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에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봤습니다. 프랑스 작품이 그렇듯, 이 뮤지컬도 대사가 별로 없는 Song-through 방식인데다 스토리도 쉽지 않아서 나름 예습을 하고 갔습니다. 공연장에서는 대사집과 프로그램도 미리 훑어봤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면서 좀 헷갈리는 부분이 있더군요. 끝나고 와이프랑 얘기하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혹시 보러 가시는 분들은 미리미리 예습 철저히 하시는게 이로울 듯...

뮤지컬을 보는 제 기준은 우선 재밌어야 한다는 겁니다. 재미가 없으면 그닥 기억에도 남지 않구요. 교훈적인 내용도 잘 캐치가 안되더라구요. 그리고 노래가 좋아야 하죠. 뮤지컬이 대사를 노래로 하기에 시끄러운 언쟁도 아름다운 하모니로 들리 듯이, 노래가 핵심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을 정도의 뮤지컬이라면 훌륭하죠. 맘마미아나 명성황후, 렌트 같은... 마지막으로 춤이 볼 만해야 합니다.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나면 어느 정도 작품에 대한 불만은 희석시킬 수 있거든요. 근데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일단 재미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물론 제 기준이구요. 인터넷에는 너무 재밌었다는 분들도 많던데, 기호 차이야 뭐 흥정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노래도 좀 어렵더라구요. 춤은 그런대로 볼만 했습니다. 아크로바틱한 느낌이 좀 새로웠구요. 비보이 스타일도 눈에 띄구요. 무대장치도 웅장해서 괜챦었네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입니다.


감상소감은 이 작품이 프랑스 내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피지배 이데오로기를 억압하는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생각되네요. 우선 대립구도로 보면 프랑스 지배층과 집시족, 권력을 가진 남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로 나뉩니다. 스토리에서는 아름다운 집시여인 에스메랄다를 두고 종교를 상징하는 프롤로 주교, 권력을 상징하는 페뷔스 근위대장, 욕망을 상징하는 콰지모도가 얽히고 설킨 애정관계를 보여주는데요.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했지만, 결국 15세기 프랑스의 절대권력인 주교와 근위대장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에스메랄다를 사지에 몰아넣습니다. 유일하게 콰지모도만 순수하게 사랑을 지켰죠. 결국 프랑스 사회에서 마이너 중의 마이너 민중인 집시 여인은 메이저에 이용만 당하다 교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나마 신의를 잃지 않은건 메이저 중의 마이너인 꼽추 콰지모도였다는 점...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요? 두 계층이 처음에는 화합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권력으로 옥죄고 파멸시킨다는...

현재의 프랑스는 똘레랑스(tolerance)라고 하는 사회적인 관용이 인정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공공 노조 파업에도 시민들이 불편한 내색보다는 최대한 그들의 주장을 들어주려는 연대의식이 있는데요. 그런 정신이 하루 아침에 생긴게 아니라, 이 뮤지컬처럼 수세기 동안 지배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공방끝에 생긴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뮤지컬에 등장하는 프랑스 근위병들의 집시 진압장면이 참 낯설었습니다.

뮤지컬 보면서 에스메랄다 역으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문혜원이 나오길 바랬었는데, 예약할 때 미처 체크를 못했네요. 오진영이 출연한 날이었습니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오진영도 뛰어난 연기 펼쳤습니다. 프로그램을 보니 바다도 에스메랄다 역을 맡았네요. 바다는 두산의 광팬이기도 해서... 참... 정감이 가는 배우라능... 다음엔 꼭 예매할 때 캐스팅을 챙겨야겠습니다.

바다의 열렬한 두산응원 장면 보러가기
LG에 짜릿한 연장 역전승을 거두다

덧글...
국립극장 차 안갖고 오면 갈 때 고생 많이 하네요. 차를 갖고 가거나, 아니면 일찍 나와서 셔틀버스 타거나, 그도 아니면 거리에서 경쟁률 뚫고 택시를 잡아야 합니다. 어제는 기분좋게 공연 보고 살짝 짜증이 났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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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티켓이 있다고 해서 갑작스레 뮤지컬을 봤습니다. 황정민이 출연한 뮤지컬 '나인(Nine)'인데요. 연기력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황정민이 어떻게 변신할까 궁금했었습니다. 사실 전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 연예인이 뮤지컬 하는 것에 대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반반씩 갖고 있거든요. 조승우는 참 좋았던 케이스였는데, 허XX나 유XX 등은 성량도 딸리고 대사 전달력이 분명치 않아 이해하는데 힘들었던 기억이 있죠. 일단 황정민은 좋은 쪽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뮤지컬은 일단 노래를 잘해야 하는데 황정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노래를 잘 하더군요. 목소리도 굵고 꽤 커서 무슨 대사를 하는지 또렷했구요. 듣기에도 편안했습니다. 연기도 물론 잘하구요.

근데 결정적으로 뮤지컬은 그닥 재미없더군요. 원작의 한국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아쉬웠습니다. 뮤지컬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의 자전적 영화 '8과 1/2'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해서 유명해졌는데 황정민이 바로 그 귀도 역을 맡았죠.

남자주인공 귀도는 9세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추어 버린 듯한 천재 영화감독의 방황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현실은 상당히 피곤한 사람이죠. 아내에게도 이혼을 요구당하는 몽환적인 캐릭터입니다. 아내와의 화해를 위해 떠난 스파여행에서 바람피웠던 여자들이 등장하여 일은 더욱 꼬여만 가다 제작하는 영화도 망하고 와이프 루이사, 애인 칼라도 떠나고 홀로 남게 됩니다.




흡사 남자의 성장영화 같기도 하구요. 사랑과 전쟁을 뮤지컬화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바람을 피운 남자의 최후를 그린 권선징악적 성격도 엿보이네요. 근데 귀도가 그렇게 카사노바 행각을 벌이게 된 사실과 과거 어린 시절의 귀도가 카톨릭학교에서 겪었던 성적 충격의 연관성이 그리 잘 표현되어 있지 않아 연결고리 구실을 잘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스토리가 설득적이지 못해 재미가 없구요. 그래서인지 관객들의 호응도 그닥 밋밋했습니다.

저는 재미없는건 잘 참는데 부자연스러운건 못견디거든요. 근데 웃기려고 했던 대사와 시츄에이션이 그렇지 못할 때 느끼는 관객으로서의 당혹감이란... 좀 거시기 합니다. 그래서 그랬나요? 앵콜도 없었구요.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들도 심드렁한 표정이더군요. 같이 봤던 후배도 그닥 재미있어 하진 않았구요. 그저 황정민을 가까이서 봤다는걸로 위안을 삼더군요. 황정민이 다른 뮤지컬을 한다면 기꺼이 볼 의향이 생겼습니다. 조승우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뮤지컬을 해도 괜챦은 배우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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