지만, 나름대로 뽑아보면 오재원, 이용찬, 박민석으로 압축되지 싶네요. 특히 오재원은 차세대 두산의 허슬플레이어로 이미 예약을 해놓은 상태구요. 이용찬은 묵직한 구위로 차세대 마무리로, 박민석은 핸섬한 용모와 두둑한 배짱으로 김경문감독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선수들이네요.

1. 오재원(282타수 70안타 0.248, 0홈런, 28타점, 볼넷 17, 삼진 62, 도루 28)
올시즌 기록으로 보면 오재원은 평범합니다. 아니 볼넷과 삼진수를 비교하면 좋은 선수라 할 수 없죠. 게다가 2007년이 0.259의 타율이었음을 감안하면 2008년이 결코 만족스러운 해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재원을 차세대 스타로 선정한건 다 이유가 있죠.


우선 오재원은 멀티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습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볼 수 있다는 점은 김경문감독 스타일에 부합하죠. 더구나 김동주의 향방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사통발달 쓸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건 그의 생명력이 내년에도 이어진다는걸 의미하죠. 그리고 오재원은 컨택능력이 뛰어납니다. 올해 경기에서 기억나는 장면 하나가 있는데요. 어느팀과의 경기였는지 가물가물한데... 주자가 1루인가에 있었는데 오재원이 푸시번트를 대면서  내야안타를 만들더군요. 번트 모션에서 가볍게 1, 2루간으로 툭 휘둘러버리는... 그래서 공은 투수도 2루수도 잡기 어려운 쪽으로 굴러갔죠. 그 장면을 보면서 컨택능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경문감독도 오재원을 최다안타왕이 될 만한 자질을 가졌다고 한 바 있구요.

이런 컨택능력을 능가하는 주루플레이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루가 28개로 주루센스는 이미 인정받았죠. 두산이 고영민을 6번으로 후방배치해도 상관없는건 오재원이 2번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때문입니다. 이종욱, 고영민, 오재원의 달리는 야구는 내년에도 유효합니다.

그리고 우모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건 바로 그의 허슬플레이입니다. 승부근성이 강하고 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파워풀한 세리머니는 오재원을 더욱 매력있는 선수로 만들었죠. 야탑고 시절의 오재원에 관한 일화를 들어봐도 승부근성은 확실하네요. 앞으로 홍성흔의 뒤를 이을 두산의 오버맨으로 자리매김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2. 이용찬(8경기 1승, 방어율 1.23, 1피홈런, 볼넷 2, 삼진 12)
이용찬은 사실 임태훈보다 더 기대했던 투수입니다. 고교시절의 스탯도 그렇지만 장충고 출신이라는게 더 매력적이었죠. 장충고는 고등학교 중에서 인성교육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더군요. 아무래도 정신적 토대가 기본이 되어 있는 선수와 아닌 선수는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프로에 온 후 이용찬은 부상관리 등으로 출전기회조차 없었죠. 그러다 이번 시즌 막바지에 출전하면서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김경문감독은 이용찬이 2009년 유력한 마무리 후보라고 했는데요. 150km에 육박하는 돌직구가 상당히 좋습니다. 전성기의 오승환을 연상케 할 정도죠. 약간 새침떼기 같은 이미지의 임태훈이냐, 돌부처같은 이미지의 이용찬이냐, 팬으로서는 초특급 투수 두명이 경쟁하는 모습을 흐믓하게 지켜보겠네요.

3. 박민석(15경기 1패, 방어율 1.63, 1피홈런, 볼넷 8, 삼진 8)
지난 여름에 경기장에서 이상한 풍경을 봤습니다. 야구장에 가면 5회 끝나고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푸는데요. 갑자기 여자팬들이 소리지르면서 사진을 찍더라구요. 알고보니 박민석을 카메라에 담기위한 해프닝이었습니다. 이미 외모만으로도 스타 반열에 오른 박민석이 벌써부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더군요.


근데 박민석은 외모 이상의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사이드암이지만 상당히 공격적인 피칭으로 유명하죠. 두둑한 배짱이 남다른데요. 그런 이유로 한국시리즈 때 엔트리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마운드에 오르진 못했지만 덕아웃에서 느끼는게 많았을겁니다. 공도 빠른편이어서 143km 정도의 최고 시속을 갖고 있구요. 제구력도 수준급이고, 특히 공의 움직임이 좋습니다. 사이드암의 특성상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볼이 많은데 그런 장점에 묵직함이 더해졌다고 보면 되겠네요. 이제 두산에서도 든든한 옆구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위의 세명은 2009년에 자신의 존재감을 높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산에선 금방 도태되죠. 그게 프로의 생리구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으리라 보고 근성으로 무장해서 올 겨울 혹독하게 자신을 이기는 훈련하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그냥 바라만 봐도 배부른 세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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