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후 너무 오랜만에 포스팅을 남기네요.)

간만에 포스트시즌 직관을 갔습니다. 4차전이었는데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기도 했고, 또 지금은 이미 시리즈를 삼성에 내준 상태인지라 리뷰한다는게 김샌 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록을 위해 남겨두는 정도로 하렵니다.

4차전 결과는 뭐 아깝게 졌지만,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기에 전혀 아쉽지 않았네요. 물론 이기면 좋았겠지만,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준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티켓은 곰대에서 양도받아서 갔구요. 두산팬중에 사기꾼이 있겠어? 하는 심정으로 믿고 입금했습니다. 덕분에 잘 봤네요.
 
경기는 박진감 넘쳤습니다. 업치락 뒤치락 피말리는 승부로 9회까지 향방을 알 수 없었죠. 관중석에서 어찌나 소리질러댔는지 목이 쉬었습니다. 특히 2-7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아웃 이후 연속안타로 7-7 동점을 만든 순간... 그날의 경기 결과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야구를 본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했고 자랑스러웠거든요. 가장 두산다운 방식의 야구를 같이 한다는게 승리보다 더 소중했습니다. 그런 야구만 해준다면, 우승을 못한다해도 속상하진 않을 것 같네요. 지난 2000년이 그랬었죠. 현대에 비록 우승을 내줬지만, 0-3에서 3-3까지 따라가고 7차전에서 3-4로 아쉽게 지는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조계현의 투혼이 팬들을 눈물겹게 했구요. 선수들 모두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누볐죠. 준우승을 하고 나서 관중석에 올라 내년엔 꼭 우승하겠다고 약속해주고... 하여간 미러클 두산이라는 말이 참 실감이 나던 시리즈였습니다. 그런 자부심을 이번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느끼게 해주네요.
덧글...
삼성은 올라가서 SK에 2연패하고 있습니다. 'SK! 대단하구나~'라기보다 '삼성! 우리좀 밀어주지 그랬어?' 하는 심정이네요. 어쨌든 관심도는 확 떨어졌지만, 두팀의 아름다운 승부 기대합니다.


(중간에 야구 보면서 포스팅을 쓰고 있었는데, 완전히 지우고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이건 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한의 감동의 쓰나미가 심장을 사정없이 휘몰아치는군요. 11회말 타신의 동점 2루타와 반장곰의 끝내기 안타가 터지는 순간, 심장 박동수는 저멀리 안드로메다를 향해 치닫고, 억누른 목소리는 터져나오고, 이제 정말 한이 서린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현장에 계신 분들 너무 부럽습니다. 이런 대첩을 직접 관람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그것도 포스트시즌에서의 대첩이라 격을 달리 하거든요. 어떻게든 표를 구해보는거였는데... 정말 아쉽습니다. 

오늘 0-4에서 6-4로 역전 그리고 6-6으로 동점, 연장전 돌입한 후 6-8로 재역전 당했을 때도, 왠지 질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죠. 설사 지더라도 다시 4, 5차전을 승리로 이끌어 한국시리즈 티켓은 우리가 따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구요. 그리고 이어진 11회말에서 믿음이 현실로 둔갑하는 장면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극적인 시나리오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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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매력은 가장 숫자에 근접한 스포츠이면서도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늘 묵직하게 존재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곧잘 인생과도 비교합니다만, 사실 11회초에 2점을 내줘 패색이 짙었을 때, 이걸 역전시킬 수 있는 3점을 낼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수렴하죠. 단 세명의 타자만 잡으면 되는데, 투수의 방어율을 보나, 연속안타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을 보나 그렇죠. 하지만 야구공은 둥글고 배트도 둥글기 때문에 그 순간에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구라선생이 '야구 몰라요~', 요기 베라는 '경기가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라는 명언을 남기신거겠지요.

선두타자 이종욱이 안타로 출루하는 순간 역전할 수 있다는 느낌... 저만 가졌을까요? 아마 두산팬 뿐만 아니라 삼성팬, 선감독, 마운드에 정인욱투수까지 느꼈을겁니다. 공 하나로 1년 농사의 결과가 왔다갔다 하는 그 무게를 정인욱이라는 신인급 투수가 견디기는 힘들었을테죠. 백전노장인 박진만도 수비의 달인 손시헌도 에러를 하는 자리인걸요. 결국 정인욱은 두목곰과 고젯을 볼넷으로 내보내고 타신에게 동점 2루타를 맞았습니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두목곰은 그렇다해도 고젯을 볼넷으로 내준게 참 뼈아팠네요. 포스트시즌에서 이름값 못하는 그를 감안한다면 맞더라도 무조건 승부했어야 하는데... 만루가 되는 순간 이미 경기는 끝내기 수순으로 접어든 셈이었습니다. 사색이 된 정인욱의 낯빛만 봐도 알 수 있었네요. 그 끝내기의 주인공이 반장곰인건, 참 하늘이 드라마를 써도 이렇게 잘 써주셨나 싶습니다. 반장곰이 앞서 9회 끝내기 찬스를 날려버린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거니까요. 그리고 그 기회를 반장곰은 놓치지 않고, 팬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오늘 결승타를 날린 손시헌, 누가 뭐래도 두산의 자존심인 김동주, 투혼의 야구를 보여준 임태훈, 동점타를 날린 임재철, 6타수 3안타의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오재원, 든든한 허리를 지켜준 왈론드, 허슬플레이의 원조 이종욱, 두산의 신형 엔진 정수빈, 좋은 구질을 보여준 이현승, 홈런 맞아도 늘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정재훈, 두산의 안방마님 양의지, 탄탄한 수비를 보여준 이원석... 정말 잘해줬구요. 그리고 개점휴업 중인 김현수, 서서히 컨디션 찾고 있는 고영민, 미래의 희망 성영훈, 한국시리즈에선 선발로 내보냈음 하는 김성배, 좌완 김창훈, 대주자로 잠깐 나온 용덕한, 아직 타격감 조율 중인 이성열, 오늘 모처럼 타석에 섰지만 불발에 그쳤던 김재호, 대주자로 나왔던 민병헌... 모두 자랑스럽습니다.(혹시 빼놓은 선수 없나요?)

성급하긴 하지만 누가 이번 가을야구를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미러클 두산의 어게인 베이징 버젼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가을야구가 무르익을수록 말할 수 없는 야망이 점점 탐스럽게 영글어만 갑니다. 너무 두레발치면 안되겠죠...? 제발... 이번 가을만은...

덧글 1...
제가 원하는 야구는 이렇게 용찬이가 빠지면 태훈이가 막아주고, 현수가 낙담해 주저앉으면 종욱이가 일으켜 세워주는 야구입니다. 특히 팀에 악재가 닥쳤을 때, 오히려 더 똘똘 뭉쳐서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야구, 이제야 비로소 두산다운 야구를 하는 것 같아 흐믓하네요. 이제 두산은 힘도 없지만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덧글 2...
뭘 중계해도 sbs는 찌질합니다만, sbs 라디오 중계한 정동진 해설은 참... 명경기에 티만 남겼네요. 해설이란게 말 그대로 해설이어야 되는데, 게다가 지금 야구팬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있는데, 마냥 되도 않는 소리만 해대고 있으니... 잠깐 외출하면서 들었는데 임팩트 강한 헛웃음 여러번 했습니다. 해설할 사람이 그렇게 없나요? 


두산베어스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중에 '미러클'이 있죠. 미러클... miracle... 기적이라는 뜻인가요? 이 단어에는 미러클이 지닌 중독성과 좌절감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어, 구단에게는 자기위안적 쾌감을, 팬에게는 정신적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미러클 두산'이란 용어는 매년 선수를 팔아먹어 예상순위에서는 하위권이지만, 실제 성적에서는 늘 상위권을 유지하기에 붙여진 별명입니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심정수, 우즈, 정수근, 진필중 등이 이탈하던 2000년대부터 불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구단에서는 저비용 고효율의 훈장처럼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전 그닥 좋아하는 단어가 아니네요. 뉴욕양키스에게 미러클이라는 품위 저렴한 단어를 붙이지는 않으니까요.

명문구단의 정의를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전 뿌리깊은 구단의 역사가 있고, 구단이 집행하는 예산이 방대하고, 성적이 최상위급에 속하며, 선수들의 실력이 높고, 팬이 많아야 명문구단이라고 봅니다. 뉴욕양키스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팀이 속하겠죠. 그런 의미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를 뺏기는 구단은 명문구단이 되기 힘듭니다. 우선 역사가 훼손되고, 선수들의 충성도가 낮아지고, 팬들이 떠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두산구단의 최근 행보에 아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는겁니다.

이젠 김동주마저 떠난다고 하네요. 확정은 안되었지만, 거의 그 수준에 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김동주와의 이별은 일본에서 새출발하고 싶어하는 본인의 의지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죠. 또 설사 남는다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여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에... 아쉽지만 이번에 두목곰이 꼭 일본으로 진출해서 성공하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는 벌써 김동주가 떠난다는 가정 하에 두산의 내년 성적을 점치고 있더군요. 대개 '4강도 힘들다'와 '그래도 4강은 간다'로 나뉘는 것 같은데요. SK와의 복수혈전을 준비해야 하는데 4강을 논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더욱 기분이 안좋은건 내년에 좋은 성적을 내야 하지만, 내도 문제라는거지요. 김동주, 홍성흔, 안경현, 이혜천 없이도 코리안시리즈를 간다면, 혹은 우승을 한다면, 구단에서 미러클 두산이라는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할지도 모르거든요. 계속 프랜차이즈 선수에 대한 홀대가 이어지고, FA에 대한 무관심으로 머니볼 게임만 하는 구단으로 전락할까 두렵습니다.

내년에 누가 되든 김동주, 홍성흔, 안경현, 이혜천을 커버하는 선수가 분명 나올겁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선수들이 있긴 한데... 어쨌든 분명 새로운 스타가 출현하겠죠. 두산의 탁월한 팜시스템은 타 팀들의 벤치마킹 수준이니까요. 그리고 야구팬들은 역시 '미러클 두산'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테구요. 하지만 정작 두산팬들은 좋아하다, 체념하다, 화내다를 반복하는 인지부조화에 허덕이겠지요. '미러클 두산'이 지닌 좌절감이 중독성 만큼이나 치명적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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