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J의 방문

S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수첩에서 찾은 전화번호는 W였다. C일보가 Q 컨텐츠 컴퍼니로 넘어간 이후 무려 1/3의 C일보 기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동아투위 이후 기자들의 대량 해고사태는 처음이라는, 그래서 자본에 의한 언론학살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W는 이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W는 국내 포털사이트 D에서 블로거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W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W : “여보세요”
S : “W! 나야 S!”
W : “어 그래 잘 지내지?”
S : “그럼. 잘 지내지.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있어?”
W : “어, 특별한건 없는데… 왜 라운딩하게?”
S : “아니 시카고에 J가 잠시 귀국한다고 하네. 함 뭉칠까 하고~”
W : “아 그래? 잘됐네. 간만에 술한잔하세”



6. 오랜만의 해후

강남의 한 술집에서 만난 S와 J, W는 오랜만의 만남으로 기나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세명은 시카고에서의 추억, 논문 스트레스, 가족들끼리의 안부 등으로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각각 통신사, 방송사, 신문사에서 일할 때 처음 만났지만 지금은 조금씩 다른 영역에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S는 대학강단에서, J는 시카고 한인방송국에서, W는 포털사이트 D에서… S는 아직 통신사와 대학강단을 겸직하고 있지만 조만간 대학강단에 전념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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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흐르자 세 명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놀라움과 두려움을 토로한다. 시카고 유학시절까지만 해도 영원불멸의 제국은 아니어도 방송사와 통신사는 안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이 깨졌을 때 개인은 한없이 작아지더라는 생활 속의 깨달음이 진지하게 튀어 나왔다.

J : “좋은 시절 다 갔어. 방송사가 저렇게 찌그러질 줄 누가 알았겠어?”
W :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냐? 신문사는 포털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지 오래야.”
S : “통신사라고 뭐 용가리 통뼈인줄 아냐? 이제 우리도 벼랑 끝이야.”
J : “내가 지상파에서 지역 방송사로 간거고…”
S : “W가 신문사에서 포털사로 가고…”
W : “S가 통신사에서 학교로 가고… 야~ 다들 변신의 귀재구나 하하하”


술김에 누군가 화두를 던졌다. 10년 후에도 지금의 산업구조가 유지될까? 그러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바의 뽀얀 담배연기가 보일락 말락 공중으로 사그라져 간다. <끝>



※ 이 글은 우모가 <방송환경의 변화와 미래>의 기말 레포트로 작성한 <미디어 오딧세이, 2017> 입니다.






3. S의 귀국

S는 논문이 통과되자 귀국 준비를 서둘렀다.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귀국하자마자 출근해야 할 판이다. 세계 최고의 검색사이트인 G와 VoIP 사업자인 S가 한국에서 4G 무선 통신사업을 시작한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K통신사는 국내 통신업계의 맏형이자 자회사인 F를 통해 명실공히 유무선 터줏대감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하지만 G에서 무선망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 글로벌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기존에 구축한 플랫폼은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이는 것이다.

S는 귀국 비행기에서 뉴스를 틀었다. 뉴스에서는 G가 4세대 무선망인 와이브로 버전 2를 무료로 개방하는 대신 VoIP의 통화료만 부과하겠다는 발표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것도 국내 이통사 통화료의 1/3 가격으로 말이다. 그동안 비싼 이통사 요금에 불만을 가져온 소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고 정통부도 4G는 기술적 배경이 무선과 다르므로 법제상 문제는 없다고 한발 빼고 있었다. 유선은 국가 기간망 산업으로 보호되지만 무선은 다르다는 해설도 곁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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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서 S는 중얼거렸다. ‘드디어 올게 오고 마는구나. 이렇게 되면 이통사도 무너지고, IPTV 사업도 힘들어지고, DMB도 물 건너가고 결국 유선도 잠식 당할텐데….’

사실 G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몇 년전 유사한 모델을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하지만 그건 국지적인 지역에 한정됐고 VoIP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러더니 올해 초 G가 S를 인수하고 VoIP를 전면에 내세우고부터 이 모델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 했다. D, S, C 등 미국의 통신사들은 극렬하게 반발했지만 소비자의 선택까지 막지는 못했다.

S의 논문주제는 바로 G의 무선통신사업 모델에 관한 것이었다. S는 G가 무선사업이 발달한 한국을 타깃으로 할 것을 예견하긴 했지만 이렇게 급속히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논문자료 수집차 만났던 검색사이트 G의 관계자는 해외진출에 대해 그리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었다. 어쨌든 S는 입맛을 다지며 인천공항을 나섰다.


4. J의 이직

J는 아직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귀국까지는 6개월 정도 남았다. 하지만 귀국할 생각이 별로 없다. 가족들도 미국생활에 만족하지만 K방송사로 복귀해봐야 별로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J는 한때 잘나가는 예능 PD였지만 이젠 걸리적 거리는 선배에 불과하다. 아마 명퇴 압력만 받을게 뻔하다. 이미 시카고 한인 방송사의 전직 제의는 받아 두었다.

8년 전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의 IPTV 서비스는 이제 중흥기를 맞았다. IPTV는 그저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전송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시청자가 직접 만드는 미디어 센터로 환골탈태했다. 과거 DMB는 시청자의 제작 참여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어 활성화가 불가능했다. 그저 이동 중에나 보는 단말이라는 인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IPTV는 그 한계를 극복했다. 처음에는 UCC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동영상이 IPTV의 주요 컨텐츠로 뜨더니 UCC 제작자들이 모여 기업화를 이루고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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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커지자 아마추어 카메라맨에서 전직 방송사 PD 등 우수인력까지 IPTV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시청률 상위 10위 프로그램 중 4개가 비지상파 프로그램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이제 뉴스를 제외하곤 지상파가 우위에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J의 이직결심을 굳히게 한건 2006년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삐딱씨의 무한발언>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J와 절친한 회사 동기 R이 만든 첫 번째 정치 풍자 코미디다. 물론 IPTV UCC 채널에서 방영된다. 얼마나 호응이 높은지 주1회 1시간 편성이 주2회 편성으로, 그리고 지금은 주4회 편성으로 확대되었다.

사실 R은 방송사에서 소문난 괴짜였다. R의 아이디어는 독특하지만 방송사는 그의 천재성을 수용하기엔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이런 R의 재능은 IPTV에 적합했고 그는 첫 작품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삐딱씨의 무한발언>은 교포가 많은 시카고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J는 시카고 한인방송에 이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던 인연으로 이직 제의를 받은 것이다.



※ 이 글은 우모가 <방송환경의 변화와 미래>의 기말 레포트로 작성한 <미디어 오딧세이, 2017> 입니다.




1. 시카고의 파고다공원

햇살이 따사로운 미국 시카고의 어느 대학교 도서관. S는 졸업논문과 씨름하고 있다. 지난 캘리포니아 방문 때 수집했던 자료를 마무리 하는게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다소 심각한 얼굴로 분주히 자판만 두들기고 있다. 며칠 전 지도교수 K가 보강하라고 지적한 내용을 고민하지만 진척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짜증이 났다. ‘젠장 논문 쓰기 힘드네~ 내가 왜 여기 와서 이 고생일까?’ 잠시 노트북을 덮는다. 그리고 머리도 식힐 겸 녹차 머그컵 집어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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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뒤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이 학교 설립자 동상이 우두커니 서있는 공터가 있다. S가 답답할 때 바람을 쐬러 자주 찾는 곳이다. S가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려한 풍경도 좋지만 또래의 한국 유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알아준다고, 30~40대의 고참 유학생들만의 애환을 나눌 공간은 필요했으리라. 그래서 늙다리들만 모이는 이 공터를 한국 유학생 사회에서는 파고다공원이라 부른다.

파고다공원에는 마침 K방송사의 J국장과 C일보의 W기자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S는 반가웠다. 이 들과는 가족을 데리고 늦으막에 유학을 왔다는 공통점으로 사석에서 곧잘 어울리곤 했다. 특히 W기자는 올 초 시카고에 처음 왔을 때 S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S : “다들 바쁘지는 않은가봐? 여기서 소일하고 있는거 보면?”
J : “어서 와~ 우리도 막 여기서 만난거야”
W : “어떻게 논문은 잘되어가나?”
S : “글쎄 잘 되는건지 원~ 그냥 휘갈기고 있어 나도 늙었나봐. 아무 생각도 안나.”
W : “귀국이 언제라 그랬지?”
S : “논문 통과되면 다음달 27일… 거의 3년만이지”
J : “그래? 자칫 잘못하면 W랑 같이 귀국하겠구만.”
S : “아니 왜?”
W : “……”



2. W에게 온 전화

W는 할말은 한다는 신문사에서 15년 기자생활을 했다. C일보는 정치분야에서 워낙 막강한 입김을 자랑하는지라 그런대로 W도 만족스러운 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청와대를 비롯해서 정당, 검찰청 등 요직이라는 요직은 다 거쳤다. 나름 인정도 받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불현듯 유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기도 했고, 지난번 미국 특파원 지원에 떨어진 한을 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판매부수는 물론이고 광고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5대 포털의 광고시장 규모가 이미 신문사 전체의 광고매출을 추월했을 뿐만 아니라 구글의 애드센스와 같은 1인 미디어 광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신문 광고시장은 어딜 가도 찬밥신세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작년 매출이 한창 잘나갔을 때의 67% 수준이란 얘기가 들렸다. 물론 직원 수는 2.3배가 증가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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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는 이런 회사의 사정을 뻔히 아는지라 유학자금 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다. 불과 3~4년전만 해도 회사돈으로 유학가는건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동료들은 한술 더 뜬다. 이런 분위기에서 휴직은 구조조정 1순위라나 뭐라나... 하지만 W는 오랜 기러기 아빠 생활로 지쳐있었기에 어떻게든 미국에서 가족과 합치길 원했다. 결국 그는 자비로 비행기를 탔다. 회사에서는 지원해주는 것이 한 푼도 없지만 그래도 해고 대신 무급휴가라도 준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런 W에게 어제 아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고향 직속후배인 L기자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시작한 통화는 이내 우울한 소식이 되고 말았다.

L : “W선배, 저 L입니다.”
W : “아이고 이게 누구야. 경제부에 잘나가는 L기자 아니신가?”
L : “예, 잘 지내시죠?”
W : “그럼 잘 지내지, 더워서 힘들긴 해도, 거기 태풍피해 크다더니 괜챦나?”

중략

L : “아 선배 혹시 회사 얘기 못들었죠?”
W : “엉… 특별한 얘긴 들은게 없는데 왜?”
L : “아마 곧 통지가 갈텐데, 우리 회사 넘어가요.”
W : “뭐라고? 넘어가? 어디로?”
L : “놀라시겠지만 Q라고 컨텐츠 컴퍼니 아시죠? 홍콩에 아시아지부가 있는…”
W : “엉 알지. 설마, 그 놈들이?”
L : “거기서 인수해요. 말로는 지분만 가져가고 경영권은 남긴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경영권까지 다 가져간다는 말도 돌던데요.”
W : “………”


W는 순간 말을 잃었다. Q 컨텐츠 컴퍼니라면 부실 신문사를 인수해서 기반을 다지고 잡지사, 방송사를 먹어 치우는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이다. 게다가 ,Q에 인수된 기업은 대개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대량 실업사태를 야기하곤 했다. 그런 Q 컨텐츠 컴퍼니가 한국에 온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그 첫 대상이 C일보일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W의 한숨이 깊어만 갔다.



※ 이 글은 우모가 <방송환경의 변화와 미래>의 기말 레포트로 작성한 <미디어 오딧세이, 2017>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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