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셔터 아일랜드'를 보면서 내가 생각났다고 하더군요. 워낙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딱 우모스타일이라고 본거죠. 예전에 '아이덴티티'에 대해 극찬을 했던게 기억났나 봅니다. 안그래도 '셔터 아일랜드'는 극장에서 꼭 보려했는데요. 기회를 놓치다 이제사 봤네요. 예상했던대로 명장 스콜세지 감독의 연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구요. 인상깊었습니다.

영화는 정신병동에서 환자가 사라진 사건을 연방수사관이 투입되면서 시작됩니다. 연방수사관은 디카프리오구요. 촌스런 넥타이를 달고 나옵니다. 의욕적인 수사는 병원 관계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비협조 속에 미궁에 빠지는데, 사라졌던 환자가 나타나면서 사건은 종결되는 듯 하죠. 하지만 디카프리오가 이 섬에 품고 있는 의문, 이 병원에서 조직적으로 뇌에 대한 생체실험 의혹을 파헤치고, 자신의 아내를 죽게 만든 방화범을 만나기 위해 섬을 수색합니다. 이 와중에 디카프리오는 여러가지 환영을 보게 되는데, 자신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의 참혹했던 광경,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가족이 죽게되는 장면이 어지럽게 펼쳐집니다.

대략 이 즈음에서 영화에 대한 반전이 대충 그려지긴 했습니다. '아이덴티티'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거든요. 주인공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지만, 결국 자신이 그 문제의 해답이라는 설정... 다만 '셔터 아일랜드'는 '아이덴티티'와는 달리 고립된 섬과 정신병원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개인이 하나의 객체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구분됩니다. '셔터 아일랜드'의 디카프리오는 한 인간이 권력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죠. 여기에서의 인간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은 차단된 채, 사회권력체계에 훈육되고 길들여진 부속품같은 존재입니다. 의사와 환자, 지시와 복종을 상징하는 정신병원의 고압적인 건축물이 그렇구요. 환자들에게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각 병동과 등대, 동굴 등도 개인의 자유로운 왕래와 사고를 차단하는 구조주의가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의 방어기제로서 없는 환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간는 것, 또한 눈여겨볼 만 하죠. 마치 수조 속에 갇힌 물고기가 아직 바다에서 살고 있다고 자기체면화하는 듯한... 적당한 비유일런지는 모르지만,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디카프리오가 전쟁경험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가정 파괴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스로를 연방수사관 테디라는 가공의 인물로 스스로를 설정한 것은 차라리 애처로웠습니다.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하구요. 하지만 정작 우모를 놀라게 한건 그의 마지막 대사였습니다. 그는 정신이상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미친 척 했을 뿐... 

'당신이라면 어떻게 선택을 하겠는가? 괴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좋은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영화 끄트머리에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정신병원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에도, 마지막 순간에 주치의에게 자신의 환상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디카프리오. 스스로 괴물임을 인정한다면 이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러느니 차라리 가공의 자아로 남아 죽음을 택하겠다는... 어떻게 보면 구조에 저항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여겨지네요. 그러고보면 '올드보이'의  최민수가 최면을 선택하여 과거를 지우고 딸을 취한 것도 현실을 수용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였던 겁니다.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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