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기에서 처참히 무너진 뒤에도 로이스터나 롯데 선수들은 여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로이스터는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웃어넘겼고, 이대호는 '차라리 큰 점수차로 져서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죠. 이런 여유가 2차전에서 실제 플레이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2차전을 지켜 봤습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롯데의 포스트시즌 적응력은 높아졌지만, 삼성의 노련함을 넘기에는 2% 부족했네요. 찬스에서 냉정하게 대처한 삼성의 베테랑 타자들, 그리고 정현욱-권혁-안지만-오승환으로 이어지는 철옹성같은 계투진은 김성근감독의 얘기대로 현재로서는 최강수준이더군요.이제는 두산의 상대로서 삼성이 조금씩 버거워지는 느낌마저 듭니다. 롯데가 막판 분발해서 5차전까지 끌고 가길 바래봅니다. (과연?)

이번 2차전은 롯데팬의 비신사적 관전으로 스스로 밸런스를 무너뜨렸다는게 못내 아쉽습니다. 왜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가을야구를 부산시민들은 스스로 망가뜨리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정작 큰 경기 초짜는 선수가 아닌 관중들이었나 봅니다. 2차전 중반 롯데가 한점씩 쫓아가는 흐름에서 선동렬감독이 심판에게 항의로 인해 분위기가 흐려졌는데요. 항의 내용은 다름 아닌 레이저였습니다. 레이저로 선수들과 코칭스탭의 눈에 쏜다는 것이었구요. 삼성 코치진은 손으로 레이저를 쏜 사람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빤히 보이는데서 의도적인 행위가 분명한거죠.

순간 롯데의 패배를 직감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이저로 이미 게임은 끝난거였습니다.

어제의 관중 소란으로 롯데는 이미 인터넷에서 공공의 적으로 몰렸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살린 공신에서 역적으로 하루아침에 급전직하한거죠. 어제의 사건만 없었다면 돈성이라는 악의 제국에 대항하는 부산 갈매기의 대결구도였을텐데, 무개념 꼴리건에 박해받는 삼성 사자로 바뀐겁니다. 덕분에 부산의 야구열기는 식어버렸고, 심지어 2차전은 매진조차 되지 않았죠.

야구에서는 분위기가 중요한데요. 롯데가 간신히 추격을 하려는 찰나에 레이저가 튀어나온건, 스스로 '악의 축'이라는 자괴감을 선수나 관중들에게 안겨주는 찬물이었습니다. 롯데로서는 재앙이었죠. 레이저는 관중에게 응원을 하면서도 뭔가 찜찜함을, 선수들에게는 플레이를 하면서도 왠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을 갖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에 추격의 의지는 꺽였구요. 한 게임이 아닌 한 시즌의 농사를 모두 망친 결과로까지 이어졌다고 봅니다. 결국 롯데는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Curse of the Billy Goat)처럼 레이저의 저주를 안게 되었네요.

이후의 경기는 뭐 롯데의 반격다운 반격없이 밋밋하게 이어졌구요. 9회에 반짝 1점을 만회하는데 그쳐 오승환의 세이브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토록 롯데팬들이 원했던 사직구장에서의 가을야구는 '삼성응원단상 점거'와 '레이저'로 얼룩진 2경기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2008년 준플레이오프는 선수들에게 왜 못쳤냐고 묻기 보다 관중들에게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시리즈가 되어버렸네요. 두산으로서도 삼성의 노련함을 깰 수 있는 비책 마련에 본격 돌입해야겠구요. 좀더 분석을 할 수 있도록 롯데가 대구에서 2승을 해준다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아 보이구요. 아쉬운대로 1승이라도 해주길 기대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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